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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촌중학교21회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춘근
Romania's Traditional Clothing Makers Call For Action After UNESCO Listing 루마니아의 전통의상 제작자들은 유네스코 등재 이후 보호조치 요청 Romania's Traditional Clothing Makers Call For Action After UNESCO Listing January 24, 2023 14:02 GMT By Amos Chapple Photo: Amos Chapple (RFE/RL)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전통 블라우스인 이야(ia)의 생산자들은 최근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추가된 것이 아시아에서 밀려드는 값싼 유사품으로부터 산업을 보호하라는 요구를 강화하기를 희망한다. Producers of Romania and Moldova's traditional blouse, the ia, hope its recent addition to UNESCO's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will boost calls to protect the industry from cheap copies flooding in from Asia. 부쿠레슈티 - "루마니아인이 된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요?" BUCHAREST -- "What does being Romanian actually look like?" 이것은 1990년대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이민 온 많은 루마니아인들이 직면한 질문이었다. 매우 인기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라 블루스 후메인(루마니아 블라우스)의 창립자 안드레아 타나세스쿠는 90년대 내내 "루마니아 디아스포라는 루마니아 문화의 물질적 예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 추상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공산정권 하에서 수십 년 동안 그 의미와 중요성이 잠잠했던 루마니아 블라우스 "이야(ia)"가 재발견됐다. 안드레아 타나세스쿠는 "갑자기 우리는 실제로 대대로, 어머니에서 딸로 전해지는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This was the question faced by many Romanians who emigrated to start new lives amid the economic turmoil of the 1990s. Andreea Tanasescu, the founder of the massively popular online community La Blouse Roumaine, explained that throughout the '90s, the "Romanian diaspora didn't have a material example of Romanian culture. Everything was too abstract." Then the Romanian blouse, the "ia," whose meaning and importance had lain dormant for decades under communist rule, was rediscovered. "Suddenly, we realized that actually we had something very important that was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from mother to daughter and so on," Tanasescu said. Amos Chapple 아모스 채플 아모스 채플은 뉴질랜드 태생의 사진작가이자 사진 연구자로 구소련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Amos Chapple is a New Zealand-born photographer and picture researcher with a particular interest in the former U.S.S.R. # ChappleA@rferl.org Romania's Queen Marie wears an ia blouse. 루마니아의 마리 왕비(1875년 10월 29일~1938년 7월 18일, 영국 보턴 리스 출생)가 이야(ia)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Ia are loose cotton blouses distinctive for their embroidered sleeves. Most ia feature a block of decoration on the shoulder, followed by a contrasting horizontal stripe, then decorative "rivers" that run down to the wrist. The embroidered patterns each have a specific symbolic meaning, and different regions of Romania and Moldova have their own patterns. Colorful ia are traditionally worn by girls and unmarried young women to highlight their beauty, while wives wear subdued colors and patterns that emphasize dedication to the family. Since 2013, the blouse has been celebrated each June 24 by diasporas around the world marking the clothing item's own day. In December 2022, UNESCO added the Romanian and Moldovan "traditional blouse with embroidery on the shoulder" to its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이야(Ia)는 자수 소매가 특징인 헐렁한 면 블라우스이다. 대부분의 이야(ia)는 어깨에 장식 블록이 있고 그 뒤에 대조되는 가로 줄무늬가 있으며 손목까지 이어지는 장식용 "리버스(강하; 降下)"가 있다. 자수 패턴은 각각 특정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다른 지역에는 고유한 패턴이 있다. 다채로운 이야(Ia)는 전통적으로 소녀와 미혼의 젊은 여성이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입는 반면 아내는 가족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차분한 색상과 패턴을 입었다. 2013년부터 매년 6월 24일 전 세계 디아스포라들이 이 블라우스를 기념하여 의류 아이템(품목)의 날을 기념했다. 2022년 12월 유네스코는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어깨에 자수가 있는 전통 블라우스"를 추가했다. ♣ 마리 알렉산드라 빅토리아(Marie Alexandra Victoria, 1875년 10월 29일 ~ 1938년 7월 18일)는 루마니아의 국왕 페르디난트 1세의 마지막 왕비이다. 