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30 – 4. 4 갤러리 H (T.02-735-3367, 인사동)
최재석 작가
글 : 최재석 작가 노트
그림의 배경과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오래전 일이다. 초중고 때 미술부에 들고 미대에 들어가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번은 중학교 미술특기생으로 입학하려 했지만 막혔고, 또 한번은 좋은 기회였지만 의지 부족과 경제적 이유로 미대 입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미대가 있는 건축학과에 입학하고 미대 교수한테 실습도 받았다. 졸업후 기업에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유학을 갔다. 요코하마국립대학 대학원 재학중에 ‘컨셉’이라는 말에 매력을 느껴 개념주의(Conceptualism)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쓰면서, 몬드리안과 데스틸(De Stijl)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박사과정에서는 데스틸 운동을 주도한 두스부르흐의 활동과 이념에 대해서 연구했다. 귀국하여 교직에 있으면서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다가, 동경예술대학 예술학부에 객원연구교수로 가게 되었다. ‘색채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갖고 1년동안 자료만 모았다. 한 가지 소득이라면 괴테가 뉴턴의 색채이론을 뒤집으려고 20년이나 색채를 탐구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철학자들이 괴테의 색채론에 깊이 빠져든 것에 또 한번 놀랐다. 특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꼽히는 비트겐슈타인은 ‘색깔들은 나를 철학함에 이르도록 자극한다.’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철학자의 색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펴냈다. 철학서를 10년 가까이 매달렸지만 너무 난해하여 지금 남아 있는게 별로 없다. 이번 첫 전시는 그동안 답습한 몬드리안과 두스부르흐, 그리고 괴테의 이념을 화폭에 담아 실험한 작품들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가 두렵다. 그림에 대한 열정, 생각, 그리고 작품성에 대한 자기반성이 지금까지 전시를 어렵게 하였다. 모던 아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세잔은 오십을 넘어 첫 전시를 했다. 대가인 세잔을 거론하는 것부터 건방지지만 세잔보다 10년이나 늦게 전시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림을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인식과 방향
내 그림이 과연 의미는 있는 것인가? 내 그림이 다른 화가들한테는 어떻게 비춰질까? 이렇게 그려도 되는 것인가? 등, 내가 실험한 색면 그림에 의문을 많이 가져왔다. 이런 내 생각을 극복하고자 휴일이면 거의 매주 갤러리를 방문하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러 다녔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다가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려도 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바로 독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까 하나같이 대가들은 앞서간 대가들의 그림을 탐색하고 조금씩 변형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것에 놀랐다. 피카소도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든가 볼테르는 ‘독창성은 현명한 모방뿐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하는 문구 두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이미 있었던 일이 다시 있고, 이미 행한 일이 다시 행할지니.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도다.’(전도서 9:1)라든가 ‘모든 것은 스스로 반복한다. 모든 것이 스스로 반복할 뿐인데, 사람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놀랍다.’(앤디 워홀)라는 성경 구절이나 대가의 언어에서, 따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에 뉴욕을 처음 방문했다. 오직 그림만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미술관이며 갤러리를 하루에 수 십군데씩 방문했다. 소호나 첼시에 있는 갤러리를 둘러보다가 갤러리 쇼윈도우에 비친 책 표지 그림을 보고 놀랐다. 그동안 괴테 색채론을 읽고 실험한 작업들과 거의 똑같은 이미지가 이 책 안에 있었다. 1900년대 전반기에 활동한 미국 작가 폴 필리(P. Feeley)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고 할 정도로 유사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군아(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라는 성경 구절처럼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 것을 찾기 전에 대가의 그림을 탐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다. (이번 첫 전시에서 괴테 색채론을 실험한 작품들은 뺐다. 다음 기회에 전시할 예정이다.)
그림의 작업 과정
사람마다 자기 취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복잡하고 세세한 구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다. 하지만 화가의 세밀화에 놀랄 따름이다. 얼마 전 달리의 전시회에 갔다가 달리가 작성한 대가의 그림 평가를 보고 놀랐다. 벨라스케스나 베르메르는 만점을 준 것이 비해, 몬드리안 그림은 기법, 구성, 독창성, 신비로움 등의 8개 항목에서 대부분 빵점(0점)을 줬다. 몬드리안 그림이 너무 앞서간 것일까 아니면 너무 가벼워 보인 걸까. 이런 달리의 부정적 평가에 개의치 않고 몬드리안과 두스부르흐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 두스부르흐는 데스틸을 주도하면서 잡지를 창간하고,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이론과 작품을 발표하고, 공유하기를 원했다. 몬드리안과 두스부르흐의 대표 작품을 따라 그리고, 이를 다양하게 변형시켜 색면 실험을 하였다. 공통적으로 색선과 색면이 독립된 조형요소로 존재하면서, 이들 요소가 서로 접하고, 밀어내고, 이으면서 색면과 색면, 색면과 색선, 그리고 색선과 색선이 조화로운 관계가 유지되도록 공간을 비우고, 채우면서 혼재된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켰다. 이런 작업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슈타인이 ‘서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을 조합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능력이다.’라는 얘기에 힘을 냈다. 이런 변형된 실험을 하면서 몬드리안의 직각체계와 두스부르흐의 사선구조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를 구상하고, 조합하면서 흰색 사선을 생각해 냈다. 흰색 자체도 그림에서 물리적인 색채이지만 내 그림에서의 흰색 사선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적 색선으로 공간을 가로지르고, 공간을 이으면서 구성의 변화를 유도하는 인자로 작용한다. 이것을 ‘동시성 구성’이라 했다. 여기서 `동시성`이라는 말은 두스부르흐가 몬드리안의 직각체계 이념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벗어나고자한 이념(counter)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 그림에서의 흰색 사선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적 색선으로
공간을 가로지르고, 공간을 이으면서 구성의 변화를 유도하는 인자로 작용한다.
이것을 ‘동시성 구성’이라 했다.
여기서 `동시성`이라는 말은 두스부르흐가 몬드리안의 직각체계 이념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벗어나고자한 이념(counter)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재석 |
초중고 미술부 활동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요코하마국립대학 대학원 석·박사과정
동경예술대학 예술학부 객원연구교수
한라대학교 교수/엮임
[철학자의 색채사상] (저서), 2019
[더 스테일] (저서), 2008
[네덜란드 근대건축] (저서), 2004
[대한민국 건축대전] (초대작가전), 1999
[대한민국 건축대전] (초대작가전), 2004
[홍익건축50주년기념] (초대작가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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