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 전 쯤에 우리 애들 어릴 때 한 놈을 아빠가 업고 올라갔던 주왕산 착한 코스, 즉 탐방로.. 또 5년 전에 부부산행팀이 올라갔던 3폭포를 지나 전기없는 내연마을까지...
나는 예전의 그 길을 올라가는 줄만 알고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인도행에 신청을 했다.
토요일 낮에 부사모 모임 갔다가, 저녁엔 회장님 친구분 공장개업식... 밤에 장 보러 갔다가 반찬 만드는 게 귀찮아서 시장 족발집에서 족발만 큰 놈으로 하나 사고 김치랑 매실*마늘장아찌 쌈배추를 준비를 했다. 친구들이 또 다른 반찬을 가지고 올 것이고 인도행 회원들도 갖가지 음식을 갖고 올 게 뻔했기 때문에 둘러앉아 먹으면 문제가 없을 터...
청송은 먼 곳이고 가을여행 절정기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관계로 알람을 5시, 5시 10분에 맞춰놓았다. 6시 20분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으니, 1시에 자면서 4시간 수면이면 충분하리니 믿었다.
아뿔사! 이젠 알람도 소용이 없다. 잠결에 눌러 끈 모양이다. 눈을 뜨고 보니 5시40분이다. 압력솥에 불을 올리고, 준비물을 가방에 챙기고, 그 와중에 커피 한 병 끓여넣고, 씻고, 화장하고...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었다.
다행히도 정확한 시간에 약속장소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아직 컴컴한 새벽에 안개는 왜 그리도 뿌연지...
나랑 남편, 친구랑 남편, 또 친구... 이렇게 다섯 명은 새벽부터 수다 한 판에 동아쇼핑까지 내달았다. 버스가 대기하는 곳에 일행들을 먼저 내려줬다. 빨리 가서 좋은 자리 잡으라고...
인도행 단골 주차장인 동부교육청까지는 걸어서 200m 쯤 된다. 내 배낭까지 다 가지고 내렸으니 나는 차를 주차하고 뛰어가면 되었다. 그런데 한번 길치는 영원한 길치... 몇 번 씩이나 가 본 곳을 또 지나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섰으니 교육청이 나올리 없다. 그 와중에도 네비는 전파를 못 받아서 먹통이 되고... 아무도 없는 어스름한 골목에 왠 양복입은 아저씨가 어떤 건물에다 대고 기도를 하고 있길래 급한 김에 교육청을 물었다. 뭐라고 손짓하며 가르쳐 주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옆자리에 털썩 올라타는게 아닌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께림직 했으나 이리 가자,저리 가자 한 곳에 교육청이 떡 나타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한다고 하지 마음은 바쁜데 그 아저씨 내 손목을 잡고 동아쇼핑 반대쪽으로 막 가잔다. 거기가 반월당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좀 모자란 사람인 듯... 손을 빼고 냅다 도망 오는데 아침부터 얼마나 놀랐던지...
괜히 내 차를 가져와서는... 길을 잘 안다고 운전한 게 막 후회가 되었다.
버스에 도착해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니 다들 큰 일 날 뻔 했다고... 남편은 배낭들고 괜히 내렸다고 미안해 하고...
하여간 한 사건 만들고 주왕산으로 향했다. 다들 새벽같이 일어난 터라 버스 안은 온통 자는 사람들로 조용... 나도 비몽사몽간 한 시간 쯤 자고...
안개가 너무 심해서 버스는 예정보다 40분 늦게 주왕산 절골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빙 둘러서서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절골계곡은 평평한 길을 2km 쯤 가다가 서서히 경사가 시작돼서 가메봉 정상까지는 너무 힘든 코스다. 처음에 계곡 입구부터 단풍이 얼마나 이쁘든지 다들 사진찍고 난리다가 막판에 죽을동 살동 올라가는데 내가 올라간 산 중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친구들도 이렇게 힘든 코스로 갈 줄 알았다면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6시간 쯤 걸었던 것 같다.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점심시간이다. 한 무리씩 둘러앉아 싸가지고 온 갖가지 음식을 풀어놓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친구 남편은 즉석에서 콩나물이랑 어묵을 넣고 라면을 끓여내니 다들 와~ 하고 달려들고, 족발도 여기 저기서 뜯어가고.. 하여간 정말 재밌는 시간이다. 아가씨들은 예쁘게 깎은 과일을 돌리고 여기 저기서 막걸리병이 춤을 춘다. 처음 참석한 사람들이 서먹하지 않도록 분위기가 참으로 화기애애하다. 배짱좋게 점심을 안 가지고 온 사람들도 젓가락만 들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배 불리기도 어렵지 않다.
