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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풍자와 해학
3.3. 조선시대의 문학
3.3.1. 설화
웃음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다. 또 웃음은 인간이나 인간관계에서만 수반되지 비인간적인 동물이나 사물에서 웃음을 체험할 수 없다. 사람들은 원숭이를 보고 곧잘 웃는다. 그러나 동물적인 원숭이 자체가 우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흉내를 내는 모습이 우스운 것이다. 이 역시 인간적인 것에서 웃음이 발생한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벽에 걸려 있는 모자를 보고 웃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그 모자의 주인공이 연상되어서 웃는다. 그 모자가 중절모라고 가정하자. 다 낡아빠진 이 모자의 주인공은 난쟁이요, 그런데다 코가 크고 빨갛다고 하자. 그런데 주인이 없어도 벽에 걸린 모자를 보니 그 익살스럽게 생긴 인간- 곧 모자의 주인이 우습기 때문에 모자를 보고 웃게 마련이다.
해학은 이야기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혹은 언어표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전자를 내용적인 해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수식적인 해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해학은 야유나 모욕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호의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파고드는 특징이 있다. 인생의 모순과 비합리를 공격하려는 풍자의 웃음과, 인간 속에 묻혀 있는 선한 가치라든가 순박한 행복, 그리고 애정같은 것을 인식하려는 해학의 웃음은 같은 소화 범주에서 다루어지겠지만, 이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풍자성과 해학성은 우리 문학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며 옛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구비전승 되고 있는 설화나 문헌 설화에서 이러한 면을 많이 발견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설화의 범주에 속하는 민담의 일종인 소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설화는 말로 전승되어 오는 옛날 ‘이야기’이다. 그러나 모든 옛날 이야기가 다 설화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옛이야기 중에서 일상적인 잡담이나 역사적 사실 등은 문학성이 없는 것이므로 설화가 아니다.
잡담은 일정한 구조가 없고, 역사적 사실은 꾸며낸 이야기로서 문학적 상징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화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로서 문학적 상징성을 지니면서 서사 문학의 근원이 된다.
설화의 하위 분류는 대체로 신화, 전설, 민담으로 3분하는 것이 통례화 되어 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설화와 민담을 동일시하거나 민담을 다른 개념의 상위 개념으로 두기도 한다. 이 셋 사이에는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상호 전환되기도 하여 분명한 선을 긋기는 어렵다.
즉 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의 세 장르로 구분되는 민족문학의 근원인 동시에 민족의 공동문학이며 또는 산문문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설화는 구전 되는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서사민요, 서사무가, 판소리, 소설 등 서사문학의 거의 모든 장르들과 많게 혹은 적게 관계가 있다.
신화, 전설, 민담 등의 설화분야에서 소화는 민담 속에 분속된다. 신화와 전설에는 숭고미나 비장미가 주가 되므로 골계미는 민담에서 살필 수 있겠다. 민담은 동물담, 본격담, 소화로 나누어 질 수 있다. 민담의 주기능은 흥미와 재미를 유발시 켜 정서를 환기시키는 기능이다. 놀이 본능에 바탕을 둔 쾌락적인 기능이 가장 주 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가운데 삶의 의미와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요소가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또한 민담에는 교훈적인 기능도 있다. 대체로 동물의 효행이나 보은하는 것에 빗대어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자연의 질서나 우주의 근원에 대한 궁금 증을 풀어주는 기능과 탐관오리에 대한 풍자나 비판의 기능도 한다.
민간에 전승되던 설화가 개인의 문집에 섞여 실리다가 나중에는 본격적인 소화집이 편찬된다.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성현의 용제총화(?齊叢話), 송세림의 어면순(禦眠楯), 강희맹의 촌담해이(村談解?), 홍만종의 명엽지해 (蓂葉志諧) 등이 그것이다.
①?용제총화(?齊叢話)?
용제총화는 성현의(1436~1504) 문집으로 백과사전식으로 다양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그중에 각종 설화가 실려 있다. 문장과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성현은 이 ?용제총화?에서 주로 好色說話를 수집해 놓고 있다.
②?태평한화골계전?은 서거정(1420~1488)이 편찬한 순수 소화집이다. 그는 시화집으로 ?동인시화?를 편집했고 자기 문집으로는 ?四佳集?이 있는데 순수 소화집으로 ?태평한 화골계전?을 엮은 것이 특징적이다. 이 소화집에는 모두 145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음담패설이 비교적 적게 실려 있고 수록된 것들은 대부분 명사들의 일화나 시화가 대부분이다.
③?촌담해이(村談解?)?
?촌담해이?는 강희맹(1424~1483)이 편찬한 것이다. 촌에서 하는 이야기로 턱이 떨어질 정도로 우스운 이야기들을 모았다는 이 소화집에서는 현재 10편의 소화가 남아 있다. 이 소화집에 실린 소화들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외설과 愚의 결합이다.
이들에 실려 있는 작품 중 몇 편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다. 小說도 그렇지만, 說에서도 男女 관계에서 諧謔은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다. 남편과 아내, 이 사이에 女婢나 기생이 개입하여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경우가 있고, 또는 未婚인 僧侶와 女人, 그리고 승려 밑에서 수도하고 있는 어린 상좌승이 이에 개입하여 복잡한 사건을 이루어 나가면서 풍자성을 그린 해학이 있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예로서 15세기의 설화집인 李陸의『靑坡劇談』에 실려 있는 ?好色兩班?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好色的인 양반이 있었다. 밤에 그 아내가 잠들기만 하면 몰래 방을 나와서 女婢가 자는 방으로 들어 가서 그 여인과 자고 나오곤 한다. 이것을 눈치 챈 아내가 어느날 밤 자는 체하고 있다가 남편이 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밟았다. 남편은 여종이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서는 이런 대화가 들렸다.
婢 : “절병부인(인절미떡, 귀족의 음식으로 간주하여 본처를 상징하는 것)은 어데 두고, 이렇게 더러운 계집종을 찾아왔습니까?”
양반 : “나는 그대를 갓김치(갓으로 담근 김치)로 알고 왔노라.”
이 광경을 엿듣고 있던 本妻는 그냥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女婢와 동침하고 나온 양반은 큰 돌 위에 앉아서 그 궁둥이를 차게 얼려서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의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궁둥이를 아내에게 들이대며
“배가 아파서 변소에 다녀왔더니 궁둥이가 이렇게 얼었구려. ”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아내가
“이렇게 배가 아픈데 왜 갓김치만 자꾸 잡수십니까?”
라고 응수했다.
양반에 관한 이야기를 또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소낙비가 퍼붓는 밤에 이 양반은 변소에 들어가서 큰 바가지를 쓰고 또 女婢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몰래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빨래 방망이를 들고 있다가 그 바가지를 내려쳤다.
벼락 치는 소리가 나서 남편은 그 자리에 놀라서 자빠졌다. 아내는 모른 체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놀라서 넘어졌던 남편이 아내의 방에 들어와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우리 집이 부자가 될 징조가 있소. ”
하니 아내가
“무슨 말씀이요. ”
하고 물으니 남편은
“작은 벼락을 맞은 집은 반드시 부자가 된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변소에 다녀오다가 그 작은 벼락을 맞았으니 우리가 부자가 될 징조 아니오? 어찌 기쁘지 않겠소.”
해학은 이야기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혹은 언어 표현에서 찾아볼 수 도 있다. 전자를 내용적인 해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수사적인 해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설화는 이 두 가지를 겸한 해학이 농도 짙게 나타나 있다.
떡을 먹었으니 김치를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자기의 종을 범하려는 것은 背理이다. 이 背理를 합리화하려는 데서 웃음은 나오게 된다. 번번이 아내에게 약점을 잡히면서도 여유있게 제 할 일을 다 하는 양반의 우직하고도 도량이 넓은 인간성이 또한 우습다. 그리고 남편의 추행을 미행하여 그 정체를 모두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앙탈을 부리며 반항하지 않고 은근히 골탕을 먹이는 아내의 너그러움에서 인간미 있는 해학을 체험할 수 있다.
해학이란 것은 야유나 모욕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호의를 가지고 상대에게 파고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인생의 모순과 卑俗을 파헤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묻혀있는 선의 가치라든가 순박한 행복, 그리고 애정 같은 것을 인식하려는 데에서 꾸밈없는 해학은 발견되는 것이다.
풍자가 인간 부 정의 암시에 있다면, 해학은 어디까지나 인간 긍정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위에 인용한 ?好色兩班?의 이야기는 해학의 대표적 설화라 고 생각된다.
