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_신원경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_신원경    축소 모형 외 4편    신원경     스위치를 눌러 당신이 살던 지형에 불을 붙인다 모형은 마을의 연대기를 끌어안고 있다 첫 번째 버튼을 누르면 기원전의 세계가 켜진다 마지막 버튼을 누르면 우리가 오랫동안 사랑한 얼굴들이 잠든 땅이 밝아지고 모형 해는 전구가 나가버려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인간의 세포를 떼어 증식해둔 모형들이 움직여 같은 지점에서 누군가는 귀가 중 칼에 찔려 죽고 누군가는 전쟁을 겪고 누군가는 시위를 일으켰다는 게 악법을 만들고 악법을 파기하고 오래 생각했지만 여기서 헤어지는 게 맞아 그렇다고 너와 보냈던 시간과 사랑이 사라지는 건 아닐 거야 많이 배우고 웃었어 믿는다는 게폭설이 오래도록 내려 기록적인 땅이 되었다가그 기록을 부수는 비가 쏟아지고 잠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미친 여자와나체로 생활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버튼을 눌러 확인해봐네가 살아갔던 마을의 지형도를나의 마을은 어느 날에는 식민지였으며어느 날에는 잘 다듬어진 공원이 된다 당신은 박물관에서모형과 연결된 스위치 여러 개를 한꺼번에 누른다지나가는 두 연구원은 유적지에서 발견된 물건을 복원 중이다 아직 용도를 몰라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는 그건문을 열게 하는 손잡이 같다가도날카로운 나이프 같아서스스로를 찌를 수 있게 하지자신의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락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그 도구를 어떻게든 이해하겠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모형의 중간에는비석 하나가 놓여 있다 해가 뜨지 않던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과 개들의 이름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내핵 속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얼굴 하나 둘 셋…… 홀로그램 모형 안떠도는 영혼 하나       예정 밖 외출     침묵을 사이에 두고 영상이 흐릅니다 경상북도의 어느 가옥에서 온 가족이 휴일 아닌 날 모여 잠든 나의 인중에 손가락을 대어보고 있습니다 나는 곧 숨을 멈추고 더 이상 누군가의 누군가로서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어지고 내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가족들은 모릅니다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낸 슬픔에 집중하고 있을 뿐 물레 위에서 돌아가는 흙에 손을 대면 모양이 어그러지고 부서지는 것처럼 영혼이 떠난 나를 보며 각자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저 늙어버린 얼굴이 내 얼굴과 꼭 닮아 있어 어쩌면 저것이 나의 진실한 몸일지라도 몰라 망상과 현실을 잠시 헷갈립니다 고모의 고모의 고모까지혹은 아이의 아이의 아이까지 서로를 혼동하는 영혼이 깃든 몸 장의사가 천으로 내 얼굴을 감춰요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생성되는 나 면허 없이 차를 몰았던 한낮 네가 한번 운전해볼래? 제안과 함께 사라진 삼촌 그는 호수에 뛰어들어 죽은 사람이지만 영혼으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수영 선수로서 건강히 살아 있습니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공 호수와 한 마리의 개를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유령들이 모인 곳 이별은 우리가 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이라던데* 조수석에는 엉뚱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어 있고 그 사람 어쩐지 눈을 뜨면 나를 몰라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듭니다 당신이 영원히 깨지 않게 조용히 몰아야겠습니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가속페달과 눌러본 적 없는 경적이 달린 차를 운전해 원하는 곳으로 가세요 도로는 텅 비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도로의 끝과 끝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뿐이고 이제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다시 침묵을 사이에 두고 *에밀리 디킨슨, 「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 번 닫혔다」(신형철, 「인생의 역사」 2022, P.46 재인용).       