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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대재앙이 몰려온다! 임박한 환난을 면하고 휴거될 수 있는 신부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이런 저런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었는데, 요즘 계속 올라오는 뉴스가요. 어떻게 보면 너무 무서워요. 이번 주에 보니까 일본에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12월 8일날 규모 7.2의 지진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12일에는 6.5도의 지진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제 한 1%라고 하지만, 대지진이 있을 수 있고 쓰나미가 올 수 있다고 이미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일본만 그러냐는 것입니다. 알레스카에도 12월 7일날 7.0도의 지진이 있었습니다. 또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환태평양 지진대에서요, 최근 지진이 계속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굉장히 제가 유심하게 보는 이유는!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요.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온역과 그리고 민족이 민족을 대항하여 일어나고 국가가 국가를 대항하여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러한 대재앙들이 몰려올 때가 되면 너희는 예비하라. “그때 주님이 오실 것이다”라고 이미 우리에게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최근 들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전쟁은 지금 여러분 모두 아시겠지만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의 소문 아프리카부터 해서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얀마(버마)부터 시작해서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또 이스라엘 전쟁 말고요. 전쟁은 전 세계에서 계속 빈발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스리랑카에 사이클론이나 갑자기 태풍이 불고 있어요. 그러더니 최악의 홍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 쪽에서는 굉장히 이 홍수로 인하여 많은 분들이 사망했습니다. 전체적 사망 숫자가 현재 1800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이 홍수로 인하여 사망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생각도 못한 미국의 워싱턴 주에 대홍수가 일어났어요. 12월이잖아요. 남쪽 이야기가 아니에요. 북반구 이야기예요. 대홍수가 일어나서 미국 워싱턴 주에 약 7만 5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서 그들이 긴급 피난했습니다. 또 엉뚱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대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보니까 사우디아라비아에 차들이 떠내려가고,, 난리가 났더라라고요. 그러니까 어느 특정한 지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구요. 세계 곳곳과 처처에서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고 있어요.
제가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지금 세계 경제 정세가 이렇게 비관적일 때가 없었습니다. 전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요. 유럽은 현재 계속 가난해지고 있어요. 현재 유럽에 있는 경제 지표를 봐서는, 미국과 원래는 대등했거든요. 지금 거의 반밖에 안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영국에 급식을 하는 그리고 식량을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탈출을 하고 있어요. 영국뿐만이 아닙니다. 유럽 전체가 그래요. 그래서 프랑스의 폭동이 일어나고 지금 점점 유럽도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그런 유럽이 아니에요. 이탈리아도 스웨덴도 폭동과 그리고 경제가 무너지고 있어요. 우리가 알던 그런 선진국들이 점점 무너지는 거예요. 미국은 좋습니까? 미국은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물가 폭등으로 미국에 있는 많은 분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한국은 낫습니까? 아니요,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지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환율 폭등으로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여러분들의 저금을 도둑질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요. 더더구나 더 무너지고 있어요. 과거에 중국이 아닙니다. 지금 중국은 생산을 많이 했지만 소비를 할 수가 없어요. 자국 소비가 너무 줄어들어서 중국에서 생산한 물품을 지금 거의 손해를 보고 적자로 지금 수출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철강 산업이 흔들흔들거려요. 적자로 지금 수출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 세계에요. 전 세계 경제 자체가 붕괴되고 있어요. 말씀대로 보면 처처의 기근! 우리가 생각지 못한 기근이 오고 있는 거예요. 기근이 오게 되면요. 반드시 전쟁이 유발됩니다. 큰 전쟁이에요. 지금 세계 정세가 돌아가고 있는 걸 보니까 한꺼번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제가 그래서 “이거 이제 정말로 다급하구나” 우리가 이제 어떤 이스라엘의 증세나 또 아니면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재건되거나 이런 문제 말고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에요. 누구에게 경고하고 계신 겁니까? 우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해요. 내년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들을 가집니다. 우리는 “내년에는 주님 오시겠지!” 하고 희망을 가집시다! 전혀 다른 희망을 가져야 되죠. 그래서 제가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정말로 잘 예비해야 되겠다” 그 생각이 깊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맞춰서 주님께서 메시지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우리 지난주에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으로 여러분께 메시지를 전해드렸었는데요.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을 말씀을 전해 드렸더니 어떤 분이 좀 정리를 못하겠다고, 어떻게 은사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설명을 쭉 드렸지만 총 정리를 제가 조금 생략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사 부분은 우리가 조금 정리를 하고 가겠습니다. 첫째 은사는 왜 주셨습니까? 유익하기 위해서! 내 개인과 그리고 또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은사는 질서가 있습니다.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 28절에서 31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아멘. 지금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요. 고린도 교회는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았더니 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이 편지 했습니까?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이 곧 오실 거라고 믿고 신부 단장하고 있는 교회예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교회가 아닙니다.그 당시 바울과 초대교회는요.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대로 곧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래서요. 신약 성경을 우리가 정말로 잘 이해해서 보려면요.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고 있던 그 당시 상황을 우리가 이해하고 보면요. 신약 성경이 열려요. 그렇게 보지 않고, 보다 보니까 우리가 필요한 것만 자꾸 뽑아서 쓰게 돼요. 아니요. 신약 성경 전체의 핵심 메시지는요. 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것이에요. 그리고 도래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소망하여 기다리는 그것이 신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줄거리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요. 지금 고린도교회의 부족한 부분 곧 은사에 관한 혼돈에 대해서 어떻게 은사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바울이 정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시면 열려요. 처음에 무엇입니까? 첫째는 누구예요? 사도예요? 그 당시에는 사도가 있었었지만 지금은 없죠. 그리고 둘째는 선지자예요. 왜 선지자였을까요? 선지자는 선포하는 자예요.
