『공포』, 체호프 단편선, 안톤 체호프, 민음사, 2002.
-한 친구의 이야기-
안톤 체호프(1860-1904)는 남부 러시아 항구도시 타간로그 출생으로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의사가 된다. 그는 특이하게 유머잡지 같은 곳에 300여편의 단편을 기고하게 되고 그것이 남아 지금 전해지고 있다. 블랙유머, 즉, 웃기면서 끔찍한 소설들이 그의 단편 세계이다. 그 후 단편 소설가, 극작가로 그를 단편 소설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재능에 비해 빠른 나이 45세에 생을 마감한다. 의사였지만 객혈을 하며 건강이 좋지 않았고, 마지막 유언은 ‘나는 죽는다’라며 짧게 전했다고 한다. 대표 단편 소설은 <관리의 죽음>,<결투>,<귀여운 여인>,<약혼녀> 등이 있으며 4대 희곡은 <갈매기>,<바냐 아저씨>,<세자매>,<벚꽃동산> 등이 있다.
안톤 체호프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낳은 최고의 단편 소설가자 극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작가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의학공부를 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삶의 외면적인 희극성을 다루는 작품을 주로 쓰다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면의 감추어진 영혼의 고뇌와 애수를 담은 작품들을 내놓는다.
체호프의 작품세계는 놀라운 사건을 도입하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설정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건이 있더라도 자체의 외부적인 측면보다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다양하고 모순된 반응에 주목한다. 대체로 느슨한 플롯인데다가 그 결말이 미결정 상태로 끝나도 주인공들도 어리둥절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에는 세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의 친구이다. 페트로비치는 대학과정을 마치고 페테르부르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 살에 직장을 버리고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페트로비치는 아내 마리아 세르게예브나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고 있다. 마리아는 페트로비치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다. 2년 동안 페트로비치의 구애 끝에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어요>라는 말을 하며 결혼을 승낙했던 것이다. 페트로비치는 이런 아내에 대해 처음엔 감지덕지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같이 한 지붕 아래서 서로 <여보>라고 부르며 같이 잠자고 아이를 가졌고 재산도 공동명의로 했는데(p24).... 아직도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페트로비치는 그런 아내를 아직도 절망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이것이 너무 괴로운 것이다.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페트로비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공포스럽다는 감정을 주인공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비참한 결혼생활을 털어 놓는다.
또 한 사람 <40명의 순교자>라는 별명을 가진 가르류쉬카는 지독한 술꾼이다. 그는 신부 아버지와 귀족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지만 절제와 습관의 부재, 인간 고유성의 상실로 비참한 생활을 한다. 특권층의 신분이었지만 술과 방탕한 생활로 그는 결국 하인, 산지기, 사냥개지기, 교회 수위 노릇을 하며 바람난 과부 요리사와 결혼하며 마침내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해서 흙탕물과 쓰레기를 벗 감아 지내는(p16) 인물이다.
현실은 그들에게 공포다. 아내에 대한 공포,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공포, 배고픔에 대한 공포, 남편과 함께 사는 공포로 이들 모두는 서로 다른 공포로 인생을 살고 있다. 주인공은 우정과 사랑을 두고 갈등하지만 결국 마리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죽음의 공포보다 현실의 공포가 더 무섭다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고뇌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언제나 따분한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도 공포이며 친구와 아내와의 묘한 관계도 그에게는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괴감을 느끼며 농장에서 페트르부르크로 떠났고 그 이후로 다시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와 그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고 전하며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모두 공포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지식인 페트로비치는 모든 것이 두렵고 공포스럽고 지금 보면 우울증에 걸린 인물로 보인다. 손님으로 와 있는 ‘나’라는 인물은 얼핏 보면 삼각관계로 보이는 막장드라마 같은 소설이 될 수 도 있었는데 왜 이것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40명의 순교자>를 등장시킨 이유도 주목해야 한다. 그를 등장시킴으로 삼각관계가 다르게 변화기도 하고 긴장감이 보이는 면도 있다.
또한 여긴엔 단순하지만 어떤 상징을 나타내는 물건이 등장한다. 바로 모자이다. 모자는 그 인물의 위엄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는데 페트로비치는 주인공 방에 모자를 두고 간 것을 주인공 나는 의식하며 그의 아내와 불륜을 갖는다. 그 모자는 또다시 페트로비치가 찾으로 오고 셋의 관계를 모자로 인해 알게 되고 모자라는 존재 자체는 힘이 없지만 그 소품 하나가 긴장감을 주고 있다. 별 역할은 없지만 무생물을 소설 속에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체호프의 위트가 돋보인다. 사물 하나도 구성에 맞게 허투르 배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떠나고 그들 부부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갔을까.
아! 인생이여.
슬픈 공포여.
<서평-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