공터의 탄생 몸을 맞대고 잠들어 있는 부모는 꿈속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엉겨 있는 나무뿌리처럼 이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정물처럼 지켜본다 끝까지 응시하면 그들을 어딘가로 보내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착각하며 테이블의 위치와 책장의 방향을 바꿔도 아침에 일어나 처음 맞이하는 햇빛의 총량을 조정해도 변치 않는 것은 변치 않는 대로 놓여있다 타버린 프라이팬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처럼 드디어 집의 형태를 사라지게 해보는 거야 십 년 넘게 유지하느라 지처버렸으니까 끝내 성사되지 않을 효력 없는 각서를 몇 번이나 적어 내려가는 동안 천장과 바닥 구분할 수 없는 가벽 네가 앉아 있던 의자 입술 자국이 묻어난 머그잔이 분해되고 창문을 깨고 들어온 돌 아무도 다치지 않은 날 흘러간다 그자체로 노래하듯 사라지는 음표 처럼 부피 없이도 모형이 존재함을 아는 쉼표처럼 비스듬히 쌓여 무엇 하나라도 빼내면 모든 게 무너지는 탑 쌓기 게임 참가자들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 죽어버릴 거라고 믿고 있다 부모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동안에도 원하는 물건을 단번에 찾아 낼 수 있기를 바라고  몇 가지 물건을 홈쳐 영원히 숨겼다 우리가 지금껏 가꿔온 서로의 들판보다도 드넓은 일이 될 수 있어 함께 살아온 공터를 채워 넣을 수 있어 설득하려고 이제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자라날 곳을 고를 수 있다면 아직 아무도 훼손하지 않은 땅 훼손을 기다리는 땅 부모는 각자 탐구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 숨을 뱉으며 서로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기쁜 일이 끝나자 안정감을 느낀다    후숙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왔다 집에 오는 동안 혼자 추웠다 셋이서 만들어낸 철새 한 마리는 여기에서 태어나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겠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포옹하는 순간에는 포옹밖에 모른다 · · ·  정말 좋은 그림자들이었어 잘 모르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긴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동네야 하고 싶은 말을 몸속에 적었어 글자들이 겹쳐 어두워졌어 어둠 속에서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오면 어디서 좋은 냄새가 난다 간장과 후추 카레 냄새가 나는데 다듬는 손을 상상할 수 없었다 가까이 서 있던 빠른 발자국이 좋은 냄새를 가져간다 그네가 흔들리고 시소는 기울어질 때 우리가 마주친 공원에서 무게중심을 잡던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 익지 않은 토마토를 가늠하는 손이 되고 떠나간 그림자들은 떼 지어 지나가는데 자신이 먹은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듯 갑자기 토해낸다 새롭게 지어질 둥지의 일부가 된다 이곳은 안전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는 아무 일도 아닌 사람 포옹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만큼 복수 명사가 어울리는 단어도 없다고 말하면 단일 명사인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자 잘 도착했다고 문 닫히는 소리 아파트 단지에 크게 올린다 어둠 속에서 익어가는 남겨진 포옹이 있다     축 늙은 나무가 정원을 이탈해 돌아다니고 있다 그건 포획되지 않아 한 장의 종이로 다듬이지지 않은 나무 한 그루일 뿐이지만······ 뿌리와 가지로 도심을 흩뜨리는 장면은 초 단위로 기록된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은 가야 하는 곳이 정해져 있다는 듯 빠르게 걷고 방해물을 쫓아낸다 가지가 움직일 때마다 잎은 더 많이 흩날렸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해가 서서히 져가는 풍경 속에서 나무는 어두운 표정이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버스 정자장 의자에 주저앉는다 그의 곁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남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는다 미지근한 물을 주세요 남자는 버스를 타고 떠난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사라진다 나무의 몸통에는 흰 털을 가진 강아지를 찾는다는 전단지가 붙어 있고 아이가 찾는 강아지는 아니지만 센개 한 마리가 시야에서 휙 지나간다 빛나는 애정을 매달고 빛은 사랑하는 대상을 혼동시킨다 아이는 다른 개에게 키웠던 강아지의 이름을 붙이고 남은 생을 책임지게 될지도 모른다 나무의 그림자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어둠은 그의 일부가 된다 그는 스스로가 가장 거대해지는 시간이 밤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 땅에 함께 심어져 있던 팬지와 민들레는 죽어 있고 정원사의 모자가 놓여 있다 그는 자신의 불필요한 잎사귀를 다듬어주던 손길을 기억한다 나무는 자신의 자리에 팬지와 민들레와 정원사의 모자를 묻고 그 속에 함께 들어선다 깊은 잠 이어진다  신원경 1999년 수원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