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하세요, 얼마 전 약 두달간 <새벽 공화국>이라는 RPG를 진행하다가 완결편을 올린 유로파 카페 야매 ORPG 진행자 E.E.샤츠슈나이더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차기작 소재들을 고민하다가, 예전에 진행한 <경성, 쇼와 35년 가을(경쇼년)>의 설정을 뒤집어, 빌런 세력 내에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들의 모험을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이번 RPG에서 각 캐릭터들은 2차대전 이후인 1960년대까지 존속 중인 일본제국의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물론, 빌런 세력답게 일본제국의 상태가 그다지 정상적이지는 않은데, 자세한 건 아래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세계관
1. 일본: 신체제운동과 동아신질서
1940년,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이 주창한 신체제운동은 원내 4당(입헌정우회, 입헌민정당, 사회대중당, 국민동맹)이 모두 자진 해산하고 대정익찬회의 그늘 밑에 들어가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계급협동론과 조합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파시스트지만 통제파 군부마냥 세계최종대전쟁을 위한 고도국방국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보수우익 세력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내대신 기도 고이치와 손잡은 고노에는 히라누마 기이치로 내무대신을 축출한 뒤, 내심 휘하의 극단주의자들을 부담스럽게 여기던 도조 히데키 육군대신과 연합해 스기야마 하지메 육군참모총장, 하타 슌로쿠 지나방면군 사령관, 나가노 오사미 해군 군령부총장 등을 모두 숙청해버렸습니다.
마치 공산당처럼 촌락 단위까지 촘촘한 피라미드식 구조를 구축한 고노에와 대정익찬회는 쇼와 천황의 전폭적 지지 하에 일본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일종의 당군인 “국민익위대” 역시 편성되어 중국 전선에 투입되었죠. 다만, 중일전쟁에서 총체적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고노에는 1941년 미국과 치열한 협상 끝에 만주국 및 몽강국의 승인, 그리고 화북에서의 “특별한 권리”를 인정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협상을 “제2의 워싱턴 늑약“이라며 군부 내 강경파가 벌인 쿠데타가 진압되고 난 뒤, ‘태합’ 고노에의 독재권력을 막을 이는 일본에 없었습니다.
화북으로 ’전략적 후퇴‘를 감행한 일본군이 신멸작전을 펼쳐 수백만명이 살해당하고, 쉬저우-화이인-옌청 축선을 절대방위선으로 설정한 일본군의 점령지를 국민혁명군이 끝내 탈환하지 못하자, 장제스는 1944년 휴전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화민국은 만주국과 몽강국 영역을 제외한 중원 전체에 대한 명목상의 주권을 인정받았지만, 화북 전역은 일본의 괴뢰정부인 화북정무위원회가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붉은 군대가 나치 독일을 끝장낸 이후 일본은 비슷하게 파시스트 국가인 프랑스와 함께 인도차이나 연방을 건설하고, 태국 피분송크람 정권 등과 함께 “동아신질서”를 선언했습니다.
1953년 미일우호협력조약 체결, 1957년 핵실험 성공, 1960년 도쿄 올림픽 개최 등 일본제국은 무탈히 번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국을 구성하는 조선인-대만인의 참정권 문제는 애매한 타협으로 끝났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계급협동 조합국가는 몇몇 과두재벌이 영도하여 값싼 식민지 노동력으로 연명하는 체제로 타락했으며, 아나키스트부터 공산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반체제세력이 지하투쟁을 벌이는데다, 중국은 화북에서 죽은 수백만명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습니다. 고노에가 건강 문제로 공개석상에 점점 나오지 않게 되자 겨우 봉합해두었던 군부 통제 역시 느슨해졌고.. 1965년 해군육전대가 벌인 통킹만 사건으로 결국 제국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1. 조선 문제
조선인 참정권 문제, 즉 조선을 내지의 연장으로 볼지 내지와 구별되는 식민지로 볼지에 관한 문제는 오랜 세월 일본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대정익찬회가 처음 출범할 때 조선에서는 유사한 기구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조선인이 “국민협력의 대상”일뿐 “정치적 권리능력은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했습니다. 징용, 학도지원병, 조선지원병 등 제도들을 운영하고 조선인 징병제까지 거론하면서도 내지의 반응이 시원찮자, 박중양, 박춘금, 현영섭 등 가장 열성적인 협력자들마저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황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비판에 나섰습니다.
