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의 아름다운 지명 10선
지 명 |
소 속 |
특 징 |
1.아지랑마을 (阿支浪) |
거제면 법동리 |
둔덕면 어구리와 거제면 법동리가 접하는 마을로 거제도 최서단마을로 한산도의 서좌도와 마주보는 반도이다. 서쪽은 둔덕아지랑 동쪽은 거제아지랑마을이다. 아지랑(阿支浪)마을이란 얼핏 들으면 이른 봄 강한 태양광선으로 투명한 불꽃같이 아른거리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법동포의 아지랑이란 그 아지랑이가 아니고, 이 지역이 뾰족하고 언덕아 가파라 붙여진 이름이다.
~거제도 4곶: 동쪽은 갈곶, 서쪽은 서곶, 북쪽은 장곶, 남쪽은 아지랑곶
이곳 아지랑 마을은 거제도 서남단 최고 끝이며 낚시와 양식장의 고장이다. 전마선(무동력선 작은배)이 50여척, 선외기(동력선)이 10여척 있으며 인근에 양식장이 많아 낚시의 고장입니다. 전마선은 5만원입니다.( 3명승선) 아지랑이=아지랭이 |
2. 함박금
/쪽박금 |
동부면 가배리 |
‘함박 시키면 바가지 시키고 바가지 시키면 쪽박 시킨다’ 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동부면 가배리에는 함박금(함박구미)마을과 쪽박금(쪽박구미)마을이 있다. 거제의 옛 중심지였던 거제면과 중간에 중심지였던 장승포, 근래에 중심지인 고현과 멀리 떨어져 있어 관심 밖의 지역이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 취미생활로 낚시인구의 증가로 이곳을 찾는 이가 많다. 그런데 이곳의 지명이 재미있다. 함박금(함박구미, 함박기미, 함박꾸미, 함박굼이) 람 어원은 무엇일까?
거제지명총람에서는 함박금(含朴金)을 ‘가배의 서쪽 할미기에서 쪽박금, 함박금에 이르는 길다란 땅끝의 안개가 함지박의 형상이라 하여 함박금마을이라 하였다. 아마 한글을 한자로 억지로 표기하다보니 그렇게 표현된 것 같다.
함박금(구미): 함박+금(구미)의 합성어로, 함박은 쪽박의 반대되는 말로 통나무를 파서 큰 바가지처럼 만든 그릇으로 크다는 뜻이고, 금(구미)는 곶(串)에 반대되는 말로 바닷가나 강가의 곶이 길게 뻗고 후미지게 휘어진 곳 즉 만(灣)을 나타낸다.
함박구미의 함박은 ‘함박눈’, ‘함박꽃’ ‘함박웃음’에 쓰이는 대로 활짝 피고 넉넉한 모습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 반대인 쪽박구미는 쪽박처럼 작다는 것을 시적으로 귀엽고 앙증맞게 표현한 것이다.
이곳은 전문 낚시꾼이 찾는 곳으로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 그리고 일몰이 죽여주는 곳이다. |
3. 가부랑개
(加富梁) |
남부면 가배리 |
가배(加背)마을의 옛 이름이다.
얼핏 들으면 프랑스의 지명 같다. 가배만은 거제도 서남족의 맨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임란 시는 오아포(烏兒浦)라 했으나 그 뒤에 가부랑 또는 가배라 하였는데 거제의 영봉 노자산이 뒤를 막아주고 가배만의 양쪽 북의 함박금과 남의 대홀개의 땅 끝이 길게 뻗어 까마귀가 날아가는 형상으로 오아포라 하였고, 뒤의 동망산이 등 뒤에 감싸주어 加背라하였다.
