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숭배
지난 3백 년은 흔히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점차 중요성을 잃어가며 세속화가 진행된 시기로 묘사된다.
유신론적 종교에 대해서라면 대체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연법칙 종교를 고려한다면 사정이 전혀 다른다.
근대는 강력한 종교적 열정의 시대,
전대미문의 표교 노력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시대였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 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다.
만일 종교를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구범과 가치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
이슬람교는 물론 공산주의와 다르다,
세상을 지배하는 초인적 질서는 전능한 창조주 신의 명령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산주의 신을 믿지 않았다.
불교 역시 신을 가차 없이 다루지만, 그럼에도 보통 종교로 분류된다.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인도해야 할 초인적 질서와 불변의 법칙을 믿었다.
불교도들은 자연법칙이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는 데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자연법칙이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불라디미르 일치치 레닌에 의해 발견되었고 믿었다.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궁극적 승리와 함께 역사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책이다.
공산주의는 나름의 기념일과 축제가 있었는데, 5월1일 노동절과 10월 혁명 기념일이 그런 예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에 능통한 신학자들이 있었으며,
소련 적군의 모든 부대에는 인민위원이라 불리는 지도 신부가 있어서
병사들과 장교들의 신심을 모니터링했다,
순교자와 성전이 있었고, 트로츠키주의와 같은 이단이 있었다.
소련 공산주의는 광적이고 포교에 열심인 종교였다.
독실한 공산주의자는 기독교도나 불교도가 될 수 없었으며,
생명을 바쳐서라도 마르크스와 레닌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런 식의 추론에 마음이 매우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꼭 그래야만 기분이 나아진다면 공산주의를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계속 불러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 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일관성이 있으려면,
적어도 불교, 도교, 스토아철학의 일부 분파는 종교가 아니라 이데롤로기의 목록에 올려야 한다.
그리고 거꾸로 많은 근대 이데올로기속에 신에 대한 믿음이 계속 존재하면
그중 일부, 대표적으로 자유주의는 그런 믿음이 없다면 거의 의미가 없다는 시실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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