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마 부락: 사태 악화
르완다는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부룬디도 그렇지만 르완다는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전인 19세기에 이미 많은 인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
강수량이 적당한데다 높은 위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말라리아나 체체(tsetse)파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르완다는 매년 3퍼센트의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인접국인 케냐나 탄자니아와 같은 이유(신대륙의 작물재배, 공중 보건의 향상, 의약품, 국경 분쟁의해소)에서이다.
1960년대 이래의 부족 간 살상과 망명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무렵의 르완다 인구밀도는 1평방마일 당 760명 꼴이었다.
영국(610명)보다는 퐆고 네덜란드(950명)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기계하된 영농으로 소수의 농부가 전체 인구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해내는 반면
기계화되지 않은 르완다의 농업은 비효육적이었다.
농부들은 호미와 괭이, 머셰티 등을 사용해 농사를 지었고,
대부분의 농민이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곡식 이외의 여유분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독립 이후 인구가 늘어난 르와다는 전통적인 농사법을 고수했고,
농업의 현대화나 다수확 품종의 도입, 농산물 수출 확대, 효율적인 가족 계획의 도입에 실패했다.
대신 그들은 산을 개간하고 늪을 메워 새로운 농지를 얻었으며
휴한기를 줄이고 이모작, 삼모작을 통해 수확량을 늘리려 했다.
1960년대와 1973년에 수많은 투치족이 살해당하거나 외국으로 망명하자
그들 소유의 토지가 재분배됨으로써 후투족 농민들은 드디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꿈에 부풀었다.
1985년 경에는 국립공원 이외의 모든 경작 가능한 땅이 개간되었다.
인구와 농업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1966년부터 1981년까지의 1인당 식량 생산량이 계속 증가하다가
1981년 이후에 다시 1960년대 초반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것이 바로 맬서스가 말한 딜레마이다.
식량이 늘어나더라도 인구 역시 늘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식량은 늘어나지 않는다.
1984년에 르완다를 방문한 내 친구들은 생태학적 재앙의 조짐을 보았다.
가파른 산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개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토양 침식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 즉 등고선을 따라 계단식 밭을 만들거나
농경지의 휴한기를 두는 것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토양 침식이 증가햇고 하천은 씻겨내려간 흙으로 갈색이 되었다.
한 르완다인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농민들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하룻밤 사이에 자기 밭 전체(또는 곡심이 심어진 표충부)가 빗물에 떠내려가 있거나
이웃집의 밭의 돌더미들이 떠내려와 자기 밭 위를 뒤덮고 있는 것을 봅니다"라고 씌어 있다.
삼림 파괴는시냇물을 마르게 했고 규칙적인 강수량을 기대할 수 없게 했다.
1980년대 말에는 기근이 찾아왔으며,
1989년에는 삼림 파괴와 세계적 기후변화가 초래한 가믐 때문에 식량이 극도로 부족햇다.
벨기에의 경제학자인 카트린 앙드레(Catherine Andre)와 장 필피크 플라토(Jean-Philippe Platteau)는
환경 및 인구 변화가 르완다 북서부의 후투족 지역인 카나마 부락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플라토의 제자인 앙드레는 대량 학살 전이지만 상황은 이미 학화되어 있던 1988년과 1993년에
카나마 부락을 방문하여 16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며 자료를 수집했다.
그녀는 그 지역 대부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식구 수와 농지면적, 농사 이외의 일로 버는 수입 등을 조사했다.
그녀는 또한 농지의 매매 및 이전 현황과 중재를 필요로 하는 분쟁 발생 현황을 표로 만들어두엇다.
1994년의 대량 학살이 있은 후 그녀는 생존자들을 찾아가
후투족의 특정 인물이 같은 후투족에게 살해된 사건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런 후에 앙드레와 플라토는 이 모든 자료를 토대로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글로 정리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토양이 매우 비록한 카나마에는
인구밀도가 높은 르와다의 기준으로 보더라고 대단히 많은 인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
1988년에 1평방마일당 1.740명이던 인구는 1993년에 2.040명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농업 국가 방그라데시보다 높은 수치이다)
인구밀도가 이렇게 높다는 것은 1인당 경지 면적이 매우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간 규모 농장의 경작지가 1988년에는 0.89에이커였지만 1993년에는 0.72에이커로 줄어들었다.