加富梁개란 가배만의 옛 이름으로, 뒤에 동망산이 높고 가배만의 물결이 잔잔하여 富者마을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임란 때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통제영을 두엇던 곳이다. |
4.도토구지재 |
남부면저구리 |
거제도에서 남부면이라고 하면 가장 작은 면이다. 그러나 거제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해금강, 다대, 여차, 홍포, 저구, 쌍근마을이 있다. 거제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가라산이 있고 해안으로 왕조산이 있다. 남부면사무소는 저구리에 있다. 저구(猪仇)란 ‘도토구지’, ‘도토지’라 했다. 이는 서쪽 바닷가에 돼지와 같이 생긴 산이 있는데 그 이름이 도토구지산이다. 도토구지는 거제도 사투리로 돼지란 뜻이다.
또한 이 재를 ‘아홉산재’라 하는데 이는 탑포에서 저구리로 가는 등성이가 아홉 개나 된다는 듯이다. |
5.갈곶이마을과 서불과차 |
남부면 해금강마을 |
거제도라고 하면 해금강을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북한 고성군의 금강산(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이다.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거제해금강이다. 그런데 해금강의 원이름은 갈도/갈곶도이다. 남부면 갈곶리에는 해금강마을/도장포마을/함목마을이 있다.
박정희대통령이 낚시하던 곳으로 알려진 해금강은 옛날에는 갈도(葛島)라 하였다.
-갈도(葛島): 생긴 모양이 곡 칡뿌리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곶도(葛串島): 갈개 앞의 칡부리 섬
-갈곶마을: 땅이름 乫과 땅끝 串의 합성어로 반도모양의 땅끝이란 뜻이다.
-海金剛: 북한 고성군의 금강산의 일부인 바다의 금강산이란 뜻이다.
(북한 고성군의 해금강, 거제도 해금강)
해금강과 서불과차 (徐市過此)
기원전 BC 221년 진시황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려 서불(서복)이 동남동녀 3천명을 거느리고 봉래산(금강산)을 가는 도중 해금강을 지나가다 우제봉 암벽에 서불과차라는 石刻을 새겼다.
-우제봉: 雨祭峯 또는 祭釋峯이라 하는데 이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란 뜻이다.
-서가람산(우제봉 다른 이름), 서자암(우제봉 가는 길목의 절 이름) 서가음말( 우제봉 서쪽 해안을 가리키는 말)
거제에는 갈곶이 마을이 두 곳이 있는데 사등면 청포 갈곶이 마을(서갈곶)과 남부면 갈곶이 마을 (동갈곶)이 있다. |
6.고자산치
(睾刺山峙) |
거제면/상동동/아주동 |
울음이재와 고이산재의 전설
고자산치: 거제면에서 용산으로 오는 고갯길
울음이재: 상문동 문동저수지 윗마을에서 아주동 탑골마을로 가는 고갯길
지금으로부터 300여년전 거제에 살고 있던 반명돌이와 여동생 순이가 함께 아주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거제에서 출발하여 고자산치에 이르니 여름가량비가 부실 부실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은 동생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남성의 신기가 명돌이의 바지 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빠는 큰 죄를 짓는다는 죄책감에 그만 바지에서 작은 칼로 고환(睾丸)인 불알로 칼로 난자했다. 뒤늦게 이 사연을 알게 여동생은 오빠를 바위틈에 흙을 덮어 매장하고 외갓집이 있는 아주동으로 울면서 넘어간다는 고개를 울음이재라 한다.
-고자산치: 거제에서 용산으로 오는 고개이름, 불알고(睾)+지를 자(刺) +산치(山峙) 또는 고이산재(睾痍山峙)=불알 고(睾)+벨 이(痍)+산치(山峙)
고자산치나 고이산재나 모두 칼로서 불알을 난자했다는 뜻이다.
고자산치는 거제에서 유일한 평원이며 주변에 통신대, 글라이더 출발지, 자전거 둘레길, 계룡산에서 선자산으로 가는 중간 길이며 갯취와 억새의 군락지이다. |
7. MP다리 |
연초면 임전리(연사리) |
MP다리는 연초면 荏田마을(깨밭골)에서 연사사이에 있는 다리.
