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대박이 났다. 이제 스크린이 필드 인구보다 많다.”
스크린 골프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올겨울은 날씨가 유난히 추운 탓에 삼삼오오 모여서 18홀(9홀)을 함께 도는 스크린 골프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기에서 패한 선수가 게임비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타당 1천~2천 원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간혹 내기 금액이 과도한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건전하다.
2008년 필드 골프를 쳤던 연인원은 2천398만 명으로 스크린 골프 연인원 1천700만 명에 비해 월등히 많았지만, 2010년에는 스크린 골프가 3천600만 명으로 필드 골프 1천900만 명에 비해 배가량 앞섰다. 이제 필드보다 스크린이 대세가 돼 버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방 문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와 놀이문화가 반영된 탓도 크다. 또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은 유행이나 열풍이 불면 다른 나라보다 전파속도가 빨라 전국을 그 문화에 젖게 하는 속도가 광속이라고 분석한다. 스크린 골프의 열기 속으로 들어가 봤다.
◆국민 겨울 스포츠, ‘스크린 골프’
추울수록 더 좋은 겨울 스포츠가 있다. 바로 ‘스골’(스크린 골프의 줄임말)이다. 요즘 회사에는 ‘오늘 스크린 한판?’이라는 유행어가 돌고 있을 정도다. 회사 동료에게 살짝 윙크를 하면서 골프 동작을 보여주며 퇴근 후 스크린 한판을 제안하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다. 골프의 묘미가 스크린 속으로 빠져든 게 분명하다.
공기업이나 대기업, 중소기업 등 어떤 조직이든지 이 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탁구·야구·등산·낚시·마라톤 등의 전통적인 사내 동아리가 스크린 골프 동아리의 무서운 기세에 압도되고 있다. 대구 중구의 한 출판회사는 아예 사장이 총대를 메고, 사내 스크린 골프 동아리 초대회장을 맡아 매월 사비를 털어 우승 상금을 내걸었다. 이런 탓에 여직원까지 싱글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사내 스골 바람이 거세다.
대구도시가스에도 스골 문화가 번지고 있다. 오너가 골프를 치지 않는 탓에 사내 골프문화가 다소 위축돼 있었지만 이젠 스크린 골프 열풍에 힘입어 일부 간부들이 가끔 스크린 골프로 직장 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7월 미소시티 골프 스크린 아카데미를 개업한 이준원(51) 대표는 “대구시내에 위치하다 보니 아무래도 주중 퇴근 이후 직장인들이 많다”며 “특히 올겨울은 날씨가 추워질수록 예약은 더 늘어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포에 부는 스골 바람
경북에서는 포항과 경주 지역에서 스크린 골프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경북도 내 최고의 정규골프장을 보유한 경주시의 경우 30여 곳의 스크린 골프장이 있는데 연일 손님으로 붐비고 있다. 경주 황성동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윤(45) 대표는 “지난해 겨울부터 손님들이 갑자기 늘어났다”며 “필드에 비해 스크린은 비용이 싸고, 날씨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보니 갈수록 대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포항지역에는 열풍이 더 심하다. 포항 지역 스크린 골프장은 92개나 되지만 평일에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할 정도다. 포항 중앙동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하고 있는 윤기태(43) 대표는 “우리나라는 특히 방문화가 발달돼 있는데, 노래방이나 게임방, 찜질방처럼 스크린도 하나의 방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마다 예약 완료, 신나는 업주들
26일 오후 6시 30분 대구 대신동 대신 스크린 골프 연습장. 아시안컵 축구 준결승 한·일전이 열리는 날이었지만 스크린 골프를 치러 온 직장인들로 붐볐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스크린 골프를 칠 수 있는 3개의 방은 이미 오전에 예약 완료된 상태. 8개의 연습타석을 치는 자리도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골프 자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3개의 방에서는 “나이스 샷!” “아이고! 망했다” “2연속 버디, 버디값 주이소” 등 경기내용에 따른 탄성이 연방 터져 나왔다. 4명이 한 조가 돼 서로 살짝살짝 놀려가면서 치는 재미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다. 