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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적어야지 하면서 자꾸 잊어버리는
밭일하면서 올라왔던 생각들 먼저 기록합니다.
○ 밭일은 오감을 깨우는 과정
- 향: 고수, 방아, 영생이
하지를 지나며 낮에는 뜨거운 기운으로 밭에 나가질 못하고 저녁에야 간신히 들어가 짧게 일하곤 했답니다. 자주 해가 넘어간 후, 어둠속에서도 하곤했는데 그때 코를 훅 찌르는 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물들이 있었어요.
안자란다던 고수가 그랬고 칠성초밭이나 제 밭 주변을 정리하다보면 방아향이 올라오곤 했었지요. 가지밭 주변엔 영생이가 너무 많아서 이젠 냄새만 맡아도 아~ 저 '일감'하게 되었고요.^^;;;;
밭일을 할수록 밭공부에 입문하게 된 목적 뿐 아니라 밭이나 흙, 자연은 오감을 깨우는 공부라는 것도 알아가고 있습니다.
- 날씨의 변화
날씨나 기후가 만들어 내는 세상만물의 변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일부러 체감해보려 꾸준히 하루에도 몇번씩 길을 걷고, 가로수나 주변의 들풀들을 관찰하곤 했답니다. 도시의 제한된 공간이지만 그것도 꽤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밭에서 직접 작물과 주변을 관찰하고 먹어보는 것은 도시를 걷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날씨와 기후 공부더군요. 무엇보다 내 몸의 느낌과 변화를 통해서 가장 빨리 그리고 많이 날씨와 기후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하지를 전후하여 2주정도는 8시 넘어서도 해가 떠있는 반면 아직 땅은 뜨겁지않아서 가장 오래 일할 수 있던 때였어요. 이 시기를 지나면 땅은 열을 저장하며 더 뜨거워지고 해도 뜨거워 비가 오는 날이 가장 일하기 좋은 날이었고요. 7월 3주를 지나서 4주차에 들어서면서 약간 선듯한 바람이 불곤했는데 이 때는 해가 짧아지더군요. 대신 열기는 점점 식어서 밭에 나가는 시간이 좀 빨라도 견딜만 해졌답니다.
은은가에 있을 때 선생님께서 처서바람이 분다고 하시더군요. 초코볼님도 그 즈음 날은 뜨거운데 가을바람이 불더라고 글에 썼었구요.
도시에서 해가 뜨고지는 것, 날이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 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어서 밭공부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밭공부가 이래저래 감각을 깨우는 노동인 듯 합니다.
- 풀매기, 때, 살아있는 것들.
농사와 때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들었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꾸준히 밭에 나가고 풀을 매면서 이 때를 잘 맞춰서 들일을 할때와 아닐때 노동강도도 달라지고 작물성장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불어 전체 환경도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조금 체감하게 되었답니다.
내 일도 해야하고 밭일도 하고싶어서 타협한 것이 '규칙성'이었어요. 직장인처럼 일주일에 몇번은 규칙적으로 밭에 나가자며 꾸준히 밭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바로 풀이 뒤덮고 이곳하면 저곳이 아우성이고 '완성'이라는 것이 잡힐 듯 잡히지 않더군요.
문득 대응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상대하는 것이 고정적이거나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관념적인 도시인의 습으로 상대를 대하려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솟아오르는 풀을 제압하려면 일주일에 두번이 아니라 더워지기전에 일주일 정도는 매일 나가서 한번에 잡았어야 한다는 것을 '한달을 규칙적으로 보낸 후'에야 알게되었답니다.
그리고 상대하는 것이 생명하려는 의지가 강한 유기적 존재들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되었습니다.
암튼, 밭공부를 하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시선을 얻게되었고 정말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 7월 23일. 금요일: 물주기. 물고구마 밭 풀메기. 선비잡이콩 꽃. 상추꽃
- 용인찰옥수수, 홍천매옥수수, 선비잡이콩
옥수수가 앞서나가다 어느 순간 콩과 옥수수가 겨루는가 싶더니 이제 옥수수는 성장을 멈추고 콩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되었네요.
아무리 몰라도 옥수수가 키가 크다는 것은 알고있는데 너무 안커서 콩에게 패한 것 아니냐 하고 있습니다. 풀도 여러번 잡아주고 북주기도 해주며 마음을 쏟은 곳인데 옥수수 키가 작달막하니 속상하더군요. ㅎㅎ
콩은 이파리도 진한 초록에 키도 크고 잎도 풍성하고 잘자라요. 이 날 살펴보니 다닥다닥 보라색 꽃도 피웠습니다. 꽃피면 순지르기 하면 안된다는 말만 생각나고...