각 농장의 경지는 보통 10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따라서 농부 한 사람이 경작하는 땅은 어처구니 없을 만큼 작았다.
1988년에는 1인당 0.09에이커, 1993년에는 1인당 0.07에이커였던 셈이다.
카나마 부락의 모든 경지는 이미 땅 임자가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자기 소유의 농장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늦추고 부모와 함께 살았다.
한 예로 20~25세의 연령층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 여성의 비율은
1988년에서 1993년 사이에 39퍼센트에서 67퍼센트로 늘어났고,
젊은 남성의 비율은 71퍼센트에서 100퍼센트로 증가했다.
1993년 무렵에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 중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가족 간에 극도의 긴장을 유발하여 결국 1994년의 대량학살 때 폭발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성인이 된 자녀가 집을 떠나지 않게 됨에 따라 각 농가의 평균구성원 수는
(1988년에서 1993년 사이에) 4.9명에서 5.3명으로 늘어났다.
그 사이에 농지가 0.89에이커에서 0.72에이커로 줄어들었음을 감안할 때
1인당 경지 면적은 더욱 줄어들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줄어드는 경지 면적을 늘어나는 농장 인구수로 나누어보면
1988년의 1인당 경지 면적은 0.22에이커가 되고 1993년의 1인당 경지 면적은 0.14에이커가 된다.
그토록 좁은 땅에서 나는 소산으로 카나마 주민 전체가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평균 칼로리 섭취량이 낮은 르완다의 기준에서 보다라도
각 농가에서 수확하는 곡식으로는 필요한 칼로리 섭취량의 77퍼센트 밖에 섭취할 수 없다.
부족한 식량은 목수일을 하거나 벽돌을 굽거나 장사를 해서 얻은 수입으로 사하야 했다.
전체 농가의 3분의 2는 그런 과외 수입이 있었지만 3분의 1은 과외 수입이 없었다.
하루에 1.600칼로리(기아 수준 이하로 간주된다.) 미만을 섭취하는 인구의 비율은
1982년에 9퍼센트였다가 1990년에 40퍼센트로 늘어났으며,
그 후로 아마 더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카나마 부락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인용한 수치는 모두 평군치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다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큰 농장을 소유했는데,
1988년에서 1993년 사이에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아주 큰' 농장의 경지가 2.5 에이커 정도 되고, '아주 작은 ' 농장의 경지가 0.6에이커정도 되었다.
(몬태나에서 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40에이커의 경지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을 생각할 때 이는 터무니 없이 작은 숫자이다.)
1988년에서 1993년 사이에 '아주 큰 '농장의 비율은 5퍼센트에서 8퍼센트로 늘고
'아주 작은 '농장의 비율은 36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늘었다.
즉 카나마 공동체가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양분되고 중간층이 줄어든 것이다.
가장들 중 연배가 높은 층은 젊은 층에 비해 더 부유했고 더 큰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50대의 가장은 평균적으로 2.05에이커의 종지를 소유한 데 반해 20대의 가장은 0.37에이커를 소유했을 뿐이다.
물론 나이 많은 가장의 경우 부양할 식구도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젊은 가장에 비해 가족 구성원 2인당 3배나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농사 이외의 일로 버는 수입은 대형 농장의 주인이 더 많았다.
과외의 수입이 있는 농장은 평균 경작지는 1.3에이커인 데 반해
과외 수입이 없는 농장의 평균 경작지는 0.5에이커였다.
경작지가 적을 수록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겠지만
대형 농장에는 과외 수입이 있는 반면 소규모 농장에는 과외 수입이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카나마 공동체의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졌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 것이다.
르완다에서는 소규모 농장의 소유주는 땅을 팔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실제의 경우에는 당을 파는 일이 곧잘 벌어진다.
소규모 농장의 소유주는 식량이 부족하거나 병원비, 변호사비, 뇌물 들을 마련해야 할 때,
또는 세례식이나 결혼식, 장례식 등을 치러야 할 때 주로 땅을 판다.
반면 대형 농장의 소유주가 땅을 파는 것은 멀리 있는 땅을 팔아서 가까운 곳의 땅을 사는 등
주로 농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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