마리는 영국 왕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에든버러 공작 앨프리드와 러시아의 대공녀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였다. 마리의 어린 시절은 켄트, 몰타, 코부르크에서 보냈다. 그녀의 사촌인 미래의 조지 5세의 제안을 거절한 후, 그녀는 1892년 카롤 1세의 후계자인 루마니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의 미래의 아내로 선택되었다. 마리는 1893년과 1914년 사이에 왕세자비였고, 즉시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마리는 페르디난트에게 삼국 협상과 동맹을 맺고 독일에 선전포고를 할 것을 촉구했다. 전쟁 초기에 부쿠레슈티는 동맹국에 점령당했고 마리 페르디난드와 그들의 다섯 자녀는 서몰다비아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녀와 그녀의 세 딸은 콜레라로 인해 부상을 입거나 고통받는 군인들을 돌보며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1918년 12월 1일, 트란실바니아의 역사적 지역인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가 옛 왕국과 통합되었다. 마리에는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여 루마니아를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운동을 벌였다. 1922년 페르디난드 1세와 함께 고대 도시 알바 율리아에 있는 특별한 성당에서 왕관을 썼다. 여왕으로서 마리는 루마니아와 해외 모두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1926년, 그녀와 그녀의 두 자녀는 미국으로 외교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루마니아로 돌아가기 전에 여러 도시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마리는 페르디난드가 중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몇 달 후에 죽었다. 현재 왕비가 된 마리는 그녀의 손자 미카엘 왕의 소수 하에 나라를 통치하는 섭정 의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1930년 마리의 장남 카롤이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왕위를 찬탈하여 카롤 2세가 되었다. 그는 마리를 정계에서 몰아내고 그녀의 인기를 꺾으려고 애썼다. 그 결과 마리는 부쿠레슈티를 떠나 시골이나 흑해 연안의 도브루자에 있는 여름 별장인 발치크 궁전에서 여생을 보냈다. 1937년, 그녀는 간경화로 병에 걸렸고 다음 해에 사망했다. 루마니아가 인민 공화국으로 이행한 후, 군주제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비난을 받았다. 왕실의 몇몇 전기들은 마리를 술주정뱅이 또는 문란한 여성으로 묘사했는데, 그녀의 많은 혐의된 사건들과 전쟁 전과 전쟁 중에 그녀가 조직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직들을 언급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전에 마리의 인기는 회복되었고 그녀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의 모델로 제공되었다. 마리는 주로 간호사로서의 일로 기억되지만,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자서전을 포함한 광범위한 저술로도 알려져 있다. Anda Manescu works in her store in Breaza, north of Bucharest. 안다 마네스쿠는 부쿠레슈티 북쪽 문테니아주 프라호바군 브레자 마을에 있는 매장에서 일한다. But despite -- or perhaps because of -- the slow cultural awakening the blouse has sparked, some Romanian producers of the clothing are now fighting to stay afloat. Anda Manescu quit her office job in Bucharest eight years ago to found her own business, making ia in her hometown of Breaza. She said that on top of the global economic downturn, "now we have Chinese replicas coming into the country that are very cheap, and we don't have laws to protect [Romanian ia manufacturers]." 그러나 블라우스가 촉발한 느린 문화적 각성에도 불구하고, 또는 아마도 그 때문에 루마니아의 일부 의류 생산자들은 이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다. 안다 마네스쿠는 8년 전 부쿠레슈티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인 문테니아주 프라호바군 브레자 마을에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세계 경제 침체에 더해 "이제 우리는 매우 저렴한 중국산 유사품을 국내로 들여오고 있으며 [루마니아 이야(ia) 제조업체]를 보호할 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Ia-style blouses for sale in the Red Dragon shopping center in Bucharest. 부쿠레슈티의 레드 드래곤(赤龍) 쇼핑센터에서 판매되는 이야(Ia) 스타일 블라우스. In the corridors of Red Dragon, a Bucharest shopping center notorious for tax-evasion scandals, some shops sell ia designs made in India and China that Manescu says were copied directly from her and other Romanian makers that sell for some 100 lei ($22). A high-quality handcrafted blouse made in Romania sells for around 500 lei. Some Indian-made blouses that RFE/RL saw in Red Dragon featured English-language labels claiming that the blouses are "unique individually crafted work[s] of of art." 탈세(脫稅) 스캔들로 악명 높은 부쿠레슈티 레드 드래곤(赤龍) 쇼핑센터의 복도에서 일부 매장에서는 마네스쿠가 자신과 다른 루마니아 제조업체에서 직접 복제한 인도와 중국산 디자인을 약 100레이(22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루마니아에서 만든 고품질 수공예 블라우스는 약 500레이에 판매된다. 자유유럽방송(RFE/RL)이 레드 드래곤(赤龍)에서 본 일부 인도산 블라우스에는 블라우스가 "개별적으로 제작된 독특한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영어 레이블(상표)이 있다. Workers produce ia blouses in Manescu's Breaza business. 직원들이 루마니아 문테니아주 프라호바군 브레자 마을 마네스쿠의 브레자 사업장에서 이야(ia) 블라우스를 생산한다.