다음은 풍자가 곁들인 공격적 해학의 예를 15세기 성현의 『?齋叢話』에 있는 작품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절의 상좌(上座)놈이 자기의 스승인 중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이웃에 사는 젊은 과부가 저에게 절 뜰 안에 있는 감을 스님이 혼자 잡수시냐고 묻기에 그렇지 않고 모두 노나 먹는다고 했더니 그 부인이 자기도 좀 달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은 중은 대단히 기뻐서 감을 그 여인에게 보내 주라고 명했다. 상좌 놈은 감을 모두 따서 자기 부모에게 바치고 또 말하기를
“그 여인이 대단히 감사하다고 하면서 재를 올릴 때의 떡도 먹고 싶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중은 또 떡을 보냈다. 그러나 이 떡도 상좌 놈의 부모의 입으로 모두 들어갔다. 상좌 놈은 또 중에게
“그 예쁜 과부여인이 스님을 꼭 뵙겠다고 그러던데요. ”
라고 거짓말을 했다. 중은 하도 반가워서 날짜를 정하여 만나기로 했다.
상좌 놈은 과부의 집에 가서 자기 스승이 폐(肺)를 앓고 있는데 의사의 말이 女人의 신발을 따뜻하게 해서 가슴에 대면 낫는다고 하니 신발 한 짝만 빌려 달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과부는 선뜻 자기의 신발 한 짝을 내 주었다. 신발을 얻은 상좌는 절에 돌아와서 문밖에서 몰래 중이 있는 선실(禪室)을 들여다보았다.
중은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자리를 깔고는 혼자 웃으며 獨白하기를
“나는 여기 앉고, 그녀(과부)는 조기 앉고 내가 그녀에게 음식을 권하여 먹은 후에 나는 그 여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은근한 재미를 보게 되었군.”
이 때 상좌 놈이 문을 왈칵 열고 들어와 신발을 던지며 말하기를
“일은 모두 끝났습니다. 내가 그 여인을 데리고 문에 이르러 스님의 하는 짓을 보고는 여인이 크게 노하여 너의 스승은 미쳤구나 하면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나는 뒤를 쫓아갔으나 미치지 못하고 그녀가 버리고 간 신 한 짝만 이렇게 주어 왔습니다.”
중은 머리를 푹 숙이고 뉘우치면서
“너는 내 입을 쳐 달라. ”
고 하였다. 상좌는 곧 목침(木枕)을 들어 중의 입을 갈겼다. 중의 이빨이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맛보는 웃음은 앞에서 언급한 ?好色兩班?의 웃음과는 다르다. 웃음의 종류가 다를 뿐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도 전자와는 훨씬 이질적이다. 그러나 독자나 청자는 이 이야기에서 야유와 모욕에 가까운 웃음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좌 놈의 기지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동반하는 웃음을 체험할 것이다.
수도하는 체하면서도 이웃집 과부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는 승려의 위선적인 행위가 얄미울 것도 같지만 꾀가 많은 상좌 놈에게 완전히 희롱당하는 그 우직성도 웃음을 도발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이것은 잔인성까지 곁들이고 있는 공격적인 해학이라고 생각된다.
이 이야기에서의 주역은 상좌다. 상좌가 그의 師僧을 속이고, 또 봉변당하게 하는 이야기는 한국 설화에 많이 나타나 있다. 결국 영리한 상좌는 타락한 승려를 속이면서도 그 師僧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종교적 의의도 가지고 있다. 기성의 승려는 타락했으나 장차 중이 되려는 소년 상좌는 아직 그런 세속에 때 묻지 않았다는 것도 당시 불교 사회의 한 현상이기도 하다.
설화에서의 상좌의 존재는 소설에서의 방자의 존재와 흡사하다. ?춘향전?이나 ? 배비장전?에 등장하는 房子는 바로 승려사회의 상좌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해학설화를 몇 편 더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세 사람의 즐거움?
삼봉 정 선생과 도은 이 선생과 양촌 권 선생이 모여 서로 平生에 스스로 즐기는 것을 담론하고 있었다.
삼봉이 왈 “삭설(朔雪)이 처음 날릴 적에 초구(貂?)를 입고 준 마를 타고 평원에 달리면서 수렵하면 이 즐거움이 될 만하오.”
도은이 왈 “산방정실 (山房靜室)과 명창정궤(明窓靜?)에 향을 피우고 차를 다리며, 시구를 찾으면 이 즐거 움이 될 만하오.”
양촌이 왈 “백설이 만정하고 홍일(紅日)이 창을 비치고 있는데 뜨뜻한 온돌에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끼고 손에 책 한 권을 잡고 그 사이에 누워 볼 때 미인이 섬섬옥수로 수를 놓다가 가끔 바늘을 멈추고 밤을 구워 먹으면 이 즐거움이 될 만하오.” 하니 정, 이 두 선생이 크게 웃으며 “그대의 즐거움을 들으니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하였다.
『太平閑話滑稽傳』
2) ?백년을 사시고 백년을 더 사세요?
중추 閔大生은 나이가 아흔이 넘었는데,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러 온 조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숙부님 백 살까지 사시는 복을 누리소서”라고 하자, 화를 버럭 내며 “내 나이 아흔이 넘었는데 만일 백 살까지 산다면 앞으로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 어찌 이리도 복 없는 소리를 하느냐!”하고는 쫓아 내버렸다.
다른 조카가 “숙부님, 백년을 사시고 또 백년을 더 사시는 복을 누리소서”하였다.
그러자 중추는 “참으로 장수를 비는 풍모가 있도다”하고 잘 먹여서 보냈다.
『용제총화』
3) ?재앙과 잔치 밥?
옛날에 한 수령이 고을이 호장(戶長)과 더불어 시를 지었는데, 수령은 배가 불룩하고 호장은 눈병을 잃고 있었다. 수령이 먼저
“호장의 눈이 비록 물기가 있으나 개천을 만들어 물을 끌어들일 수야 있겠느냐. 옷소매에는 재앙이 되나 파리에게는 잔치 밥이로다”
라고 짓자 호장이 다만 엎드려 있기만 하므로 수령이 “그대도 대구를 지어보시지요”
하였다. 그러자 호장이
“대인의 배가 비록 크기는 하지만 세금으로 바치는 쌀이야 실을 수 있을까. 역마에게는 재앙이로다 맹호에게는 잔치 밥이로다”
라고 화답하였다.
내가 일암(一庵)과 더불어 백형〔成任〕을 모시고 관동에서 논 적이 있는데, 일암은 밤에 똥을 눌 때면 늘 제자를 데리고 갔다. 그러자 백형이 이런 글을 지었다.
“일암이 아무리 자주 대변을 보러 간들 말에게 꼴로 줄 수야 있겠는가. 제자에게는 재앙이 되나 개한테는 좋은 밥이로다”
내가 또 백형을 모시고 명나라 서울에 갔을 때 의원 김원근(金原謹)이 음경을 앓는지라 내가 “김 판사(判事)의 가운데 다리가 아무리 크다 해도 큰 호로(葫蘆)만이야 하겠는가. 기생에게는 재앙이 되겠지만 진드기에게는 잔치 밥이로다”라는 글을 지었다.
진드기는 개 다리에 붙기를 좋아하는 벌레 이름이다.
『?齋叢話』
4) ?내가 소를 타는 이유?
어느 유명한 벼슬아치가 아직 출세하지 못했을 때 언제나 소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남들이 왜 말을 타지 않고 소를 타냐고 조롱하자 이렇게 답했다.
“말이란 오(午)이다. 머리를 움츠리면 오자요, 머리를 쑥 뽑으면 우(牛)자가 된다. 내가 소를 타는 것은 내가 머리를 드러낼 상이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생각하였는데, 과연 나중에 시골에서 나이가 벼슬길에 들어서 두각을 나타냈다.
5) ?키 큰 사람고 키 작은 사람?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을 희롱하는 시를 지었다.
“갓을 쓰면 갓끈이 땅에 질질 끌리고, 신을 신으면 머리까지 파묻히네. 길가에 난 소 발자국 웅덩이만 만나도 건너가려고 짚 검불로 배를 삼누나.”
그러자 키 작은 사람이 그 시에 이렇게 화답하였다.
“이불을 덮으면 발이 나오고, 집에 들어가려면 머리부터 얻어맞지. 다리를 잘라야 곽에 들어갈 수 있고, 베어낸 발로도 배를 저을 수 있네.”