무엇을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은사라는 거예요. 은사의 가장 중심이 무엇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다음에 교사요. 교사는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에요. 그래서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요. 은사요. 이렇게 쭉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능력이에요. 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셨어요. 기도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 사람이 그 기도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요. 기도할 때 이적 기사가 일어나요. 수많은 이적 기사에 관한 것이에요. 그리고 그 다음에 병 고치는 은사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진짜 바울이 말하는 은사의 순서는 다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은사를 우리가 분류를 하시면 됩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말씀 선포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능력 곧 은사 부분이에요. 병을 고친다든지 이적 기사가 일어나는 일들 이런 이적 기사와 질병이 나아지는 것들이 그 다음이에요.그 다음이 무엇일까요? 그 다음에요.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이에요. 무엇입니까? 서로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이요. 이것이 무엇이다? 은사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저도 세상 살다 보면, 서로서로 도와주려고 합니까? 힘들게 합니까? 직장 가보시면 알아요. 학교를 가봐도요. 서로서로 경쟁 관계잖아요. 좋게 서로 합니까? 모함과 그리고 음모가 판을 칩니까? 음모와 모함이 판을 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에서는요! 서로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도와줄까” 이것이 교회예요! 이것이 그냥 생긴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셔야 된다? 어떻게 이런 것이 생길까요? 바로 말씀을 통하여요.
하나님을 배웠더니 말씀을 배웠더니 바꿔지는 거예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라는 거예요. 그리고 다스리는 거에요. 곧 교인의 질서요. 질서 있게 서로서로 있어야만 부딪힘과 다툼이 없어요. 그래서 교회의 질서를 어떻게 그리고 각 성도끼리 서로 교제할 수 있게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도 은사라는 거예요. 말씀에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씀도 있지만, 질서에 관한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그 질서가 깨지면 다툼이 일어나요. 모세와 제사장들이 다퉜던 일들을 여러분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질서에 관한 것도 말씀하고 계세요. 이 모든 것이 은사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이후에 무엇이 나옵니까? 방언과 그리고 통변하는 것이 나와요. 방언이 어디 있다? 제일 끝에 있다! 우리가 방언과 통변 이런 은사들은요. 은사 중에 가장 높은 은사다? 가장 낮은 은사다? 가장 낮은 은사다! 이렇게 은사에 대해서 여러분께서 질서 있게 이해를 하시면 돼요.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 그 다음에 말씀을 잘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믿음을 회복했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이적과 기사와 그리고 병이 고쳐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 그 다음에 교회가 질서를 잡고 서로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바뀌는 것! 마지막으로 개인의 은사죠. 방언의 은사예요. 방언의 은사가 가장 낫다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바울이 말하고 계셨을까요? 지금 고린도교회는 방언이 제일 좋은 걸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에요.가장 하위단의 은사를 가장 상위권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바울은 쭉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아멘 가장 좋은 은사를 바울이 이제 소개하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너희는 어린아이! 영적인 어린아이라 말씀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젖밖에 못 먹였다” 하는 그 말씀하면서 밥을 주려고 합니까 안 주려고 합니까? 주려고 하는데 안 준다고 말하고 주는 거예요. 그래야 귀하죠. 그래서 사실 고린도전서의 가장 핵심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알게 되면 고린도전서 전체에 대한 주제가 다 열리는 것이에요.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 1절부터3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멘.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쭉 보니까 바로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가장 큰 문제가 방언에 대한 혼란이에요. 우리 때도 방언에 대한 혼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확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어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 방언을 우리가 사람의 방언이라고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실제 헬라어로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방언들’이에요. 그러면 안 헷갈리죠!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방언들’은 바로 초대교회 시작할 때 방언이 임하였을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방언이었습니까? 지역 방언이었습니까? 지역 방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는 지역 방언이 가장 먼저 중심이었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때와는 좀 달라요. 그래서 각 지역의 방언들이에요. 그래서 각 지역에 있는 방언들! 곧 이 방언들이라 해서 [글로사이]로 복수로 돼 있고요. 그리고 뒤에 천사의 말은 [글로싸]로 돼 있습니다. 단수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그 당시에 방언은 지역 방언이 굉장히 많았었다. 중심이 되었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지역 방언에 대해서 ‘스캇브레너 목사님’을 예로 들었었습니다. 지역 방언이 지금도 간혹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천사의 말이죠. 이 천사의 말이 당시 사람들의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니까, 굉장히 더 헷갈리신 거예요. ‘천사의 말’을 “천사가 우리에게 와서 직접 말씀하시나” 이 생각도 드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천사의 말이라고 한 것은 바로 하늘나라의 언어 곧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방언을 ‘천사의 말’이라고 바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라고 14장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역 방언은 알 수 있죠.