마네스쿠는 진정한 수제 루마니아산 이야(ia)와 외국산 유사품을 구별할 수 있는 라벨링의 어떤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 "나는 정부에 한 가지 제안을 했지만 그들이 내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그 사업가는 자유유럽방송(RFE/RL)에 말했다. 유사품을 공급하기 어렵게 만드는 진품 인증서는 유네스코 목록에 있는 전통 품목의 다른 유럽 제작자에 의해 구현되었다. A worker embroiders a flower in Manescu's workshop. 마네스쿠의 작업장에서 작업자가 꽃 자수를 놓는다. Andreea Tanasescu calls the UNESCO listing "a worldwide recognition that is very much appreciated by Romanians" and agrees that market protections will help keep the industry inside Romania. But she believes the tradition as a whole will only stay alive if it can enter popular culture and be widely embraced by young Romanian women. "Traditions cannot be crystallized," she said. "Culture has to be alive, not a piece in a museum." That will be the challenge for us, Tanasescu said, "and it's a challenge for every inscription on the UNESCO list. It's not easy for anyone." 안드레아 타나세스쿠는 유네스코 등재를 "루마니아인들이 매우 높이 평가하는 세계적인 인정"이라고 부르며 시장 보호가 산업을 루마니아 내에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이 대중문화에 진입하고 루마니아의 젊은 여성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만 전통이 살아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전통은 결정화될 수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문화는 살아 있어야지, 박물관에 있는 조각이 아니다." 타나세스쿠는 "유네스코 목록의 모든 등재물에 대한 도전이다.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블라우스 "이야(ia)" - 패션 아이콘 디자이너 #GIVECREDIT The Romanian IA – The Fashion Icon Designers #GIVECREDIT 오늘날 우리가 루마니아 이야(IA) 또는 "라 블루스 후맨(루마니아 블라우스)"으로 알고 있는 것은 루마니아 전통 의상의 가장 대표적인 의상을 나타낸다. 첫 번째 유형의 루마니아 블라우스는 일찍이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된 쿠쿠테니 문화에서 태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What today we know as the Romanian IA or “La Blouse Roumaine” represents the most representative clothing piece of the Romanian traditional ethnic costume. The first type of Romanian blouse is considered to have been born in Cucuteni Culture starting as early as the 6th century BC. The Romanian IA - Yves Saint Laurent 루마니아 블라우스, "이야(ia)" - 이브 생 로랑 Matisse's La Blouse Roumaine was YSL's source of inspiration for one amazing collection. 마티스의 라 블루스 후맨(루마니아 블라우스)은 이브 생 로랑(YSL)의 놀라운 컬렉션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Yves Saint Laurent - runway photos.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 패션쇼 런웨이 사진. Yves Saint Laurent 이브 생 로랑 Phillipe Guilet - Prejudice ... 100% Romanian blouse. 필립 귈레 - 프레저디스... 100% 루마니아 블라우스. 패셔너블한 루마니아 블라우스, "이야(ia)" The fashionable Romanian blouse, the "ia" Phillipe Guilet, Henry Paul (French Ambassador in Bucharest) and the Romanian artisans and the Romanian artisans (project launch event). 필리프 귈레, 헨리 폴(부쿠레슈티 주재 프랑스 대사) 및 루마니아 장인 및 루마니아 장인(프로젝트 런칭 이벤트). 루마니아 블라우스는 루마니아 옷을 입은 양식화된(스타일링) 여성을 묘사한 일련의 그림이다. 전통적으로 "이야(ia)"는 완전히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그것은 시골 여성들에 의해 짜여졌으며 제작에는 많은 시간과 헌신이 필요했다. 흰 천에 꿰매어진 문양과 기호는 지역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반복되는 문양(패턴)은 생명의 진화를 상징하는 나선형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재단과 천의 품질이 모두 그것을 입는 사람의 가족의 부나 명성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재정 상태와 상관없이 나이가 들면서 문양과 장신구를 단순화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며, 농민의 옷은 수수해진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루마니아 블라우스가 패셔너블하다는 것을 알고 캐주얼 스타일 의류에 창의적으로 통합한다. 흥미롭게도 이 트렌드(傾向)는 루마니아 의류에서 진정한 영감의 원천을 찾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에 의해 동화되었다. 그 중에는 이브 생 로랑, 장 폴 고티에, 오스카 드 라 렌타, 톰 포드, 필리프 귈레가 있다. 실제로 귈레(Guilet)의 2012년 패션 컬렉션은 전적으로 루마니아 민속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요즘 당신은 심지어 당신이 좋아하는 즉 주문할 수있는 온라인 매장을 찾을 수 있다. 훌륭한 매장은 다양한 전통 루마니아 민속 블라우스가 있는 민속(民俗)이다. 