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54〉법경(法鏡)에 비추어 본 아상
사견邪見은 자아집착의 원인
주관적으로 만든 것에 불과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의 미래에 예언을 해주기도 하였다. 제자들이 수행의 과(果)에 대해 질문하면 부처님은 “이런 수행을 한 사람은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법칙적으로 설명한 뒤, 이를 법경(法鏡)이라고 이름하면서 훗날에는 “당신에게 낱낱이 질문하지 말고, 이 법경에 비추어 스스로 살펴보라”고 말씀하셨다.
법경을 좀더 넓게 해석해보면 어찌 수행의 인과만으로 한정할 수 있겠는가? 경전을 통해 승려가 삶과 수행의 나침반으로 삼고, 이정표로 삼아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를 삼는 것도 법경의 활용이라고 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 <금강경>을 읽으면서 다가오는 구절이 있었다. ‘응운하주(應云何住)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 조계종 표준본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로 번역하고 있다.
법경에 비추어 어느 방향으로 현 삶을 지향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근래 소납의 근황은 후배가 늘어나고 강의를 통해 학인 스님들과 학생들을 접한다. 문제는 점차 아상(我相)이 높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법랍이나 나이로 계급장을 달고 있는 존재로 자신을 부각시키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
아상과 아만심은 삶에서나 수행에서 큰 장애를 일으키는 근원이다. 점점 내 생각 안에 갇히고,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데도 한번쯤 재고하며,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소납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많이 겪는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편견과 고정 관념(相)의 틀에서 상대방의 말이나 견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주입시키려고 한다. 이 고정 관념은 그릇된 견해를 낳고, 사견(邪見)은 자아에 집착하는 원인이 된다.
<대승기신론>에 “눈앞의 경계가 마음의 헛된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점점 초월하라. 눈앞의 사물은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자신의 견해대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은 익혀왔던 습(習)의 허상이요, 이 허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상대방을 볼 때도 자신의 견해로 타인을 보면서 그것이 마치 보편적인 견해라고 합리화시킨다. 요즈음 고령 출가자가 많다보니, 사미 사미니 스님들에게도 느낄 때가 있다. 생활면에 있어서도 자기 생각에 꽉 차 있어 승가 생활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강의도 한 발 멀찍이서 받아들이는 분도 있다.
<반야심경>의 첫 머리에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이라는 것(諸法空相)을 관조해 깨닫고 모든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났다”는 구절이 있다. 즉 반야의 공관(無我)으로 비춰봄으로서(있는 그대로 봄으로서) 그릇된 견해를 깨뜨리라는 내용이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도 관념(相)을 버릴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신과 모든 것이 무아임을 알아 4상(四相)을 버릴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도 우리의 아상은 더더욱 견고해지고 있으니, 그래서 수행이 쉽지 않은가 보다.
육조혜능(638~713) 제자 중에 법달이 있다. 법달은 7세에 출가해 <법화경>을 외웠다. 법달은 혜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등 거만한 행동을 보이자, 혜능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무리 만부의 경을 외워도 아만심을 꺾지 않으면 업(業)만 키울 뿐이다.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바로 내가 경을 굴리는 것이요,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바로 내가 경에 굴림을 받는 것이다.(口誦心行 卽是轉經 口誦心不行 卽是被經轉)”
혜능 선사의 말씀대로 경의 굴림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매일 독송하는 <반야심경>과 <금강경>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어리석은 소납이 어찌 더 이상 군더더기 말을 붙이랴.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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