그런데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라고 바울은 설명하면서 이 ‘천사의 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우리에게 임하는 방언들이 그 당시에 있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방언이 여러분 똑같습니까? 틀립니까? 어떤 분은 “이것도 언어인데, 방언이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단어와 뜻과 그리고 그렇게 분명히 이해될 수 있게 방언을 해야 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만일 바울 시대에도 똑같이 이 방언이 단어로 나왔었다면 ‘천국의 말’이에요. 천국에서 통용된 언어가 똑같은 말로 나왔으면, ‘방언 번역집’이라고 나왔을 겁니다.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다. 안 나오고 어떻게 했습니까? 방언 통변하는 은사를 받은 분이, 방언을 하시는 다른 분을 통변해드렸어요.
그런데 통변도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통변할 때 그냥 통변하라고 말하지 않구요. 그 통변이 맞는지 틀린지 감별사를 옆에 두라고 했어요.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방언과 방언 통변과 통변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해석하는 사람이 또 붙었어야 돼요. 방언을 공증해서 하려고 그러면요. 복잡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방언을 개인적으로 하라” 얘기한 거예요. 그 방언에 대한 혼란이 교회에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이라고 했지만, 그 방언들이 각각 달랐다는 것을 또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방언은 원래요. 천국의 언어는 누가 압니까? 사탄도 쓰던 겁니다. 그럼 우리가 지금 방언을 하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이 방언을 사탄도 알 수 있는 말로 하면 사탄이 어떻게 된다? 다 알아듣는다! 그러면 사탄이 알아듣고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것들이 있기를 원치 않으세요!! 그래서 우리에게 우리도 못 알아듣는, 천사들도 못 알아듣는 한 방식으로 우리와 소통하고 계세요. 비밀 소통이죠. 암호 처럼요. 그래서 각각 방언이 달라요.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영이 그 말을 알아듣고, 하나님께 내 영이 호소를 해요.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 영으로 말씀을 해 주세요. 그래서 방언을 처음 하실 때는 무덤덤합니다. 한 1년 정도 2년 정도 방언 하게 되면, 이제 가슴이 열리고 방언 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점점 오픈되기 시작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마음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다 주시냐? 아니에요. 방언은, 방언을 해야 될 분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 방언을 말하겠느냐”라고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당시에 고린도교회도 방언한 숫자가 적었습니다. 방언을 사모하지 마십시요.
첫 번째,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 중에 제일 낮은 은사입니다. 그리고 그 방언을 잘못 말하다가 마귀가 틈을 자꾸 타려고 그래요. 들어오려 해요. 그래서 굉장히 유의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방언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혼란이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12장 말씀에 쭉 말씀해 주시고, 13장에 다시 처음 한 말이 방언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런 혼란을 가지지 말아라. ‘방언’ 은사 받은 거 가지고 자랑하지 마라. 무엇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돼요? 사랑이 없으면!! 이 사랑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헬라어로 이 사랑은 신의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렇게 했더니,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쭈욱 읽다 보면, 안 와닿습니다! 따로 떨어져요. 왜 그러냐면요. 그 당시 헬라에서 쓰던 언어의 문화와 히브리인들이 쓰는 언어의 문화가 달라서 그래요. 우리가 쓰는 언어와 미국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문화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외국사람들이 제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말이 있어요. “밥 먹었냐”에요. 밥 먹었니?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I am! 그렇게 말할 거 아니에요. Yes! 그럴 겁니다. 밥 먹었냐고 묻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밥 먹었냐고 묻는 게 무엇입니까? 인사잖아요! 그럼 우리는 왜 그런 인사를 하게 됐을까요? 배고프단 이야기죠. 한국은 가난한 나라란 뜻이에요. 밥 먹기 힘든 나라란 뜻입니다. “안 굶었니?”란 뜻이잖아요. 저도 어릴 때 굿모닝이라는 언어를 처음 배울 때 “굶었니”로 들리더라구요.
