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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죄가 없다
유인봉
좋은 벽은 없다
나를 둘러친 보이지 않아
넘나들 수 없는
낯설고 두렵고 막막한
편견이 어둠 속에 가두어 둔
스스로 세운
다가설수록 더
안으로 겹겹이 경계를 친다
시간의 밑동을 파먹고야
허물어지는
벽,
그는 죄가 없다
방하(放下)
-고려장을 생각하며
유인봉
이승의 연을 끊고
저승으로 가는 막다른 길목
산을 내려가는 자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고달픈 이승을 내려놓는
마지막 수행
발아래 놓인 몇 조각의 떡
마지막 남은 물
흙으로 돌아갈
오장육부를 말갛게 씻고
소욕도 버리고
미련의 티끌마저 털어내
새의 날개처럼
뼛속까지 비워야 갈 수 있는
방하(放下)
하산길에 만난 보물
유 인 봉
산이 아침 문을 연다. 달빛이 새벽잠을 떨구어내고 능선을 향해 발걸음을 밀어 올린다. 기분 좋은 산바람이 새소리를 실어 온다. 자박자박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발자국 뒤꿈치 따라 오는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맑은 아침으로 샤워한 숲이 향긋하다. 풀잎에 맺힌 투명한 몸을 기울면 금방이라도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 오감이 열리고 생각이 맑아진다. 숨소리 하나 흔들리지 않는 고요가 이어진다.
골골이 이어진 물길을 따라 구비 진 골짜기를 오른다. 발자국 뒤꿈치를 따라오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가파른 오르막의 시작이다. 가쁘게 몰아 쉬던 골 물의 숨소리도 작아진다. 졸졸거리며 나지막이 읊조리는 물소리가 산 중턱임을 말해준다. 능선을 따라서 가지처럼 내리뻗은 골짜기기마다 백 살이 넘었을 소나무가 빼곡하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숲의 연대기,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생을 마친 고목이 몸을 가누지 못해 숨을 멈추고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누워 있다. 둥치를 드러낸 늙은 몸이 하늘을 향해 키를 내는 여린 자식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조금만 오르면 능선이다. 산의 등뼈다. 산이 너른 품을 열어 크고 작은 봉우리를 내고 산자락을 품는다. 그리고는 골마다 물길을 내고 강에 이르기까지 아래 있는 뭇 생명을 먹이고 입힌다. 숲을 만들어 새와 짐승을 들였다. 그의 품은 늘 조용하지만 역동적이다.
가쁜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코를 땅에 박고 두더지처럼 경사를 오른다. 하늘이 환해진다. 시야가 트이고 있다. 좌우로 길게 능선이 펼쳐진다. 푸른 녹음에 칠월의 능선이 푹 파묻혀 있다. 잠에서 깨어난 안개가 산을 오르더니 능선을 하얗게 적신다. 목화솜을 타듯 구름이 차오른다. 먼 산이 자궁을 열고 황금알을 쑥 밀어 올린다. 붉게 물든 하늘빛이 능선에 번진다. 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웅장하고 엄숙하다. 침묵 속에 장엄한 아침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본다. 능선을 넘어온 바람은 고비를 넘었다는 듯 더 날개를 단다. 산이 동안거에 들 때도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으로 마른 귓전을 때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능선에 터를 잡은 것들은 죄다 키가 작다. 몸집은 작지만, 몸피는 단단하고 야무지다. 내공으로 말하면 아랫녘 키 큰 잣나무나 오리나무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능선의 굽이를 돌아 나올 때마다 높은 봉우리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조금만 더 가면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향적봉이다. 머리맡에 인파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정상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 운무를 즐기는 사람, 긴 호흡을 가다듬는 사람, 허기를 메우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여 정상에 모인 사람들, 곧 흩어질 것이다. 인연을 스친 사람들이 하나둘 산을 내려간다.
인연이 머물다 간 자리에 무거워진 어깨를 내려놓는다. 멀리 겹겹이 어깨를 맞댄 산들이 한 폭의 수묵화로 걸려 있다. 턱 밑에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름을 지닌 주목이 전설처럼 선 채로 생을 마쳤다. 마른 뼈로 남았지만, 아직 등뼈 꼿꼿하다. 천 년의 기상을 담고 있는 너, 내색 없는 큰 산의 속내를 다 알고 있으려나.
정상을 만날 또 다른 인연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 준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내려가는 길은 훨씬 수월하다. 여유가 생겼다. 오를 때는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걸었다. 지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산에서 내려간다. 몇 걸음 내려서니 평전이 눈 앞에 펼쳐진다. 평전은 꽃을 내고 축제 중이다. 노란 꽃등을 밝히고 있는 각시원추리가 첫눈에 들어온다. 꽃말이 기다리는 마음이란다. 나를 스쳐 간 모든 인연을 해마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꽃말이 애틋하다. 그리움이 수줍게 숨어 있다. 꿩의 다리도 눈에 띈다. 하얀 화관을 쓰고 긴 다리를 가진 꿩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연초록 여름을 몸에 두른 박새 꽃도 보인다. 이름이 모두 독특하다. 다시 꽃을 보니 꽃말이 고고하기까지 하다. 다시 꽃을 보니 꽃말이 고고하기까지 하다. 등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천천히 해찰하듯 내려간다. 오를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느낌이 더 새롭다.