여기에서 소매가 길거나 짧은 이야(ia)를 찾을 수 있다. 브이넥, 스퀘어넥 또는 라운드넥 블라우스와 다양한 장식품, 모두 부코비나(루마니아 북부) 특유의 것이다. The Romanian blouse is a series of paintings depicting stylized women wearing Romanian clothing. Traditionally, the ie used to be entirely handmade. It was woven by countryside women, its manufacture requiring many hours of work and dedication. The patterns and symbols sewn on the white fabric have different meanings, depending on the geographic region. For instance, a recurrent pattern is the spiral, symbolizing the evolution of life. In some regions both the cut and fabric quality used to be related to the wealth or prestige of the family of the person who wore it. However, regardless of financial status, along with age, there is a general tendency to simplify patterns and ornaments, peasants’ clothes becoming soberer. Nowadays, in an attempt to turn to authentic values, younger women find the Romanian blouse fashionable and integrate it creatively into their casual style clothes. Interestingly, this trend was assimilated by world-famous fashion designers who found a genuine source of inspiration in Romanian clothing, among whom Yves Saint Laurent, Jean Paul Gaultier, Oscar de la Renta, Tom Ford or Philippe Guilet. In fact, Guilet’s 2012 fashion collection was entirely inspired by the Romanian folk wear. Nowadays you can even find online stores where you can order your favorite ie. A great store is Folkage with a variety of traditional Romanian folk blouses. Here you can find ia with long or short sleeves; V-neck, square neck or round neck blouses and a variety of ornaments, all specific to Bucovina (Northern part of Romania). Cucuteni-Trypillia culture 쿠쿠테니-트리필리아 문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는 신석기 시대 쿠쿠테니-트리필리아(Cucuteni-Trypillia) 문화이다. 쿠쿠테니(Cucuteni)라는 이름은 1884년에 처음 관련 발견이 이루어진 루마니아 야시(Iași) 카운티 북부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이 문명의 잔재는 오늘날의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영토에 350,000㎢ 이상 퍼져 있다. 트리필리안은 매우 큰 정착지이다. 우만(Uman) 지역의 탈리안키(Talianki)에 있는 정착지는 약 500ha의 표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이다. 약 2,000개의 건물이 굴착이 아닌 지자기 탐사로 식별되었다. 건물들은 정확한 계획에 따라 12개의 동심원으로 배열되어있다. 인구는 약 20,000 명으로 추산된다. 쿠쿠테니 정착지는 거주 건물 외에도 여러 유형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도구를 만드는 작업장이 많았다. 문화에는 문화를 유명하게 만든 도자기를 만든 도공과 같은 전문 장인이 있었다. 우리는 또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던 경건한 건물과 성소를 가지고 있다. 쿠쿠테니 예술에는 두 가지 주요 구성 요소가 있다. 장식 예술(페인팅된 도자기)과 의인화 및 동물 표현으로 구성된 구상 예술이다. 콘스탄틴 프레오타사(Constantin Preotasa): “쿠쿠테니 예술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두 시기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 사이이고 두 번째는 기원전 4000년에서 3500년 사이이다. 첫 번째 기간은 더 작은 혈관, 줄기가 있는 길쭉한 혈관, 절제, 절개, 홈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2~3가지 색상으로 칠해진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이 "쿠쿠테니 삼색(Cucuteni tricolor)"이라고 부르는 세 가지 색상은 흰색, 적색, 흑색이다. 두 가지 색상은 흰색과 흑색 또는 흰색과 적색의 조합이며 결코 적색과 흑색이 아니다. 초기 페인팅은 구운 후 용기에 주형을 적용한 소위 원시 페인팅이었다. 이것이 대부분 색이 바랜 이유이다. 나중에 더 나은 기술로 인해 굽기 전에 주형이 적용되어 훨씬 더 내구성이 생겼다. 공예품의 품질이 탁월하다.” 콘스탄틴 프레오타사(Constantin Preotasa)는 쿠쿠테니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쿠쿠테니 장인이 가진 세련미 수준에 도달한 인간 공동체는 없다. 쿠쿠테니 사람들의 영적 표현은 숫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콘스탄틴 프레오테아사: “숫자 12, 3, 7, 9, 21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숫자 4와 6도 있다. 유명한 쿠쿠테니 프루무시카 무용(Cucuteni Frumusica Dance)에는 6개의 양식화된 여성 조각상이 서로 마주 보며 의식 춤을 추고 있다. 갈라티 카운티 베레스티(Galati County Beresti)와 같은 다른 표현에는 4개만 있다. 그러나 일부 전통 문화의 관점에서 두 번의 일몰과 두 번의 일출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시점에서 기본 포인트는 4가 아닌 6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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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촌중학교21회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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