언어라는 것은 문화거든요.‘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이 왜 있습니까? 미국이란 나라는 시간이 중요한 나라란 뜻이죠. 그럼 이스라엘 가면요. ‘샬롬’이에요. 무엇입니까? 얼마나 전쟁이 많았으면, 그리고 얼마나 핍박을 많이 받았으면 인사가 ‘샬롬’이 됐겠습니까? 저는 이제 ‘샬롬’이라고 하면은 제 귀에는 ‘살 놈’이라고 들려요. 예수 잘 믿고 살아야죠. 우리 모두 각각 어떤 말을 할 때, 그 나라의 문화로 들린단 말이에요. 헬라어는 헬라인이 갖고 있는 문화가 따로 있구요.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는 히브리인이 갖고 있는 문화가 따로 있습니다. 두 나라는 어떻게 다르냐 하면, 헬라 문화는 해양 문화권이에요.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산악 중심 문화예요. 그리고 헬라 문화는 각 도시별로 있는 문화예요. 그게 뭐라고 그래요? 지방 자치권이 강한 문화예요. 그런데 히브리인들은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문화예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문화는 또 우리 한국과도 너무 다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이스라엘은요. 언어에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반드시 이스라엘 언어를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될 이유가요. 그 언어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등장을 해요. 이슬람 국가는 처음부터 신권 국가였고, 신과 나의 관계, 신과 백성의 관계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말씀을 왜 드리냐면, 우리가 그 관점으로 성경을 보셔야 돼요. 여기서 사랑도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아하바]라고 그래요. 그렇게 번역한 게 더 확실히 와닿습니다. 뜻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그분의 사랑’이에요. 하나님과 백성이 맺은 사랑이에요. 곧 아버지와 자식 간의 사랑이에요. 우리가 알던 ‘신이 우리에게 헌신해 준 사랑’이 아니고요. 누구와 누구의 사랑입니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의 사랑이에요. 확실히 다르죠!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사랑! 이것이 먼저예요. 여기에 다시 또 부부와 가족의 사랑, 친구의 우정, 이웃 사랑이 다 속합니다. 우리와 같이 사랑이라는 언어가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거예요. 분류가 안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 간의 언약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부모와 자식의 언약을 맺고 있으시죠? 또한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로 언약을 맺고 계시고, 또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언약을 맺고 계세요. 이 사랑은 언약의 사랑이에요!!
그러므로 이 사랑은, 바울이 말할 때 무엇이라 합니까? “너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의 사랑을 맺지 못했다면, 은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방언 많이 해봐라.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래서 방언 많이 하고도 지옥 갈 수 있습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사랑으로 정립되지 않으면!, 언약의 관계로 회복되지 않으면!’이에요. 확실하게 이해가 가시죠?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어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어 관점에서 보면 똑같은 뜻 같지만, 전혀 다른 뜻이 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이것을 보면 좀 전에 12장에 말씀하신 은사의 순서예요. 무엇입니까? “예언하는 능이 있어”는 무슨 뜻입니까? 대언입니다. 예언이 아니고 정확히 대언입니다! 히브리어로 [나바]예요. “내가 대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무엇입니까? 지혜의 말씀이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죠.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지혜의 말씀이라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레브쇼메아]라고 그럽니다. 그것은 듣는, 즉 ‘청종하는 마음’이에요. 그것이 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라’는 그런 말씀! 여기서부터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나님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지식의 말씀! 그런 것들을 받았으되, ‘받았으되’에요. 그리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이런 말씀을 받았더니, 무엇이 생긴다? 믿음이 생긴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무엇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그분과 나와의 관계가 언약의 관계가 아니라면요. ‘그분이 내 아버지 되지 못한다면’이에요. ‘내가 그분의 백성이 되지 못한다면, 관계를 맺고 회복되지 못한다면’이에요.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좀 전에 서로 사랑하는 교제 관계 말씀드렸죠. 사랑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헌신을 해요. 이것도 제가 큰 은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할지라도 무엇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실 불사르게 내 몸을 내어주는 건 사랑할 때나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상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랑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를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럼 정확히 이해가 가네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사랑의 언약의 관계가 아니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헌신하고 봉사하고 그리고 구제하고 모든 것들이 소용이 있다? 없다? 아무 유익이 없다! 많은 분들이 남들을 위해서 구제하고 그리고 많은 좋은 선한 일을 하면 세상 사람들은 천국 갈 줄로 믿어요. 말씀으로 선포드립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요. 이 모든 것은 헛것입니다.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래서 바울이 하고 싶었던 말씀의 핵심은요.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냐, 아니냐’를 묻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은사는 소용이 있다 없다는 겁니다. 성경 많이 알면 뭐 하냐는 거예요! 말씀 많이 알면 뭐 하느냐는 거예요. 성경 붙잡고 흔들다가 지옥 갑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언약의 관계가 아니라면!
