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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의 적벽부 두 편(蘇軾之兩編赤壁賦)
2021.4.25. 여천(與天) 정철중(鄭喆重)
Ⅰ. 전적벽부(前赤壁賦)
출처 : 유기문고 자유적도서관(維基文庫, 自由的圖書館)
■ 배경(背景)
元豐二年(1079年), 蘇軾因「烏臺詩案」, 被宋神宗貶謫到黄州(今湖北黄冈), 於元豐五年(1082年)寫下了這篇作品。作品描寫的是蘇軾與客人泛舟黄州赤壁(又名赤鼻磯, 非赤壁之戰發生地赤壁市), 談論赤壁之战, 進而討論至天地人生的過程。
元豐二年 11月29日, 上諭貶蘇軾為黄州團練副使。元豐五年, 蘇軾先後兩次遊覽了黄州附近的赤壁, 寫下兩篇赤壁赋。《前赤壁赋》寫於作者首次游覽黄州赤壁時。
원풍2년(1079년) 소식은 「오대시안(烏臺詩案)」 에 따라 송나라 신종(神宗)에 의해 황주(현재 호북성 황강)로 유배되었고, 원풍5년(1082년)에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은 소식이 객인과 황주 적벽(또 다른 이름은 적비기인데 적벽대전이 있었던 적벽시가 아니다)에 배를 띄워놓고 적벽대전을 담론하고 천지인생을 논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원풍2년 11월 29일, 황제는 유배조치 겸 소식에게 황주단련부사(黄州團練副使)에 임명하였다. 원풍5년, 소식은 앞뒤 두 차례 황주부근의 적벽을 유람하고 두 편의 적벽부를 썼다. 「전적벽부(前赤壁赋)」 는 먼저 황주적벽 유람 때 쓴 것이다.
* 적벽(赤壁)은 사실 황주의 적비기(赤鼻磯)로서, 삼국시대 적벽대전을 벌였던 옛 터가 아니다. 현지인들이 발음이 비슷하여 적벽이라 부른 것인데 소식도 이 점을 알았을 것이나 바로 잘못된 것이다. 경치를 보고 자기의 회포를 표현한 것이다.
實爲黃州赤鼻磯, 並不是三國時期赤壁之戰的舊址, 當地人因音近亦稱之爲赤壁,蘇軾知道這一點, 將錯就錯, 借景以抒發自己的懷抱
* 폄적(貶謫) : 벼슬의 등급(等級)을 떨어뜨리고 멀리 옮겨 보냄
* 단련부사(團練副使) :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유명무실한 관직. 황강현단련부사(黃岡縣團練副使)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황주거주의 생활이어서 부인은 양잠을 하고, 소식은 병영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이 동쪽 언덕, ‘동파(東坡)’인데 그의 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 오대시안(烏臺詩案)
오대시안은 송 신종 원풍 2년(1079년)에 발생하여 소식의 정치·문학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황주단련부사로 좌천되어 안치되었다. 호주지사(湖州知事)로 있으면서, 왕안석의 신법(新法) 폐해를 목격하고 신종에게 《호주사표(湖州谢表)》를 올렸는데 그 중에 “知其愚不适時 難以追陪新进;察其老不生事 或能牧養小民 : 그 어리석고 부당함을 알면 신진을 따르기는 어렵고, 늙어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살피면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라는 글귀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어사들은 소식의 시구 “양동전조(梁窦專朝)”와 “연박쟁신혼(燕蝠争晨昏 제비와 박쥐가 새벽과 황혼을 다툰다)”을 지적하며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명을 씌워 호주태수로 있던 그를 체포하여 어사대(御史臺)에 근 3개월 동안 감금했다. 아우 소철(蘇鐵)은 이 소식을 듣고 신종에게 진정서를 올렸다. 소식은 소철에게 후사를 부탁하였다. 9월 압송 시 장남 소매(蘇邁)가 뒤따랐다. 어사대는 소식과 시문을 교류한 70여명을 연루시켰다. 호송도중 소매와 약속하기를,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감옥에 물고기를 보내라고 약속하였는데, 친척이 식사 전달 때 불찰하여 소식은 소철에게 죽음으로 결별하는 두 수의 시를 써서 보낸다.