『海東雜錄』
6) ?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
근래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우스갯소리를 잘하였다. 하루는 친구 집에 찾아갔더니 친구가 술상을 차렸으나 안주가 채소뿐이었다.
그 친구가 먼저 “집이 가난하고 저자도 멀어 맛있는 것을 차리지 못해 싱겁고 박하기만 한 것이 부끄럽네”하고 사과하였는데, 때마침 닭들이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었다.
김이 자기 말을 잡자고 하자 주인이 “말을 잡으면 무엇을 타고 돌아갈 건가?”라고 묻자 김이 “닭을 타고 가면 되지”라고 했다. 주인이 껄껄 웃으면서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海東雜錄』
7) ?개의 귀 하나쯤이야?
옛날 문경 현감이 통인에게 “오늘은 아주 한가하니 연구나 지어볼까?” 하였다. 그랬더니 통인이 사또에게 먼저 지으라고 했다. 사또는 이렇게 읊었다.
“주흘산 앞에서 곰〔能〕이 논론하다. 主屹山前能論論
능(能)은 웅(熊)과 통하고, 논론(論論)은 곰이 노는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말이 떨어지자 통인은 다음과 같이 대구를 지었다.
“막동문 밖에서 개〔大〕가 몽몽 짓는다. 莫同門外大蒙蒙
대(大)는 견(犬)과 통하고, 몽몽(蒙蒙)은 개 짖는 소리다.
사또가 “ 어떻게 큰 대자로 개 견자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고 하자 통인이 이렇게 대꾸했다.
“사또에게 곰의 네 발을 끓어내고 쓰셨는데, 소인이 어찌 개의 귀 하나쯤 뗄 수 없겠습니까?”
듣는 사람이 이가 시리도록 입을 벌리고 웃었다.
『松溪漫錄』
8) ?봉급 일만 이천 냥?
아버지는 사람들이 수령의 봉급이 많고 적음을 비교할 때면 잠자코 계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양양 부사를 그만두고 돌아와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할실 때였다. 그들은 이전에 자기가 다스리던 고을의 봉급이 많네 적네 하다가 양양은 어떻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농담으로 “일만 이천 냥 받았소이다”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게 정말이오?”하자 아버지는 “그렇고 말고요”라고 하셨다. 그들은 반신반의하며 어서 자세히 말해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다와 산의 빼어난 경치가 일만 이천 냥 가치는 되고, 녹봉이 이천 냥이니 넉넉히 금강산 일만 이천 봉과 겨룰 만하지 않소?”
좌중이 모두 크게 웃었다.
『過庭錄』
9) ?걸어다니는 시체, 달아나는 살덩이?
인성(寅城, 정철)이 우스개 이야기를 잘 했는데, 난리 중에도 여전하였다.
서애?공언(許功彦)?징원(李澄) 부자와 나(박동량), 그 외 여러 사람이 연광정(練光亭)에 모여서 왜적의 불이 멀리 소나무 사이에서 깜박거리는 것을 보고 끊임없이 울리는 총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때 서애가 울면서 “우리들의 생사가 조석에 달렸으니 이 모임이 영결식이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하자, 인성이 “그렇지 않소. 결국은 다 함께 죽을 것인데, 어찌 영결이라 하겠소”라고 하였다.
서애는 눈물을 닦고 웃으며 “신정(新亭)에서 청담(淸談)이 어찌 없을 수 있겠소?”하였다.
또 기성(箕城, 평양의 옛 이름)에 홍문관을 설치하고는 숙직을 없애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서애?공저(公著, 이성중)?공직(公直)?수백(守佰, 金信元)형제와 내가 모여 있었다. 공저가 먼저 “우리는 가위 솥 가운데에 있는 고기요”하길래
내가 “그렇지 않소. 걸어다니는 시체, 달아나는 살덩이란 말이 바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오”라고 하자, 서애는 이 말을 받아서 “참 좋은 형용이오”라고 하였다.
『寄齋史草』
10) ?대머리의 긴 수염?
공기(孔?)는 술을 좋아했는데, 머리는 벗겨졌어도 수염은 길었다. 손님가운데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같은 몸인데 왜 턱에는 털이 나고, 머리에는 털이 안 나는거요?”라고 묻자
공기가 “그것은 술의 화(禍) 때문이오”라고 했다.
그 손님이 “어째서 술이 머리에는 화가 되면서 턱에는 화가 되지 않소?”라고 하자 공기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술 취한 사람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항상 머리가 아프다고하지 턱이 아프다고 하지는 않소. 아픈 곳이 화를 입고 아프지 않은 곳은 화를 입지 않는 법이오. 그것이 턱에는 털이 나고 머리에는 털이 나지 않는 까닭이외다.”
손님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太平閑話滑稽傳』
소화집에 나온 작품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골계성을 살펴보았다. 설화는 구전을 통해 형성되고 변모되어 오면서 그 모습의 일부를 문헌에 남겼으며, 소설로 개작되기도 했다. 오늘날 채록한 구전설화는 형성의 유래를 중요시한다면 문학사의 첫 단계까지 소급해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들어서면서 설화가 재흥하게 되고 민중의식의 성장을 표현하는 설화가 다채롭게 형성되었으며, 그 성과가 야담이나 소설에서 적극 활용되게 된다.
본론에서 살핀 것과 같은 상하나 귀천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인이 상전을, 상좌가 노장을 속여서 골탕 먹이는 것은 조선 전기의 잡록이나 골계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유형이 더욱 발전해서 상층은 어리석고, 하층은 발랄하기 때문에 상하의 질서가 부지할 수 없게 되는 양상을 익살맞게 다룬 이야기가 계속 늘어나 그 시대 새로운 문학의 광범위한 저층 노릇을 했다.
국문소설이든 한문소설이든 설화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설화를 받아들여 개작하면서 사회적인 의미가 강조된 대결구조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화를 통해 내려온 골계성은 판소리소설이나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등에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화에 나타난 골계성은 후대의 여러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골계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3.3.2. 민요와 해학
민요는 민중에 의하여 창작되어 민중에 의하여 전승되어 오는 백성의 노래이다. 민요는 口演을 전제로 하는 음악과 문학을 공유한 가장 민중적인 언어예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민요는 문자발생 이전 인류의 탄생과 함께 발생되었다. 이 때에 이미 교육 기능?흥미 기능?구연 기능?보상 기능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민요가 수집된 역사는 상고시대까지 소급된다. ?龜旨歌???公無渡河歌?와 같은 노래는 상고시대의 민요이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나 조선시대까지도 민요는 여러 문헌에 수집되어 전 하고 있다.
민요는 노래로 된 구비전승이다. 노래이기에 음악이면서 문학이고, 그 歌詞는 율문으로 되어 있다. 노래로 불려지지 않는 것은 민요가 아니다. 노래로 불려진다는 점에서는 판소리나 무가와 같은 구비문학이지만, 비전문적인 민중에 의해서 널리 불려지는 노래라는 데 특성이 있다.
민요는 민중에 의해 향유되고 집단에 의해 집단 속에서 생성되는 공동작이다. 巫歌는 무당, 佛歌는 승려, 歌辭는 가객, 판소리는 광대에 의해 불려진 노래인 반면 에 민요는 민중이란 집단에 의해 생성되어지고 불려진 노래이다. 雜歌는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널리 불리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민요에 포함시킨다. 따라서 민요는 비전문적이고 소박하다. 또한 혈연?지역 등의 민족적 생활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민족의 노래가 민요이다. 그러므로 민요에는 그 민족의 삶의 모습, 세시풍속, 예의범절, 미적 감수성 등의 일면이 들어 있다. 그리고 민요는 역사?사회적인 환경 조건 속에서 부단히 개변되어 한 시대의 민중의식이 형상화된다. 민요는 민중의 생활?감정?사상을 솔직하게 나타낸다. 설화?속담?수수께끼 등도 민중의 것이지만 이들은 지배층과 공유하고 있는데 비해 민요는 양반들이 즐기지는 않는다.
사회 질서가 혼란하거나 비리가 난무하여 살기가 힘들어지면 언제까지나 참고 견디고만 있지 않는 것이 민중의 속성이다. 노래를 통하여 부당한 현실을 비꼬아 풍자하기도 하고, 미래사를 예언하기도 한다. 민요는 이와 같은 정치적 역할을 하 기도 했다.
민요 연구의 경우 민요의 집단성이나 민중성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가 포괄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가락?사설 등 복합적 요소로 이루어졌으므로 분류가 쉽지않다. 그동안 다양한 민요 분류 안이 제시되었으나 여기에서는 조동일의 분류를 제시하고자 한다.
