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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 16 - 21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
5.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 ( 11: 16 - 21 )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 11: 16 처음 익은 곡식 가루 -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
제사하는 곡식 가루의 처음 한 줌이 거룩하면 그 전체가 거룩하며, 나무의 뿌리가 거룩하면 그 가지들도 거룩하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 조상들과 후손들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의 거룩은 내면적 의미보다 언약적 의미이다. 또한 이 비유는 구약교회와 신약교회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본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선민이고 구별되게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었기 때문에, 신약교회 특히 이방인 신자들은 이스라엘의 본래의 그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이다.
1]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데 헤 아파르케 하기아, 카이 토 퓌라마'(*)가 70인 역(민 15: 20-21)에서는 '아파르켄 퓌라마토스'(*,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떡덩이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처음 익은 곡식'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이해한다(Harrison).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성을 가진 족장이나 조상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Murray).
반면에 '떡덩이'는 회심한 이스라엘 민족을 뜻한다. 이러한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대표성을 의미한다.
'처음 익은 곡식가루'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파르케'(*)는 '최초의 것'이라는 의미로 제사에 있어서 전체 큰 덩이에서 일부를 떼어 내어서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이것은 민 15: 17-21에 나오는 거제의 규례에서 온 것으로 떼어낸 부분이 원덩이를 대표한다는 개념을 보여준다.
* 민 15: 17-21 -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19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21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인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다.
(2) 거룩성을 나타낸다.
첫 열매가 전체 떡덩이를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다(Barmby).
결국 이스라엘과 믿는 자들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조상들이 거룩했으니 남은 그의 자손들도 거룩하다는 의미이다.
롬 11: 17 참감람나무 -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
이스라엘은 참감람나무와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앙 때문에 그 나무의 가지들 중 다수가 꺾임을 받았다.
그 대신에 돌감람나무 가지들인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참감람나무 뿌리에 접붙임을 받았다.
그래서 이방인 신자들은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들이 되었다.
1]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이스라엘의 버림받음을 전체로 표현하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 중 얼마가 꺾였다고 말한다.
2]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돌감람나무는 야생 감람나무로서
(1) 원래부터 돌감람나무 종류가 있다.
(2) 원래는 좋은 감람나무였으나 주인의 손질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있다.
통상적으로 감람나무를 접붙이는 방법은 돌감람나무 뿌리에 참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이기를 한다. 본문에서는 이를 거꾸로 비유한다.
이처럼 참감람나무의 가지 일부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였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방인이 원가지가 아님을 명백히 하였다.
아마도 바울은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뿌리에 연결되어 좋은 진액을 받아 품질이 낫게 변화되는 것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Murray).
이러한 접붙임으로 원가지와는 전혀 무관하던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동일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3]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이방 그리스도인도 이스라엘 족장이 누렸던 구속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었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진액 보다는 그 뿌리이다.
즉 이스라엘과 무관했던 이방인이 참 이스라엘에 접붙임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12족장과 맺은 구원의 언약과 연관된다(Hendriksen, Lenski).
'참감람나무'는 16절의 '처음 익은 곡식'과 통하는 것으로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모든 혜택의 근원(根源)을 상징한다.
이처럼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두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롬 11: 18 자긍하지 말라 -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이방인 신자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유대인들을 향해 자랑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방인 신자들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은 가지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감람나무 뿌리가 그 접붙임 받은 가지들을 보전하는 것이지 가지들이 그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다.
1]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유대인들의 일부가 구원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들을 향해 우월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없다고 충고한다.
여기서의 '가지'는 꺾인 가지로 원가지에서 벗어난 유대인을 말한다(Murray, 19, 20, 22, 24절).
이방 그리스도인은 이들에 대해 자긍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긍(*, 카타카우코)이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높이며 자랑한다는 뜻이다.
당시 로마 교회의 구성원 중 일부가 영적 자만심을 가지고 동료 유대인 신자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원가지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2]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자만심에 빠져 유대인이 원가지에서 꺾였다고 주장해도 자신들이 뿌리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가지들을 지탱시켜 주고 가지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뿌리와도 같기 때문이다(Calvin).
여기서 강조된 '너'(*, 쉬)가 단수형으로 쓰여 마치 개인을 대상으로 구원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울은 교회에서의 이방적 요소를 하나의 단위로 다루고 있는 것뿐이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 민족의 복음 거부로 인해 이방인 교회가 탁월한 위치에 있게 됨을 가리킨다(Harrison).
그러나 바울은 이것으로 인해 교만과 자만심을 갖게 하지 않도록 이방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구원의 기원을 생각하도록 한다.
롬 11: 19 접붙임 -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1]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여기서는 '꺾이운 가지'와 '접붙임을 받은 나'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Murray, Dunn).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예증은 이방인들을 교만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려는 것이다(Calvin).
롬 11: 20 높은 마음 -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이방인 신자들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해야 한다.
1] 옳도다.
이에 해당하는 '칼로스'(*)는 '바로 그렇다', '맞다'의 뜻으로 앞 절의 내용을 시인하는 것이다.
구속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보장되었던 것이 이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유동적으로 적용됨으로 인한 구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긴장을 보충 설명하려는 것이다(Dunn).
2]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유대인이 버림을 받은 것은 불신 때문이고, 이방인이 접붙임 받은 것은 믿음 때문이다.
'믿지 아니하므로'(*, 테 아피스티아)와 '믿으므로'(*, 테 피스테이)가 모두 여격으로 사용되어 이유, 수단, 원인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궁극적으로 믿음으로 인해 두 가지 상반되는 현상이 나타났을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은 불신으로(9: 30-32. 10: 3, 16)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자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이방인은 서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믿음 때문이다.
'믿으므로'가 강조된 것은 견고히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믿음인 것을 보여준다.
3]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높은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피조물로 하나님과 같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 빌 2: 5-8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러 도리어 두려워해야 한다.
* 고전 10: 12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롬 11: 21 원 가지들도 -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
하나님께서 원가지들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끼지 않고 꺾어버리셨다.
따라서 접붙임 받은 가지들인 이방인 신자들도 꺾어버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겸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헬라어 본문에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자긍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를 제시한다.
'원 가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퓌신 클라돈'(*)은 본래 자연적으로 생성된 가지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던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스라엘'이어야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고, 원뿌리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흠정역(KJV)에는 '너도 남기지 아니하실까 유의하라'로 되어 있다.
'유의하라'(take heed)는 표현은 공인 본문(TR)에 의거해서 번역했다. 공인본문에 의하면 이 구절 앞에 '메 포스'(*, '...하지 않을까')가 있다.
흠정역(KJV)은 이에 따라 20절의 '두려워하라'와 연결시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원 가지도 믿음을 떠났을 때 꺾어 버렸는데 접붙여진 가지가 믿음을 버렸을 때 남겨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