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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메시지
2006. 05. 우리는 경기도 부천에서 ‘편한 요가’를 열었다.
2008. 02. 우리는 서울로 올라와 ‘가이아 요가’를 열었다. 홈페이지(다음카페) 운영과 칼럼 연재도 시작했다.
2009. 04. 우리는 가이아 요가에서 매주 일요일 ‘케모임’이라는 공개적인 케틀벨 수업을 열었다.
2009. 07. ‘베어풋 케틀벨’을 결성했다.(도메인 등록일 2009.9.22.)
2009. 08. 칼럼 〈거제도의 교훈4 〉 http://cafe.daum.net/gaiayoga/KroR/85 에서 우리는 긴장-이완의 통합 수련체계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2009. 11. ‘케모임’이 아니라 ‘베어풋 케틀벨’의 수업들을 열었다. 매주 일요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아직 현실은 ‘가이아 요가’와 ‘베어풋 케틀벨’로 분리된 병렬의 체계였다.
우리는 통합된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선언하고 싶었고 더 공개적인 수업으로 실천하고 싶었다.
2009. 12. 자주 말했듯이 우리에게 출판은 세상에 대한 예의, 준비, 무장이다.
그래서 먼저 책을 내는 일에 착수하게 됐다.
2010. 03. 우리의 새로운 이름은 이 통합성을 제대로 표현해야 했다.
‘스쿨오브무브먼트’, 움직임의 학교를 우리의 새로운 이름으로 정했다. (도메인 등록일 2010.4.15.)
2010. 05. ‘스쿨오브무브먼트’를 창립했다. 우리는 새로운 무대를 홍대로 옮겼다.
2010. 05.08. 공지사항〈왜 움직임의 학교인가?〉 http://cafe.daum.net/gaiayoga/RSa6/2
2010. 05.15. 공지사항〈What is 스쿨오브무브먼트?〉 http://cafe.daum.net/gaiayoga/RSa6/4
2010. 08. 정말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첫 책이 나왔다.
그리고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2014. 10.12. 칼럼 〈움직임, 움직임의 학교〉 http://cafe.daum.net/gaiayoga/KroR/152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몇 가지는 보석이 되었고, 어떤 것들은 시기상조여서 때를 기다리고 있고, 또 다른 것들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우리가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스템은 변화 발전하고 있다.”
우리의 의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학교는 계속 변해왔다.
우리가 그러길 바랐다.
우리가 잘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을 했고 계속해서 그렇게 해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수준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은 우리가 도전하는 만큼 점점 변해왔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생각과 능력의 실현물, 즉 움직임의 학교 역시 계속해서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가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이것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이렇게 될 줄 우리는 알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제대로만 한다면 이렇게 되는 구조임을 확신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 틀(학교)을 유지하려고 애써왔다.
대중(‘많은 사람들’이라는 한자어 뜻 그대로의 의미)적인 교육은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교육이 얻을 수 없는 독특한 배움의 효과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人間인 이유처럼 여럿이 함께 수련하는 체계에서 나오는 독특한 효과다.
쉽게 말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배우게 된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확신했다.
그래서 상황이 어렵다 해도 소수정예 고급화 전략이나 빠른 회전문(수많은 사람들이 짧은 주기로 들어오고 나간다) 모델을 한사코 피해왔다.
우리 자신부터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칼럼〈움직임, 움직임의 학교〉 http://cafe.daum.net/gaiayoga/KroR/152의 마지막 문장을 보자.
“운동의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인간이 갖고 태어난 자질, 움직임을 조화롭게 발달시키고자 했던 학교”
이 아름다운 가치는 우리가 영원히 완성하거나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헛된 망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성하거나 달성하지 못해도 그것을 추구할수록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수련에서도 마찬가지다.
열 살에는 시작해서 언젠가 최고의 시절을 맞이하는 성공한 운동선수의 인생이 아니고, 일반인인 우리에게 남은 생애 동안 육체적으로 무언가 높은 수준을 완성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평생 완성될지 모를 그런 수련을 꾸준히 하는 것은 분명히 개선과 발전과 재미를 선사한다.
2010. 05.08. 공지사항〈왜 움직임의 학교인가?〉에서 우리는 인간 삶의 양면성을 닮은 ‘긴장’과 ‘이완’이라는 두 가지 초점을 제시했다.
이것은 계속해서 우리의 관점을 훌륭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2010. 05.15. 공지사항〈What is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우리는 “스쿨오브무브먼트는 올바른 육체 사용을 위한 움직임을 교육하는 단체다.”라고 선언했다.
여전히 맞는 말 아닌가.
그러나 스쿨오브무브먼트의 2010년, 2011년 수준은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미약했다.
신랄하게 말하자면, 이완을 강조하는 특별하고 색다른 리프터 수준에 가까웠다.