① 기능별 분류
㉠ 勞動謠 : 農業노동요, 漁業노동요, 運搬노동요, 土木노동요, 採取노동요,길쌈노동요, 製粉노동요,
手工業노동요, 家內노동요
㉡ 儀式謠 : 歲時의식요, 葬禮의식요
㉢ 遊戱謠 : 舞踊유희요, 競技유희요, 機具유희요, 言語유희요, 非機能謠
② 歌唱方式別 분류 : 선후창, 교환창, 독창(제창)
③ 唱曲別 분류 : 歌唱민요, 吟?민요
④ 律格別 분류 : 1음보격 민요, 2음보격 민요, 3음보격 민요, 4음보격 민요, 分聯 體민요, 連續體민요
⑤ 장르별 분류 : 교술민요, 서정민요, 서사민요, 희곡민요
⑥ 唱者別 분류 : 男謠, 婦謠, 童謠
⑦ 時代別 분류 : 옛날노래 중년소리〔近代謠〕
⑧ 지역별 분류 : 각 도별 분류
이 외에도 여러 분류가 있으나 창자의 성별?연령을 고려하지 않고 주제 위주 로 분류한 것들이다.
힘든 일을 하는 노동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가 노동요이고, 의식을 집행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의식요이며,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유희요이다. 이와 같이 민중들의 생활과 밀착되어 뚜렷한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민요를 기능요라고 하고, 본래의 제 기능을 상실하여 버린 민요를 비기능요라고 한다. 기능요는 기능의 성격에 따라 勞動謠?儀式謠?遊戱謠로 나눈다. 비기능요는 노래 그 자체의 즐거움 때문에 불려진다.
민요는 1?2?3?4음보격이 있는데 이 중 4음보격이 가장 많고, 다음 3음보격과 2음보격이 많고 1음보격은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민요의 곡조는 음의 고저에 관계함이 적고, 주로 음절의 장단에 의해 불려지고 있다. 그 기본형이 3음 과 4음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국어 자체가 2?3?4음 이 절대 다수인 것에 연유한다. 음수율의 古形은 3?3조였는데, 3음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4음이 주조가 되었다. 4?4조의 우세는 한국 민요의 형식상 특징으로 현존 민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연 형태에 따라 선후창?교환창?독창? 제창?복창으로 나눈다.
우리 민요에는 해학성이 풍부하다. 민요는 창자가 스스로 부르며 즐기는 노래이 다. 또한 민요는 ‘지금 이곳’에서 노래하는 창자 자신을 충실하게 표현한다. 민요 는 대체적으로 보아 숭고하기보다는 우아하고 비장하기보다는 골계적이다. 민요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노래이며 민요의 창자는 사회적인 통념을 추종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표현한다. 풍자는 ‘있어야 할 것’으로 행세해 온 적대적인 대상을 강렬하게 의식하면서 이루어지는 골계 인데, 민요는 적대적인 대상에 대한 비판보다 창자 자신의 표현에 충실함이다.
우리 민요에 나타난 해학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가 순 수한 해학이니 곧 웃음을 위한 웃음이고, 둘째가 비애적 표현의 일원으로서의 해 학 곧 내용은 비애이나 문체만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예술적 효과를 높인 것이며, 셋째가 풍자적인 해학이었다. 곧 정면 비판을 피하기 위한 해학이다. 그러나 이중에서 주종을 이룬 것이 두 번째의 비애적 표현의 일원으로서의 해학이다. 그러하 여 우리 민요에서 은근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정의 해학과 불만의 해학, 자연의 해학이 순수한 웃음을 위한 웃음에 속한다.
3.3.2.1. 민요와 해학의 관계
민요는 창자가 스스로 부르며 즐기는 노래이다. 그래서 민요는 ‘지금 이곳’에서 노래하는 창자 자신을 충실하게 표현한다. 이런 민요에서는 미적 범주 선택이 작품의 질서를 마련하는 기본 요건이 아니고, 미적 범주들 사이의 구분이 설화의 경 우처럼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요는 숭고한 것도 있고, 비장한 것도 있고, 우아한 것도 있고, 골계적인 것도 있으나 어떤 종류의 민요가 어떤 미적 범주를 보이고 있다는 일반론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민요에서는 장르론과 미적 범주론 을 함께 포괄하는 이론이 마련되기 어렵다. 그러나 민요는 대체로 보아 숭고하기 보다는 우아하고, 비장하기보다는 골계적이다. ‘지금 이곳’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작품은 ‘있어야 할 것’보다는 ‘있는 것’을 중요시하게 마련이다. 민요에는 종교적인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민요는 도덕적 당위 같은 것을 존중하지 않는다. 민요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노래이며, 민요의 창자는 사회적 통념을 추종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표현한다. 이런 이유에서 ‘있어야 할 것’ 보다 ‘있는 것’을 존중하는 미적 범주인 우아와 골계가 민요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골계는 풍자적 골계와 해학적 골계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둘 다 ‘있어야 할 것’으로 행세해 온 경화된 관념을 파괴하고 ‘있는 것’, 즉 생의 현실성을 그대로 긍정하지만, ‘있어야 할 것’의 파괴 쪽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풍자이고, 있는 것의 긍정 쪽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해학이다.
풍자는 다른 미적 범주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골계의 독자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데 반해서, 해학은 ‘있는 것’을 긍정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아와 유사하거나 골계와 우아의 복합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민요는 적대적인 대상에 대한 비판보다 창자 자신의 표현에 충실하므로 민요에 나타난 골계는 풍자적이라 기보다 해학적이다.
이상의 고찰에 의하면 우아한 민요화 해학적인 민요가 민요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데, 이 결론은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아한 민요와 해학적인 민요를 다시 비교한다면, 이 중에서 우아한 민요는 해학적인 민요보다 월등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노래하는 창자 자신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작품은 ‘있어야 할 것’을 부정하면서 ‘있는 것’을 긍정하기보다 ‘있어야 할 것’을 ‘있는 것’에다 융합 시키므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요에 나타난 해학은 무시될 수 있을 정도의 비중만 가진 것은 아니다.
3.3.2.2. 민요의 해학성
1) 사랑과 이별
인간의 본질인 칠정은 喜怒哀樂愛惡慾이다. 인간관계에서 사랑을 빼 놓고는 이야기를 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고금의 문학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은 허다 하다. 민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민요에 나타난 사랑은 주로 남녀간의 사랑?부 모형제간의 사랑?이웃간의 사랑이다.
둥실둥실 모개야 아무락구 굵아다오
둥글둥글 모개야
개똥밭에 궁글어도 아무락구 굵아다오.16)
이것은 자장가의 일절이다. 아이를 업고 재우면서 아이를 모과에다 비해서 모과처럼 아무렇게나 자라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를 업고 재우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미화시켜 잘 생겼다고 하고, 귀하고 곱게 자라라고 하는 것이 常例일 터인데, 이 노래에서는 그러한 관념을 파괴하고 미화되어야 할 아이를 못 생긴 모과라고하며, 귀하고 곱게 자라야 할 아이가 개똥밭에 궁글어도 좋다고 함으로써 골계가 성립된다.
그리고 이 골계는 ‘있는 것’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이루어지므로 풍자는 아니며 해학이다. 이 노래에서 긍정되는 ‘있는 것’은 사람은 美醜나 貴賤에 따라 평가되지 않고 건강과 활력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민중적인 사고방식이다.
모과처럼 생기고 개똥밭에 궁글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활에서도 보람과 자부심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민요에서의 해학은 평민적인 생활감정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평민적인 생활 감정을 긍정한다.
16) 1966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상사골에서 채록하였고, 창자는김대연(여, 당시 62세)이었다.
앞남산 바위틈에
언약초를 심었더니
피는꽃이 무슨꽃고
이별초가 만발했네17)
이별의 슬픔을 해학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체념에서 온다고 하겠으나 그보다도 슬픈 감정을 예술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관용으로 대할 수 없는 일을 관용으로 대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며,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관용, 즉 자기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이며 무기력하다는 뜻으로도 해석
17) 자음요, 아산 지방.