- 윗밭 고구마
고구마 밭은 며칠 사이에 더 풍성해졌습니다. 풀을 자주 잡아준 효과인 것 같아 뿌듯합니다. 7기선배님이 고구마가 잘크면 스스로 풀을 제압한다더니 정말로 풀도 잘 안나요.
- 팥, 흑수박, 조갈상추, 목화
아래 사진에 보면 멀리 플라스틱덮개가 씌인 곳이 직파한 팥, 그 앞에 흑수박, 그 옆에 조갈상추, 맨앞에 곡성목화에요.
이건 팥과 수박밭
팥 안자랍니다.
제 밭에 뚜껑들 씌여본 경험으로는 뚜껑들에 숨구멍을 좀 내줘야 하더군요. 숨구멍 내자 내자 하는데 풀 정리하다보면 시간이 모자라서 계속 미루게 되네요.
흑수박들 잘 자랍니다. 8마리가 되었어요.
조갈상추는 하얀 꽃이 폈어요. 전에 서정희선생님 강의때 상추씨 받는 것이 어려워 흰꽃이 많이 폈을 때 베어놓고 말린다는 이야기가 기억나서 베어야하나 어쩌나하면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ㅎㅎ
곡성목화는 기껏 북주고 풀베주고 살려놨더니 애기 메뚜기인지 여치들인지 달라붙어서 죄다 잎을 저렇게 만들어 버려서 한숨. 쟤들도 먹고살아야하니 먹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요.
- 수세미, 오이
수세미에 뭔가 몽글몽글 한 것이 보이는데 식물들은 저런 모습이 보이면 변화를 보여서 일단 기록. 수세미들은 거의 안죽이고 잘 크고 있고요. 오이는 열매가 달리긴 하는데 모양이 안이쁘네요.
- 물주기
거름을 진작에 뿌려놓았는데 비는 안오고 이날 이상하게 작물들이 물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서 물을 줬답니다. 생각하면 일단 저질러서 물주면서도 물어봤어야되나. 물 잘못줘서 다 타버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좀 들었죠. 그래도 시작했으니 열심히 줬습니다.
물통 가까이 있는 단수수, 목화, 화천재래초, 호박, 가지, 토마토, 수박과 오이터널에 있는 수세미, 호박, 공동작물이 있는 제 밭에 물을 줬답니다.
원래는 안자라는 옥수수와 칠성초때문에 물줘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물이 비어서 다른 작물은 못줬네요.
물을 줘보니, 작물과 땅이 하염없이 물을 빨아먹는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수박 모종 심을 때도 물을 금새 빨아들이는 모습에 신기했고, 이전 동영상에서 변현단선생님이 물줄때는 콸콸 쏟아 부으라며 물을 붓는 모습도 신기했는데 줘보니 이해가 되었답니다.
작물 한그루당 물통두개 쯤 부어야 좀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날 물통들고 왔다갔다 하느라 옷은 다 젖고, 팔은 너무 아파서 몸살이 다 났답니다.
나중에.. ㅋㅋ 재학샘에게 물주느라 물통 물 다 줬다고 이야기하니 땅이 물을 좀 머금고 있어서 굳이 안줘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이 이야기를 은은가에서도 들었답니다. 물 안줄거라고요 ㅋㅋㅋ 왜 꼭 먼저하고 나중에 묻는지. 그래도 직접해 본 것은 좋았습니다.
- 물고구마밭 풀정리 마침.
물이 떨어져서 원래 물 줄 생각이 들게했던 칠성초랑 팥은 물을 더 못주고 해는 넘어가고 있어서 물고구마 풀정리를 해줬답니다. 풀정리하는 동안 해는 완전히 졌어요.
정리하다보니 두둑 가운데 단수수 하나가 서있던데 쟤는 어떻게 저기 와서 크는건지 신기. 지금 든 생각은 누군가 단수수모종을 들고가다 저곳에 흘렸고 그게 자생한건가 싶네요.
- 내 밭: 용인 물오이, 먹골참외, 무등산수박
순지르기를 잘 못하고 너무 잘라서 오이 다 죽였다싶었는데 펄펄 살아서 오이가 너무 많이 달리고 있어요. 공동작물 오이는 제가 다 죽여서 제 밭에 나는 좋은 놈을 채종용으로 주기로 했답니다.
역시 공동작물인 먹골참외는 가지를 더 뻗고 잎도 더 많아졌습니다. 신기해요.
무등산 수박.
사실 오이터널 옆의 공동작물 무등산 수박들은 다 죽었거든요. ㅎㅎ 근데 공동작물 모종 하나 빼돌려 심었던 것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또 잘자라고 있습니다. 얘도 신기해요.ㅎㅎ
○ 7월 29일 : 대박사건들.