1944년 말 중국 국민정부와의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조선인 징병제 또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러면서 떠오른 것은 “참정권 운동”이 아닌 “자치운동”, 또는 “연방운동”이었습니다. 이나바 히데조 등 익찬회 좌익과 연대한 기류 이치오(인정식)는 “조선인이 내지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야마토 민족의 형제이자 동포인 제국의 구성원 조선 민족으로서라도 그 위치를 인정하라”고 언성을 높였죠. ’협력자‘들이 이 정도였으니, 내지의 정치가들로서도 무언가 결정을 하긴 해야 했습니다. 만약 조선이 내지의 연장이라면 제국헌법의 완전한 적용과 내지와 동일한 참정권을 부여해야 했고, 조선이 내지와 구분된 식민지라면 식민지 자치를 허용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1953년, 익찬회 총재 고노에와 상의한 이노 히로야 총리대신은 보수파벌 ‘일신회’의 영수 오노 반보쿠, 정우회-민정당의 후신 ‘굉지회’의 영수 요시다 시게루, 최대파벌인 ‘익찬정치동맹’의 영수 기시 노부스케를 만나 귀족원의 ’어르신‘들도 받아들일 만한 절충안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절충안은 보통 이도저도 아닌 타협이기도 했다는 것인데, 일명 ’이노 선언‘에서 조선인은 천황의 대권 하에 있는 존재로서 신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능력을 보유하나, 동시에 권리의 행사 방식은 제한될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총력연맹의 후신인 대정익찬회 조선지회가 약 30여개의 ‘조선의석’ 후보를 단수공천해 조선인들이 찬반투표하게 한다는 방식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물론, 대정익찬회 내에서나마 ‘선택’은 가능한 내지의 선거에 비해 대단히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존재만으로 위협적인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연일 제도의 기만성을 떠들어댔고, ‘불령선인’ 조직들은 제6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된 이관술이 사법살인당하고도 우후죽순처럼 솟아났습니다..
2. 중국: 청천백일 항일감란
국민혁명군은 끝끝내 일본의 절대방위선을 뚫지 못하고 1944년 휴전에 동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당의 입장에서)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이라면, 150만 병력을 화북에 집중투입한 일본군이 홍군 거점을 확실히 밟아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946년 장제스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 국민정부 주석직에 오른 쑨커는 공산당, 농공민주당, 민주동맹 등을 국민정치협상회의(정협)라는 이름으로 끌어모아 그것을 “항일헌정”이라 불렀습니다.
5년마다 소집되는 국민대회에서 간선되는 중화민국 총통은 오권분립 원칙에 따라 중국을 통치합니다. 쑨커의 뒤를 이은 웡원하오, 탕성즈는 일제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 한편, 미국이 대소련 방벽 구성을 위해 일본과 손을 잡자 소련과의 친선을 강화해 산업화의 불씨를 다시 당겼습니다. 제4차 5개년 계획이 진행중인 1965년, 중국은 일본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습니다.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에 크게 뒤쳐지지만, 중국 국민당은 버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민주동맹(월맹) 역시 국민당의 충실한 우방으로서 부도덕한 제국을 수렁에 빠뜨리는 데 일조합니다.
..또한 얼마 전, 타클라마칸 사막 어딘가에서 솟아오른 버섯구름은 중국이 이제 ‘독자적 억지력을 갖춘’ 강대국이라는 점을 증명합니다..