2) 시집살이의 어려움
민요는 여성의 작이 많다. 유교적인 남성 중심의 조선조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고통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 특히 시집살이에서 오는 애증과 그 갈등을 억누르고 참으면서 웃음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형님형님 사촌형님
?집살이 엇덥듸까
고초당초 맵다더니
?집보다 더매우랴
논에가면 그머리웬수
밭에가면 바랭이웬수
부엌에가면 ?누이웬수
집에가면 ?어머니웬수
형님형님 사촌형님
시집삼년 살고나니
메나리꽃이 다피었네18)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고추와 당추를 인용?비유하여 골계성을 나타내고 있다.
시집살이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대개 새며느리에게 不和破綻을 일으키고 구박하는 역할을 하던 원수의 존재라고 지적한 것이 통용적이기는 하나 여기에 풍자성이 있는 것이다. 시집살이의 심한 고초에서 덧없이 늙기만 했던 탄식을 “메나리꽃이 다 피었네”라고 풍자한 점도 또한 묘미가 있다. 이 노래는 비유?풍자미 등에 의하여 내용적?심리적으로 해학미를 나타내고 있다. 민요에서 고통을 참고 견디며 숨기려는 데서 해학을 찾을 수 있다.
언니언니 우리언니
시집갈때 얼골에는
붉은앵랑 세개더니
언니언니 우리언니
집에올때 얼골에는
은구슬이 방울방울19)
시집간 언니의 고생한 얼굴을 보고 슬퍼하는 동생의 노래다. 앵두 세 개(시집갈 때), 은구슬(친정에 왔을 때) 등의 골계한 말로 언니의 출가 전후를 은유적?풍유적인 묘사로 비유의 대어로 나타낸 심리적 수사법이 해학미가 있다.
우숩세라 우숩세라 / 젊은각씨 아날때는
제남편의 상투지고 / 울콩볼콩 낳는다고
아-선지 열달만에 / 허리통통 커졌단다
바빠설랑 헤메여도 / 남편님은 광동갔네
이집저집 다니면서 / 상투상투 빌려주소
아낳으면 은공잡아 / 천년만년 잊지않고
그은공을 갚겠다고 / 앞질바빠 뒷질바빠
이리저리 살피면서 / 눈물똑똑 흘렸단다
그동리에 팔십노인 / 속히속히 구초하여
상투상투 구해다가 / 죽는사람 살려주소
젊은서방 긔특하여 / 줄을살빵 대문열고
마당으로 들어갈제 / 집에서는 애고대고
바빠하는 형편인데 / 부끄러워 그리하네
마루위에 앉아서는 / 상투꼭지 길게매고
문창구무 한구멍에 / 디리디리 밀었단다
각시각시 상투지고 / 이- 이- 힘쓰면서
애를쓰며 단기드니 / 상투꼬리 쑥빠지자
당콩같은 발간애기 / 말똥말똥 뽁빠졌네20)
해산할 때의 고통을 나누기 위하여 남편의 상투를 잡고 애를 낳게 되는 풍습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자기 남편이 출타하고 없는 사이에 남의 사내 상투를 빌려 쥐고 젊은 각시가 해산하는 이 노래는 배꼽을 쥐고 웃지 않을 수 없는 서사적 사설로 그 구성도 좋거니와 그 웃음의 양이 풍부하기로 정히 천하제일의 폭소편이다. 그야말로 한국적 향토가 서린 최대의 해학성을 나타낸 만화적 해학요다.
18) 시집살이 謠, 충주 지방.
19) 시집살이 謠, 개성 지방.
20) 각시 謠, 성진 지방.
부계 가족의 가부장적 수직구조는 혼인한 여자를 완전히 예속시켜 흡수하는 동시에 최하의 위치에 두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적 차별의 고정된 가족제도?사회제도에 묶이게 되는 여인들은 그들 자신의 인권회복으로써 긍정적 권리를 찾으려 불균형 상태에 저항하는 갈등을 겪게 된다.
금동오를 깨였붓네
범같은 시아버지
버선발로 쫓어와서
어제왔던 요미늘아
아래왔던 요미늘아
너거집에 가라거든
우리금동오 물어다고
약시같은 시오마시
버선발로 쫓어와서
어제왔던 요미늘아
너거집에 갈라거든
우리금동오 물어다고
미구같은 시누부가
버선발로 쫓어와서
어제왔던 요월키야
아래왔던 요월키야
너거집에 갈라거든
우리금동오 물어다고21)
21) 媤家抗議謠.
금동오를 깨뜨렸다는 사건을 놓고, 시아버지?시어머니?시누이 등으로 인물은 꼭같지 않으면서 그 태도들은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각 인물들에 대한 ‘범같은’, ‘야시 같은’, ‘미구 같은’ 수식어만 다를 뿐 모두 동일하다.
실제에 있어 동일한 요구를 하더라도 그 표현은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작품 즉 시집살이謠에서 시집식구는 모두 며느리를 구박하고 못살게 한다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각 인물들의 성격에 대한 살아있는 인물, 즉 소설에 나타나는 개성적 인물로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어떤 실제 상황을 응축시켜 그 상황적 의미를 강화하여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세대삿갓 쓰던머리
갈몽댕이 웬일이며
은가락지 찌던손에
호미자루 웬일이며
깜안갓댕 걸던발에
어불신이 웬일인가
시집오기 전 며느리의 모습과 함께 고된 시집살이로 변해버린 ‘세대삿각’과 ‘갈몽댕이’, ‘은가락지’와 ‘호미자루’, ‘깜안갓댕’과 ‘어불신’으로 대조하여 며느리들이 처한 상황들에 대해 집약시켰다.
시아버지 죽어서 좋다더니
갈자리 떨어져 생각난다
시어머니 죽어서 좋다더니
보리절구 물불어 생각난다
지겹게도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집식구들의 죽음으로 해서 좋다는 外廷的인 상황들과 다시 시집생활에서 필요한 이러저러한 일들을 담당했던 시집 식구들이 생각남으로 해서 어떤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시집살이의 지겨움과 고통을 더해 주는 시집 식구들이지만 때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함으로 해서 시집살이가 수월했음도 역시 밝히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기도하다.
방구방구 방구 내력을 들어봐라
시아버지 방구는 호랑이방구
시어머니 방구는 잔소리방구
시누이 방구는 뾰죽새방구
내 아들 방구는 사탕방구
서방님 방구는 사랑방구
도련님 방구는 어린양방구
며누리 방구는 시집살이 방구
사랑사랑 어화둥둥 내사랑22)
이 노래는 ?시집살이 노래?의 변이형이면서 해학적인 말놀이 노래의 전형임을 알 수 있다. ‘방구’를 연상하여 시집 식구에 대한 화자의 비판성과 해학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해학적인 공격성은 ?시집살이 노래?라고 채록된 각편에도 두루 나타나는데, 다음과 같은 각편의 일부에도 드러나고 있다.
(전략)
집이라고 들어와보니 / 안방문을 열구나보니
살쾡이같은 시어머니 / 가요가요 나는가요
사랑문을 열고보니 / 독수리같은 서방놈아
가요가요 나는가요 / 웃방문을 열구나보니
살쾡이같은 시누이년아 / 가요가요 나는가요
농장문을 열구나보니 / 광목세마가 있길래
한폭은찢어 한삼을짓고 / 한폭은 찢어서 바랑짓고
가요가요 나는가요 / 속리산절로다 나는가요23)
이 편은 ?방구타령?과 같이 시집살이의 한스러움을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으나 독설을 바탕으로 삶의 터전을 버린다는 점에서 풍소성 이상의 비극성을 담고있다. 사설의 발생 자체는 시집의 인물들의 불러들여 해학적으로 질타함으로써 화자를 포함한 향유층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고 볼 수 있다.
22) 채록자 최래옥, 『구비문학대계』.
23) 채록자 김영진, 『구비문학대계』.
담넘어 갈 때는 큰 맘 먹고
문고리 잡고는 벌벌 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다 놀고 가세.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홀아비 살림에 말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다 놀고 가세.
문경 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다 놀고 가세.
시어머니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보리방아 물 부어 놓고 생각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다 놀고 가세.24)
24) 任東權, 韓國民謠集, 東國文化社, 1961, p. 609.
아리랑은 자장가나 삼 삼기 노래처럼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노래가 아니면서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다채롭게 변형된다. 광범위한 전승은 아리랑이 민중의 생활감정과 밀착되어 있음을 말해 주고, 다채롭게 변형되는 현상은 아리랑이 전승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 창조적인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아리랑이 특히 애창되고 활발하게 변형된 시기는 일본을 위시한 여러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이 시작된 때부터이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관념이 형성되자, 이에 대한 민중적 반응의 한 양상으로서 풍자적인 아리랑이나 해학적인 아리랑이 나타났다.