은은가에 있을때도 머리 한귀퉁이는 밭생각. 물주고 왔는데 타들어간건 없는지. 물과 거름을 줬으니 힘을 좀 얻었는지 궁금했답니다. 올라와서 하루 쉬고 밭에 가는데 두근거리더군요. ㅎㅎ
- 옥수수. 선비잡이콩
옥수수는 자랄 생각을 않고 선비잡이콩은 더 풍성해졌습니다.
- 단수수
대박사건 1은 단수수였어요. 이날은 밭둘레길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보이는 단수수의 빛깔이 완전히 달라졌더군요. 난 이제 튼튼해졌습니다!!! 하고 외치는 것처럼도 보였지요. 잎색이 짙어지고, 제 키민큼 쑥 큰 놈도 있었어요.
- 화천재래초
단수수 보다 더 놀랍게 달라진 건 화천재래초였어요. 키작고 약해서 안쓰러워하던 화천재래가 아니더군요. 키는 작지만 줄기도 잎도 더 단단해지고 열매들도 튼실한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있었어요.
교장샘이 두둑을 다시 만들어준 후로 크게 달라지는 것이 보여요.
- 박?? 또 덩굴??? 덩굴전문가???
농막에 들어서니 그 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덩굴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은은가에서 영화인님이 '박잎은 연잎같아요.' 라고 하던 것이 기억나서 만져보니 딱 그 감촉이었답니다. 이 놈의 정체는 뭔지 모르나 왠지 살려야 할 것 같았고. 한편으론 또 덩굴이냐?? 싶은 것이 정말 앞으로 덩굴류만 잘 공부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ㅎㅎ
- 오이터널
활짝 핀 수세미꽃을 봤고요. 수세미와 오이가 달린 것도 봤습니다.
- 먹골참외: 진짜 대에박!!!!
먹골참외가 열렸어요. 와우~~
너무 놀라워서 교장샘에게 톡으로 사진을 쏘아대고, 할렐루야를 외치고(전 기독교인 아님)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무려 5개 정도가 맺혀있어서 너무 놀랬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것이 저 중에 몇개는 맛볼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너무 이쁘지 않습니까???!!!
제가 알고보니 조지는 손이 아니라 덩굴의 신이었나봐요 ㅎㅎ
- 용인물오이
터널의 물오이들은 모양이 안좋고요. 제 밭의 물오이들은 모양도 이쁘게 잘 크고 있습니다.
- 목화
목화도 더 커지고 풍성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꽃도 많이 피고요. 그런데 목화는 이 즈음부터 왜 키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ㅎㅎ 목화 열매 다래를 먹으려하나. 솜을 얻으려하나. 솜 얻어서 뭘 할수나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뭘 얻지않아도 노심초사 키우고 자라는 과정을 봤으니 기특하긴해요.
- 호박
덩굴류는 물 많이 줘야한다고 어디서 들어서 곡성 가기전에 물 많이 주고 갔었죠. 그래서인지 이렇게 잎 색이 변해있더군요. 누랬던 것이 더 짙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어요.
한 놈이 환삼덩쿨 쪽으로 뻗어가고 있어서 그냥 두었는데 나중에 열매맺히면 괴로울것 같아서 앞으로 길을 내도록 돌려 주었습니다.
- 상추씨.
지난 주에 흰꽃 핀것을 보고는 베어야하나 했는데 교장샘이 다 베어놨더군요.
- 옥수수 따기
교장샘이 옥수수 익은 것들이 많다고 따가라고 해서 또 왕창 땄습니다. ㅎㅎ 세 개는 채종용으로 걸어뒀답니다.
○ 밭동무
옥수수밭에 있는데 세살 서진이네 가족이 소리도 없이 조용조용 올라오더군요. ㅎㅎ 밭에서 누구 만나면 무지 반가워요. 이날 세 식구가 밭동무가 되어줘서 같이 옥수수도 따고, 제 밭에 호박이랑 오이도 따고, 깻잎이랑 차즈기도 따고~
지렁이든 흙이든 다 좋아하는 서진이가 화천재래초도 따고,
감자 먹어보고 싶다해서 감자 남은 곳도 알려주고~
서진네가 싸온 복숭아도 얻어먹고~
농막에서 콩깍지도 벗기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했답니다.
이 날은 딱히 일은 안하고 서진네와 놀다가 마무리했습니다.
첫댓글 ㅎㅎㅎ 덩굴의 신. 애타게 기다리다 만나는 열매 하나의 반가움이 느껴집니다.
농사를 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시선, 깊이 보지않으면 모르는 것들이지요. 청명님의 시선을 응원합니다~
열매는 못맺을 것 같았는데 주렁주렁 달고있어서 정말 놀랍고 반가웠답니다.ㅎㅎ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