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은 아직 멀지라?"
계연은 다래덩굴에 걸어 두었던 점심을 벗겨 들었다.
화갯골로 들어간 체장수 영감은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떠날 때 한 말도 있고 하니 지리산 속으로 아주 들어간 모양이라고, 옥화와 계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산중에서 아주 여름을 내시는 갑네."
옥화는 가끔 이런 말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책을 들고 앉곤 하였다.
계연의 약간 구성진 전라도 지방 토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맑고 처량한 노래 조를 띠어 왔다.
그동안 옥화와 계연의 사이에 생긴 새로운 사실이있다면,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있는 조그만 사마귀 한 개를 발견한 것쯤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의 머리를 빗어 땋아 주고 있던 옥화는
갑자기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참빗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머니 왜 그리여?"
계연이 놀라 물었으나 옥화는 그녀의 두 눈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따름 말이 없었다.
"어머니 왜 그러시여."
계연이 또 한번 물었을 때, 옥화는 겨우 정신이 돌아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다시 빗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계연은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옥화에게 다시 더 캐어 물을 도리도 없었다.
이튿날 옥화는 악양(岳陽)에 볼일이 좀 있어 다녀오겠노라면서
아침 일찌기 머리를 빗고 떠났다.
성기는 큰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소나기가 왔다.
계연이가 밖에서 빨래를 걷어안고 들어오면서,
"어쩔 거나, 어머니 비 만나시겄는듸!" 하였다.
그녀의 치맛자락은 바깥의 신선한 비바람을 묻혀다 성기의 자는 낯을 스쳐 주었다.
성기는 눈을 뜨는 결로 손을 뻗쳐 그녀의 치맛자락을 거머잡았다.
그녀는 빨래를 안은 채 고개를 홱 돌이켜 성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볼에 바야흐로 조그만 보조개가 패이려 할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니 옷 다 젖겄는듸!"
또 한번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마루로 나갔다.
성기는 어느덧 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성기가 다시 잠이 깨었을 때는, 손님들이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계연은 그들의 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모양으로 부엌에서,
"명태랑 풋고추밖엔 안주가 없는듸!" 하고 소리가 났다.
나중 손님들이 돌아간 뒤, 성기는 그녀더러,
"어머니 없을 땐 손님 받지 말라고."
약간 볼멘 소리로 이런 말을 하였다.
"허지만 오늘 해 넘김, 이 술은 시어질 것인듸,
그냥두면 어머니 오셔서 화내시지 않을 것이오?"
계연은 성기에게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했다.
조금뒤 그녀는 다시 웃는 낯으로 성기 곁에 다가서며,
"오빠, 나 면경 하나만 사 주시오.
똥그란 놈이 꼭 한 개만 있었음 쓰겄는듸." 하였다.
이튿날이 마침 장날이라 성기는 점심을 가지고 온 그녀에게
미리 사 두었던 조그만 면경 하나와 찰떡을 꺼내 주었다.
"아이고머니!"
면경과 찰떡을 보자, 계연은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꽃 같은 두 눈에 웃음을 담북 담은 채 몇 번이나 면경을 들여다보곤 하더니,
그것을 품속에 넣고는 성기가 점심을 먹고 있는 곁에 돌아앉아
어느덧 짝짝 소리까지 내며 찰떡을 먹고 있었다.
성기는 남이 보지 않게 전 앞에 사람 그림자가 얼씬할 때마다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그것을 가리워 주었다.
딴은 떡뿐 아니라 참외고 복숭아고 엿이고 유과고
일체 군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녀의 성미인 듯하였다.
집 앞으로 혹 참외 장수나 엿장수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계연은
골무를 깁거나 바늘겨례를 붙이다 말고, 튀어 일어나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며 섰곤 하였다.
한번은 성기가 절에서 내려오려니까,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눈에 띄지 않고,
그녀만이 마루 끝에 걸터앉은 채 이웃 주막의 놈팡이 하나와 더불어 함께 참외를 먹고 있었다.
성기를 보자 좀 무안스러운 듯이 얼굴을 약간 붉히며 곧 일어나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오빠!"
"……"
그러나 성기는 그러한 그녀를 거들 떠도 보지 않고 그대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계연은 먹던 참외도 마루 끝에 놓은 채 두 눈이 휘둥그래서 성기의 뒤를 따라왔다.
"오빠 왜?"
"……"
"응 왜 그리여?"
"……"
그러나 성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녀가 두 팔을 성기의 어깨 위에 얹어, 그의 목을 껴안으려 했을 때,
성기는 맹렬히 몸을 뒤틀어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는
돌연히 미친 것처럼 뛰어들어 따귀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녀는,
"오빠, 오빠!"
하고 찡그린 얼굴로 성기를 쳐다보며 두 손을 내어밀어 그의 매질을 막으려 하였으나,
두 차례 세 차례 철썩철썩하고,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자
방구석에 가 얼굴을 쿡 처박은 채 얼마든지 그의 매질에 몸을 맡기듯이 하고 있었다.
이튿날 장에 점심을 가지고 온 계연은 그 작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문 채, 말이 없었으나,
그의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엔 어저께의 일에 깊은 적의도 원한도 품어 있지 않는 듯하였다.
그날 밤 그녀가 혼자 강가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성기는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하늘엔 별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으나 나무 그늘은 강가를 칠야같이 뒤덮어 있었다.
"오빠."
계연은 성기가 바로 그녀의 곁에까지 왔을 때 일어나
성기의 턱 앞으로 바싹 다가 들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불렀다.
"오빠, 요즘은 어쩌자고 만날 절에만 노 있는 것이여?"
그 몹시도 굴곡이 강렬한 전라도 지방 토운이 이렇게 속삭이었다.