아... 실컷 먹고나니 내려갈 걱정이 태산이다. 이만큼 올라왔으면 똑같이 내려가야할 판... 그래도 올라왔으니 내려가기는 누워 떡 먹기라 생각했건만 하산길도 가파르긴 마찬가지... 친구는 발톱이 아파 죽겠다 카고... 인도행 회원은 아니지만 결국 긴급구조대가 출동하고 한 사람 실려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무래도 무리해서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즐기려 나선 산행길이 이렇게 고생길이면 참 곤란하다. 그저 아름다운 단풍이나 감상하고 약간의 산행후 그 고장 풍물이나 구경하고... 그러면 좋으련만 죽자사자 정상에 오르려는 그 심리는?? 겨우 앞사람 발이나 땅만 보면서 몇시간 오르내릴 것을 뭣하러 그리 오르고 또 오르는지... 정작 단풍은 아랫쪽에 있지 산위에는 없는데 말이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
우여곡절 끝에 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와서 파전에 감자전에 사과더덕동동주를 한 사발 마시는 기분은 나름 짜릿했다. 청송군에서 사과 시식회도 마련했더라. 한 알씩 받아들고는 우리끼리 두 쪽으로 쪼개기 해서 내가 일등하고 ㅋㅋ...
내려오는 길에 즐비한 식당이며 가게들이 온갖 농산물로 여행객들을 유혹하는데 우리는 사과 한 자루씩을 사고 말린 취나물이며 더덕도 조금씩 샀다. 여행의 끝에서 무언가를 손에 들고 오는 마음도 참 즐겁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다시 잠든 사람들로 조용한 가운데 유독 술을 많이 마신 아저씨 한 분 혼자서 수다삼매경에 빠져 조금 성가셨지만 평소에 워낙 부지런하고 착한 성품이라 다들 이쁘게 봐줬다는...^^ 울 남편한테 자꾸 술을 권해서 둘이 적잖이 술친구도 됐다는 ㅋㅋ...
버스가 도착할 때쯤 다시 길잡이는 다음 주, 그 다음주 산행을 안내하는데 나는 들은 척도 하기 싫었음~~ 그러나 또 따라갈 것이 뻔한 꿈길에... 인생은 알고도 속고,모르고도 속는 것...
집에 오자마자 욕조에 뜨끈한 물 받아서 반신욕 하고는 남편, 아들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는 그대로 자 버렸지라.
그리하여 오늘도 하루종일 뻗어 자다가 오후 늦게 일어나보니 배낭은 두 개가 속을 다 뒤집어 난리법석이고 어젯밤 두 남자가 끓여먹은 라면냄비랑 그릇들이 즐비하며 벗어놓은 등산복이 한 보따리... 아이고라...ㅠㅠ
마음먹고 치우려는 찰나에 우리동네로 납신 절친분들(^^) 연락오고... 나가서 실컷 먹고 들어오니 두 남자 거실에 신문지 깔고 삼겹살 파티하고 있어라~~
고로 아직 아무것도 치우지 못하고 내일은 하루종일 일에 매달릴 판. 그런데 친구 하나가 수목원에 국화전시회 한다고 가자고 꼬시니 일을 할 시간이 없도다...
허걱! 낮에 실컷 잤다고 잠이 안 와서 좀 궁시렁 거리는 사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다들 주무시겠지요. 데이지만 빼고...
아름다운 꿈들 꾸셔요~~^^
첫댓글 고생만이 생을 앞으로 끌고나갈 원동력이리니...^^
그 고생 이제 안 하고 싶어유...^^
등산하다가 생각하는건데...뭔가 찡하게 내장이 느끼는 고통이 은근 상쾌하단 말야~
적당하게 올라야 하는데 도를 넘으면 고통이 상쾌한 게 아니라 죽을 맛이더라...
저도 이제 등산이 자신이 없어지더라구요. 나이먹고 엉덩이 무거워지고...무릎에 무리하게 내려오면 아프고...에고 산행은 가고싶고 힘은 들고...헉헉 죽을 듯 올라선 정상에서의 그 짜릿함을 생각하면 죽자사자 다녀야 되는데...ㅎ 고생했어요.들레님.ㅎ 그래도 보람은 있잖아...그치?...
나는 정상에서 짜릿한 거 없고 보람도 없는데 ㅋㅋ.. 즐길 틈도 없이 걍 오르고 또 오르는 건 시간낭비 체력낭비라고 생각한다우. 고생한 기억만 줄줄이~~^^
갈수 있을때 마이 가이소.
이제 힘에 부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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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관광하는 차원으로 다녀야지 산에 올라가면 후회 한다 ㅋㅋ..
이제 10군데 다 되가남요?
이 달 말에 잡힌 대마도까지 하면 거의 완벽~~~ㅋㅋ
산 정상을 올랐다는 희열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한다는 것에 난 초점을 두고파.
행복하셨것수~ ㅎㅎ
그렇지, 정겨운 이들과 하는 여행은 마음을 살찌운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