1. 첫 시
聖主如天萬物春 성주는 하늘과 같아 만물의 봄인데
小臣愚暗自亡身 소신은 우매하고 어리석어 스스로 망쳤네
百年未滿先償債 백 년도 채우지 못하고 먼저 빚을 갚으면
十口無歸更累人 열 식구가 돌아갈 곳 없어 다시 죄인이 되겠네
是處青山可埋骨 이 곳 청산이 뼈를 묻을 곳이니
他年夜雨獨傷神 그 해 내리는 밤비가 홀로 귀신을 아프게 하겠네
與君世世為兄弟 임군과 같이 대를 이어 형제가 되어
又結來生未了因 다시 태어나 또 맺으리니 아직 인연은 끝나지 않았네
2. 두 번째 시
柏臺霜氣夜淒淒 백대(어사대)의 서리는 밤에 처량하고
風動琅璫月向低 바람에 흔들리는 관의 장식은 달을 향해 머리 숙이네
夢繞雲山心似鹿 마음은 꿈에 나타난 구름 속 산에 사는 사슴 같은데
魂驚湯火命如雞 명줄은 끓는 물과 뜨거운 불에 혼이 놀란 닭과 같구나
眼中犀角真吾子 눈 속에 코뿔소 뿔이 진정 내 모습인데
身後牛衣愧老妻 나 죽은 후 남루한 옷은 늙은 아내에게 부끄럽네
百歲神遊定何處 백 년 동안 신이 노는 곳을 어디로 정할까
桐鄉知葬浙江西 절강의 서쪽 동향(오동나무 마을)에 묻어주오
이 시는 신종에게도 알려졌다. 태황태후조씨(太皇太后曹氏)와 왕안례(王安禮)가 방면을 주청하고, 재상 왕안석(王安石)도 “세상에 걸출한데 어찌 재사를 죽일 수 있는가?(岂有圣世而杀才士者乎?)” 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이후, 검교상서수부원외랑 황주단련부사 본주안치(貶謫為“檢校尚書水部員外郎黃州團練副使本州安置)”의 조치를 내렸다.
소철은 강서균주의 주감(江西筠州任酒监)으로 좌천되고, 소식과 왕래하던 여증공(如曾鞏), 이청신(李清臣), 장방평(張方平), 황정견(黃庭堅), 번진(范镇), 사마광(司馬光) 등이 처분을 받았다.
* 양두전조(梁窦專朝) : ‘양두’의 비유는 소식이 희녕 6년(1073년) 정월에 지은 《차운답장 부도견증》의 시 구절에 사용한 고전을 말한다. 소식의 해석은 단지 현재의 권신이 정권을 잡고 자신의 성격이 완고하여 마융(馬融)과 반고(班固)보다 못하다는 것을 풍자했을 뿐이다. 그러나 어사들은 이 비아냥이 오늘날 성상불명(聖上不明)이라며 신종황제에게 불손하게 대했다 주장했다.
“梁窦之比”指的是苏轼作于熙宁六年正月的《次韵答章傅道见赠》中诗句的用典。苏轼解释仅仅是讽刺当今权臣当道以及自己性格顽劣不能如马融班固. 但是御史们认为这暗讽当今圣上不明, 对神宗皇帝大不恭
* 연박쟁신혼(燕蝠争晨昏) : 당시 소식의 절친한 친구였던 소순(蘇舜)을 들어, 부사 왕정로(王庭老)를 풍자한 이야기로, 소식은 이 시로 화답하여 소순에게 증정하였다. ‘뽕나무가 회화나무를 꾸짖는다(桑骂槐)’라는 것을 ‘성상이 조정을 외면하고 권신이 간섭하는 것’으로 은유한 것으로 여겼다.
当时苏轼的一位好友苏舜举用来讽刺转运副使王庭老的一则故事, 苏轼当时以之和诗相赠。被认为是指桑骂槐, 暗喻圣上不理朝政, 权臣摄事
* 희령(熙寧) : 북송 신종(神宗) 조욱(赵頊)의 첫 번째 연호로 1068~1077의 10년간 사용
< 소식(蘇軾) : 1037년 ~ 1101년 >
북송(北宋)의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중서사인(中書舍人),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차례 좌천되어 밀주(密州), 서주(徐州), 호주(湖州) 등지의 지방관으로 전전하였고, 황주(黃州), 해남도(海南島) 등으로 유배되었다. 해남도에서 7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사면되어 돌아오던 중 상주(常州)에서 병사하였다. 시문(詩文)뿐 아니라 서화(書畵)에도 뛰어났다.