고린도전서13장 4절부터 7절 같이 읽겠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여러분 이 말씀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여러분 가슴이 뜨끔하지 않았으면요. 그저 글로 읽으시는 거예요. 그리고 말씀되로 되던가요? 모든 게 참아지던가요?
사실은,,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요. 이런 말씀들이 오픈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헬라어만 갖고는 부족합니다. 지금 윤순현 목사님께서 히브리 신약 성경 번역을 다시 정리를 열심히 하고 계세요. 들어보니까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좀 더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깨끗하게 깔끔하게 정리를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읽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무 읽기가 어려워요”라고 말씀하세요. 제가 그래서 부탁을 드렸습니다. 읽기 어렵게 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은요 읽는 책이 아니에요! 다들 착각들 하시는 거예요. 성경은 듣는 책입니다. 한 명이 읽고, 모든 성도들이 듣습니다. 그리고 강조할 위치가 다 달라요. 그래서 중간중간 기호가 자꾸 들어가고 해요. 천천히 읽어야해요. 그래서요. “복 있는 사람은 이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이 읊조리라는 뜻입니다. “주야로 읊조리는 자로다.” 우리가 그 눈도 읽는다? 말을 한다? 말하게 되면 내 귀가 들어요. 귀가 들으면 어디가 기억할까요? 머리가 기억을 합니다. 그냥 읽기만 하잖아요. 새가 날아가요.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을 많이 통독하셔도 삶 속에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 많이 읽은 자랑 밖에 안 될 때가 많아요. 이유는요! 읽은 거 그것도 안 돼요. 그냥 눈으로 보는 건 아무 소용없어요. 어떻게 해야 된다? 반드시 읽어야 된다!! ‘읽고, 내 귀가 들어야 된다’예요.
빨리 읽어라? 천천히 읽어라? 천천히 읽으면서 음미해야 돼요.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뭐라고 합니까? 말씀을 음식이라고 합니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어떻게 돼요? 체합니다. 천천히 소화시키면서 들으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 영의 양식이 됩니다. 말씀을 여러분 빨리 먹지 마세요. 천천히 읽고, 듣고, 그리고 먹어야 돼요. 그러면 우리 마음속 삶 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세요.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천천히 읽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원래 성경의 원본대로요! 성경 읽기가 쉽다? 어렵다? 어렵다! 그러나 천천히 읽으면서 띄어 쓸 부분은 띄어 쓰고, 그리고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면서 읽고 들으셔야지 그것이 내 마음의 양식이 돼요. 그럴 때 여러분의 생활이 바뀝니다. 그 말씀이 기억이 나서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라고 쓰여있죠. ‘오래참고’는 헬라어로는 [마크로뒤메이]라고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을요, 우리는 그저 “오래 참는 거지” 이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뜻이 아니에요. 정확히 헬라어로 보면 ‘오래’는 [마크로스]이고 ‘성냄’은 [뒤모스]라 합니다. '분노를 참는다'는 뜻이에요! 번역을 자제해야지요.. 왜 ‘그냥 오래 참는다’고 할까요. 헬라어로 하면 이렇게 이해가 되는데, 히브리어가 더 중요합니다. 히브리어로 ‘오래 참다’ 는 [에레크 아파임]이라 합니다. 뜻은 '긴 콧구멍'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너무너무 화가 나면 어디서 김 난다고 그럽니까? 콧구멍에서 김 난다고 하죠. 이게 뭐냐면 하나님이 화를 그냥 내신다? 오랫동안 참고 계신다? 콧구멍에 불 날 때까지 참으신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분노하실 때 금방 분노하신다? 아주 오랫동안 참으신다! 만홀이 여겨라? 조심하라? 그렇게 오래오래 참으시다가 분노하시면 끝장이 나는 겁니다.
왜 이렇게 ‘오래 참고’ 말씀했습니까?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바로 예수님의 성품이에요! 이 뜻이 확실히 이해가 가네요. 우리가 사랑을 은사로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다. 본받는다는 뜻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십시다. 화가 날 때, 제일 화를 참는 좋은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일단 숨을 크게 들이시는 거예요.
