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천국 / 일초헌 조용옥
몇 해 만이지? 그런데 어제 만난 것처럼 흉허물이 없네~
무언가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만난다는 것은 축복된 삶이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출발한 캘거리 공항.
치과 임플란트 완성하는 일이 겹으로 있었고
코로나로 꼭 가야 할 일도 미루고 미루었다가 내린 쉽지 않은 결단의 고국 방문이었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봄의 불타는 동산의 진달래를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무너졌다.
올해는 무더기로 빨리 피고 빨리 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겼다.
벚꽃도 진달래도 일주일 차이로 볼 수 없었다.
대신,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 가로수가 반겨주었고, 산책로에는 각양각색의 철쭉이 피어 있어서
위로를 주었다. 친구 가족과 경기도 '화담숲'에서 (비가 적당히 내리고 있어) 차분한 분위기에
많은 꽃과 어울리며 공원 꾸미기에 많은 정성을 담은 고국을 볼 수 있었다.
보고 싶던 학창 시절의 동문과 만남은 귀한 시간이었다.
2박3일, 남도 문학여행을 함께 하며 참으로 많이 웃었다.
25명 남짓한 숫자로 버스 한 대를 대절하여 (훌훌 털어버린 일상의 자디잔 일들)
또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 모두 잘 왔다는 몇 마디씩의 말
미국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캐나다에서~
일정은 고 이어령 교수의 묘소에 인사드림으로 시작하여 전주에서 최명희문학관 - 이청준 생가
- 영랑생가 - 시문학관 - 다산 초당 - 가우도 - 고창 청보리밭 - 고인돌 유적지 - 선운사 - 서정주 생가
좀 무리한 여정이기도 했지만 모두 즐거운 미소를 함빡 띠고 재잘재잘.
전주의 한옥 마을은 타국에서 사는 몇몇 동문들에게는 의미 있고, 듬뿍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첫 여정이었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이화의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들...
일일이 다 쓸 수는 없지만
커피 자리로 초대받은 동문의 콘도는 여수 바닷가였다.
사업에 성공한 동문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정경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별장이었다.
25명이 다 모여도 넉넉한 그런 장소였다. 재벌 사장답게 호텔 숙소에 잘 익은 칸탈롭 참외
수박 망고 등 향기롭고 잘 익은 과일 몇 박스, 그리고 여러 박스의 동동주(여수 막걸리 사장이라)를
보내와서 집에 올 때는 원하는 대로 모두 한두병씩 선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영양가 있는 한국 고유의 술, 발효하는 과정도 조금 설명해 주었다.
옆에서 4년을 같이 공부하며 지냈어도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
버스 안에서 시 낭송을 부탁받아 '여고 시절'을 '대학 시절'로 대입하여 노래처럼 들려주었고
동문의 장기 자랑 시간, 그리고 자기소개를 일일이 들려주어 그동안의 격을 줄일 수 있었다.
무슨 말이든 정겹게 받는 동문들의 우정~
첫날 숙소는 그런대로 지낼 만했고
둘째 날 '고창 관광호텔' 이름이 괜찮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오래된 지정업소 불친절한
나이 든 안내대의 직원, 이름을 모텔로 바꾸어도 이렇지는 않겠다는 불평이 막 쏟아졌다.
버스 안에서 제비 뽑아 둘씩 짝지어 같은 방을 써야 하는데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는 하나 퀸사이즈 모두 당황하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해결책이 없어서...
그런 중에 보내온 과일 동동주 약간씩 맛을 보며 미팅룸에서 분위기를 바꾸어 갔는데
몇몇이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었던 학창 시절 이야기도 돌려가며 했다.
흘러간 학창 시절의 노래들 흠뻑 추억에 젖을 수 있어 모두 행복한 얼굴이다.
내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에 모두 방으로 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우리는 천국이었나?
내 짝꿍은 밴쿠버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 선, 편하게 잘 지낸 증거로 서로 양보하여 바닥에서
자겠다는 양보의 다툼을 했고, 결과는 침대를 옆으로 사용하니 둘이 넉넉히 잘 수 있어서
피곤한 김에 푹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들려온 에피소드 하나 가위바위보로 당연히 이기는 친구가 침대에서 자기로 했는데
삼세번을 해도(그 과정이 참으로 재미있다) 해결이 나지 않았다.
결국 두 미국에서 온 동문은 익숙하지 않은 바닥의 잠이 석연치 않아서
다른 방 하나를 요청해서 각각 독방을 썼다는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던지.
사건이 같은데 반응이 두 가지여서 많이 웃을수 밖에~
우리가 살아온 여정이 모두 에피소드처럼, 철학자가 아니어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여행을 부득이 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로 가서 합류해야 했던
나의 분주한 일정이었다.
고 이어령 교수님의 묘소 인사는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다. 시간 맞춤이 필요했다.
작년 여름, 캘거리에 오셔서 연주회를 가졌던 교수님,바이얼린 연주, 시 낭송, 찬양을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
김한기 교수님 작곡가께서 자작곡 작품 발표 음악회에 꼭 참여하고자 대구행 K 택스를 타고 갔던 일.
꽃다발을 작곡가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지동 한옥>과 <샹송처럼 내리는> 새로 탄생한 가곡 두 곡을
가슴 설레며 (로얄좌석을 마련해주셔서) 감동이 밀려오는 축복된 시간을 가졌다.
올해 정월 눈 오는날 에디뜨 빼아프 샹송 가수를 떠올리며 쓴 <샹송처럼 내리는> 시에 김한기 작곡가께서
아름답게 곡을 붙여주시고 연주회 때 이 가곡과 같이 직접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시어 더 기억에 남는다.
<연지동 한옥>은 국악의 맛이 듬뿍 담긴 아름다운 한국 정서를 담아 작곡해 주셔서 듣는 이들의 좋은 반응을
보여 주었고 캘거리 친지들도 좋다고 알려온다. 두 곡을 유명한 마혜선 소프라노께서 아름답게 불러주심,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드리며 사진도 함께 한 컷.
문학회와 함께한 김유정 문학관 방문 그리고 시티 투어를 함께 하며, 두어 차례 고궁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번 고국 방문에서 가장 잘한 것은 그동안 다작으로 희곡을 써온 약사, 중학 친구에게 문학의
길을 열어준 (등단을 권유하여 가이드해 준) 그 일이 보람으로 다가온다.
또 하나, 누군가 예비하신 그 분의 손길이 느껴진, 작년 가을에 이멜로 찾아온 초등 동창. (출판된 시집으로)
요나의 어머니가 되었고 작은 교회의 사모가 된 숙이는 친동기간보다도 더 많은 보살핌을 준 고마운 소꿉친구.
어릴 적 어린 추억을 맘껏 나누며 한 달 내내 따듯한 손길로 보호받은, 전혀 예정에도 없었던 일로 내게
지상천국을 맛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첫댓글 좋은 시간 보낸것이 영역 하네요.
세월이 흘러도 우정은 더 돈독해지나봅니다
고국 나들이에서 친구가 없다면 참 쓸쓸할거란 생각이 드네요.
올린 글에 댓글도 달아주는 정성 감사합니다^^ 더위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