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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참 신인가-우상과 하나님-
이사야 41:21~24
오늘 본문 말씀은 다시금 두 번째로 우상을 가지고 논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21절에서 이렇게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 사람들과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타락한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도전합니다.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이 말씀을 증거할 당시 유다 국가의 세력은 급속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앗수르의 강력한 압제와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고 저 멀리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는 바벨로니아 왕국이 서서히 꿈틀거리면서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다 백성들의 북쪽에 자리잡았던 북 이스라엘 열 지파는 망해가고 있었거나 망해버렸고, 유다만 홀로 분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혼란한 격동의 국제 정세 속에서 버티고 서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온전한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의 은혜로 든든히 서기보다는 주변 강국들을 의지하면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 잡신들을 겸하여 섬김으로 나라의 안전과 개인과 가정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하여 지적하며, 우상 숭배하는 열국들에 대하여서도 경고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맥락은 선민 유다 백성들이 훗날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선포하는 대목입니다. 이 맥락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금 우상과 하나님과 비교하면서, 누가 참 신인가를 논쟁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따라가며 살펴봄으로써 우리 속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굳게 믿는 신앙으로 새롭게 하고, 우리 속에 어리석은 우상 숭배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면 그것을 발견하고 철저히 털어내는 복된 깨달음과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은 우상들을 재판정으로 소환하고자 너희가 신이라고 하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고 촉구합니다. 그렇다면 참 신이라는 기준과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참 신이라는 기준을 22절 이하에서 제시합니다. 22절과 23절 상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 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인 줄 우리가 알리라”
여기서 참 신의 기준은 바로 전지성입니다. 장래 일을 아는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과 개인과 가문의 흥망성쇠를 꿰뚫는 것입니다. 역사의 전개 과정을 다 알고 예지하는 능력이 바로 참 신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사람들과 이방 나라들이 믿고 섬기는 우상과 잡신은 이러한 능력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우상들은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것 아닙니까? 그것들 뒤에 역사하는 영들 역시 잡령들이요 거짓의 악령들일 뿐입니다. 우상들은 눈을 그려놓았어도 보지 못하고 귓불을 크게 만들어놓았어도 듣지 못합니다. 입을 단아하게 그려놓고 붉은 색깔로 입술을 칠해놓았어도 말을 못합니다. 손을 펴고 있어도 움직이지 못하고 다리와 발을 만들어놓았어도 걷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우상이 어찌 장래 일을 알아맞히며 사람의 미래를 미리 말해줄 수 있습니까?
무당들과 마술사들에게 찾아오는 영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이 점궤와 미래를 구하여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당을 통하여 말을 한다 하나 그것은 한낱 거짓말이요 그들이 내놓는 방책 역시 헛될 뿐입니다.
커다란 뱀 신이 깃들어서 점을 쳐주며 우리나라 전국에 23개 교구를 두고 성전을 세워놓고 만 명의 교인을 두고 관리하던 단군교의 교주 김해경이라는 분은 훗날 목사가 되었는데 그가 쓴 자서전에 의하면, 1987년도 문공부의 공식 집계의 수치만 보아도 단군교 교인이 사천 명이라고 등록되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고백하기를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언해준다고 했지만 빗나간 경우가 많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 남자의 가정을 파괴시키고 자신이 안방을 차지하기 위하여 비방을 통해 본부인이 죽거나 이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다면서 금품을 받았던 일도 고백하였습니다. 승진을 위하여 굿판을 벌여주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한테 가서 가까운 날 죽게 된다고 예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합과 사주를 봐주기도 하고 부적도 써주었는데, 부적의 효능이 무익함을 자신이 시인하였습니다. 그의 책에서 예를 들기를, 어느 은행 지점장이 소양호에서 투신 자살을 했는데, 시체를 건져놓고 보니 지갑 속에는 여러 장의 부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수부적, 관재부적, 악운을 피하게 하는 부적들이 지갑 속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결국 최악의 결과인 자살을 그 부적들이 막지 못했습니다. 주머니 속이나 가게 문 앞에 붙어 있는 부적들은 아무 효력이 없다고 이 유명했던 점쟁이 출신의 회개한 주의 종이 솔직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44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에 대하여 이르기를
“마귀는...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역사하여 그들을 속임수에 넘어지게 하려고 덤비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 말씀에 이르기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구약 시대 아합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기 귀만 즐겁게 해주는 아첨꾼들을 주변에 두었다가 북쪽 이방 나라 아람과 전쟁하러 나갈 때에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아첨의 예언을 듣고 나가서 결국 화살 맞아 죽고 만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참 선지자 미가야 선지자가 전쟁 직전 아합 왕에게 나와 그가 환상 중에 하늘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어전회의 때에 거짓말하는 영이 왕 측근에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의 마음에 들어가 거짓말하게 할 것이라고 계획을 말하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듣고 보았노라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참 선지자의 경고의 말을 듣고도 아합 왕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가 결국 거짓 말에 속아서 넘어가 전쟁하여 본인도 죽고 나라도 큰 타격을 입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삶에 위기가 닥치고 불안함이 찾아오고 불확실한 미래에 무엇인가 결정해야 할 그 때에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한 잡신 숭배자들인 점쟁이를 찾아가는 일은 물론 용하다는 예언 기도자를 찾아가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손쉬운 방법을 찾다가 거짓 영, 속이는 영에게 잡혀서 영적으로 손해를 보고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고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오직 세상의 나라와 가문과 가정과 개인의 모든 미래를 다 보고 알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전지하신 하나님께 나아와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아뢰며 기도로써 그 뜻을 구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필요할진대 하나님은 응답해주실 것이며 미래에 대하여 약속하신 바가 있을진대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신 그대로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였고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다윗은 나이 삼십에 유다 백성의 왕이 되고 서른 일곱 살에 온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미래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고 우리의 자녀의 미래로 맡겨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불안과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자꾸만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것을 쥐어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곤 합니다. 