그렇게 세 번정도 들이시면, 일단은 급하게 화내진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뭐 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긴 호흡을 하고 계세요. 왜요? 여러분을 참고 계신거에요. 결국 ‘오래 참고’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일을 오래 참으시듯이, 여러분도 살다 보면 분노할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매일 있습니다. 매일 매일 화가 나요. 폭발시켜라? 콧구멍에 숨을 크게 들이켜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본받읍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너에게 사랑하는 마음, 분노를 오래 참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전혀 다른 말이네요. 그리고 ‘사랑은 온유하며’라고 했어요. ‘온유’는 우리가 대체적으로 ‘유순하다’라는 뜻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것은 번역 오류입니다. 그 뜻 아니에요!! 이것을 헬라어로는 [크리스투 에메타이]라고 그래요. 뜻은 히브리어로 [친절하다],[친절하게 행하다]는 뜻이에요. 무엇입니까? '온유하다'는 뜻은 ‘친절하게 행하다’예요!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다? 친절하신 분이에요.
섬세하시고, 내가 화낼 때 같이 화내신다? 내가 화낼 때 조금 참으셨다가 달래주신다? 달래주세요.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한테, 친절하게 행하시는 그분 성품 따라 우리가 친절하게 행합시다. 부부 사이에서 제일 중요하겠죠. 화났다고 불친절하게 말하지 말고, 일단 콧구멍에 숨을 크게 들이키시고, 그 다음에 한 발짝 물러나서, 화내서 막말을 막 쏟아말고 천천히 친절하게 말합시다! 누가 그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 히브리어입니다.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이건 시기한다는 뜻이거든요. [무첼로]라 해서요. 질투하려 한다는 뜻이에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질투 안하시는지, 이것이 이제 이해가 될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질투 안하세요. 왜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남편이에요. 가족의 관계예요. 부부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전부 다 형제의 관계입니다. 다른 성도가 잘 나가면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요. “저 사람은 잘 살아! 나는 가난한데..”, “저 사람은 남편이 정말 친절해! 내 남편은 못됐는데..”, “저 사람은 자식이 잘 나가! 우리 자식은 안 그러는데..” 이렇게 자꾸 비교하다 보면 뭐가 나와요? ‘질투’가 나와요. 그래서 질투는 우리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 장착이에요. 저도 예전에 ‘질투’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기본 인식이에요. 그런데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여러분을 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러분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뭐라고 말하고 계십니까? 교회 내에서 다른 성도를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가족의 관계로 받아 들여야 된다는 뜻이에요! 질투가 안 생길 수 없습니다. 누군 장로 되고, 누군 집사 되고 이것부터 화가 날 수 있어요. 가족의 관계로 마음을 고쳐먹으라 하시는 거예요.
그럴 때 질투가 난다? 나지 않는다? 내 형제가 잘 되면 나에게 콩고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우리 형님들이 다른분들께 말씀하세요. “내 동생이 한의사예요!” 그렇게 자랑을 해줘요. 좋으신 거예요. 동생 잘 된 게 나쁘다? 좋다? 좋다! 가족의 관계가 되시면, 하나가 되시면 상대방 잘 된 게 질투가 나지 않고 좋습니다. 하나의 가족 관계를 회복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십니까? “너희가 나를 믿게 되면, 부모도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지만, 이 땅에서도 가족을 100배 얻는다” 라고 말씀하세요. 교회 성도 간의 관계를 가족의 관계로 하라 하십니다. “시기하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투기하지 않는다”는 말씀은요. 바로 교회의 성도 간의 관계가 가족 간의 관계로 회복되라 말씀하신 거예요. 그것이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레히트할렐]입니다. 뜻은요. 스스로를 찬양하다는 뜻이에요. 자랑한다는 뜻이 뭐라고요? 스스로를 찬양하는 겁니다. 우리가 자랑한다는 말하고 전혀 다른 말이에요.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를 찬양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자기를 우상화하는 거예요. 자랑은 무엇이다? 자기를 우상화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누구를 찬양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만드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찬양하고 있어요.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누가 그런짓을 했습니까? 사탄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따라간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자랑하고 싶죠? 우리 아들은 뭐가 잘 됐고, 남편이 승진했다고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혀 말씀이 다르죠! 자랑은 우상숭배다! 반드시 기억합시다!! 상대방이 상처받아요. 환경이 안 좋은 분이 더 많습니다. 나 좀 잘 되는 거 자랑하면요. 반드시 상대방 상처받습니다. 나를 우상으로 삼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히브리어 [미트나세트]라 합니다. ‘스스로를 들어올리다’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교만이 나오면, 어깨 올라가는, 이렇게 교만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히브리어는 ‘스스로를 들어 올리다’예요. 누가 높임 받으셔야 돼요? 하나님께서 높임 받으셔야 됩니다.