서편 하늘에 노을이 번지고 있다. 목표를 두지 않고 사는 것, 어떠할까? 아마도 욕심과 부러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매일의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울 것 같다. 젊은 날, 목표를 향하여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길이 있었다. 이제는 육십갑자를 돌아 원점으로 회귀하는 시간, 하산길의 다짐처럼 목표 따윈 없어도 되겠다. 남겨진 여분의 행로가 지금처럼 가벼움이면 참 좋겠다.
마흔 살 어머니
유 인 봉
앞이 캄캄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어머니 눈두덩이에는 두 눈 모두 두툼한 거즈가 덧입혀 있고 그 위로 흰색 밴드가 두 이(二)자로 붙여져 있다. 두꺼비 등 같은 손이 상처를 덮고 있는 두툼한 거즈에 닿는 순간 그녀는 가는 신음을 냈다. ‘어머니 백내장이 심해서 수술했어요’ ‘하룻밤 자고 나면 안대도 벗고 이전보다 더 잘 보일 거라네요’ 짐짓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자식은 노모의 어깨를 감싸며 낮은 소리로 위로한다. 병원문을 나선 모자가 택시에 옮겨 타고 요양원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그러냐….” 하고는 아무 말이 없다. 아마도 아들의 마음에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하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요양원에 오시기 전 그녀는 장손인 큰아들 내외와 함께 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던 고향 집에 살았다. 그녀는 다섯 살 적 외할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가 일찍 재가하는 바람에 당숙 슬하에서 고아로 자랐다. 일제 치하 가난했던 시절 첩첩산중 당숙 댁에서는 밥술 하나 덜어내겠다고 밭 한 뙈기 없는 아버지에게 열여섯 어머니를 출가시켰다. 황무지 같은 가난 속에서 그녀는 쇳덩이 같은 생활력으로 칠 남매를 낳고 남부럽지 않게 가르쳐 자리들 잡게 하셨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고 땅을 일구며 앞만 보고 살아오신 그녀도 환갑 줄에 들어서자, 칠 남매를 출가시키고 난 후로는 농사일이 재미가 없다고 했다.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때는 돈을 모으고 써야 할 곳이 있기에 일을 해야 할 이유와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목표가 없어진 것이다. 거기에 칠 남매를 업고 선 등에 세월의 무게까지 더하다 보니, 무쇠 같은 체력일지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손가락 마디마다 울퉁불퉁 옹이가 생기고 손가락이 뒤틀리고, 무릎관절이 닳아 앉고 설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마른 소리가 났다. 여든 줄에 접어들면서는 눈물짓는 날 수가 많아졌다. 건너 담 사시는 만수 아저씨가 “너그매 치매가 왔는가 싶다”라며 귀띔도 해주었다. 해가 더해 가면서 어머니는 다리가 휘고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밖을 나갔다 돌아온 어머니는 종종 오른쪽 얼굴에 생채기를 달고 오셨다. 넘어지면서 길바닥에 얼굴이 씻기는 것이다. 자식들은 ‘관절이 닳고 휘어져 중심을 잃고 넘어지다 보니 얼굴에 상처가 났구나’ 하며 단순하게 생각했고, 오른쪽 무릎이 상태가 심하다 보니 오른쪽 얼굴이겠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날을 더하면서 어머니는 우울증이 심해지고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장터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느니 하기도 하고, 모퉁이에서 누굴 부른다고 돌아가 보기도 했다. 자식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서로가 답답할 일이었다. 어떤 날은 “야들이 나를 바보로 아느냐”며 이런저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환청 환자라고 접어 두면서부터는 그러시냐며 무관심으로 넘어가는 것이 대수였다. 어머니의 환청은 하루 중 해거름 무렵이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밤 주우러 가자고 부른다느니, 동무가 나물 캐러 가자고 한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나섰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무단외출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어둠이 내려도 돌아오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지라면 비상 연락망이 가동되고 자식들은 저마다 흩어져 작전이라도 하듯 야간 수색이 이루어졌다. 가끔은 그녀의 병세를 아는 마을 사람들이 가는 곳을 제보해 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소재 불명이었다. 어떤 날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외진 농수로에 흙 범벅이 된 어머니를 구출해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기를 십여 차례 반복하다 보니 큰아들 내외의 생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출이나 농사일을 나가도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다녀야 했다. 급기야 가족회의를 열어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시설로 모시자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유독, 시집온 이후 여태까지 어머니와 한솥밥을 먹고 살아 온 큰며느리만 결사적으로 반대였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노년의 어머니도 중요하지만, 남아있는 형님 내외의 삶도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적 대안이 결론으로 내려졌다.
