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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시험
이 미 나
창밖에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알람시계는 요란히도 울려댄다. 자꾸만 외부에서 울리는 소리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솟구친다. 하지만 3주 후로 예정 되어진 시험의 합격의 여부를 생각하며 안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를 겨우 겨우 극복해 내었다. 기지개를 켜고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올린다. 힘겹게 버튼을 누른다. 어지간한 감각만 있으면 쉽게 취득한다는 운전면허가 내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한 달이나 아버지와 연습을 했지만, 결과는 실격이었던 것이다. 나는 고 3 수험생 같은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늦가을의 싸한 새벽공기만큼이나 불안감은 싸늘하게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붙잡고 열심히 매진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겠지 스스로 나를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래도 이만큼이 어디야,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가 일쑤였던 내가 그래도 출발선에서 목적지까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정말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참 답답했을 것이리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로를 나가기 전 학원 안에 주행 코스를 한 바퀴를 도는 데도 툭하면 블록에 충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이만큼의 성장 또한 놀랍지 않은가. 좀 전에 주눅 들었던 몸을 반듯이 폈다. 그 사이 아버지가 지하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운전하여 스르르 내 앞으로 멈추신다. “어서 타렴.” 운전석에 앉을 때면 “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매사 철저하신 아버지는 신신당부하신다. 멈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다른 생각을 하다가 액셀을 밟는 어이없는 실수와 유턴을 하는데 조여 놓았던 운전대를 덜 풀어 중앙선을 침범하는 둥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들도 있었다. 그 누가 봐도 혈육이 아니면 운전연습을 지도하지 못하셨을 것 같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최소한 4번 정도는 시간을 내셔서 나를 격려하고 도로 코스 운행을 지도하셨다. 그렇게 저렇게 3주간의 시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긴장한 탓에 대기시간 1시간 반 동안 화장실을 7번이나 갔다 왔다. 태블릿 PC를 가볍게 터치하자 주행해야 할 구간이 화면에 떠오른다. 굳은 표정의 검정관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상기되어 있는 내 얼굴을 뒤따라간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차 창밖을 응시한다. 나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준비됐습니까?”, “예” 흰 눈 속에서 차체가 서서히 힘을 내고 있었다. 학원 주행장을 지나 직진로로 진입하자 눈보라가 점차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여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냉정할 것만 같았던 검정관이 굳어진 내 손을 잡아주며 “미나씨, 아버지랑 지금 연습한다고 생각하세요. 편하게 생각하세요.” 하고 말을 건넨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검정용 승용차는 앞으로 나갔다. 검정관이 시험 보기 전에 이미 주지시켜주었던 사항을 지키느라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긴장이 된다. 중앙선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회전 도로에 진입할 때는 회전차량이 우선이라는 것, 유턴할 때 백색 점선 부분에서 넘어가야 한다는 것 등 세세한 부분들을 지나치면 그간을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중압감이 차를 몰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떨어지면 나를 가르쳐 준 아버지한테 죄송해서 어쩌지 하는 생각과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 자괴감은 어찌할까. ‘그렇게 어려운 과정들을 터널처럼 지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떨어질 순 없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까지 걱정되었다.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온통 눈으로 흩뿌리고 있다. 감정의 파도가 내면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한없이 초조해지는 내가 안쓰러운지 또다시 검정관이 손을 나의 손에 살짝 얹는다. “미나씨, 아버지랑 옆에서 운전연습 한다고 생각해요.” 하자. 따뜻한 체온이 스며든다. 그러자 새하얀 눈이 와이퍼에 어느 새 힘없이 쓸려 나가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파란 불이다. 기어를 변경하고 또다시 나간다. 경주하듯 앞으로 직전 하는 차들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차선 변경 하십시오.” 하는 구령에 맞춰 좌우를 살핀 후 조심스레 좌측으로 차선을 변경하고 좌측 깜 밖 이를 꺼버린다. 가장 어려운 유턴 지점에서 황색 실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 것에 신중을 기하며 운전대를 조였다 푼다. 안정적으로 차선에 진입하였다. 이제는 어려운 과정은 다 마친 셈이다. 나머지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창밖은 온통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직진코스만 잘 타면 되는구나!’ 속으로 계속 기도를 하며 운전대를 돌렸다. 신호를 위반하지 않으려고 조심했고 반복되는 안전 확인과 차선변경에 속도 조절에 신경 쓰며 학원에 진입하자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하고 전광판에 메시지가 나왔다. 참으로 뿌듯한 순간이었다. 혈육의 정이 아니었으면 들어 주기 어려웠을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신 아버지에게 어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또한, 형편없는 실력이어서 답답해한 강사님과 가뜩이나 긴장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검정관 선생님께도 감사했다. 아무리 기쁘다지만 뒤 순서의 시험 검정을 위해 동승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솟구쳐 올라오는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잠깐은 뒤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그런 투정도 긴장하고 있는 다음 순번에게는 큰 허영이겠지. 검정관이 “어서 타십시오.” 하는 말에 얼른 차에 올라탔다. 또다시 다른 목적지로 차는 새하얀 눈이 희뿌옇게 수놓은 도로를 내달음 쳐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 순번도 함께 합격의 소식을 듣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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