그런데 누가 높임 받고 있어요? 내가 높임 받는 거야. 그래서 교만한 자는 절대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왜요? 스스로를 들어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은 자기를 높이는 행위는 사망의 행위예요. 사탄이 가장 먼저 그 행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하려다가 멸망당한 겁니다. 교만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교만은 ‘스스로를 들어올린다’는 뜻이고, 그것은 자기를 우상화한다는 뜻이에요.
똑같습니다. 자랑과 교만은 사실은 하나의 말이에요. 무엇입니까?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를 들어올리는것! 곧 자기를 우상화하는 것이에요. 무섭죠. 여러분! 자랑하고 교만하지 맙시다.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자기를 우상화하는 거에요. 그리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는 길어서 번역해서 알려드리겟습니다. 히브리어로 ‘합당하고, 예의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하면 예의있게 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히브리어로 했더니 조금 다르죠. ‘합당하고 예의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무엇을 얘기하고 있습니까? ‘길’에 관한 얘기에요. 좀 전에 12장 말씀을 지나갔지만,“내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말하리라”하셨어요. 바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합니까? ‘길’에 관해서요! 좁은 문을 향하여 가려면 좁은 길을 예수님을 따라 가야 됩니다. ‘길’에 관한 얘기에요.‘무례히 행치 않는다’는 것은 바른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예의바르게 행동해서 바른길, 즉 좁은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는 타인을 생각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좋은 것을 구하는 이기적인 태도예요.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다' 하니까 넘어갔잖아요. 타인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구하는 거에요. '이기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전혀 다르죠. 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성내지 아니하고! 그것은 히브리어로 [우파녹시네탈]이라 합니다. 이것은 쉽게 화내거나 격분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좀 전에 ‘오래참고’와 같은 말이긴 하죠. 조금 더 유하게 말한거에요. ‘오래참는 것’은 감정적이지만, 이성적으로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갑작스럽게 나오는 거에요.여러분! 갑자기 확 나올 때 있죠? 언제 그렇습니까? 운전할 때 그렇습니다. 난폭운전으로 갑자기 확 끼어들 때 얼마나 놀랍니까? 사고날뻔 했으니까요. 갑자기 화가 확 튀어나오는 것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결국! '내 감정을 잘 절제하라'는 말씀이세요. 누가 절제 하세요? 예수님께서 절제하세요. 갑자기 일어나는 격한 감정을 절제하라는 뜻이에요. 좀 전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할 때, 너무나 상처주는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콧구멍을 넓혀서 좀 참는다는 이야기였다면, 이 부분은 달라요. 갑자기 화날 일이 있을 때, 참아낸다는 뜻이에요.이해가셨죠? 똑같은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무슨뜻일까요? 헬라어를 히브리어로 번역한걸 보면, 뜻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거나 복수하려는 마음이나 계획을 품지 않는 걸 이야기합니다. 우리 속에 악한 생각나는 것을 얘기하는 것 아니에요. 상대방이 있는데, 그가 얄미운거에요. 우리 제일 많이 하는말 있죠. “주는 거 없이 밉네”,“괜히 얄밉네” 이상하게 미워하는 마음이 괜히 드는 분이 있어요. 그 사람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경향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하지말라! 악한 것은 사탄이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해를 끼치거나, 가만히 있는데 당했다 하면 반드시 복수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복수혈전입니다. 유치원에서 부르는 노래보면,“옆집에 순이, 우리 엄마에게 할매라고 그랬다. 잠이 안온다. 내일 아침먹고 따지러 가야겠다!”가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우리에겐 복수하려는 마음이 있어요. 복수하려는 마음이나 계획을 품지 않는 것이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복수는 하나님께 맡겨라’하십니다. 그분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여러분 기도하실 때, 화나는 일이 있어도 계속 기도하십시오.“주님, 제 대신 따져 주세요. 옆집에 순이 좀 어떻게 해주세요!” 기도하십시요! 그것이 다윗의 기도입니다. 계속 기도하다 보면 풀려요! “그러면 저는 주님께서 사랑하라 하셨으니까 용서해 줄께요.” “두고봐라, 너 하나님께 혼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기십시요. 복수하려는 마음이나 계획을 품지 않는 것! 그것이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무엇입니까? 부당하고 죄악을 짓는 것을 이야기하죠. 죄악을 기뻐한다? 기뻐하지 않는다? 죄 짓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 예수님의 사랑의 성품을 받았더니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게 되었더니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게 된다. 죄짓는 것을 싫어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진리는 [에메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에요. 바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다’의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에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리고 정직하시며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불공정이 없으십니다. 다 같이 공평하게 대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는 하나님이 좋은 것 주고, 나는 나쁜 것 주고..” 그렇게 설교하는 목사님이 의외로 많아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공정하신 분이라고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분의 성품인 [에메트]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대할 때에 공정하게 대하십시오! 