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
이우상
저는 42년간의 교직생활 은퇴 후, 김천실버문화대학에서 글자를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지도하면서 노년을 정말 보람 있게 보내고 있습니다. 글자를 모른 채 평생을 답답하게 살아오다가 한글을 깨우치게 되니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면서 얼마나 좋아들 하시는지....아이러니한 일일지 모르지만 42년간의 교편생활보다 4년간의 한글 지도에서 더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오히려 더 살 맛 납니다. 손자 손녀들에게 손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길을 나서면 간판 글자도 읽을 수 있고 시내버스 안내판도 알 수 있고 세상이 훤히 보인다면서 얼굴마다 웃음꽃이 가득합니다. 이제는 글짓기 지도까지 병행하여 한 편 한 편 모은 글이 76편이 되었습니다. 100편만 되면 책으로 꾸밀 생각을 하면서 모두들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반드시 좋은 책을 만들어 한 권씩 나눠 드릴 생각입니다.....<이하 생략> 이 글은 2013년 12월 4일 KBS 제 1 라디오, <행복한 시니어-지영서 아나운서 담당->프로에 방송된 내용의 일부이다. 그로부터 2년 뒤, 2015년 12월 4일, 175쪽 총 96편을 실은 <해처럼 달처럼> 문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렇게 학수고대 하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책을 가슴에 꼭 껴안는가 하면, 어떤 어른은 얼굴에 대고 문지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들 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기가 쓴 글을 찾아, 보고 또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했구나.’ 싶었다. 책 이름도 학생들에게 맡겨 몇 가지 나왔는데 지금까지 깜깜한 암흑 세상에서 살다가 이제 해나 달처럼 환하게 되었으니 제목을 ‘해처럼 달처럼’ 하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수업을 할 때는 열심히들 참여하여 줄줄 읽고 잘 쓰는데 일주일 후가 되면 거의 다 잊어버리기 일쑤였으나 반복 반복을 거듭하여 일 년이 지나면서 드디어 한 자 한 자 깨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칭찬을 통하여 싫증나지 않도록 유도하고 일기 쓰기와 병행하여 글짓기 지도를 이어나갔다. 초등학교 교사를 며느리로 둔 88세의 어느 할머니는 30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개근을 할 정도였는데 며느리와 손자를 봐서라도 반드시 글을 배워 당당하게 서야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그 할머니의 글 <사랑하는 손자, 창헌에게>의 일부를 소개해 보면,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창헌에게 오늘 난생 처음으로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내 손자, 아니 내 새끼,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우리 손자 창헌이,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니 할머니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너무나도 기뻐서 지난밤에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할머니 등을 긁어주던 우리 창헌이, 어느새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구나. 우리 창헌이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할머니는 지금까지 글자를 몰랐는데 실버대학에서 훌륭하신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참 감사한 일이지.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여 졸업할 때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내 줄게.<중략>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여 창헌이에게 당당한 할머니가 되도록 약속할 게. 우리 창헌이, 부지런히 공부하여 반드시 가정과 나라를 위하여 꼭 필요한 인물이 될 것을 할머니는 확신한다. 창헌아,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잘 있거라. 안녕 김천에서 할머니가.
500권을 인쇄하여 실버대학 240명 전교생과 김천시내 경로당, 시립도서관 복지회관 등에 나눠 드렸더니 모두들 큰 일 했다고 많은 칭찬을 받기도 했다. 어느새 실버대학에서 9년 째 강의를 맡고 있다. 2009년 8월 31일 42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하고 약간은 걱정도 했지만 사실 퇴직하기 전에 노후를 위하여 대책이라 할까 나름대로 미리 준비(노인복지사 자격증, 심리상담사 자격증, 예절지도 자격증 획득)를 조금 해 놓았다. 가끔 예식장에서 주례를 맡고 있으며 경북 청소년 수련원에서 예절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나에게는 빼 놓을 수 없는 인생 2막이 하나 더 있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앞산 자락에 자그마한 농막을 지어놓고 80여 평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산에 오른다. 20여 가지의 온갖 채소와 15마리의 청계를 기르면서 반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틈만 나면 등산을 겸해서 텃밭 가꾸는 일에 재미를 붙여 살맛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지간한 B급 친구보다 텃밭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 텃밭은 언제라도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예가인 집사람이 붓글씨로 ‘樹林亭’이라 쓴 현판도 걸어놓았다. 틈만 나면 산에 오르는 까닭도 바로 이 농막 때문인 것 같다.
