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 명장면] 4. 불상의 탄생
부처님 입멸 500년뒤 불교전파 위해 조성
#불상의 기원설
부처님의 형상을 묘사한 불상의 등장은 불교 교단사 뿐만 아니라 불교미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 불탑 중심의 신앙에서 불상 중심의 신앙 형태로 변하면서 불상은 가장 대표적인 불교의 신앙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불상은 부처님 입멸 이후 바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500년이란 긴 세월을 보낸 후에야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기원을 두고 설이 분분하다. 불상이 언제, 어디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는가라는 불상의 기원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불상의 기원과 관련된 설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 기원, 인도 독자 창시설 등 다양
로마, 그레코-이란 양식 영향설도 공감
<불입상, 간다라 출토, 1~2세기, 높이 170cm, 페샤와르박물관.>
첫째는 그리스 영향으로 간다라 불상이 창시되었다는 설인데 알프레드 푸쉐(Alfred Foucher)가 제기한 이래 이 설은 가장 주목돼 왔다. 유럽 학자들이 주도하는 학계에서 한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던 ‘그리스 기원설’은 불상이 인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신상 조각 전통의 영향을 받아 인도 서북 변방이었던 간다라 지방에서 등장했다는 견해이다.
이 주장을 편 대표적인 학자인 프랑스의 푸쉐는 1913년에 ‘불상의 그리스 기원’이란 논문에서 이 학설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을 시도하였다. 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 기원전 1세기 경에 간다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그리스 양식의 것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견해는 그 후 1922년에 완간된 〈간다라의 그리스 풍 불교미술〉의 제2권 완결 부분에서 부연 서술되었다.
푸쉐는 간다라 불상의 양식적 연원을 헬레니즘으로 보았는데, 즉 간다라 불상의 눈이 깊고 콧날이 선 계란형의 얼굴, 물결 모양의 머리칼, 깊게 새겨진 옷주름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복을 걸친 착의법, 길게 늘어진 귀,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묶은 육계의 표현, 미간 사이의 백호, 명상에 잠긴 듯한 얼굴 표정은 그리스 신상과는 다른 인도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간다라 불상을 ‘헬레니즘 화된 부처’ 또는 ‘인도화된 아폴로’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파악한 푸쉐는 기원전 2세기 초경 서북 인도로 침입한 인도.그리스 시대가 그리스풍과 인도풍이 혼재한 불교 조각이 탄생한 시기로 보아, 불상의 창시를 기원 전 1세기 경으로 설정하였다.
둘째는 불상의 ‘인도 기원설’이다. 불상은 인도의 신상 조각 전통에 연원을 두고 있었으며 간다라의 불상과 전혀 다른 인도의 독자적인 불상 조성 전통이 간다라와 거의 동시기에 인도 본토의 마투라에서 태동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한 대표적인 학자는 아난다 쿠마라스와미(Ananda Coomaraswamy)이다.
그의 주장은 1926년의 ‘불상의 인도 기원’과 1927년에 발표된 ‘불상의 기원’이란 두 편의 논문, 1927년에 출간된 〈인도.인도네시아 미술사〉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의 논점이 있는데 하나는 인도에도 오랜 신상 조성과 숭배의 전통이 있었으며 마투라의 불상은 그 전통을 이어 인도에서 독자적으로 창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의 논점은 간다라 불상이 미술 양식상으로는 헬레니즘 미술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인도적인 요소가 이미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쿠마라스와미의 주장은 푸쉐 학설의 영향 아래 ‘그리스 기원설’이 거의 정설처럼 되어 있던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범천권청, 스와트 출토, 1세기, 40×39cm, 베를린국립인도미술관.>
미야지 아키라 등은 인도 고대 초기 미술과 헬레니즘이 융합하여 간다라미술과 간다라 불상이 생성되었다고 보고 있으나, 최근 범천권청 불전도 속의 불상을 간다라 불의 창시로 보고 있다.
셋째는 로마 양식의 기원설이다. 간다라 불상은 푸쉐가 주장한 헬레니즘의 영향 보다는 로마의 영향 하에 창시되었다는 것으로 오늘날은 이 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넷째는 그레코-이란 양식의 영향설이다. 단순한 헬레니즘이나 로마가 아니라 인도와 지중해의 중간지대인 시리아나 이란 등의 서아시아 지역의 역할에 주목하는 견해도 많은 학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설을 주장한 학자는 슈럼베르거(D. Schumberger)인데 그리스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이란의 추상주의적 전통에 입각한 양식인 그레코-이란 양식이 간다라 불상의 창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불상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는 전혀 상이한 모습의 불상이 창안되었다.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서로 다른 형식의 불상들이 역사상 최초의 불상으로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현존 유물 토대로 첫 불상 1세기경 제작 추정
<불좌상, 마투라의 카트라 출토, 1세기 경, 마투라박물관.>
먼저 마투라의 경우는 이곳에서 조성된 초기 불상에 대부분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연대 파악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는 카트라에서 출토되어 마투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좌상이다.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이 불좌상은 카니슈카 왕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나, 이 상은 형식적으로 이미 완성된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앞서 상당한 기간의 발전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마투라에서 불상의 기원은 서기 1세기 또는 그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간다라의 경우는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드물고 간다라 미술의 연대관 자체가 또 하나의 논란거리이기 때문에 복잡하다. 카니슈카 시대 이전 간다라 불상의 시원 문제는 탁실라의 시르캅(Sirkap) 도시 유적 발굴에서 찾을 수 있다. 샤카-파르티아 시대까지 지속된 시르캅 도시유적의 발굴에서 불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불상 기원의 상한이 그 시기까지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간다라에서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후 1세기 중일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은 왜 조성되었을까
불상의 조성 사상은 자체적인 불교 교리 변화에 따른 부파불교 교단 내의 대승적 사상의 대두와, 대승불교 교단의 새로운 대승사상의 진전에 의해서 불상을 창시했다고 볼 수 있다. 불상 조성을 금기시했던 기성 교단의 사상은 불교의 전파를 위해서는 불상의 관상(觀像)이나 예배를 해야 한다는 사상 즉 대승사상으로 전환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초기 기성교단에선 금기시
대승사상 진전따라 보편화
다른 하나는 불상 창시 초기에 부파 불교 교단에서도 불상을 조성한 것은 대승불교가 대중부에서만 싹튼 것이 아니라 부파불교 특히 설일체유부 교단에서 대승적인 사상가들이 나왔기 때문이며, 초기의 대승적 사상가들이 자기 교단에서 점차 성장하여 교단을 대승적으로 전환시키거나 독립해 갔다고 할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은 불교도들의 주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 당시 아난에게 "모든 것은 변한다.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라. 법을 등불 삼고 법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라” 라고 한 가르침은 불교가 다른 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각(自覺)을 강조하는 종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유근자/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출처 : 불교신문]
☞'불교사 명장면' 목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