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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8:23-27
인생은 바다로 비유 되기도 한다 한없이 넓고 잔잔한 바다와 넓은 호수의 수평선은 꿈과 소망과 평안과 안위를 상징한다
그러나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풍랑과 폭풍과 일기불순의 상징이기도 하다
갈릴리 바다가 그 대표적이다 사실 호수 임에도 바다로 호칭되는 곳이다 사해바다와 함께 바다의 수평선보다 낮은 지형으로 여리고에서 바라다 본 달은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보인다고도 한다 찻잔속의 폭풍은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에도 곧잘 민감하게 반응을 나타낸다
갈릴리 바다는 예측하지 못한 풍랑이 자주 일어나는 지형이다
폭풍이 몰려 올 그 어떤 조짐도 없이 갑자기 일기가 요동치는 신기한 곳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살아 간다 특히 어린이들은 물을 두려워 한다 우리 모두가 바다를 은근히 두려워 한다 인생의 바닷길은 순풍에 돛달고 신나게 달려도 배를 저어가는 선원들은 언제나 그 마음속에 폭풍이 언제 몰려 올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요나는 깊은 잠이 들었어도 선원들은 풍랑과 싸우며 배안의 모든 화물을 바다에 집어 던지며 폭풍과 밤을 새워 싸우는 곳이 바다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던지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인생의 바다 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풍랑속에 시달리면서 배멀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 살아 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인생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지금 생각해 보고 답을 해보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다 그런데 그 세상은 왜 고통이 계속되고 그 가운데로 자녀를 보내놓고 건너가라 하시는가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랏더니(23)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 안에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넛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풍랑을 만났다 예수님 모셨으면 예수님과 동행하면 오히려 일어났던 풍랑도 잠잠해져야 하거늘 예수님 배에 타자마다 폭풍가운데서 죽을 고비를 당하는가 예수님 믿으면 불행이 변화하여 행복해지고 인생의 고통이 평안으로 바뀐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예수님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본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듯 더욱 이상한 것은 제자들은 풍랑만나 노젖고 물퍼내고 비명지르며 생난리인데도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듯 잠만 주무신다
정말 알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일 많이 당한다 사업실패와 파산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아침에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정말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보고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이런 비극을 당하여 몸부림칠 때 하나님께서 무관심 하셨던 것처럼 보여질 때가 많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 바꾸어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두운 절망의 골짜기로 빠져들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 같이 보여질때가 있다 이러할 때는 누구나 정말 모르겠다고 말한다 솔직히 우리는 잘 모른다 인생의 사사건건에 대하여 왜 라는 질문과 해답을 요구한다면 약간의 대답은 가능해도 그것이 온전한 진리가 될수는 없다 욥이 어려운일을 당했을 때 세 친구가 찿아와 각기 나름대로 판단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두다 잘못된 견해와 판단뿐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들에게 진노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완전한 것처럼 떠들던 그들 모습 하나님께서 결코 좋게 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글을 쓰는 순간도 무척 두렵고 떨린다 왜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마다 인간적인 설명을 구하려한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더 미궁에 빠져든다 행,불행이 함께 공존하고 의와 불의가 함께 병행하는 이 땅의 상황을 우리는 완전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지구 한 켠에서는 양식이 남아서 고민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기아로 하루 한끼도 못먹는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을 너무나 단순화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경솔한 것이다 우리 인생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성경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풍랑 속에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떠한 존재이신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신비를 밝힐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빛이시다
그분운 제자들에게 왜 폭풍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해 주시지 않았다 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그와같이 고생하였는가에 대해서도 침묵하셨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분이 당시 제자들과 거기에 함께 계셨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 모든 해답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동행하신 분이 주님이시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늘 동행하신다
우리 인생 항로에 언제나 동행하여 주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풍랑 속에서 조용히 주무시고 계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어떤 풍랑도 주님의 평안을 깨뜨리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사람 누구나 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인생의 바다 가운데서 풍랑은 어떤 예고도 없이 자주 일어난다 내안에 예수님이 계시든지 않계시든지 풍랑 일어난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뱃전에서 평안하게 주무시는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풍랑을 잔잔하게 해 주셨다 인생의 시급한 문제 해결해 주셨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을 가랑잎처럼 흔들어 놓는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분의 인격자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처리하시는 한 인격자가 필요한 것이지 어떤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은 설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잘 모른다 그들은 설명을 요구하고 어떤 해명을 요구한다 (왜 그곳에 갔으며 왜?왜?왜?