MP다리는 1917년 연사교라 했으나 1952.5.7포로수용소 책임자였던 돗드준장이 친공포로에게 납치되자 포로수용소 내 지역민 1,116세대를 소개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던 유엔군헌병검문소를 말한다.
근자에 이 역사적인 다리를 지역민들은 관광안내판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변에는 다나까농장이 있다.
|
8.시리떡배미논 /홈골보 |
거제전역 |
옛날에는 1차 산업인 농사가 주종이었다. 衣食住 중 먹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땅이 있으면 농사를 지을 논을 만들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지명도 많다.
비석걸 묵논들에 흉년이 들면 시루떡과 바꾸었다는 논, 아주 작다는 뜻 삿갓배미논, 팥죽논, 앵구배미논(고양이), 마당배미논, 버선배미논, 찰떡배미논, 장구배미논, 쑥떡배미논, 죽배미논, 범벅배미논 등이 있다.
논이 있으면 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물을 대는 일이 중요했다. 물을 가두는 저수지에서 포강이 생겨나고 냇고랑에서 논까지 물을 옮겨올 때 보(洑)를 이용하거나 홈을 이용하였다.
둔덕천의 시목앞에서 보를 막아 농업용수로 끌어오다 큰나무에 홈을 파서 논물을 끌어왔다. 연담홈골/ 명동 홈골 지석홈댁골/가래보/ 갓넘보/ 돌팀보/ 구불등보/ 깜난찡이보 등
|
9.전하도(殿下渡)와 견내량마을 |
사등면 덕호리 |
위치: 거제대교와 접한 곳.
통영과 거제는 560m 거리로 고려 의종(1170)정중부의 란으로 거제도로 추방되면서 건넜다하여 殿下渡 또는 見下渡라 불렀다.
임란시(1592)시는 이순신장군이 왜선30여척을 격파한 후 나룻터가 생겼고, 1950년 거제도가 포로수용소 설치로 車渡船場이 되었다가 1971년 4월8일 거제대교가 개통되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큰 창고가 있었으며 진이 설치되어 동헌과 관망루가 섰고, 병기 창고도 세워졌다. 무이루가 있어 섬을 침노하는 오랑캐들을 감시하는 초소 역할을 했다. 그리고 군량미를 보관하고, 거제 특산물인 어패류와 표고버섯, 벌꿀, 인삼 등을 보관하였던 조창이 있었다.
전하도란 말은 임금인 전하(殿下)가 건넜던 곳이라고 해서 전하의 두 글자에 건널 도(渡)자를 넣어서 전하도라 하던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어원이 변하여 견하도라 하였다고 하며 지금은 견내량(見乃梁)이라 한다.
|
10. 팔랑포 |
옥포2동 |
본래 波浪浦라 하였는데 이는 거제면 소량포와 풍수설에 상대성 지명인데 팔랑포라 하였음은 계절다라 풍행이 다르고 파도가 변함으로 물결 波 물결浪 갯 浦라 햇다. 구전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 8명이 숨어 살았다 한다. 현재 쓰고 있는 팔랑포는 파도가 쉬임없이 팔랑거러 팔랑(八浪)이라 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팔랑개어장놀이’는 거제시 옥포동 파랑포 마을에서 풍어를 빌며, 마을 공동으로 고기잡이하는 세시풍속놀이로 예부터 이 지방에서 내려오는 배신굿과 풍신제를 변형한 독특한 민속놀이 마당이다. 조선초 태조 1년(1392)에 능포를 중심으로 옥포(파랑포) 등 포구에서 임금님께 진상을 올리는 궁조어장으로 지정되어 신선한 고기를 잡을 때 어부들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목적에서 유래되었다. 놀이마당은 다섯마당으로 구성되었다.
주변에 옥포대첩공원이 잇고, 팔랑포에서 덕포까지 산책로가 있으며 노인휴양시설인 ‘작은 예수의 집’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