자연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갖가지 채소를 가꾸면서 등산객들에게 나눔을 통하여 작은 선을 쌓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퇴직한 지 11년이 흘러갔지만 나에게는 어제 그저께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다. 퇴직 후 줄곧 작지만 하나하나 소확행하는 자세로 즐겁고 보람 있게 하루하루를 내 주위 분들과 어우르며 항상 감사하는 자세를 잊지 않고 인생 이모작 농사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지도자의 자세
이 우 상
조선 인조 때 어느 궁녀가 병자호란의 상황을 군사로부터 듣고 기록한「산성일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1636년 11월 24일, 인조 임금을 모시고 남한 산성으로 피난한 때의 일화를 적었는데..........
24일에 큰비가 내리니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모두 옷을 적시고 얼어 죽은 사람이 많아 임금이 세자와 함께 뜰 가운데 서서 하늘에 빌어 가로되
“오늘 이렇게까지 이른 것은 나와 아들이 함께 죄를 지었음이니 이 성안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으리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려 주소서.”
여러 신하들이 안으로 드시기를 청하였지만 임금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더니, 얼마 있지 않아 비가 그치고 날씨가 차지 아니 하니 성중의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지 않은 사람이 없더라..........
이 글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양식을 일반 상식선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임금이 따뜻한 방안에 들어가 편히 쉰다고 해서 어느 백성이 임금을 원망하거나 탓하겠는가? 포근하고 따뜻한 곳에서 복을 누리는 일이 법에 어긋나는 일은 더욱 아니다. 다만 그저 진심에서 우러나온 백성을 위하는 마음일 뿐이다. 임금은 나라의 최고 어른으로 최상의 대우를 받는 것이 원칙이고 마땅히 그래야 된다. 그리고 임금이 처세를 잘하거나 못함에 따라 비가 더 많이 내리거나 적게 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날씨의 춥고 따스함과 임금의 행동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군사가 얼어 죽는 일 또한 임금의 책임이 아닐진댄 임금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백성이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조 임금 부자의 현명한 상황판단과 양식 있는 행동에 모든 백성들은 감읍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일 말고도 인조 임금은 군사의 생명을 지키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일 개 청나라 장수에게까지 무릎을 꿇는 치욕적인 일까지도 감수했다. 때문에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존경받는 왕으로 회자(膾炙)되고 있음을 본다.
역대 수백 명의 왕들 중 현명하고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왕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것만 보아도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옛날보다 국민 모두가 엄청나게 잘 살게 되었지만 사회 곳곳에 상하 갑질 관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정치를 하는 큰 어른들, 솔선수범하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고 권력의 칼날을 휘둘러 수하 비서에게 못할 짓을 하여 이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전 부산시장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전 경기지사는 현재 감옥에 들어가 있으며 거기에 일천만 수도 서울의 수장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현 정치판이 쓰레기 더미보다 더 추악하게 된 현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봐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 모두가 상대방이 고발해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 이와 유사한 일들이 독버섯처럼 곳곳에 만연되고 있지는 않을까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태풍이 남해안을 강타하고 있을 때 오페라를 감상했던 대통령,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의 분명치 못한 처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뒷얘기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분명한 것은 법에 어긋나거나 지탄받을 일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박수 칠 일은 더욱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이럴 때 일수록 남 탓하는 것에만 열을 올릴 일이 아니고 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나는 어떤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일을 평가할 때 우리는 대개 상식선에서 따지는 경우가 많다. 그 상식이 통하는 선 안에 들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긴 하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비난이나 지탄받을 만한 일은 빠르고 손쉽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모두는 결국 언젠가는 세상에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대개 남의 일에는 곧잘 평가를 잘하지만 자기 평가에는 인색하기 일쑤다. 남이 두는 장기, 바둑은 알이 선명하고 길이 훤히 보이지만 본인이 두는 바둑이나 장기는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어느 누가 말했다. 성인과 악인은 따지고 보면 종이 한 장 차밖에 안 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대개 자기 눈의 들보는 안 보이고 남의 눈의 티끌은 알뜰하게도 놓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경말씀의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칠 자격을 갖춘 자가 한 사람도 없었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다만 지도자의 올바른 자세는 상식과 양식이 통하는 선에서 다수의 긍정적 평가를 받는 자리에 오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