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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하는 심령의 복
35: 20-29
2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21.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3. 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 왔으며
24.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자는 가져 왔으며
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 왔으며
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 왔으며
28.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 왔으니
29.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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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의 방식을 두 가지로 정립했습니다. 하나는 존재 지향의 삶, 또 하나는 소유 지향의 삶, 이 두 가지를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존재 지향은 인격을 지향하는 것이고 소유 지향은 시장을 지향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경쟁과 노력으로 땅에 있는 것을 소유하려는 소유지향형이 있고, 또 하나는 자기 존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존재 지향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존재 지향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복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유의 복입니다.
이것은 명예, 물질, 땅에서 갖는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복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소유의 복을 추구합니다.
또 하나는 인격적인 복입니다.
내 자신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고, 땅에서 사는 동안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것으로 보람을 느끼며 사는 복인데 이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입니다.
예수 믿고 특별히 복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얘기하지만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효자가 있고, 불효자가 있습니다. 효자나 불효자나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효자도 부모의 모습을 닮고 불효자도 부모의 모습을 닮습니다. 또 효자나 불효자나 다 그 이름이 족보에 오릅니다. 둘 다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습니다. 그런데 불효자는 한 가지는 받지 못합니다. 마음의 감동입니다. 효자는 자기 부모를 보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그 마음속에 부모의 은혜를 잊지 못하면서 늘 흠모합니다. 그러나 불효자는 그 중심에 부모를 향한 마음의 감동이 없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불효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받나' 이렇게 묻는다면 마음으로 받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면 은혜를 받은 자요, 사랑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특별한 은혜가 있는데 하나님께 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세상 어디를 보든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물질을 보면 욕심이 생기고, 땅의 것을 보면 갖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런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가 갖는 본능적인 욕구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보면서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 신비한 경지를 늘 체험하면서 살 때 이 사람을 가리켜서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서 광야를 지나 가는 여정의 한 과정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에 두 가지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는 석판에 율법을 받고, 또 하나는 성막 짓는 계시를 받습니다.
율법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요, 또 이것은 인간이 가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가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 사함을 받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데 성막은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지 아니하고 사람의 손으로 짓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만나는데는 우리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받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21절)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22절),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25절),
"마음에 감동을 받아"(26절),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29절)
계속해서 '마음'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감동된 자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뭘 가진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감동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음의 감동으로 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성막'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성도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성막도 되지만 우리의 몸이 성막입니다. 구약의 성막이 성전으로, 이제는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몸의 성전은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외형적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심은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몸을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는 물질을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헌심, 헌신, 헌물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마음을 감동하는 자, 자원하는 자, 즐겁게 바치는 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심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마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훗날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마음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며칠 전 한신대 전임총장이었던 고재식 박사님께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 글입니다. 고재식 박사님이 간경화로 수개월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병이 중해서 한신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에도 입원했고 또 재임이 끝난 뒤에도 몇 개월동안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치료비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정태기 박사님이 시간날 때마다 병원에 찾아가서 치유상담을 해 주면서 그의 건강을 도와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비의 절반을 정태기 박사님이 지불해 주었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 같이 자랐고, 신학교도 동기생으로 입학을 했고, 유학도 같이 갈 정도로 막역한 사이기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마음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조카의 간과 고재식 총장님의 간의 조직이 맞아서 이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중앙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지금은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고재식 총장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태기,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네. 자네같은 친구를 두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네. 자네의 마음을 생각하니 나는 이대로 가도 한이 없네" 그가 하늘의 감동을 받고 친구의 우정에 감동을 받을 때 세상은 이전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을 살려주었지만 친구가 또 그 은혜로 나를 살려주는 것을 생각하니 나는 이 세상이 예사롭지 않다'고 고백하면서 또 눈물을 흘려요. 원래 그 분은 눈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계속 눈물을 흘리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습니다. '아! 사람이 달라졌구나!' 전에는 그 분이 무슨 말을 해도 전혀 감동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친구에게서 은혜를 받고 감동받은 후에는 그 분이 섰다 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시몬의 문둥병이 나으니까 감사해서 잔치를 베설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제자들도 참석했고 동네 사람들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하는 중에 마리아가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향유는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비싼 향유인데 그것을 예수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분을 내면서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막 14:4-5) 하며 그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저들의 생각을 아시고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막 14:7-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이 기념될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감동시켜야 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감동시켜야 됩니다. '하늘이 어쩌다가 저런 며느리를 나에게 주셨나' 이럴 정도로 시어머니를 감동시켜야 됩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보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아내를 만났나 보기도 소중한 사람' 하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성도는 교회에 오면 목사를 감동시켜야 됩니다. 회사에 가면 사장을 감동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마리아의 일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것에 대하여 미리 예고해 준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로 감동시키고 있는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될 뿐만 아니라 감동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감동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원하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감동된 대로 자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10)
저에게 감동을 주는 여종이 있습니다. 그 여종을 이번에 인도네시아 선교사 세미나에 가서 만났습니다. 이 분이 1979년부터 1986년까지 7년간 한신교회에 다녔는데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데 이 분은 예배드릴 때 의자에 앉지 않고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 때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그에게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우리 남편이 아직 회사의 중역이 아니라서 월급도 작고 십일조 바치는 것으로는 만족이 안되는데...'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많이 바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영혼의 예물을 바쳐라 천하보다 큰 것이다."라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런 감동을 받고 과천 일대를 전도하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전도를 많이 했는지 그 사람들을 태워오기 위해서 버스 두 대를 운행했습니다.
그렇게 7년동안 한신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인도네시아로 이민을 갔는데 거기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토록 바치기를 소원했는데 하나님께서 바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 아디다스 사장인데 직원이 1만명입니다.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 집사님이 은혜를 받은 분이라 이곳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어떻게 하면 생명 구원하는 일을 할까' 하면서 이 일에 전 시간을 투자합니다. 월급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합니다. 남편도 1만명을 거느리는 회사의 사장이기 때문에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런데도 선교사 세미나에 참석해서 선교사님들을 섬기고 또 제 옆에서 저를 섬기는데 제가 비행장에 갈 때는 친히 짐을 날라 주었습니다. "아니 남이 보면 어쩌려고 사장님이 직접 짐을 나르십니까?" 했더니 "목사님, 저는 섬기는 종입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시죠." 그래요. 보통 사람 같으면 1만명 회사의 사장쯤 되면 목에 힘주면 직원들 시킬텐데 이 분은 자원해서 섬기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분 내외를 보면서 '야! 저런 복을 받다니...'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