3. 소련: 유럽해방전쟁, 또는 반파시즘 성전
붉은 군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스탈린과 부하린의 소위 “우익 반대파”를 와해시키고 집권한 레프 트로츠키는 1925년 신경제정책의 즉각 중단을 선언하고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원시적 자본축적론”에 입각한 중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소위 ‘5원수(투하쳅스키, 우보레비치, 야키르, 가이에르, 프리마코프)‘로 대표되는 붉은 군대의 양적, 질적 팽창 역시 이루어졌죠. 문제는 당의 의사결정에 붉은 군대가 미치는 영향이 나날이 커져갔다는 점, 그리고 농민을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착취하면서도 농민의 저항에는 상당히 미온적인 대처를 보여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더구나, “국제 부르주아지 패권에 대항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나치 정권의 각종 팽창주의적 행보를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스페인 내전 등 온갖 곳에 세력을 투사하면서 서방과의 연계 기회를 날려버린 것 또한 문제였습니다. 트로츠키가 “한심한 광대”로 여겼던 히틀러가 정말로 프랑스를 6주만에 굴복시키고 서유럽을 제패하며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침공해 오자,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은 스테판 반데라의 조직에 빠르게 투항하며 트로츠키가 공들여 키운 붉은 군대를 패퇴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물론, 반전의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볼가 강 연안의 주요도시인 옥챠브르스크(Октябрск)에서 파울루스의 제6군을 섬멸한 붉은 군대는 표트르 가이에르 원수의 지휘 아래 “토성 작전”으로 로스토프를 거머쥐어 남부집단군을 궤멸시켰습니다. 이후 피로 피를 씻는 살육전이 벌어졌고, 1943년 말 율리시스 호 사건으로 미국이 참전했을 때 붉은 군대는 이미 르부프를 수복한 뒤였습니다. 히틀러가 권총자살하고 폰 프렌츨라우의 국방군이 나치당 수뇌부를 체포하고 대소항쟁 지속을 선언하는 촌극 속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독일은 전선에 원자폭탄을 5개씩 투하하며 진격하는 연합군마저 상대해야 했고, 결국 1946년 7월 양측 군대가 비스바덴에서 조우하며 유럽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반파시즘 성전의 승리를 보지 못하고 사망한 트로츠키의 후임자 헤오르히 퍄타코우는 즉시 독일자유사회주의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했고, 어차피 독일의 공산화를 막지 못할 거라 생각한 연합국은 소련과 “독일 배상조약”을 체결하고 독일의 자원과 산업기반, 영토를 사정없이 약탈해갔습니다. 브레멘부터 베네치아까지 철의 장막을 세운 소련은 이미 3,000만명의 인명을 갈아넣은 뒤였죠. 퍄타코우가 보즈네센스키에게 인민위원평의회 주석직을 이양하던 1960년, 소련은 명실상부 세계 제2의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파시스트들에게 자비롭지도 않을 것입니다..
