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봉(430m)산행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린 다음에도 꽃망울 짓기엔 개운치 않았던지 산 오르던 그때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아담한 바위 산, 차돌처럼 야무진 사람처럼 봉우리마다 기막힌 모습 있어 탄성(歎聲)지르기에 충분했고, 바위틈에 늘어졌던 긴 밧줄은 몇 번씩이나 가슴 조이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노송(老松) 한그루가 바위를 감싸않은 채 그토록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그 모습하나로 감격의 극치였고, 열악한 조건에서도 무한한 생명력의 뜨거운 열정은 우리에게 인생의 교과서 되고도 남음직했다. 바위끝자락 양지바른 한쪽 구석에서 꽃망울 짓기에 여념이 없던 철쭉 무리들은 설익은 봄을 듬뿍 안겨주었고...
대전 S신협에서 발주한 버스 두 대는 예정시간(8:00)보다 늦게 제천 가은산(둥지봉)으로 출발(06/3/18, 8:20)했고, 3시간 쯤 지나 옥순대교 주차장에 도착(10:57)했다. 이미 산 쪽으로 출발한 산행 팀은 버스 몇 대만 남겨두었고, 오후 3:40까지 하산을 완료하라는 회장님 지시를 받은 다음 11:10부터 산행은 시작되었다. 주차장의 옥순봉 쉼터에서 국도(20번)를 가로질러 맞은편의 20여개 나무계단으로 올랐고, 전망대를 오르기 직전의 좌측 등산로 따라 가파른 산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O박사와 함께했고, K선배 교수님은 앞서가시라 말씀드린 다음 알 듯 모를 듯 했던 회원들과 때지어서 산으로 올랐다.
산은 파도 타듯 깊은 골짜기 바닥으로 한참 내려섰다 다시 올라섰고, 다시금 내려섰던 삼거리(11:33)에서 가은산(B코스)과 둥지봉(A코스) 쪽을 택일하게 되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갈림길은 언제나 어려운 인생살이의 명제였다. B코스는 A코스보다 약 1시간가량이 더 소요된다는 회장님의 설명에 따라 O박사와 즉석 상의하여 A코스로 결정했고, 선배님을 비롯한 많은 산행 동료들 역시 이 코스를 함께 걸었다. 능선을 다시 오른 다음 골짜기 바닥으로 내려앉아 조금은 지루했던 산길(11:55) 걸었고, 언덕 빼기 오를 때쯤 지난 1월에 한라산 등산에 동행했던 Y씨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지난 이야기로 산행의 힘겨움을 덜었다.
바위산 산행의 신고이듯 제법 긴 밧줄(12:20)은 우리를 시험했고, 능선자락에서 갈증도 풀 겸 잠시 휴식(12:25)했다. 좌측으로 꺾어 비탈 길 올라서니 산행대장이 어디선가 나타나 둥지봉이 "바로 저기"라며 손가락으로 가르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둥지봉은 예상보다 빨리 도착(12:27)했다. 둥지봉의 정상표지(430m)는 바위 위에 좌대를 놓았고, 오석(烏石)인 듯 한글 체 세로로 음각되어 있었다. 산행 무리에 섞어 O박사와 번갈라 가며 사진 찍어 기념흔적을 남겼고, 송림에 반쯤가린 맞은편 옥순봉(玉旬峯)은 안개 낀 호수(충주호 또는 청풍호) 껴안고 파도처럼 철석거리고 있었다.
새바위는 “우측으로 가라”는 화살표 따라 정상에서 내려섰고, 조금 떨어져 큼직한 2층 바위덩어리(2:40)는 소나무와 키 재기하듯 붙어있었다. 그 바위를 배경으로 K의원과 Y씨가 시진을 찍었고, 밧줄 타고 내려오니 불가사의한 현상(12:46)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바위를 껍질처럼 둘러싼 노송(老松)의 기막힌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지난달 2/16-20까지 Cambodia의 Siem Lip을 여행하는 동안 낡은 탑을 구렁이처럼 휘감고 있던 나무뿌리의 신기한 현장을 목격했어도, 오늘 이 모습은 그것과 전혀 다른 생명체와 무생물의 신비한 조화였다. 자연이 엮어내던 신비의 현상 앞에 나는 잠시 목석(木石) 되고 말았다.
바위에 뿌리내린 기형적인 소나무(12:50)들은 삶의 뜨거운 정열을 남김없이 쏟아내었고, 무한한 생명력의 집념 앞에 나는 자꾸만 왜소해지기만 했다. 작은 괴로움 같은 것이 가슴 안에 꿈틀거리면서, 석양으로 접어든 인생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우묵하면서도 널찍했던 큰 바위는 점심장소로 점찍었지만, 새바위 의견이 있어 그냥 통과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던 절벽(12:54)의 긴 밧줄은 삶의 중심을 챙겨주듯 두발로 내딛게 만들었고, 그 다음의 것은 한술 더 떠서 양쪽으로 깊은 골을 판 바위 둔덕을 한참동안을 내려가게 만들었다. 많은 하산 객들이 줄서 있는 동안 둥지봉 쪽을 올려다보았다.
험준한 바위벽은 소나무 하나 없이 파동 치는 물결처럼 흘려 내렸고, 벼락 맞은 바위와 새바위도 그 어디쯤 끼어있을 법 했다. 멀리 옥순봉과 구담봉은 청풍호수에 끼어있듯 산을 갈라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고,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았다. K대 교수님과 산행대장의 조언에 따라 O박사는 내 스틱을 접어 보관했고, 과거 유격훈련을 연상하며 바위 둔덕에 밀착(1:18)하여 조금씩 내려왔다. 아마도 7,8m 족히 될법한 높이였고, 둔덕에 기대어 잠시 쉬었다가 산행대장 도움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삼거리 지점에서 점심 먹던 일행을 만났지만, 새바위에서 점심 먹을 생각으로 그냥 직진하였다.
문제는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길 중간마다 띄엄띄엄 꽂혀있던 삼천신협 리본이 살아져 새바위는 하늘로 날라 가 버렸다. O박사는 졸지에 5명을 이끄는 안내자 될 수밖에 없었고, 둥지봉 갈 때처럼 가파른 오르내림이 반복되었으며, 가끔씩 붙어있던 리본이 유일한 길잡이였다. 무슨 바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엄청나게 큰 바위 두 쪽(1:26)이 푸른 하늘을 담은 채 날카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고, 바위 끝부분엔 굵은 태를 장식처럼 옆으로 두르고 있었다. 또 골짜기(1:36)를 넘어 둥지봉 우측으로 향했고, 가끔씩 들어나는 호반의 길을 걷다가 낙오자들(?)은 쉬어갈 겸 사진(2:05)을 찍어두기도 했다.
약 20여분동안 큰 능선(2:30)을 넘어서니 큰 등산로가 나타났고, 낙엽 밭에서 휴식하던 선배님(2:30)을 만나 그때서야 점심을 먹었다. 꿀맛일 수밖에 없었다. 무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잃어버린 길을 찾을 때까지는 식욕이 없었고, 우리 믿고 따라오던 일행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 없었다. 뱃속에 밥알이 가득하니 눈알 굴리기가 한결 부드러웠고, 바로 아래 충주호가 송림에 어우러져 그림이었다. 새바위 다녀온 일행인가 우리 곁을 줄줄이 지나갔고, 우리도 재회의 사진한번 찍고 뒤따라(2:54) 나섰다. 몇 발자국 내려서니 전망대(3:00)였고, 물안개 낀 충주호와 옥순대교 바라보며 지나온 산행 길을 반추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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