그녀의 거처가 정해졌다. 큰 두 고을을 지나 버스 길에서 십 리나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원 백여리, 거기서도 마을 끄트머리에 자리한 요양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 길이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다. 직감적으로 눈에 익숙한 내 집 가는 길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야야, 여기가 어디냐?” “어디로 가는 거냐?”고 어머니는 되묻기 시작한다. ‘어머니 계실 새집으로 가는 중이여요’ ‘방도 따뜻하고 마음에 드실 겁니다’ 자식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둘러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야야, 집으로 가야 한다. 너그 아버지랑 할머니랑 밥도 챙겨줘야 하니, 어서 집으로 가자”하며 운전대를 다그치고 있었다. ‘ 알았어요, 오늘은 늦었으니 저랑 자고 내일 가시게요’ 자식은 되지도 않은 말을 임시방편으로 둘러대고 있었다.
원 백여리 이정표를 지나 외딴 요양원에 이르자 원장님이 우리를 맞는다. 그녀를 위해 마련해 둔 방으로 모신 원장님이 “저희가 알아서 잘 추슬러 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세요” 하신다. 어머니가 눈치채고 같이 가자며 따라나선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방문을 닫았다. 그 옛날 저승길 멀지 않은 부모를 등에 지고 첩첩산중 고려장에 내려두고 산길을 내려오는 자식 마음이 이랬을까? 왈칵 속울음이 터졌다. 원장님이 등을 토닥이며 등을 떠민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남겨두고 오던 길을 되짚어 달렸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을회관을 다녀오시면 자식들이 저그 오매를 시설에 보냈다며 “너그는 나를 절대 고려장에 보내면 안 된다.” “나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그런데 안 간다.”라며 유언처럼 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요양원 문을 나설 때 같이 가자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혀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날이 밝자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한 닷새 지나서 오시지요” 했던 원장님의 당부가 있어 참기로 했다.
어머니는 조금씩 갇힌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원장이나 직원들이 “엄마! 엄마!” 하면서 정성껏 돌봐 드리고 있었다. 머릿속 기억도 차츰 희미해져 갔다. 내가 누구냐 물으면, 머리 희끗희끗한 자식을 아들이 아닌 당숙이라 했다.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마흔 살 기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식들의 근황을 물을 때에도 학창 시절의 기억만 꺼내 들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마흔 살의 기억으로 돌아가 있었다.
요양원 거실에는 큼직한 텔레비전이 한 대 놓여 있다. 어르신들은 식사를 마친 후 삼삼오오 텔레비전 앞에서 무료한 시간을 메운다. 그런데 유독 그녀만 시청을 안 한다는 것이다. 행동도 어눌해지고 자주 눈을 비비며 허공을 더듬거린다는 것이다. 안과를 한 번 모시고 가면 어떻겠느냐는 원장님 연락을 받았다. 가슴이 뜨끔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마도 오랜 경험을 가진 원장님은 그녀의 시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부랴부랴 큰 병원을 찾았다. 이리저리 그녀의 눈을 살펴본 의사 선생님께서 “어르신 눈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며 호되게 나무라는 것이다.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지만 단호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호통으로 다가왔다. 왼쪽 눈은 실명이 된 지 오래고, 다른 쪽도 백내장이 심해 수술을 해봐야 하겠지만, 실명 직전이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선고를 하셨다. 그러나 두 눈 모두 최선을 다해 수술해 보자는 뜻밖의 고마운 제안을 하셨다. 수술은 곧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녀를 수술실로 들여보낸 아들, 절망이 아니길 빌었다. 남은 한쪽 눈이라도 지켜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동안 지나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시설에 오기 전 자주 넘어져 한쪽 얼굴에만 났던 상처가 무릎관절이 아닌 시력상실 때문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쪽 눈으로는 원근을 분간하지 못해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서 성할 날이 없었던 얼굴의 상처 원인이 실명된 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이 일곱이래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구 하나 겉으로 보이는 휘어진 관절만 생각했지, 누구도 어머니의 눈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남들은 부모에게 모자랄 것 없이 잘한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는 한다. 하지만, 자식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입으로만 안부를 묻고 용돈으로 체면이나 세우는 천하의 불효자였다. 자식 손으로 안고 목욕 한 번 제대로 시킨 기억조차 없다. 늦은 날 자식의 마음 한쪽이 그녀를 향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미련으로 쌓이고 있다.
몰라보게 야위고 시들어진 그녀를 하얀 침대보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자식 품에 안긴 그녀가 오늘따라 종잇장처럼 가볍다. 여태껏 남들 다 타 보는 비행기 한 번 타 보지 못하고, 이제는 앙상한 뼈만 남은 한 여자 서러운 생이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있다. 적막하고 쓸쓸하다. 캄캄한 날 등불 밝혀 주시고, 광야에서 방황할 때 손잡아 주셨던, 허기진 가난에도 자식만을 바라보며 굴곡진 세월을 건너오신 한 여자의 생이 저문 길에서 돌아가야 할 길을 묻고 있다.
유인봉
전북 장수
제2회 장수문학상 『 벽에 꽃이 피다 』 시 당선
시사문단 258호 수필 당선
온글문학회
장수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시집
<바람 부는 들판에서 >
<벼랑 끝에 사는 새는 울지 않는다>
<바람은 혼자 울지 않는다>
수필
<지나온 길에 편지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