4. 미국: 상처입은 제국
1943년 11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독일 유보트에 의해 상선 율리시스 호가 격침당한 사건을 거론하며 기존의 “민주주의의 병기창” 노선을 ”민주주의 십자군“ 정책으로 전환해 대독전 참전을 주장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은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상당수의 보수파들은 히틀러의 나치보다 트로츠키의 국제공산주의자들이 뭐가 나은지 확신을 갖지 못했고, 전쟁중 상선이 격침당하는 일은 그다지 유별난 것도 아니었죠. 이렇듯 범국가적 단결이 아닌 숱한 논란 속에서 결정된 참전은 그간 억눌려 있던 반뉴딜주의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붉은 군대가 중부유럽을 휩쓰는 동안 미군은 용도폐기된 비시 프랑스 정부가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재단결하도록 압박하고, 여기저기서 고전하던 영국군을 도와 남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점령하고, 나치당 수뇌부가 날아가고, 막시밀리안 폰 프렌츨라우와 국방군이 이끄는 슈투트가르트 군사정부가 마지막까지 대서방 강화와 반공전쟁 지속을 위해 애쓰는 상황에서, 루스벨트의 후계자 트루먼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독일 군사정부 ’따위‘와 협력하기보단, 조금이라도 소련의 지분을 줄여놓는 것이 유리했죠. 라인강변의 에센, 뒤셀도르프, 쾰른, 본, 코블렌츠, 마인츠, 만하임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독일 군사정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트루먼은 퍄타코우 주석과의 담판으로 독일의 남은 산업기반과 영토를 약탈하는 데도 성공했으나, 범국가적 공감대 없는 참전의 대가는 컸습니다. 1948년 대선에서 승리한 공화당의 태프트는 “뉴딜은 끝났다”며 일명 “롤백 정책”을 추진했고, 악명높은 태프트-하틀리 법과 매카시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물론 이 반뉴딜주의자들의 극우적 행보에 놀란 대중들이 1952년 대선에서 남부 진보파 민주당의 에스티스 키포버를 선택하며 이 흐름은 한번 끊겼지만, 미국은 점점 강력하지만 거칠고, 거대하지만 상처입은 제국이 되어갔습니다. 키포버 행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일본, 프랑스 등 ‘파시스트’들과 반공연합을 꾸리는 한편 대내적으로 강력한 민권 개혁을 추진했고, 이는 남부주에 평등한 투표권을 강제하는 ’1957년 민권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문제는 키포버의 야심찬 개혁이 남부민주당으로 하여금 ‘반항’을 넘어 아예 공화당에 붙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960년 대선에서 키포버의 정치적 후계자 휴버트 험프리를 꺾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법과 질서의 복원“을 외치며 전미유색인종협회(NAACP)와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등을 국제공산주의의 하수인으로 규정했습니다. 민권법을 도구로 정치적 평등을 강제해야 했던 법무부와 FBI는 정적들을 은밀히 탄압하는 도구가 되었고, 1947년 런던 헌장으로 개편된 국제연맹은 투기장이 되었으며, 모든 주요 국제사안에 대한 논의는 “주요 6개국 회의(Group of 6, G6)”로 옮겨갔습니다.
1965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닉슨은 아직도 자신이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국민을 전쟁터에 보내 종신집권을 획책한 FDR도 있는데, 꼭 대통령을 두 번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목표
정치경제 체제와 그 물리적 규모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일본 국가를 재건하십시오.
Q&A
Q1. 세계관이 현실과 너무 다르지 않나요?
A1. 현실과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드릴 예정입니다.
Q2. 파시스트/트로츠키주의자/나치 해도 되나요?
A2. 주 배경이 되는 일본제국이 사실상 파쇼 제국인 것과 별개로, 여러분의 캐릭터는 국가의 정상화(안정화)를 바라는 입장이므로, 아주 극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ex. 중국인들을 전부 인종청소해버리자던지..) 실제 일제에 극단주의자들이 많았긴 하지만, RP임을 감안하더라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전개나 설정은 직권으로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Q3. 다른 캐릭터 담궈도 되나요?
A3. 전작 <새벽 공화국>과 같은 룰이 적용됩니다. 즉 별도 지침이 없다면 플레이어 간 직접적 물리적 타격은 금지되고, 이외 정치적 공격의 경우에도 UFC..라는 판단이 들 경우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Q4. 조선인 해도 되나요? 독립운동 해도 되나요?
A4. 조선계 캐릭터를 굴리는 데 제한은 없지만, 독립운동 세력과 연관있는 이가 일본제국의 심장부에서 암약한다는 설정을 굴리려면 ‘상당한’ 개연성이 필요할 예정입니다.
Q5. 이외 캐릭터 생성의 제한 요건이 있나요?