이 사람을 믿어보고, 저 사람을 믿어보고, 이 정치 지도자를 믿고 의지하기도 하고 저 정치 신인을 믿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이 민족의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항상 복이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화와 재앙을 주시려 한다면, 하나님은 때로 어리석은 길을 택하도록 내버려 두시고 미혹하는 길을 가도록 사람을 허락하십니다. 가장이 허망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업을 시작하여 망하게도 하시고, 나라의 지도자가 허망한 조언자를 곁에 두고 그 말에 듣고 쓸데 없는 일에 정신을 쏟다가 나라가 망하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에는 최순실과 문고리 삼인방이 그런 일을 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부끄러운 꼴을 당했습니다. 현 대통령인 한석렬 대통령도 측근에 천공이라는 법사나 가까이 하면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이 분명하고 나라에도 큰 손해가 생길 것이 분명합니다.
정치 지도자가 신앙이 없더라도 주변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과거 애굽의 바로 곁에 하나님의 사람의 요셉이 도와서 나라가 태평하고 대기근을 넘길 수 있었고,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 숭배를 하고 잡신 숭배자였지만, 그 곁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로운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으니 느부갓네살 왕도 큰 화를 면하고 나라가 유지가 되었습니다. 예후 왕가가 비록 혼합 종교를 믿는 가문이었지만 그들 곁에 엘리사 선지자가 있어서 왕을 조언해줌으로 아람의 숱한 공격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통령 주변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 많이 하시는 충성스러운 주의 종들이 곁에 많이 있고 대통령 주변에 가까운 참모진들 가운데에도 요셉과 같고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많이 있어서 대통령의 판단을 잘 돕고 인도해서 이 나라가 복을 받고 화를 면하도록 중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봅시다. 23절 후반절에 보면, 참 신의 또 한 가지의 조건을 하나님은 우상들을 불러서 제시합니다.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너희 우상들아, 너희가 재난을 내린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거나 복을 내린다고 말한다 해도 그말대로 이루어지느냐?”라고 하나님은 반문합니다. 우상들이나 잡신들은 헛된 말로 위협합니다. 집안에 큰 화가 있으니 빨리 굿을 하라고 많은 복채를 내라고 겁을 줍니다. 이 사업 잘되도록 해줄테니 굿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굿을 한다며 없던 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안될 일이 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굿을 하고 더 망하는 일이 생깁니다. 조상 숭배 열심히 하면 가문이 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점집 많이 다니면 무당은 부자가 되고 그 집 드나드는 사람의 집은 점점 망조가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 말씀대로 그렇게 귀신을 섬기는 자로 하여금 망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24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그렇습니다. 우상과 잡귀는 아무 것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 일도 못하고 오히려 망합니다. 허무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시면 아무도 그 복을 막지 못합니다. 화를 내리기도 작정하시면 그 화를 막을 길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애가 3:37,38 말씀에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아모스 3: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5:7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개인과 자녀와 가문의 길흉화복과 나라와 사회와 기업과 사업의 흥망성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음을 알고, 오직 그를 경외하며 우리의 장래를 맡기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여 지켜 행하며 그를 겸손과 충성으로 섬기며 늘 기도하여 그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할 때에 화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만나주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상과 잡신을 멀리합시다. 그것들은 헛것이요 화를 만나는 마귀의 손짓입니다.
오늘날은 이렇게 보이는 우상과 점쟁이 등 잡귀 숭배도 여전히 많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우상, 잘 인식하지 못하는 우상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현대화된 우상들도 많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우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 욕망 충족이 우상입니다. 자신의 세상적 성공이 우상입니다. 재물이 우상이고 사람들의 평판이 우상이고 세상 지위, 자리가 우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우상입니다. 독선적 민족주의를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 우파에 속한 정치적 종교 지도자가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무조건 맹종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월적 교만의 모습으로 자기의 신앙을 우상화하기도 합니다.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태도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교만한 종교인 속에는 참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의 우상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사도 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성도들에게 남긴 이 경고,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한일서 5:21)
는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변질된 형태의 현대화된 이러한 우상들을 주의깊게 살펴서 멀리합시다.
우리는 오직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한분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굳게 믿읍시다. 하나님을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하고 의지하며 겸손과 충성으로 섬깁시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능력과 사랑으로 약속을 따라 신실하게 우리와 우리 가문과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풍성한 복과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