“말깨나하는 놈 재판소 가고 / 일깨나 하는 놈 共同山 간다 / 아깨나 낳을 년 갈보질 하고 / 목도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고 하는 것은 해학적이라기보다 풍자적인 아리랑이어서 侵略者로 인해서 생긴 고난을 고발하며, 위에서 든 것과 같은 해학적인 아리랑은 민중 생활 내부의 문제를 다룬다.
아리랑의 餘音은 일반적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로 되어 있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는 것은, 살기 어려워서 떠나는 자의 말이거나, 님과 이별하고 떠나는 자의 말이거나, 생활의 고난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여음이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아리랑에서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가 “아리랑 고개다 놀고 가세”라고 바뀌어 있다. 이렇게 되니 이별의 고개인 아리랑 고개가 놀기 좋은 곳으로 되고, 고난의 호소를 대신하여 삶을 즐기려는 자세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실제로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오히려 고난에 대한 反語的 표현이다. 해학은 의미가 심화되면 비장에 가까워진다고 하는 것이 헛말이 아니다.
일정한 여음이 삽입되면서 연속되는 민요가 모두 그렇듯이, 이 노래의 각 연은 독립적인 것들이며 의미상의 연관은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각 연은 해학적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해학의 구체적인 양상에서도 대체로 일치한다.
“담 넘어 갈 때는 큰 맘 먹고 / 문고리 잡고서 벌벌 떠네”는 겉으로는 과감한 척하면서도 실제로 일에 당해서는 왜소한 행동밖에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노래이다.
“시어머니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 보리방아 물 부어 놓고 생각난다”에서는 도덕률에 대한 파괴와 노래하는 사람 자신의 계산 착오에 대한 각성이 함께 나타난다.
“청천 하늘에는 별도 많고 / 홀아비살림에 말도 많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처지에 대한 해학적인 표현이다. 이 모든 非正常은 생활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세상이 뒤숭숭해지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문경 새재 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나, 세상 형편과 관련시켜 보면 그 의미가 드러난다. “문경 새재 박달나무”는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것이 견디어 낼 수 없는 세상이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아깨나 낳을 년 갈보질”하듯이, “문경 새재 박달나무”조차도 홍두깨 감으로 다 나간다는 것이다. ‘홍두깨’는 국수를 하는 데 쓰는 연장이니 그리 나쁠 것이 없을 것 같으나, “홍두깨 방망이”를 문자 그대로의 것으로만 볼 수 없 다. 사람을 후려치는 방망이 또는 정치적 억압의 수단도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해학은 민요가 원래 가졌던 특징이었지만, 이처럼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된 시기부터는 민요에서의 해학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해학적인 민요가 풍자적인 민요와 함께 전에 볼 수 없었던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시기의 현대시가 해학을 결여하고 있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 시기의 민요는 민중적 해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현대시는 민중적 해학의 전통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敍事民謠는 서사적인 사건을 가진 민요이다.25) 서사민요 역시 민요 일반이 그렇듯이 唱者가 스스로 부르며 즐기는 노래이지만, 작품 내적 자아와 작품 내적세계 를 별도로 설정하여 사건의 전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민요와 큰 차이가 있다. 작품 내적 자아와 작품 내적 세계를 설정하여 전개되는 사건은 설화의 경우처럼 일정한 미적 범주를 작품적 질서 형성의 중요 요건으로 삼는다. 서사민요에는 실제로 비장에 의해 작품적 질서를 형성하는 비극적 서사민요와 골계에 의해 작품적 질서를 형성하는 희극적 서사민요가 있다.
25) 조동일, 敍事民謠硏究, 啓明大學 出版部, 1971, 참조.
이 두 가지 서사민요 중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극적 서사민요이다.
비극적 서사민요는 흔히 여성 생활의 고난을 호소하는데, 한 예를 들면 시집살이가 심해서 견딜 수 없는 여인이 시집을 떠나 절에가 중이 되었다가, 친정으로 동냥을 가 친정 부모를 만났으나 친정 부모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고 친정에서도 살 수 없어 다시 시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노래와 같은 것이다.
시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은 이미 죽고 없어서 죽은 남편의 혼과 함께 살았다고 하는 역설적 결말도 이 유형에 속한 노래에 흔히 발견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비극적인 의미가 강화 된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적 서사민요도 비장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비극적인 서사민요에도 계속 해학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집살이가 심해서 괴로워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마당 겉이 묵은 밭을 미 겉이도 지슴 밭을
한 골 매고 두 골 매고 삼시골을 거듭 매니 저임 때가 되었구나.
머슴들요 머슴들요 점심 묵으로 가입시다.
집이라고 가이끄네 사랑문을 열어 놓고
번개겉은 시애비가 번개겉이 뛰나오메
고게라사 일이라고 저임 찾어 벌써 오나.
쪼바리겉은 시어마니 쪼불새가 기나오메
고게라사 일이라고 저임 찾어 벌써 오나.
흔들흔들 맞동세가 실랑실랑 흔들메야
고게라사 일이라고 저임 찾어 벌써 오나.
중이 되기 위해 머리를 깎는 대목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한 귀때기 깎고나니 눈물이야 절로 난다.
두 귀때기 깎고나니 팔월이라 원두밭에 돌수백이 되었구나.
이처럼 주인공에게 고통을 가하는 시아버지?시어머니?그리고 맏동서가 해학적으로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이 경우의 해학은 풍자에 가까운 것이나, 작품의 관심이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주인공 자신의 모습까지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극적 서사민요는 창자 즉 작품외적 자아가 주인공 즉 작품 내적 자아와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전개되나, 이런 수법은 동일시가 지지와 동정을 의미하는 데 그치게하고 작품외적 자아가 작품 내적 자아의 고난이나 비탄에 몰아적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비극적 서사민요에서는 작품외적 자아가 작품 내적 자아와 동일시되고, 작품 내적 자아는 세계에 대해서 인식 능력상 우위에 서면서 행동에서는 열세에 있으나, 희극적 서사민요에서는 작품외적 자아가 작품 내적 자아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가지고 작품 내적 자아는 세계에 대해 행동상 우위에 서면서 인식 능력상 열세에 있다. 비극적 서사민요에서는 작품 내적 자아의 의지가 패배를 통해서 긍정되는 비장이 이루어지며, 희극적 서사민요에서는 작품외적 자아가 작품 내적 자아에 대해서 자기 우월을 확인하는 웃음을 갖고 다시 자기 발견의 웃음에 이른다.
‘강원도 금강산 조리장사’는 대표적인 희극적 서사민요의 하나이다.
아들이 아무리 효자 노릇을 하고 잘 섬겨도 계속 화만 내던 과부 노파가 강원도 금강산 조리장사가 와서 자고 간 후에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하면서, 노래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어무니요 오늘밤은 춥잖서요.
에야야 오늘밤은 뜨시게 잘 잤다.
그란 후에 조리장사 떠난 후에
천날 만날 명을 자며
강원도 금강산 조리장사
그믐 초승에 온다드니 왜 안오노 왜 안오노.
주야장창 심려를 하니 아들이 듣고나니 미안하여
어머님요 어머님요 연전에 소문을 듣고나니
조리장사 죽었다네.
아이구 야야 그케노니 그믐 초승에 온다드니 그래노니 아니온다.26)
이 노래는 과부는 수절을 해야 한다는 관념, 아들이 효자 노릇을 하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관념을 파괴한다. 효자인 아들을 두고 부족할 것 없이 지내는 늙은 과부가 강원도 금강산 조리 장수 같은 미천하고 행방도 불분명한 남자를 잊지 못해 애태우는 것을 보면 남녀간의 애정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작품 속의 과부는 어리석고 못났다고 비웃을 수도 있으나, 그러한 자기 우월을 확인하는 웃음보다도 과부의 고민이 곧 자기의 것이라는 자기 발견의 웃음을 가지며 청자는 이 노래를 즐길 것이다.
희극적 서사민요에서의 해학은 道心을 실현하지 않고서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는 유교적인 도덕률의 구속을 거부하고 人心 자체를 긍정적인 것으로 보려는 평민문학의 일반적 경향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26) 1972년 8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외촌동, 창자는 신복남(남. 당시 61세)이었다.
