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새로운 윤리: ‘먹을거리’ 생태윤리학
먹을거리는 위생건강이 아닌 윤리문제이다
- 피터 싱어․짐 메이슨, <죽음의 밥상>, 산책자, 2008
효율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현대 집약적 축산 영농
우리의 먹을거리 선택에 대한 고려사항은 세 가지다. 맛있고, 양 많고, 가격이 쌀 것. 그런데, 이 책, <죽음의 밥상>을 읽고 나서는 이제 한 가지 사항을 추가해야겠다. 그것은 바로 윤리적인 부분으로 생산자의 노동자 처우, 동물의 복지문제, 환경과 관련된 에너지 효율성, 수질오염, 폐기물관리 등의 문제이다. 이제껏 먹을거리와 관련된 필자의 관심과 문제제기는 위생, 보건, 건강 등의 관점에서 위협이 되는 부분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보다 더 심각하고 불편한 진실을 알아버렸다. 먹을거리 문제는 더 이상 인간건강에 위협이 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와 동물, 자연계 전체에 대한 윤리의 문제란 것을 깨달았다.
아이고, 근데 위험한 사회구조와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에 대한 고민, 승자독식에 대한 탈의식화를 채 이루기도 전에, 이제는 먹을거리에 대한 윤리적인 고려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니 현대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다. 결국 방법은 모든 것을 털고 산으로 들로 가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제1부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
닭, 달걀, 고기, 우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기 소비에서 1,2,3위(미국) 한다는 닭, 소고기, 돼지고기가 비윤리적이라는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양계산업은 그 대규모성과 잔혹성 면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자행하는 최고로 잔인한 체계적 만행”(p.43) 이라는 고백은 그 자체로 고통이다. 양계와 칠면조 양식장의 일상화된 잔혹상을 보여주는 부분(p.48)에서는 먹을거리 문제가 왜 윤리의 문제가 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달걀이라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평아리를 쓰레기에 버리고, a4 만한 공간에 닭을 가둬놓고, 강제털갈이, 불충분한 기절과 잔혹한 도살과정, 부리 자르기 등이 충분히 윤리적 논쟁거리이다. 업자들의 “닭의 고통에 무감각해져버렸습니다”라는 부끄러운 고백이 그나마 양심선언으로 들릴 정도다.(p.63) 대규모 돼지농장은 그자체로 폐기물이고 심각한 환경문제 덩어리이다. 식용돼지는 일생에 한번도 바깥나들이를 못하고 오직 서있거나 아니면 콘크리트바닥에 잔다.(p.73) 감수성 높고 지적인 동물로 알려진 소는 현대식 농장에서 최대한의 우유를 생산하도록 개량되었고(p.88) 새끼소는 태어나서 4시간 만에 끌려가서 도살당하거나 좀더 살다가 도살당하고, 어미소는 몇 달동안 새끼소가 사라진 마지막 장소를 바라보며 슬픈 눈으로 울어댄다. 이 모든 잔혹한 일들이 “품질 좋은 상품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축산업”이므로 범죄자 보듯 하지 말자. 결국 우리는 소비라는 행위로 공범이 되었으니까.
제 2부 양심적인 잡식주의자
양심적인 잡식주의자들은 바쁜 삶을 사는 직장인으로서 되도록 편리하게 먹을거리를 장만하려 하지만, 시간여유가 있다면 좀 더 윤리적으로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의지는 있다. 그래서 저자는 경계없이 모호하게 먹어대는 이들에게 유기농인증 등의 상표의 진실을 알리고, 해산물과 관련된 환경문제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토산물 소비를 장려하면서 “대륙을 가로질러 농산물을 수송하느라 화석연료를 낭비하며 환경에 피해를 주지않는”(p.205)점을 이유로 들었다. 아무래도 겨울철 남반구의 칠레 포도를 먹기 위한 이동로를 생각하면 좀 아찔하다. 결국 로컬푸드를 이용하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 가족 농장을 지원할 수 있으며,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커피, 코코아처럼 거주지 인근에서 구할 수 없는 먹을거리의 경우에는 공정무역거래를 따르는 제품을 구입하여 생산업체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할 수 있도록 촉구한다.(p.234) 마지막으로 외식과 관련하여서는 “먹는다는 것이 정치적 행동”이 될 수 있고 더 나은 농장과 식품정책에 투표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 나갈 때 윤리적인 레스토랑, 패스트푸드, 기업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제3부 완전 채식주의자들
유기농은 개인의 건강보다는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선택되어야 한다. 유기농의 윤리학(P.312)에서는 농업노동자들이 농약에 덜 노출되고, 동물들이 더 인도적인 대우를 받으며, 흙이 더 비옥해지고 환경문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렇다면 자식을 베건(육류,생선,달걀,유제품 등을 아예 먹지 않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 자녀들이 엄격한 베건 생활을 하도록 만드는 부모”(P.314)는 비윤리적일까? 누구의 말처럼 동물성 음식을 자녀로부터 빼앗는 것은 회복 불가능한 육체적 ·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베건으로 키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베건 식단은 매우 건강할 수 있고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무엇을 먹는지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을 뿐.(P.319)
이 정도까지 논리가 전개되면 윤리적 고려사항 없이 동물과 동물성 식료품을 먹는 것에 거부감이 들 것이다. 14장 ‘육식의 윤리학’에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윤리와 철학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공장식 농업이 하는 거대한 동물 학대를 지지하거나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공장식 농업에 대한 옹호론(P.342)에 대한 반박을 하면서 동물들의 고통,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 어떤 윤리적 기준으로 그들을 대할지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물음이 계속된다. 즉, 인간과 같이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동물도 동등한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식육에 대해 맞다 안 맞다라는 명분, 정당성에 매여서 판단하지 말고, 베건, 채식주의자, 양심적 잡식주의자 모두 굳건한 자기의 윤리기준을 세우라고 충고한다. 가끔 삼겹살 회식에 참석했다가 냄새를 못 이기고 한 점 먹는다고 해서 누가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고, 또 남겨진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지금의 공장식 농장이 더욱 굳건해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시장에서의 윤리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 소비행위에 달려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분이 “우리는 사는 쪽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양보했다 안 했다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오픈하면 민간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온다. 결국 우리가 똑똑히 알아보고 소비하고, 또는 덜 소비하고 바로 잡아나가면 된다. 미국 수입소도 결국 학습된 똑똑한 소비에 의해 수입업자들이 줄도산 위기에 있지 않은가. 이 나라의 권력은 절대로 윤리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동물학대를 중지하고 동물복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아보고 윤리적인 소비를 해야만 한다. 물론 바쁜 현대인이 이런 소비를 하려면 훨씬 많은 시간을 써야하고 귀찮겠지만 그래도 어쩌랴? 우리 불쌍한 소, 돼지, 닭에게는 선택권이 없는데.