‘움직임의 학교’로 평가하면 저개발의 단계였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로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틀(학교)과 가만히 있지 않는 우리의 성향 덕분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다.
2011. 02.10. 칼럼〈SOM의 수련체계〉 http://cafe.daum.net/gaiayoga/KroR/122에서 우리가 꿰뚫어 보았듯이, 현대 사회는 움직임에 적대적인 사회다.
아기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하루종일 자극은 너무 많은데 움직임은 시간낭비와 비효율인 것처럼 억제된다.
어릴 때부터 어디서든 정신없는 소음과 TV와 스마트폰을 접하지만 “뛰지마!”라는 소리는 너무 많이 듣고 자란다.
이런 세상에서 움직임의 위축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태어날 때는 우리 모두가 온전한 가동성mobility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 몸에서 막힘과 얽힘 그리고 끊김을 해소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파시아fascia적으로 얽히고 굳은 것을 풀어야 한다.
에너지적으로 막히고 끊긴 것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계속해서 풀어줘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소극적인 의미다. 인체의 수많은 막fascia과 막 사이에는 하룻밤 사이에 일종의 보풀fuzz들이 낀다.
보풀은 매끈하고 부드러운 것에 반대되는 것이다. 거의 날마다 이 보풀들을 떼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계속해서 막들을 늘리고 푸는 작업이 없다면 보풀들은 쌓이고 쌓여서 점차 셀 수 없이 많은 막들을 유착시킨다.
결국 움직임의 자유로움을 계속해서 잃어간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와 논리의 결론이다.
둘째는 적극적인 의미다. 첫째 의미가 소극적 또는 방어적이라면 둘째 의미는 적극적 또는 도전적이다.
즉 인체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특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육체적 능력을 숭배하거나 닮기를 원할 때도 혼란스러운 관점과 모순된 욕망에 쉽게 사로잡힌다.
워낙 자극적인 사회이다 보니 그 욕망이 망상에 가까울 때가 많다.
우리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다. 정말 인간 움직임의 진정한 특징은 무엇인가?
(인간은 수영하고 잠수하고 나무 타고 암벽 타고 창 던지고 때리고 차고 물고 할퀴고 점프하고 뛰고 벽돌을 깨는 손으로 당구를 치고 피아노를 칠 수 있다. 즉 골고루 할 수 있는 게 인간 움직임의 매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인간 움직임의 동역학적 특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은 직립의 동물이다.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곰처럼 잠시 그렇게 할 수도 있는 동물이 아니라 원래 그런 동물이다.
인간은 두 발로 걷고 달린다. 다른 동물들처럼 조금 가능한 게 아니라 이런 움직임은 인간의 정체성이다!
인간은 직립해서 자유로이 팔과 손을 정교하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정교하게) 공을 던질 수 있다.
인간의 직립 덕분이다.
인간보다 훨씬 힘센 침팬지는 기껏해야 시속 30km로 던질 수 있다.
발만 봐도 침팬지나 고릴라는 왜 할 수 없고 인간은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직립해서 체축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회전해서 편측으로 던지거나 쏘는 움직임이야말로 파워풀한 움직임들 중에서 인간의 동역학적 매력을 가장 잘 살린 것이다.
야구에서 투구와 타격을 일으키는 linear(체중이동, 체축이동)와 rotational(회전의) 동역학이 그러하다.
원래 던지기와 치기, 때리기striking는 같은 동역학(linear, rotational)이 일으키는 비슷한 움직임들이다.
맨몸만으로는 태국 낙무에이들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특징을 확연히 잘 살리는 인체의 파시아 X선을 잘 볼 수 있다.
(파시아 X선에 대한 설명은 http://cafe.daum.net/gaiayoga/SMzw/40 )
점프와 킥도 서로 같은 동역학의 비슷한 움직임들이다.
흔히 점프능력을 제자리 양발 수직점프능력으로 치환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스포츠든 일상이든 대부분 점프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킥처럼 엉덩이와 다리가 두 방향으로 분리되고 킥처럼 한 다리는 바닥을 밀고 한 다리는 공중으로 당기는 식으로 표현된다.
모두 파시아 X선이 잘 구축된 몸에서 비대칭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들은 웨이트 리프팅과 많이 다르다.
대각선 쓰임이라는 의미로는 당연히 인간의 모든 움직임들에서 흔적처럼 공통점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적극적인 대각선 쓰임이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탄력적인 웨이트 리프팅(케틀벨 스윙, 바벨 역도)과는 탄력적이라는 점은 같지만 동역학은 다르다.
비대칭적으로 표현되는 역동적인 회전의 움직임에서 힙턴은 핵심적이다.
그러나 리프팅에는 이런 동역학이 없다.
힙턴(힙 로테이션)에서는 힙의 내회전(인터널 로테이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은 별 생각없이 가만히 살아가다보면 점점 발과 다리가 더 외전/외회전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대인은 하루종일 앉아지내는 것 자체가 굴곡 위주, 하체의 외전/외회전 위주 생활이다.