예전에 부인이 아들애기도 못낳고 딸애기도 못낳아서
환장지경이 되어서 점하로 가니
점하로 가니야 숙맥이라고 치부하고
점바치 하는말이 니는 전혀 못낳는다
나는 어이되서 못낳느냐
그게 밑천이 아파서 못낳는다
오다가 소변을 보고나니
때때메때기가 달겨들어
아이구 점바치가 용하구나
오늘 대번에 아들을 낳네
붓들어보니 메때기래 들고 추시리메 하는말이
이마훌떡 벗거진건 징조부를 닮아신가
심심이 좋은것은 고조부를 닮아신가
종아리종아리 휘출한건 저그 외삼촌을 닮아신가
뿔우둑둑 한것으는 장터거래 아재비를 닮아신가
포항고모가 알었이면 미역단이나 가졸겐데
부산이모가 알었이면 저구리낳이나 해올겐데
저그외조모 알었이면 두대기낳이나 해올건데
얼시구좋다 정말로좋다 요렇게좋다가 추시리다니
때때그면 날아가니
요새자식은 어떤놈이 오입부터 질기노이
에미마다고 가는놈을 어느놈이가 붓들소냐27)
이 ?메뚜기 타령?은 여성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중의 한가지이다. 노래의 구성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길가에서 소변을 보다가 놀라서 달아나는 메뚜기를 잡아 아들이라고 추스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유교사회의 도덕률 속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곤란한 처지일 터인데, 이 노래는 이런 곤란한 처지를 재치와 해학을 통해 스스로를 달래면서 봉건적 도덕률로 구속된 세태에 ‘웃음’으로 저항하고 있다.
27) 메뚜기 타령, 경북 안동.
3) 낙천과 관용
해학은 낙천과 관용의 성향과 동질성이 있다. 우리 민족은 낙천적인 천성과 관용하는 마음을 소유하였으니 굶주림에도 초조히 서둘거나 누구를 원망함이 없이 오히려 만족과 관용하며 그 낙천성을 보여주고 있다.
길을 가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통일 노래를 불렀다거나, 또는 그 습속이 가무를 즐겼다거나 하는 것은 낙천적 생활관의 단적인 표시인 것이다.
먹구노자 먹구노자 / 갑산능주를 먹구놀자
<후렴 >
닐닐리 닐리리야 늴리리야 / 닐리리야 니나니 산실두
멋드렀구나 / 닐리리 닐리리야
입고놀자 쓰고놀자 / 상평통보를 쓰고놀자28)
영감아 꼭감아 / 죽지- 마 - 라
방애품 팔아서 / 개떡해 주 - 께29)
28) 늘늬리, 서울 지방.
29) 영감요, 김천 지방.
4) 불만이나 증오
예절이 바른 사회에서 농(희롱)을 잘 거는 것은 민중 생활 속에 해학이 뿌리 박혀 있음을 뜻한다. 농은 친밀감이나 인정미가 있기에 일상생활에서 생활감정을 풍부하게 한다. 그러나 증오는 농과는 달리 적대시하는 감정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우리 민족성은 내세적 열반관의 불교나 현실적 공리적인 유교사상보다 무위자연 유유자적 소극적 부정적 은둔의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기가 종사하는 노동, 남녀간의 연정, 시집살이의 고통, 금기된 성, 반상의 사회제도, 외세에 의한 시세의 반항의식에서 오는 불만을 해학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게 나타내었다.
하날에다 베틀놓고 / 구름잡아 잉어걸고
짤각짤각 짜느라니 / 편지왔네 편지왔네
한손으로 받아들고 / 두손으로 펼쳐보니
시앗죽은 편질러라 / 옳다고년 잘죽었다
고기반찬 비리드니 / 소곰반찬 고솝고나
무슨병에 죽었더냐 / 분홍치마 발키드니
상사병에 죽었다네30)
30) 베틀요, 청양 지방.
5) 노동의 어려움
에헤 에에여루 상사뒤요
에헤 에에여루 상사뒤요
여그도 숨그고 저그도 숨거서
방고르게 숨거를 보세
저건네 동산을 돌아를 보니
떴다 보아라 밥바구리가 떴네
얼른 빨리 숨거서 밥을 묵자구나
잘도 헌다 잘도 헌다
우리 농군들 잘도나 한다
어떻게 하여 이 농사가 잘 되아서
부귀 부귀로 잘 살거나
에헤 에에여루 상사뒤요
청사초롱에 불 밝혀 들고
잊었든 낭군을 다시 새로 보세
떴다 보아라 모폭이 떴네
손구락이 꾸부러지도록
손에 심을 줘서 쿡쿡 숨그세31)
모내기 현장의 모습과 일꾼들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노래다. 앞소리꾼의 사설 내용이 다양하다. 사설은 일꾼들의 일손을 재촉하는 소리이다. ‘방 고르게’ 심으란 말은 가로 세로로 줄을 잘 맞춰서 심으라는 말이다. 앞소리꾼은 소리를 메길 뿐만 아니라 일을 지휘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래서 노련한 일꾼이라야 앞소리꾼 노릇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재촉만 한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먹을 때는 먹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일꾼들이 이제나저제나 밥이 나오기를 기다릴 무렵, 앞소리꾼은 저 멀리 논두렁 끝을 주목하다가 쥔아줌마가 밥 바구리를 이고 나오는 기색이 보이면 옳다꾸나 하고 일꾼들에게 소리를 통해 귀뜸을 해준다. 일하다 먹는 밥만큼 맛있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말하지 않아도 일꾼들은 일손을 재게 놀릴 터이다.
밥바구리가 도착하기까지 앞소리꾼이 몇 마디를 더 메기는데, 일꾼들이 어찌나 모를 잘 심는지 칭찬이 절로 나오는가 하면, 과연 이리 해서 농사가 잘 돼 부자가 될 것인가 하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보기도 하고,상투적이긴 하지만 남녀간의 애정 이야기를 슬쩍 비춰 주의를 딴 데로 돌려보기도 하다가, 마음 바쁜 일꾼들이 아무렇게나 꽂아 둥둥 떠버린 모포기를 발견하고 는 얼른 지휘자의 위치로 돌아가 ‘손가락이 구부러지도록 꾹꾹 잘 심으라’ 당부한다. 앞소리꾼이 ‘떴다 보아라’고 해서 밥바구리가 떴다는 얘기로만 여기던 일꾼들은 밥바구리가 아니라 모포기가 떴다는 말에 이크! 하고 손에 힘을 주어 마지막 몇 폭의 모를 심는다.
31) 전남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 백운동 마을에서 부르던 ?모 심는 소리?.
6) 미래에 대한 희망
일에 대한 불만보다는 자신이 종사하는 일에 대하여 자랑으로 여기며,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아무리 많은 고생을 하여도 수확의 부푼 꿈에 지칠 줄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무릎 쓰고 인내하며 생고에 집중한다.
오라비 장갤랑 후명년에 가시고
깜둥 송아지 파시나마 임 사다 주소32)
이것은 삼 심기 노래의 일절이다. 삼을 삼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삼을 때면 여자들은 친한 사람들까지 모여 앉아 여름날의 긴 밤을 보내면서 일을 위해서도 또는 졸음을 쫓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도 노래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고,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말을 노래에다 담기도 한다.
이 노래는 혼례에 관한 기존관념이나 관습을 이중으로 파괴한다. 누이는 오라비가 장가든 후에 시집가야 한다. 누이의 신랑은 六禮를 갖추어서 맞이해야 하고 깜둥 송아지를 팔아서 사 올 수 없다. 처녀는 시집가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에서의 처녀는 오라비 장가는 명년도 아닌 후명년으로 미루고 지금 당장 깜둥 송아지를 팔더라도 임을 사다 달라고 한다. 이 처녀의 생각은 기존 관념이나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가리워져 있던 발랄하고 자유로운 삶의 충동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유교적인 도덕률이 일상생활의 전 영역을 지배하려고 한 시대에도 민중의 생활감정은 그것대로의 자유로운 영역을 유지하려고 했고, 이 둘이 부딪쳐 전자가 부정되고 후자가 긍정되면 이와 같은 해학적인 노래가 이루어졌다.
32) 1966년 12월 19일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현동 1리에서 필자 채록, 창자는 김영자(여, 당시 55세)였다.