그즈음 성기는 장을 보려 오는 날 이외에는 절에서 일체 내려오지를 않았다.
옥화가 악양 명도에게 갔다 소나기에 젖어 돌아 온 뒤부터는,
어쩐지 그와 그녀의 사이를 전과 달리 경계하는 듯한 눈치라,
본래 심장이 약하고 남의 미움 받기를 유달리 싫어하는 그는,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노여움도 있고 하여 기어코 절에서 배겨내려 했던 것이었다.
이날 밤만 해도 계연의 물음에, 성기가 무어라고 대답도 채 하기 전에,
"계연아, 계연아!"
하는, 옥화의 목소리가 또 어느덧 들려 오고 있었다.
성기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 어머니도 어쩌면 저다지 야속할까?"
성기는 갑자기 목이 뿌듯해졌다.
반딧불이 지나갔다. 계연은 돌 위에 걸터앉아, 손으로 여뀌 풀을 움켜잡으며,
혼잣말같이, 또 무어라 속삭이는 것이었으나 냇물 소리에 가리어 잘 들리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성기가 방안으로, 부엌으로 누구를 찾으려는 듯 기웃기웃하다가
좀 실망한 듯한 낯으로 그냥 절로 올라가고 말았을 때,
그녀는 역시 여뀌풀 있는 냇물 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 뒤에 성기가 다시 절에서 내려오니까,
체장수 영감은 마루 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계연은 고개를 떨어버린 채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아 빗고 새옷-(새옷이래야 전날의 그 항라 적삼을 다시 빨아 다린 것)-을 갈아입고,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곁에 두고, 슬픔에 잠겨 있던 계연은, 성기를 보자
그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에 갑자기 기쁨을 띄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한 도톰한 입술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일어난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막걸리 사발을 들어 영감에게 권하고 있던 옥화는 성기를 보자,
"계연이가 시방 떠난단다."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옥화의 말을 들으면,
영감은 그날, 성기가 절로 올라가던 날 저녁때에 돌아왔었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니까, 즉 어저께,
영감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하루 더 쉬어 가라고 만류를 해서,
그래 오늘 아침엔 일찌기 떠난다고 이렇게 막 행장을 차려서 나서는 길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모두 나중 다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고,
처음은 그저 쇠뭉치로 돌연히 머리를 얻어맞은 것같이 골치가 띵하며,
전신의 피가 어느 한 곳으로 쫙 모이는 듯한,
양쪽 귀가 머리 위로 쫑긋이 당기어 올라가는 듯한,
혀가 목구멍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듯한, 눈언저리에 퍼어런 불이 번쩍번쩍 일어나는 듯한,
어지러움과 노여움과 조마로움이 한데 뭉치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의 그의 전신을 어디로 휩쓸어 가는 듯만 하였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가 있어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것이 이제 영원히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 와서야
갑자기 심지에 불을 켜듯 확 타오를 마련이던가, 하는 것이 자꾸만 꿈과 같았다.
자칫하면 체면도 염치도 다 놓고 엉엉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이 목이 징징 우는 것을,
그러는 중에서도 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식에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루 끝에 궁둥이를 찧듯 털썩 앉아 버렸다.
"아들이 참 잘 생겼소."
영감은 분명히 성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무슨 적의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다.
옥화는 그동안 또 성기에게 역시 그 체장수 영감의 이야기를 전해 들려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젊은이 하나를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우연히 서로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했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 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펠것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옥화가 무어라고 한참 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러한 의미인 듯하였으나,
조마롭고 어지럽고 노여움으로 이미 두 귀가 멍멍하여진 그에게는
다만 벌떼처럼 무엇이 왕왕 거릴 뿐 아무것도 분명히 들리지 않았다.
"막걸리 맛이 어찌나 좋은지 배가 부르당게."
그동안 마지막 술잔을 들이키고 난 영감은 부채와 지팡이를 집어들면 이렇게 말했다.
"여수 쪽으로 가시게 되먼 영영 못 보게 되겠구만요."
옥화도 영감을 따라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일을 누가 알간듸, 인연 있음 또 볼 터이지."
영감은 커다란 미투리에 발을 끼며 말했다.
"아가, 잘 가거라."
옥화는 계연의 조그만 보따리에다
돈이 든 꽃주머니 하나를 정표로 넣어 주며 하직을 하였다.
계연은 애걸하듯 호소하듯한 붉은 두 눈으로 한참 동안 옥화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또 오너라."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쓸어 주며 다만 이렇게 말하였고,
그러자 계연은 옥화의 가슴에다 얼굴을 묻으며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옥화가 그녀의 그 물결같이 흔들리는 둥그스름한 어깨를 쓸어 주며,
"그만 울어, 아버지가 저기 기다리고 계신다."
하는 음성도 이젠 아주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럼 편히 계시요."
영감은 옥화에게 하직을 하였다.
"하라부지 거기 가 보시고 살기 여의찮거든 여기 와서 우리하고 같이 삽시다."
옥화는 또 한번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계연은 이미 시뻘겋게 된 두 눈으로 성기의 마지막 시선을 찾으며 하직 인사를 했다.
성기는 계연의 이 말에 꿈을 깬 듯,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계연의 앞으로 당황히 몇 걸음 어뜩 어뜩 걸어오다간, 돌연히 다시 정신이 나는 듯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발이 굳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장승같이 계연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이렇게 두 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나, 성기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릴 뻔하던 것을
겨우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옥화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편히 사시오."
하고, 거의 울음이 다 된, 마지막 목소리를 남기고 돌아선
계연의 저만치 가고 있는 항라 적삼을,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오는 뻐꾸기 울음 속에, 성기는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