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from Goseonsa Temple Site, Gyeongju
깊어가는 가을 추억을 새기려 경주를 많이들 찾는다.
그중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많이 찾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그런데 마치 숨겨 놓은 듯 박물관의 뒤편에 마련된 고선사지 삼층석탑의 위용은 웅장하며 특별한 옥외전시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잘생긴 석탑과 받침대, 세월을 함께한 은행나무까지 기나긴 세월을 외롭지 않은 듯 잘 지키고 있다. 이 석탑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617~686)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원효대사는 신문왕(681~692) 6년(686)에 입적하였으므로 석탑은 그 이전에 만들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이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져 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가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또한 신비롭게도 감은사 신문왕 2년(682) 삼층석탑을 닮아있는데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의 모습과 노반까지의 높이 10.2미터, 82장의 돌 이 모두가 마치 쌍둥이 탑이라고 할 만큼 닮아있고. 다만 여기 탑은 삼층석탑 몸돌에 문(문비)을 표현한 점이 다를 뿐이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게도 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에서 시작되어 이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참고: 국가유산청/국립경주박물관
가을은
구름 위에 영혼이 머물러
바람결 유구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황금대지(大地)를 바라보며
깊은 자국의 그림자를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