가난하다고, 부유하다고 편들지 말고 공정하게 대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이 참아집니까? 여기서 많이 오그라드는 거에요.“하나님, 저 안 참아지는데요. 못합니다. 제가 어떻게 모든걸 참습니까?” 기쁜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번역오류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면 [하콜 메카사]에요! 뜻은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덮어 주는 행위에요! 알고 있지만 덮어줄 순 있잖아요.참는다는 것은 용서하는 마음을 이야기해요. 예수님께서 용서하신 그 성품을, 사랑을, 우리도 본받자는 거에요. 기도한다고 용서가 안됩니다.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요. 그렇게 믿었던 사람이 내 등에 칼을 꽂았는데, 어떻게 용서가 됩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용서됩니까?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그분을 생각했더니,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신 그분의 용서가 내게 임함에 나도 용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복수는 예수님께 맡기라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참으라’가 다 참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행위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착각하시면 안돼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히브리어로 보면 [마미나라]에요. 뜻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질병에 걸려서 아프더라도! 많은 일들을 겪어도,,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성도와의 관계에서도 서로 믿어 줄 수 있는 거에요. 모든 것을 다 믿으면 바보죠. 사기꾼들에게 당해요. 큰일 납니다! 그뜻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이에요. ‘모든 것을 바라며!’는 히브리어로 [맥카바라]라 합니다. 뜻은 ‘어떤한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음’이에요! 바란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도 주님이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을 믿으며, 신뢰하며 사랑하는 예수님을 기다립시다! 이 소망은 바로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고린도전서1장 2장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 말씀이 열리지 않아요. 단지 천국가는 이야기로 이야기해요. 아니에요! 주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우리의 믿음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며’예요. 세상사람은 “내일은 좋아지겠지!” 막연한 기대를 해요.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요 세상과 시각이 달라요! 눈동자에 관한 것이에요. 눈동자를 예수님께 고정하라! 도래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며, 예수님을 사랑하며 소망하자는 거에요. 그러면 가족구원도 주님께 맡기게 되요. 가족도 또한 신뢰함으로! 그 가족이 변화되기를 소망하는 거에요. 먼저 하나님을 소망하며, 그 다음에 가족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에요.여기서 이미 믿음과 소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이것은 바로 믿음과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 당시에는 수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 핍박을 견뎠습니다. 믿음과 소망을 갖었더니 견뎌진겁니다! 어떠한 핍박에서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아요. 순교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거에요. 순교의 믿음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형성됩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거에요. 모든 것을 견딜 때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바울은 거기까지 얘기하고 있습니다.
많이 다르죠? 이 말씀은 놀랍게도 신부단장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어요! 어떻게 예비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신부단장의 핵심의 메시지에요!! 오늘날까지 다르게들 이해들을 했어요. 외우기만 했어요. 우리 생활과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말씀이 동떨어지지 않고 주님의 은혜에 따라 주님에게 가까이 갈 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 말씀을 보았더니 신부단장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성품을 볻받았더니 결국은 모든 것들을 거쳐서 모든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며 그리고 예수님 다시 오심을 소망하게 되며, 모든 삶을 견디게 되는 거에요. 그럴 때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지금 세계정세는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소망할 때,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할 때 새로운 소망이 우리에게 생길 줄 믿습니다. 오늘 고린도전서13장 말씀으로 하나하나 우리를 돌아보며 소망을 회복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주님을 다시 만나는 신부단장이 되어 예수님의 정결한 처녀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말씀으로 고린도전서13장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히브리어로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이 이 말씀 하나하나 명심하여 예수님의 온전한 신부가 될 수 있게, 단장할 수 있게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말씀따라 성장하겠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은 고린도전서13장의 말씀 따라 예수님의 사랑의 성품을 우리도 주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로 하나하나 본받고 말씀 따라 살아가도록 작정한 우리 성도, 말씀 따라 믿음을 회복하고 소망을 끝까지 품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끝까지 우리 마음속에 믿고 그리고 실천하며 살기로 작정한 성도 한 명 한 명에게 주님의 온전하신 그 사랑과 은혜가 영원히 주님 오실 때까지 함께하실 줄 믿사옵고 감사드리오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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