■ 원문(原文)
壬戌之秋, 七月既望, 蘇子與客泛舟遊於赤壁之下。清風徐來 水波不興 舉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凌萬頃之茫然。浩浩乎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飲酒樂甚 扣舷而歌之。歌曰:「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絕如縷。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蘇子愀然 正襟危坐 而問客曰:「何為其然也?」
客曰:「『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郎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艫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駕一葉之扁舟 擧匏樽以相屬。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
蘇子曰:「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惟江上之清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為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 洗盞更酌。肴核既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既白。
■ 역문(譯文)
중국 「독고시사망(讀古詩詞網)」 참조
임술년(1082년) 가을 칠월 16일, 소식은 객과 함께 적벽 아래에 배를 띄워놓고 놀았다.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데 물결은 일지 않는다. 객과 같이 술을 권하고 마시며 명월에 관한 시를 암송하고 요조 한 구절을 읊조리며 노래하였다. 잠시 후 동쪽 산위로 달이 떠올라 북극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한다. 하얗게 망망한 안개가 강 위를 꿰뚫어 펼쳐지고 차가운 물빛은 하늘에 맞닿아 있다. 작은 배를 이곳에 맡겨 놓으니 끝없이 넓은 강물은 아득하다. 참으로 넓어 바람 부는 대로 두니 어디서 그칠지 모르겠다. 불어라! 세속에 혼자되어 남았으니 날개 달고 신선되어 오르리라!
이 때 술 마시고 기분이 매우 좋아져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기를 “계수나무 노 저어라! 난의 향기로운 상앗대가 밝은 하늘에 부딪치며 달빛이 강물에 흘러간다. 나의 생각도 아득하고 끝이 없어 하늘 저쪽 그 사람을 그리네!”
객중에 퉁소 부는 사람이 있어 노래를 연주하는데 이에 빠져들어 들어보니 그 소리 구슬피 울리는데 한스러운 듯 그리워하듯 울부짖는 듯 애원하는 듯, 소리 이어짐이 하늘하늘하며 끊이지 않는 것이 실타래와 같다. 그윽한 깊은 물속 교룡이 춤추고 고주(孤舟)의 홀어미가 흐느낀다.
소식이 쓸쓸하여 옷깃을 여미고 바로 앉아 객에게 묻기를, “곡조가 어찌 그러하오!”
객이 답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마귀와 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네!」 이 시는 조맹덕의 시가 아니오? 그 말인즉, 서쪽을 바라보니 하구(夏口)요, 동쪽을 바라보니 무창(武昌)인데 산천은 서로 얽혀 이어져 울울창창하오. 이곳이 맹덕이 주유(周瑜)에게 포위되어 곤란을 겪던 곳이 아닙니까? 거기서 형주(荊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을 내려와 장강(長江)을 타고 순조롭게 내려오면 동쪽인데, 전선(戰船)을 엮어 천리에 이르고, 정기는 하늘에 나부끼고, 강가에 술상 차리고, 긴 창 비켜 잡고 부와 시를 읊으니, 마땅히 일세의 영웅이오! (그러한 영웅이) 지금 누가 있겠소!
황차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물고기 잡고, 물고기와 새우를 벗 삼고, 고라니 사슴을 친구 삼아 한 조각배 타고 서로 권하며 술잔이나 들고 있소. 천지에 하루살이처럼 얹혀살고 아득히 넓은 바다의 좁쌀 한 톨이오. 슬픈 내 인생은 잠깐인데 장강의 무궁함이 부럽소. 신선처럼 두루 떠돌며 놀고 명월을 품고 오래토록 살고 싶은데, 얻을 수 없음을 알면서 애닮은 바람에 이름을 남기고 의탁하오.”
소식이 말하기를, “자네는 저 물과 달을 알거요. 가는 것은 물과 같은데 진정 가는 것을 모르겠고, 차고 기우는 것이 저와 같은데 결국에는 사라지지거나 더 커지지도 않소. 대개 만물이 스스로 변하는 것을 보면 일찍이 천지는 한 순간에 불가능하오. 스스로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든 물상(物像)이든 모두가 다함이 없는 것이니 얼마나 부러운 것이요. 또 저 천지간에는 만물은 모두 주인이 있고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한 터럭이라도 가질 수 없소. 강 위에는 맑은 바람 불고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같이 보고 같이 소리를 듣고 있소. 눈으로 이를 보니 물색이 갖추어지고 이를 얻어도 막는 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소. 이것이 조물주가 무진장한 것이니, 나와 자네는 같이 쓸 수 있는 것이오.”
객은 기뻐하며 웃음 짓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기울인다. 안주는 이미 다 떨어지고 잔만 쟁반에 어지러이 흩어졌는데 서로 배에서 베개 삼아 잠들어 있다. 동쪽이 이미 밝아오는지도 모른 채!
