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30-36
새직분, 새임무 / 오정호 목사
요즘 월드컵 신드롬(Worldcup syndrome)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월드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경기가 있는 날에는 삶에 희열을 느끼고 열광하다가도 경기가 없는 날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심리적 공황상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어떤 사람들은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무슨 재미로 살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더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우리의 직분을 다해야 합니다. 직분에는 사명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월드컵이 끝나도 우리의 사명은 계속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위치와 시기에 따른 임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사명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 가정과 교회와 직장의 엘리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월드컵 경기는 전 후반 90분으로 승부를 가리지만 믿음의 경기는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평생 계속됩
니다. 이 믿음의 경기장에서 우리가 엘리야처럼 쓰임받기 위해서는 엘리야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엘리야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듯 우리의 믿음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승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의 엘리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원리를 붙잡아야 합니까?
1. 여호와의 단을 쌓아야 합니다(30절).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다시 세우게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단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단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예배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진 삶의 가시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단을 쌓는 일이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스라엘의 단은 무너졌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목적은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유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나는 6.25전쟁을 치뤘습니다. 우리 국군이 낙동강전선까지 밀려 내려왔을 때에 부산에 내려온 각 교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부산 초량교회와 중앙교회에 모여 눈물로 교회마루를 적시며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밤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신사참배라는 민족의 죄를 자복하고 순수한 믿음과 말씀위에 다시 교회를 세우리라는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셨고 놀라운 섭리와 은혜로 이 나라와 민족을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이제 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풍요의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선교대상국에서 선교파송국으로 바뀌었고, 수많은 교회들이 이 땅위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만을 섬기는 제단은 무너져 내리고 있고, 하나님대신 돈 앞에 굴복하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음란과 패역의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우리의 다음세대에 과연 어떤 영적 축복과 전통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살려주신 목적을 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의 영광을 체험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정착한 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소출이 늘어나고 산업이 안정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참된 예배자로 세우시려는 출애굽의 목적을 망각한 채 영적으로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신6:10-15절).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모으고 무너진 단을 다시 수축하고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실제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무너진 단을 세우기 원하신 것처럼 우리의 가문과 교회와 나라의 축복된 미래를 세우기 위해 우리를 이 시대의 엘리야로 부르셨습니다. 만약 여러분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의 단이 있다면 그 단을 허물어버리고 다시금 주님사랑과 충성과 믿음의 단을 회복하십시오.
2. 하나님 나라의 대표성을 가져야 합니다(31절).
엘리야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돌을 취하여 단을 쌓고 저녁소제를 드렸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해서 홀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거짓선지자와 대결을 했습니다. 어디에서도 엘리야를 응원하는 함성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대표선수 엘리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바알의 선지자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하나님 나라의 대표성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선수들의 꿈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국가대표선수들의 꿈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우리의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의 대표의식이 여러분의 가문을 믿음으로 일으키고 교회를 건강하게 하며 민족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의 복잡한 이름에는 믿음의 사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갈리의 조부(祖父)는 회교국 이집트에서 수상을 역임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회교과격분자에 의해 1910년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고인을 기념하여 수도 카이로에 교회를 세우고 당시 태어난 손자 갈리에게 고인의 믿음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조부의 이름 '부트로스'를 붙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의 성인 갈리앞에 다시 부트로스라고 쓰고 거기에 손자에게 조부의 이름을 더하여 현재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라는 독특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갈리는 자신의 이름을 통해 가문을 믿음으로 세우기 위해 순교까지 감당했던 조부의 믿음을 깊이 새겼으며 15년간 이집트의 외무장관으로서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귀한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가문과 교회와 이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대표선수 엘리야처럼 확실하게 쓰임받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자기의식이 있어야 합니다(36절).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아무리 시대와 사람이 변한다 할지라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심이라"고 했습니다(시
119:105절).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십시오. 이 시대는 자기의 지혜로 사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라고 확신있게 외쳤습니다. 엘리야의 말씀에 대한 확신대로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단을 쌓는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승리케 하시는 놀라운 응답으로 채워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가문과 교회와 민족의 엘리야로 쓰임받읍시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승리를 체험합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높이 올려드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