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9일 금 몹시 무더움 (감옥의 하루)
신용복선생님이 겨울징역보다 여름징역이 더 힘들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겨울에는
옆의 재소자가 온기라도 더해주지만 뜨거운 여름에는 몸뚱이에서 나는 열기로 인해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혐오감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열뿐이 아니다. 땀과 함께 몸 냄새도 난다. 옆에 있는 타인은 불쾌감을 더할 뿐이다. 그래서 이곳 제주교도소로
이감되는 날도 내가 새로 들어가는 방식구들의 찌푸린 얼굴을 보게 될까 봐 마음이 몹시 불편했었다. 그러나
다행이 교도소에 ‘단골 고객’으로 인정 받아 첫날부터 마침
비어 있던 ‘독방’으로 수감되었다. 그 방은 작년에도 내가 지냈던 곳이어서 낯이 익은 곳이다. 내가
붙였다 뗀 시간표나 달력 자리에 아직 채 다 벗겨내지 못한 풀칠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독방은 낮에는
더 덥다. 창은 가림막으로 막혀있고 굳게 닫힌 철문에 가로 세로 한 뼘 정도의 배식구만 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이 작은 배식구로도 솔솔이 바람이 들지만 바람 없는 날은 찜통이 된다. 찜질방처럼 땀이 온 몸으로 타고 내려 온다. 천장에 붙은 선풍기는
천장이 옥상에 맞붙어 있어 뜨거운 열기를 방안에 골고루 불어주기 때문에 틀지 않는다. 땀으로 밴 엉덩이에는
두 번째 종기가 났다. 더우니까 요를 바닥에 깔지 않고 하루 종일 가부좌로 앉아 있어서 생긴 염증이다. 엉덩이의 종기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감옥에서 가장
취약한 곳은 허리인 것 같다. 늘 좌식 생활을 하고 작은 공간에서 행동의 제약을 받으니까 그만큼 허리
운동을 할 기회가 적은 것이다. 나야 그리 긴 세월을 감옥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니까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8년, 10년씩 징역살이를 하시는 분들은 몸이
많이 상할 거다.
감옥에는 야간에 미등을 켜 놓아서 수면에 방해가 된다. 그래선지 잠이
깊이 들지 않고 온갖 꿈들로 설 잠을 잘 때가 많다. 그래서 아침 5시 45분쯤에는 일어나 조용한 시간에 기도를 드리려 하는데 요즘 며칠 늦잠을 잤다.
낮에 드리는 기도는 확실히 집중이 잘 안 된다. 내일부터는 시계를 머리맡에 두고 꼭 일찍
일어나 기도를 드리려고 마음 먹었다. 꿈 속을 달리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면 한 눈에 들어 오는
한 평 감옥의 사각 벽이 내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어쩌면 난 밤마다 자유를
누리는 외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외출이 늘 즐겁고 행복한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사고, 불행한 사건,
끔찍한 장면들이 많이 나타난다. 차라리 나가고 싶지 않은 외출일 경우가 많다. 많은 부분이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경계선에 있는 이상한 상태의 인간들의 군상들이 종종 나타난다. 쫓기는 꿈도 많다. 감옥의 밤은 또 하나의 감옥 같다.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끄고 정숙해야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찬물을 끼얹고
아픈 사람들과 수감자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눕는다. 바닥은 마루 바닥이다. 딱딱하지만 난 개척자들 생활을 하며 늘 현장에서
마루바닥에 누워 자버릇해서 적응이 되어 있다. 이불은 덮지 않고 PT병에
찬 물을 담아 얇은 담요에 둘둘 말아 베개로 사용한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다. 행복한 상상의 외출을 기대하며 억지로 자리에 눕는다. 졸리지도 않고
늦은 시간도 아니다. 결코 잠이 올 것 같지 않은데, 그리도
정신이 멀쩡한데 마치 수면제를 마신 듯 곧바로 잠이 든다. 꼭 수면내시경 검사 하느라고 수면주사를 맞는
것하고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때로는 모기 때문에 잠에서 깨곤 한다. 그러나 모기가 배 부르면 다시 괴롭히지 않으니 다시 눈을 붙일 수 있다. 새벽을
알리는 전령은 새들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언제나 싱그럽다. 새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신(化身)처럼 아침 창가를 찾아 온다. 그리고 새벽의 여명이 밝아온다. 감옥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