세재임술(歲在壬戌):송 신종 원풍5년(宋神宗元豐五年) 1082년
기망(旣望) : 음력(陰曆)으로 매달 16일, 이미 망월(望月:15일)이 지났다는 뜻에서 16일
속(屬) : 통상 ‘촉(囑)’을 말하며 ’권주(勸酒)의 의미이다.
소언(少焉):잠시(一會兒)
백로(白露):하얗고 망망한 물기운(白茫茫的水氣)
횡강(橫江) : 강위에서 물고기 잡는 대 바구니(농조강면 籠罩江面)
명월지시(明月之詩) : 시경(詩經) 진풍(陣風)에 있는 월출편(月出編)
두우(斗牛) : 북두칠성과 견우성
표탕(飄蕩) : ①홍수(洪水)로 재산을 떠내려 보냄 ②정처 없이 흩어져 떠돎. 표박(漂迫)
만경(萬頃) : 지면(地面)이나 수면(水面)이 아주 넓음을 일컫는 말
미인(美人) : 굴원(屈原)의 문체를 빌려온 것이다. 미인은 군주(君主)를 지칭한다. 고시(古詩)에서 옛 사람을 생각하는 자기(自己)
의 소회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유학(幽壑):여기에서는 심연(深淵)을 말한다.
월명성희 오작남비(月明星稀 烏鵲南飛):조조(曹操)의 「단행가(短歌行)」에 있는 시구(詩句)
축로(舳艫):전선(戰船) 앞뒤로 붙어있는 모양
미록(麋鹿) : ①고라니와 사슴 ②촌스러운 행동(行動)의 비유(比喩ㆍ譬喩)
포준(匏樽) : 박으로 만든 술그릇
소장(消長) : 쇠하여 사라짐과 성(盛)하여 자라감
Ⅱ. 후적벽부(後赤壁賦)
출처 : 「독고시사망(讀古詩詞網)」
■ 원문(原文)
是歲十月之望,步自雪堂,將歸於臨皋。二客從予過黃泥之阪。霜露既降,木葉盡脫,人影在地,仰見明月,顧而樂之,行歌相答。已而嘆曰:“有客無酒,有酒無餚,月白風清,如此良夜何!”客曰:“今者薄暮,舉網得魚,巨口細鱗,狀如松江之鱸。顧安所得酒乎?”歸而謀諸婦。婦曰:“我有斗酒,藏之久矣,以待子不時之需。”於是攜酒與魚,復遊於赤壁之下。
江流有聲,斷岸千尺;山高月小,水落石出。曾日月之幾何,而江山不可復識矣。予乃攝衣而上,履巉巖,披蒙茸,踞虎豹,登虯龍,攀棲鶻之危巢,俯馮夷之幽宮。蓋二客不能從焉。劃然長嘯,草木震動,山鳴谷應,風起水涌。予亦悄然而悲,肅然而恐,凜乎其不可留也。
反而登舟,放乎中流,聽其所止而休焉。時夜將半,四顧寂寥。適有孤鶴,橫江東來。翅如車輪,玄裳縞衣,戛然長鳴,掠予舟而西也。
須臾客去,予亦就睡。夢一道士,羽衣蹁躚,過臨皋之下,揖予而言曰:“赤壁之遊樂乎?”問其姓名,俯而不答。“嗚呼!噫嘻!我知之矣。疇昔之夜,飛鳴而過我者,非子也邪?” 道士顧笑,予亦驚寤。開戶視之,不見其處。
■ 역문(譯文)
금년(1082년) 시월 15일 설당(雪堂)을 출발하여 임고정(臨皋亭)으로 돌아가려 한다. 두 명의 객이 나를 따라 함께 황이판(黃泥阪)을 지났다. 이미 이슬과 서리가 내렸고 나뭇잎은 모두 떨어졌다. 땅 위에 사람 그림자가 비쳐 올려보니 밝은 달이 떠있고, 사방을 둘러보며 즐거워하고 서로 시를 읊조리며 길을 간다.
잠시 후 내가 탄식하며 “손님 있는데 술이 없고, 술은 있는데 안주 없네, 달빛은 희고 바람 맑으니 얼마나 좋은 밤인가!” 손님이 이어 받기를, “지금 땅거미 지는데 그물 던져 물고기를 잡네. 큰 입에 가는 비늘 모양은 송강(吳淞江)의 농어로다! 그런데 어디에서 술을 구할까? 돌아와 부인에게 의논하였다. 부인 말이, “한 말의 술이 있는데 보관한지가 오래지요! 당신이 언제 쓸는지 몰라 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고기와 술을 가지고 다시 적벽 아래에 가 놀게 되었다.