7) 성
민요에 있어서 성과 관계된 해학이란 그 표현이 직관적이고 단순 소박한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성행위의 이론을 발견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시대의 문학을 음미하는 데 있다. 민요를 통하여 성의 문제를 살핀다면, 성은 해학과 관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요몹쓸년의 도라지
하도날데가 없어서
양바우사이에 났던가
도라지캐러 간다고
요리핑계 저리핑계하더니
총각낭군 무덤에
삼오제 지내고 있다네
도라지 캐러간다고
핑계핑계하더니
총각낭군 만나서
양권련 사주기 일삼네33)
전라남도 장흥지방의 타령유희요이다. 도라지 캐는 일은 주로 여성이며, 바위틈에서 자란 도라지를 캐자니 어렵고 몹쓸년이라 욕을 하면서 여성의 성기를 풍자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유희요이며 성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도라지 캐러 간다고, 남몰래 집을 나가 애인의 무덤을 찾는 그 정성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보고 싶다는 전망이 금기에 의해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다음 민요는 숨겨둔 것이 갑자기 노출되어 웃음이 나온다.
물길랑어절철 헐어놓고 주인양반 어디갔소
포란부채 청포도갖촤 첩의집으로 놀러갔네
모시야 적삼 안섶 안에 분통같은 저 젖봐라
많이보면 병날테니 담배씨만큼 보고가자
모내기 일을 여럿이 함께 하면서 일의 고통도 덜고 즐겁게 일을 하기 위해 해학과 풍자가 섞인 노래를 자주 부른다. 위의 첫째 각 편은 일하는 농민과 주인 양반 사이의 이질적인 처지를 풍자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두 번째 각 편은 남녀의 성적 문제를 선정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모내기 노래?에서 이렇게 남녀관계의 성적인 문제를 노래하는 것은 사실 단순히 성적 본능을 해소한다든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 땅을 지모신인 여성의 상징으로 보면서 남녀 성관계의 감염주술을 통해 풍요를 기원하는 사고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33) 도라지 타령.
8) 현실 비판
얏따 이놈아 징금아 내돈석냥을 내놔라
내머리로 비이다 달비전에다 팔아도 니돈석냥 내준다
얏따 이놈아 징금아 내돈석냥을 내놔라
내눈썹을 뽑아다 붓전에다 팔아도 니돈석냥 내준다
(중략)
얏따 이놈아 징금아 내돈석냥을 내놔라
내불알을 비어다가 망태전에다 팔아도 니돈석냥 내준다
얏따 이놈아 징금아 내돈석냥을 내놔라
내자지를 비어다 방만이전에다 팔아도 니돈석냥 내준다.34)
?징금이 타령?이라는 민요는 물질만능주의의 각박한 세상을 풍자한 노래이다.
이 노래에서 주인공인 ‘징금이’는 빌려 쓴 돈 석 냥을 갚으라는 재촉에 ‘신체의 일부만 떼어서 팔아도 그 돈 정도는 갚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노래의 내용이다. 노래의 이면적 의미는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를 풍부한 해학의 사설로 엮어서 표현하는 것이 이 노래의 특징이다. 신체의 일부를 노골적으로 하나씩 열거하고는 그 신체와 형태상 유사성을 갖는 물건 가게를 이어대면서 빛 독촉에 대하는 대목은 실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대중은 웃음바다를 이루게 된다.
두껍아 두껍아 네등허리가 왜그렇노
전라감사 살적에
기생첩을 많이해서 창이올라 그렇다
두껍아 두껍아 네손바닥이 왜그렇노
전라감사 살적에
장기바둑을 많이두어서 못이박혀 그렇다
두껍아 두껍아 네눈깔이 왜그렇노
전라감사 살적에
울근불근 많이먹어 붉힌눈이 남아있네35)
이 노래는 경주지방에서 채록된 ?두껍이 타령?이다. 두껍이의 별난 모습을 해학적으로 노래하면서도 이를 단순히 넘기지 않고 민중의 생활형편을 돌보기는 커녕 기생질과 바둑장기로 소일하며 가렴주구를 일삼았던 전라감사의 행실에 비유하여 노래함으로써 그릇된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중중 까까중
울넘어 팽개중
홍두깨로 밀어중
접시밑에 핥어중
돌밑에 가재중36)
중을 풍자한 민요가 관원이나 양반을 풍자한 민요에 못지않게 많은 것은 조선 시대의 불교를 천시하던 정책에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일상사에서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중’ 에 대해 겉모습의 특이함을 연상하여 불려진 노래다. 사설의 내용은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밀듯이 매끄러운 머리이며, 접시의 바닥을 깨끗이 핥아낸 듯한 깨끗한 머리이고, 가재처럼 털 하나 없는 모습의 머리를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놀리는 대상의 인물을 사설 속에 끌어들일 때 반복과 연상적 묘사를 주로 하고 있다. 대상의 인물은 등장 자체가 창자를 포함한 향유층에게 는 놀림감이 되는 것이다.
이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배 띄여라 노다 가세.
남산 밑에다 장춘단을 짓고
군악대 장단에 ‘받들어 총’만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배 띄여라 노다 가세.
아리랑 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 오기만 기다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라요
아리랑 배 띄여라 노다 가세.
문전의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 말인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배 띄여라 노다 가세.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 되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라요
아리랑 배 띄여라 노다 가세.
(후략) 37)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족 민요인데, 여러 가지 종류의 아리랑이 있다. 아리랑은 전체 9연으로 되어 있는 것 가운데 1연에서 5연까지에 해당된다. 특정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다수 민중의 공동작으로 민족의 위기 상황을 반영한 노래로서, 민중들이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이 소박하고도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날카로운 풍자성과 더불어 절실한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제1연은 민씨 세도 정권 때의 상황이다. 이씨는 왕실을 민씨는 외척 세력을 뜻하며, 이는 당시 민비의 외척들이 득세한 세도 정치에 대한 비판과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제2연은 신식 군대가 설치된 때이다. 실전 훈련보다 의식 훈련만 하고 있는 유명무실한 신식군대를 풍자한 표현이다.
제3연은 서울에 전차가 개설된 때를,제4, 5연은 식민지가 된 뒤 살의 터전을 일제에 의해 상실하게 된 때를 반영하고 있다. 기름진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리걸식하는 민족의 황폐한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구비문학적 성격을 띠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 민요이다. 구한말에서 일제하에 이르는 우리 민족사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민족 개개인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건들을 시대 순으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곧 이 민요는 민족적 수난으로 인한 삶의 파괴와 민중들이 느꼈던 체험과 예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중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표현을 쓰고 있어 더 절실하다. 민족 전체의 지향과 정반대로 나아가는 민족현실에 대한 비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체험했던 실제적인 사건이기에 더욱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34) 징금이 타령.
35) 두꺼비요, 경주 지방.
36) 서울 지방.
37) 아라랑 타령.
9) 우의성의 해학
인물이나 동물 등 사물의 외모나 성질을 빗대어 말하거나 사람의 유별난 버릇을 대상으로 해서 이를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비판하는 놀이에서 불려지는 노래이다. 이는 원시적?우직성?유치성?단순성에서 발단한다. 이러한 민요는 대개 동요의 형식으로 읊고 있다. 이는 자연에 대한 소박한 감정과 일체감에서 온 것이다.
식물과 동물은 일종의 매개물로서 나타내고자하는 간접적 수단으로 은폐하여 듣는 사람에게 전행하는 수단이라 하겠다.
자래야 자래야
어느놈이 양반앞에서
방귀통통 뀌였노38)
송구털털
서울양반 벼슬못해 털털
시골양반 농사못해 털털39)
38) 자라요, 안동 지방.
39) 송구를 베기며, 서울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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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풍자와 해학
이 동 근 ?황 형 식
대구대학교출판부, 2004
제1장 서 론
제2장 풍자문학과 해학문학
제3장 고전문학의 풍자와 해학 / 25
3.1. 삼국시대의 문학 ······················································25
3.1.1. 설화 ··············································································································· 25
3.1.2. 한문학 ··········································································································· 26
3.2. 고려시대의 문학 ······················································44
3.2.1. 고려가요 ······································································································· 44
3.2.2. 시조 ··············································································································· 52
3.2.3. 한시 ··············································································································· 55
3.2.4. 가전체 ··········································································································· 63
3.3. 조선시대의 문학······················································47
3.3.1. 설화 ··············································································································· 74
3.3.2. 민요와 해학 ································································································· 83
3.3.3. 판소리 ········································································································ 105
3.3.4. 시조 ············································································································ 114
3.3.5. 가사 ············································································································ 138
3.3.6. 한시 ············································································································ 152
3.3.7. 고전소설과 풍자 ······················································································ 168
3.3.8. 민속극과 풍자 ·························································································· 192
제4장 현대문학의 풍자와 해학 / 201
제5장 풍자문학?해학문학의 특질과 의의 / 247
전체 중 적색부분만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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