A5. 캐릭터의 직접적 재활용(가족이나 친척은 가능)은 안되고, 앞에서 말한 조건들, 그리고 캐릭터가 설정 단계에서부터 너무 강하거나 배경이 거대하면(ex. 고위 화족이라던지..) 훨씬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황족은 안됩니다(…)
이외 질문들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적절히 답변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통장 그렇게 치면 저는 캐릭터 이름 상당수를 만화나 드라마 등장인물 or 현실 연예인에서 가져왔는데요. ㅋㅋㅋㅋ
@차들어 홍차야 오.... 그렇군요
각각 만주국 내 조선인/한족 거주구역 지도인데… 이것보다 조선인 비중이 몇배 많다는 말이죠……
@E.E.샤츠슈나이더 일제의 탄압+한반도보다 비옥한 토양의 영향이라곤 하지만 생각보다 조선인이 남만주에 많이 살았네요? 게다가 시작시점에서 거의 천만이니 남만주 전체에.....
[캐릭터메이킹 관련]
나중에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모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써봅니다. 일단 모든 캐릭터들은 대정익찬회 소속 정치인 또는 중간간부이자, 자칭 입헌진보주의자(…) 귀족 정치인 세이다 히데아키가 모은 멤버로 시작하게 됩니다. 세이다의 가치관이나 이념은 일부러 모호하게 설정했습니다.
즉, 모든 캐릭터들은 최소한 1965년 일본제국의 제도 정치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대놓고’ 표방할 수 있는 노선은 적은 셈인데, 대체로 아래 분류 및 그 아류입니다.
1) (나치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선에서) 파시즘, 국가협동조합주의, 국민생디칼리즘
2) 가부장적 보수주의, 일국 보수주의
3) 경제적 보수주의(시장 자유주의)
4) 사회자유주의, 입헌 진보주의
5) ’비국제적‘, 체제협조적 사회주의, 계급협조적 사회주의
아사누마 이네지로나 아소 히사시의 전전노선(즉 사회제국주의)는 5번에 들어갈까요?
쿠노같은 캐릭터도 5번에 해당되서 가능은 한거군요(?)
구상중인 한간 캐릭터는 1번이겠네요 ㅋㅋ 나스챠 아들은 3번이겠고.
- 아나키스트?
: 한때 아나키즘 활동을 했다는 설정까지는 어찌저찌 잘 짜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나코코포라티즘 기업국가주의라면 그건 또 다른 얘기긴 한데…
- 급진파 군인?
: 대정익찬회는 민간과 군, 산업계를 모두 포괄하는 조직이므로 군인 캐릭터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원역사 40년대처럼 군이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체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원로정치에 군이 종속된 위치라는 건 기억해야 합니다. 즉 생각보다 다이나믹한 플레이를 못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유념해주세요.
- 비-내지계 정치인?
: 조선인/조선계는 가능합니다. 중국인은….. 좀 어렵고요.
- 공화주의자?
: 아나키스트 얘기랑도 이어지지만, 적어도 대놓고 주장하는 건 어렵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공밍아웃하는 건 각을 잘 재셔야겠지만..?
@E.E.샤츠슈나이더 중국인은 어렵다라... 씁.
@렌지파일 같은 계급협조론이라도 좌익 파시즘 계열이라면 1번, 북유럽같은 온건한 계급연합론이라면 5번입니다.
@로콘 쿠노는 1번에 가깝습니다. 사실 1/5번이 생각보다 아주 작은 차이이긴 하지만..
@E.E.샤츠슈나이더 아사누마는 거진 스탈린주의 경제노선이긴 한데(...) 따지면 오히려 1번에 가깝겠네요.
오.... 4번 아니면 3번에 해당하는 캐릭터 후보가 있긴하네요
@dnjdss 호헌(제국헌법) 자유주의자인가요?
@E.E.샤츠슈나이더 하나는 겉으로 '노동자의 점진적인 복지 향상'과 '의회 권리 확대'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말그대로 호헌 자유주의 우파겠군요
일본 해군 전함 상상도(?)
※출처는 Navalart란 게임입니다
덤으로 소련 '함선'입니다(??)
@dnjdss 위그선인가요??