함께 나눠 볼 의문점과 생각거리
1. 미국의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제기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에도 유효한가?
2. 동물복지 개선에 돈이 들 경우, 복지는 포기된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효율성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비용이 들더라도 유기농 매장에서 ‘방사유정란 12개’를 3500원에 사먹어야 할까?
3. 상표의 문제에서, 실제로 ‘윤리적 소비’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생활협동 조합의 경우에도 돼지, 닭, 소가 어떻게 키워지고 도축되는지 알 수가 없다. 각종 자기단체만의 인증제를 통과한 친환경, 유기농, 안전식품 등의 품질 좋은 상품임을 내세우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4. 암퇘지의 고통을 줄여주느냐 마느냐, 다우너 소의 안락사 문제, 사람에게 위험한 약물을 소에게 투여하는 문제, 닭을 2주간 굶기는 강제털갈이, 닭 부리를 잘라서 자유로운 활동을 억제하는 문제 등 이런 공장식 농장의 축산 관행은 맛있는 고기를 싸게 먹고자하는 우리에게 어떤 윤리적 문제가 될까?
5. 스스로 베건, 채식주의자, 양심적 잡식주의, 육식옹호자 등의 입장을 정하고 윤리적 기준을 나름대로 세워본다면?
첫댓글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딱히 드릴 말씀도 없고 하여, 그동안 제가 읽은 책의 독후감을 몇 편 올려요~예쁘게 봐주세요~
^^ 와우! 저는 요새 현미채식을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글 너무 반가워요! 저는 딸내미 덕분에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른 '채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ㅋㅋㅋ...아직은 금단 현상으로 곰보빵도 생각나고, 초코렛생각하면 침이 좀 고이지만...이 기회에 확 바꿔볼랍니다.ㅋ
머 골치 아푸게 미국이론 생각합니까? 한국사람들은 식당 가서 밥 안 먹기만 해도 먹거리 윤리성을 꽤나 실천할 수 있을텐데요. 으째 그래 뻑하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지 알 수가 엄써염, 식당의 먹거리 재료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가 엄쪄. 게다가 그 음식 쓰레기...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했더니만... 몽고에서 온 청소부처럼 허름하게 입은 할매가 너무 안 되 보였던지, 식당에서 다른 것까지 잔뜩 얹어서 싸 주더라. ㅋㅋㅋㅋ 이틀 잘 먹었네, 어디서 온 재료인지는 모르겠지만 으쨌든 내 소화기관 통해서 정신화 시켜서 한국땅에 싸주고 왔찌~ ㅋㅋㅋㅋ
먹거리 윤리 실천하는 간단한 방법이 몇 가지 있어염. 1.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한다. 2 지역 농부에게서 직접 먹거리 구입한다. 될 수 있으면 유기농산물. 유기농산물 비싸다는 것은 미신에 불과함. 매일 집에서 요리하면 절대로 안 비쌈. 3. 공장에서 나오는 먹거리 살 때 반드시 내용물의 원산지를 확인한다.(이 점은 한국에서 확인하기 굉장히 어려움. 생산자들의 양심에 털이 많이 나 있음으로 해서) 4. 냉장고 크기를 4분의 1로 확 줄인다. 음식물은 슈퍼의 냉장고에 보관해 두면 되기 때문이다.(한국 가면 제일 이해 안 되는 것이 그 냉장고 크기임, 가게가 맨날 열려 있는데 모하러 그렇게 쌓아 두는지. ㅊㅊㅊ)
5. 젤로 어려운 것: 제발 적당히 먹고 적당히 싸자. 웬 식탐이 그렇게도 심한지, 사람도 그냥 만나믄 안 되는지 만나면 꼭 먹으러 가야 하고, 방문하면 벌써 음식준비해 놓고... 아, 배고푸네... 밥 묵어야게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