강이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절벽은 일천 척이다. 산은 높고 달빛은 어두운데 물이 줄어 바위가 솟아 나왔다. (지난 번 다녀간 후) 며칠이 지났는지 풍경이 많이 달라져있다. 옷깃을 여미고 물가의 가파른 바위에 올라서니 잡초가 우거져 있다. 바위는 범과 표범이 웅크려 앉고, 규룡이 하늘을 오르고, 울창한 숲에 사는 송골매의 아슬아슬한 둥지 형상인데, 물의 신인 하백의 수궁을 내려다본다. 객과 둘이서 같이 있을 수 없다. 휘파람을 길게 부니 초목이 진동하고 산과 계곡에 울리며 메아리치고 바람이 일고 물결이 인다. 나 역시 조용히 있으니 서글퍼지고, 숙연해지니 무서워진다. 늠름한 기상은 어디 있는가!
돌아와 배에 올라 강에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니 어딘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 쉬게 되었다. 시간은 한밤이고 사방은 적막하다. 마침 학이 외로이 있는데 강을 건너 동쪽에서 왔다. 깃은 수레바퀴 같고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소리 길게 울리더니 나의 배를 스치고 서쪽으로 날아간다.
곧 객이 가고 나 역시 바로 잠에 들었다. 꿈속에 한 도사가 깃털 옷을 입고 빙빙 도는데 임고(臨皋)의 아래를 지난다. 나에게 인사하며 말하기를, “적벽에서 노는 것이 즐거운가? 이름을 물었더니 굽어보며 아무 대답이 없다. “오호! 아! 내가 당신을 알겠소!” 어제 밤에 울면서 날아 나를 지나친 분이 아닙니까? 도사가 돌아보며 웃기에, 나 역시 놀라 잠에서 깨었다. 문을 열고 바라보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설당(雪堂):소식이 황주(黃州)에 새로 지은 집이 있는데, 임고(臨皋)의 거처와 멀지 않다. 황주 언덕의 동쪽 면(黃岡東面)에 있
는데 큰 눈이 내렸을 때 조성된 집이라서 마치 사방 벽의 설경이 그림 같았다. 그래서 그 집을 설당(雪堂)이라 불렀
다.
임고(臨皋):정자 이름인데 황강(黃岡) 남쪽의 장강(長江)가에 있다. 소식이 황주에 왔을 때 잠시 정혜원(定惠院)에 있었는데 오
래지 않아 임고정(臨皋亭)으로 옮겼다.
황니지판(黃泥之阪):황강동면(黃岡東面)의 동쪽언덕(東坡) 부근 산언덕을 “황이판(黃泥阪)”이라고 불렀다. 문언에 중간 조정음
절(調整音節)을 쓰기 위해 명사 중간에 “지(之)”자(字)를 쓴다. 구양수(歐陽修)의 《화금당기(晝錦堂記)》:“내작주금
지당어후포(乃作晝錦之堂於後圃 후원의 금당에 그림을 그린다.)”와 같은 예이다.
이이(已而):잠시 지나가다
송강지로(淞江之鱸):송강(松江)은 상해(上海)를 말하는데 농어는 이곳의 명산(名產)이다. 몸은 작고 납작하며 부리는 크고(嘴
大) 비늘은 가늘다(鱗細) 맛이 뛰어나다.
불시지수(不時之須):수시로 생기는 수요. ‘수(須)’는 與“수(需 쓰임)”과 같이 통한다.
규룡(虯龍):나뭇가지의 구부러진 모양이 마치 규룡 같은 수목과 닮아있다. 등규룡(登虯龍)은 수풀 속을 설명하는 것이다.
풍이(馮夷) : 물의 신(水神) 하백(河伯)
시야장반(時夜將半) : 시간은 한밤중 * 시야장반(是夜將半) : 그 날 밤의 한밤중
호의(縞衣) : ①흰 비단(緋緞) 저고리 ②‘학의 흰 깃’을 이르는 말
수유(須臾) : 잠시
주석지야(疇昔之夜):어제 저녁. 이 말은 《예기(禮記)·단궁(檀弓)》 상편(上篇)에 나온다. “予疇昔之夜”. 주(疇)는 어수조사(語首助
詞)로 실제적인 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