@E.E.샤츠슈나이더 네, 놀랍게도 소련이 실제로 만든 미사일 위그선인 룬급입다 1960년대에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1984년에 흑해함대에 취역한 놈이죠. 장점이 확실하지만 함체가 알루미늄 합금이라 맑고 잔잔할 때에만 사용가능한데다 여러가지 문제때문에 버려진....
+덤으로 서구권에서 무서워하던 카스피해의 괴물이 이 녀석의 프로토타입(에크라노플란) 중에 초대형 버전인 KM였죠.
@dnjdss 오…
@E.E.샤츠슈나이더 덤으로 흔한(?) 소련 항모의 방공 범위입니다(?)
@dnjdss 상파울루 ㅋㅋㅋㅋㄱ
@렌지파일 저게 이외로 만재배수량 3만톤급의 프랑스제(클레망소급 2번함 포슈)인데 초도사양 기준으로 저렇습니다. 근데 문제가 개장 이후에도 대공 무장이 SAM 2기가 전부죠.
+클레망소급의 취역시기가 각각 1961년, 1963년이니 만들어졌다면 프랑스의 현역 항모겠네요.
@dnjdss 상파울루는 저 정도면 태국 나룻배급 아닌가요..
@E.E.샤츠슈나이더 퇴역하기 전까지 탑재기가 아마 A-4나 A-7이니까........
@렌지파일 F-5가 2028년까지 현역인 한국 공군을 보는 것 같군요읍읍…
@E.E.샤츠슈나이더 그래도 프랑스의 클레망소급을 중고로 사서 개량한거라 돈이 없어서(...) 스크랩 처리하기 전까진 나름 정상적으로 굴렸습니다. 태국의 국왕 전용 크루즈선(?)이자 나룻배보다는 나은 함생이죠.
@dnjdss 상파울루 저건 왜 방공이 저렇게 허접이래요?
@차들어 홍차야 원본이 프랑스에서 1963년에 취역하고 2000년에 퇴역한 클레망소급 2번함 포슈급입니다. 브라질에서 중고로 사가고 개장했는데 겨우 SAM 2기를 장착한거죠. 물론 보수 및 개량 계획도 있는거 같았지만 브라질의 경제위기 때문에 2019년에 수장시켰습니다
+자세한 무장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
4. 미국: 상처입은 제국
1943년 11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독일 유보트에 의해 상선 율리시스 호가 격침당한 사건을 거론하며 기존의 “민주주의의 병기창” 노선을 ”민주주의 십자군“ 정책으로 전환해 대독전 참전을 주장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은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상당수의 보수파들은 히틀러의 나치보다 트로츠키의 국제공산주의자들이 뭐가 나은지 확신을 갖지 못했고, 전쟁중 상선이 격침당하는 일은 그다지 유별난 것도 아니었죠. 이렇듯 범국가적 단결이 아닌 숱한 논란 속에서 결정된 참전은 그간 억눌려 있던 반뉴딜주의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붉은 군대가 중부유럽을 휩쓰는 동안 미군은 용도폐기된 비시 프랑스 정부가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재단결하도록 압박하고, 여기저기서 고전하던 영국군을 도와 남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점령하고, 나치당 수뇌부가 날아가고, 막시밀리안 폰 프렌츨라우와 국방군이 이끄는 슈투트가르트 군사정부가 마지막까지 대서방 강화와 반공전쟁 지속을 위해 애쓰는 상황에서, 루스벨트의 후계자 트루먼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독일 군사정부 ’따위‘와 협력하기보단,
조금이라도 소련의 지분을 줄여놓는 것이 유리했죠. 라인강변의 에센, 뒤셀도르프, 쾰른, 본, 코블렌츠, 마인츠, 만하임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독일 군사정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트루먼은 퍄타코우 주석과의 담판으로 독일의 남은 산업기반과 영토를 약탈하는 데도 성공했으나, 범국가적 공감대 없는 참전의 대가는 컸습니다. 1948년 대선에서 승리한 공화당의 태프트는 “뉴딜은 끝났다”며 일명 “롤백 정책”을 추진했고, 악명높은 태프트-하틀리 법과 매카시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물론 이 반뉴딜주의자들의 극우적 행보에 놀란 대중들이 1952년 대선에서 남부 진보파 민주당의 에스티스 키포버를 선택하며 이 흐름은 한번 끊겼지만, 미국은 점점 강력하지만 거칠고, 거대하지만 상처입은 제국이 되어갔습니다. 