기자 역시 스골을 즐기는 탓에 이 재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순희(51·여) 대표는 “2009년 11월 스크린 골프를 개업했는데 벌써 회원이 100여 명에다 단골 손님도 많다. 스크린 골프 대회도 2번 개최해 성황을 이뤘다”며 “가끔 술에 취해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하는 진상 손님을 제외하면 항상 즐겁다”고 털어놨다.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한 골프존 파크수성 스크린 골프장(대표 이치화)은 10개의 방이 주말·주중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로 꽉 찬다. 가격이 다른 스크린 골프장보다 다소 높지만 시설과 위치가 좋고, 서비스 품격도 높아 일대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돈 버는 골프존, ‘대박’
골프존은 요즘 갈고리로 돈을 끌고 있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TV를 틀면 스크린 골프 문화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광고가 연일 나오고 있다. 우산을 들고, 진공청소기를 들고, 봉걸레를 들고 골프 치는 자세를 연습하는 장면이 수시로 전파를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과 밖에 있는 사람이 거울을 보듯 똑같은 골프 자세로 연습하는 광고도 있다. 이 정도면 스크린 골프의 광풍이 실감난다. 국내 1위 스크린 골프 시뮬레이션 전문업체인 골프존에 따르면 가을철인 9~11월에 비해 겨울이 시작되는 12월부터 하루 평균 라운드 수가 25%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추울수록 더 북적댄다.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면 5% 이상 손님이 더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동훈 골프존 상무는 “스크린 골프 인구가 50% 이상 늘어났는데, 혹한기 등 날씨가 궂을 때 특히 내장객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스크린 골프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깔린 스크린 골프 시스템은 약 1만5천 대 정도. 전국적으론 매일 한 시스템당 평균 7명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매일 10만 명 이상이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셈이다. 한 달에 4회 이상 이용하는 사람도 120만~1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골프존은 이런 대박 분위기에 편승해 대형 이벤트도 펼치고 있다. 총 1억7천만원의 경품을 나눠주는 ‘라운드 미션 이벤트’로 스크린 골프 인구를 더 늘리고 있는 것. 수십 년 만에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꽁꽁 얼어붙을수록 예약이 더 안 되는 이 청개구리 스크린 골프 문화의 열풍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하여간 스골이 대세는 대세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kkim21@msnet.co.kr
◆'스골족' 이런 푸념도…
스크린 골프 광풍이 불면서 나타나는 부작용들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면 그 전에 있던 문화가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스골 문화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회자되는 여러 가지 불만들을 풀어봤다.
▶골프 자세가 망가져요=필드 골퍼인 이윤상(45) 씨는 스크린 골프를 아예 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몇 번 스크린 골프를 쳤는데 이후 자세가 흐트러져 한동안 필드에서 크게 고생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당수 필드 골퍼들은 스크린 골프를 운동이 아닌 오락(특히 어프로치와 퍼팅) 정도로 여긴다.
▶답답한 방문화다=탁 트인 곳에서 즐기는 골프가 아니라 방 안에서 담배 피우고, 몇 시간씩 채만 휘두르는 것이 과연 운동이 되겠느냐는 얘기다. 필드와 스크린을 둘 다 즐기는 권이수(39) 씨는 “이제 스크린이 서서히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가능하면 필드를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골프존만 돈 번다=골프존이 최근 ‘리얼’(Real)이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면서 업주들의 불만이 많다. 신청을 해도 수도권 중심으로 보급하다 보니 지역에서는 많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 게다가 대부분 좋은 스크린 골프장들이 게임당 인원수대로 인터넷비(1인당 1게임 2천원)를 받는데 이 돈이 사실 업주와 고객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