그러다보니 흔히 내전/내회전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웨이트 리프팅은 모두 외전/외회전이라서 내전/내회전 능력을 전혀 돌보지 못한다.
게다가 현대인은 그저 강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할수록 코어보다 팔다리가 지배적으로 되기 쉽다.
특히, 다리는 워낙 강한 부위라서 코어의 무능력을 아주 쉽게 감춰주는 존재다.
다리나 팔이 코어보다 먼저 나서고 지배하는 상태로는 적극적인 회전의 동역학을 사용하려고 해도 되지 않을 뿐더러 부상 확률이 높다.
정작 중요한 것은 웨이트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움직이는 것 아닌가.
웨이트 트레이닝은 이러한 올바른 관점에서 과정이자 도구로서 잘 조율되어야 한다.
그래서 움직임의 학교에서 케틀벨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수업은 단순한 웨이트 트레이닝 수업이 아니다.
훨씬 더 특별하다. 달리기(젠틀 러닝)와 복합 움직임(크라브 마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의 수업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크라브 마가 수업은 갑자기 달리고 멈추고 턴하는 것을 꼭 가르친다.
많은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이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치타와 달리기를 겨뤄도 이길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어떻게?
거리를 100m로 하든 25m로 하든 치타가 이긴다. 지그재그로 달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360도 턴을 해야 하는 왕복 달리기로 하면 인간 러너가 치타를 이길 수 있다.
빨리 멈추었다가(감속) 빨리 다시 치고 나가는(가속) 두 발 러너 인간의 장점을 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역동적인 축구경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인류의 직립 덕분이다. 사실, 야구나 축구처럼 인기있는 메이저 구기 스포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급 움직임들의 향연이다. 공을 몰고 달려가다가 발로 공을 정확히 찬다? 다른 어떤 동물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날아오는 작은 공을 긴 막대기를 들고 멀리 쳐낸다? 직립 덕분에 손의 신경발달이 정점에 오른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움직임이다.)
또한 우리는 움직임의 학교에서 단계에 상관없이 두 가지 운동을 횡적으로 배치했다.
바로 줄넘기와 인디언 클럽이다.
현대인의 굳고 막히고 끊긴 몸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마치 영화에서 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문제를 풀고 돌아오듯이 우리도 아기의 발달과정으로 되돌아가 몸을 다시 회복시키는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관점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수업에서 바닥에서 풀고 돌고 구르는 것은 서서 움직이려면 로봇처럼 딱딱해지는 성인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녹여내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체의 개선은 결국 서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서서 회전의 움직임을 감당하기 그리고 서서 회전력을 발휘하기까지.
우리 수련에서 줄넘기와 인디언 클럽은 제대로 서는 것과 매우 관련된다.
2014년 10월에 우리는 싱가폴과 태국으로 스승을 찾아가 와이끄루 람무에이를 배웠다.
(http://cafe.daum.net/gaiayoga/VTKZ/1)
이것은 스승과 부모의 은혜를 경배하는 낙무에이의 의식이자 춤이다.
무릎 꿇고 앉은 채 굼실굼실 움직인다. 절하고 날개를 펼치고 고관절 내회전에 힌지를 더한다.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비상을 준비한다. 한무릎서기로 나아가 날개짓하며 골반을 계속 굼실댄다.
서서 걸으며 춤추며 한 다리로 서서 공작새의 날아오름을 표현하고 활시위를 당겨 사냥을 한다. (동영상 http://cafe.daum.net/gaiayoga/VTKa/1)
와이끄루는 좋은 움직임에 정말 좋다. 우리는 와이끄루를 교육 안에 넣을 것이다.
이 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
'움직임의 학교에서 여러분은 움직임 건강을 체크하고 기본적인 움직임을 회복하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자질인 움직임의 능력을 조화롭게 발달시킨다.'
우리는 현재 4가지 범주에서 아래의 교육들을 하고 있다.
풀기, 힘쓰기, 서기, 복합 움직임
① FMS ―검사
② 요가, 명상, 걷기, 바디소프트닝 ―이완, 풀기
③ 케틀벨 ―긴장, 힘쓰기, 안티 씨팅 디지즈
④ 인디언 클럽, 와이끄루 ―풀기, 서기
⑤ 헤비 줄넘기, 젠틀 달리기 ―풀기, 서기, 응용
⑥ 셀프 디펜스 ―응용, 위험 상황에서 자신과 주변 지키기. 요가/ 맨몸운동/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자신의 몸과 움직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몸과 움직임, 심리까지 다룬다. 타인의 반응에 대응하는 움직임, 타인과 협력하는 움직임, 상황에 맞게 결정하는 정신적 과정까지 한마디로 야구나 축구 못지않은 복합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