키포버 행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일본, 프랑스 등 ‘파시스트’들과 반공연합을 꾸리는 한편 대내적으로 강력한 민권 개혁을 추진했고, 이는 남부주에 평등한 투표권을 강제하는 ’1957년 민권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문제는 키포버의 야심찬 개혁이 남부민주당으로 하여금 ‘반항’을 넘어 아예 공화당에 붙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960년 대선에서 키포버의 정치적 후계자
휴버트 험프리를 꺾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법과 질서의 복원“을 외치며 전미유색인종협회(NAACP)와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등을 국제공산주의의 하수인으로 규정했습니다. 민권법을 도구로 정치적 평등을 강제해야 했던 법무부와 FBI는 정적들을 은밀히 탄압하는 도구가 되었고, 1947년 런던 헌장으로 개편된 국제연맹은 투기장이 되었으며, 모든 주요 국제사안에 대한 논의는 “주요 6개국 회의(Group of 6, G6)”로 옮겨갔습니다.
1965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닉슨은 아직도 자신이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국민을 전쟁터에 보내 종신집권을 획책한 FDR도 있는데, 꼭 대통령을 두 번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미국은 2차대전에서 승리했지만 그 이후를 보면 승리해도 승리한게 아니구만.
그런데 독일인들은 라인강변의 도시들을 날려버리고 독일의 영토를 약탈한 영프미와 독일을 사실상 강점하고 있는 소련중에서 누굴 더 싫어하나요?
@로콘 루르 지대에 남아있는 산업기반은 물론 건물 창틀, 놀이터의 철봉, 가로등까지 싹 다 긁어간 연합국도 연합국이지만.. 소련군의 민사작전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이므로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도 현실에서와 달리 소련이 망명한 독일 좌익들을 싸그리 숙청하고 스탈린에게 절대충성하는 극소수 일파만 심어놓지는 않았고, 왕년의 룩셈부르크파, KPD 당권파, 심지어 KAPD까지 멀쩡히 활동하니 좀 낫기야 하겠네요..
@E.E.샤츠슈나이더 잡히면 무조건 사형인 군법을 적용해도 전혀 통제가 안되었다고 하니..
+ 아 근데, 그러면 대략 마인 강 일대/엘베 강 동안의 산업기반도 다 연합국이 가져갔나요?
@E.E.샤츠슈나이더 세상에.... 근데 독일 정권은 KPD 당권파가 가지고있나요?
@렌지파일 소련 5: 영국 2: 프랑스 2: 미국 1 비율로 나눠가졌습니다. 사실상 독일 전체 공업기반의 절반을 (방사능 오염지대를 헤집어가며) 뜯어간 셈이죠..
@E.E.샤츠슈나이더 모겐소 플랜의 일부를 현실화 했군요 ㄷㄷ... 하긴 공산화 될 독일이라면...
@dnjdss 탈하이머, 브란들러 등 부하린주의자들을 “독립사회민주당(USPD)”으로 분당시키고, 극단적 평의회주의자들을 “공산주의노동자당(KAPD)”으로, 헤르만 레멜레를 따르는 구 KPD ‘중도파‘가 SPD를 먹어버렸습니다. 현재 국가주석은 하인츠 노이만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세상에.... 독일 사민당이 좌파당 비스무리한 당으로 바뀌다니.....
대동아공?영권…
햐..여기서 뭘 어떻게 잘라내야할지 감조차 안오네요(?
서 파푸아도 쇼난도(싱가포르)같이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쇼부로 얻은건가요?
프롤로그화 올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