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물음에 답하려고 많은 책들을 썼고 많은 강연을 하고 많은 종교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이렇다할 답변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많은 글과 말과 종교 철학이 아니고 오직 한 인격자이다 그 인격자를 바로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자로 바로 알고 바로 모시느냐 모시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항로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깨닭아야 한다 이것 깨닭지 못하면 점점 더 암담해지고 나중에는 되는대로 살아 보자는 식의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제 예수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했다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해보자 제자들은 폭풍 만났을 때 처음에는 자기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문제 해결을 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할 수 없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웟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작은자들아 ”라고 말씀 하셨다 마가복음에서는 똑같은 말씀이 있는데 (막4:40)책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작은 믿음이라는 말은 제자들의 믿음이 작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그들이 작은 믿음이나마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 주시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복음 사역 하시면서 큰 믿음 가진 사람은 딱 두 번 밖에 보신적이 없다 수로보니게 여인과(마15:28) 백부장 (마8ㅣ10) 뿐으로 모두 이방인들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동안 나머지는 다 작은 믿음들이었다
믿음은 금과 같다 양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다 믿음이고 금이다 반돈짜리 돌반지나 50돈짜리 금목걸이나 다 금이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다 믿음이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받은 믿음이라면 작은 믿음이라도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노련한 금광 채굴업자는 금을 찿아 산속을 헤메고 돌아 다니다가 조그마한 금덩어리 하나를 발견하면 그 지역 근처에 큰 금광맥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당장 알아챈다 그러므로 그 금조각 하나는 대단한 출발이다
작은 믿음이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면에서는 불순한 믿음처럼 보여질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일지라도 주님은 결코 과소평가 하시지 않으시고 그 믿음에 기대를 거신다 예수님을 찿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믿음 뒤에 감추어져 있는 큰 믿음의 광맥을 보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찿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라고 하셨다 그때 그 믿음이 우리가 보기에는 지극히 작은 믿음이고 대수롭지 않은 믿음으로 생각하지만 주님은 크게 평가해 주셨다 왜? 믿음이 작으니까 주님을 찿아온 것이다
사실 우리 믿음은 크지 못하다 그리고 이 작은 믿음에도 불순물이 끼여있다 배안에서 예수님께서 잠을 깨셨을 때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자들아 하셨던 것을 볼때에 분명히 제자들이 가진 믿음에는 공포, 무서움 이라는 불순물이 섞애 있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 불순물이 의심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믿음을 보면 공포와 의심이라는 불순물이 끼여 있다 그러나 그 공포와 의심이 있는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바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
사람이 완전한 믿음을 가질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공포심도 의심도 있을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주님 눈에 비친 우리의 모든 믿음은 작은 믿음이지 큰 믿음일수가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이라도 제자들이 가졌기 때문에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주님을 깨울수가 있었다 작은 믿음은 우리의 항로에서 기도하게 만든다
믿음이 있으면 주님을 깨울수가 있다 주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 주님은 반드시 일어나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문제는 이 작은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드디어 예수님 일어나셔서 바다를 잠잠케 하셨다 놀아운 일이다 성경은 제자들이 기이히 여겼다고했다 곧 경탄했다는 말이다 대단히 강한 의미를 가진 용어다 작은 믿음을 바로 사용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주님은 놀라운 기적을 잎으켜 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게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랐다 기이히 여겼다
우리가 인생의 항로를 걸어 오면서 오늘까지 어려운 고비때마다 그 작은 믿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가 한번 돌이켜보라
어려운 역경의 기간동안 성경을 통해본 진리는
1.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도 신앙인은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하여 이유를 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한배를 타고 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수 있게 해 준다
2. 하나님은 내 인생의 계획자요 인도자라는 진리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이상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한다 어떻게 하시든지 선한길로 인도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않계신다면 역경을 당하는 사람은 정말 재수없는 인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한다면 그분의 모든 계획과 섭리 아래서 현실의 사건들은 그분의 거룩한 조명 아래서 의미를 갖게되고 또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닭을수 있게 된다
3. 전적으로 위탁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위탁하는 것은 인격자이신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항로에 모시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간다 풍랑이 일어난다 그러면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분의 평안한 얼굴을 한번 보라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너무나 힘들때는 그분을 깨워 그분의 도우심을 기다려보자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든지 아니면 우리로 하여금 풍랑속에서도 찬송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욥35:10-11
엘리후는 욥의 세진구가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 준다 마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찿듯이 그는 놀라운 진리를 말한다
그것은 욥을 위시하여 이 땅위에 고난을 당한 자들이 불행 그 자체만을 두고 탄식할줄만 알지 하나님을 찿지 않는다는 것이다
욥35:9-10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자가 없구나
인간의 불행은 더 불행하게 보이고 인생의 슬픔은 더 슬퍼지며 인간의 비참한 모습은 더 처절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엘리후가 발견한 진리이다 엘리후가 소개하는 하나님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연단하시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구에는 낮과 밤이 있다
황혼이 깃드는 저녁, 하루 종일 고달프게 일했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밤이 다가온다 어느덧 환하게 밝혀졌던 창가의 등불이 하나씩 꺼지고 커튼이 내려지면 하루의 쉼을 얻는 깊은 잠이 찿아 온다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 베푸신 축복 가운데 밤은 놀라운 축복이다 이와같이 인생의 밤은 꼭 필요하며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밤은 동시에 공포를 안겨 준다 두려움을 동반한다 인간에게는 밤을 좋아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 모든 세상의 악이 밤을 통해 일어나고 모든 무서운 계교들이 밤의 침상에서 잉태 되어진다 그래서 밤은 두렵고 좋지 아니한 것이다
사람에게도 인생의 밤이 있다 인생은 작은 우주다 인생의 밤 갑자기 나빠진 건강, 실직, 사업부진, 망함, 가정불화 이런것들은 내 인생에 밤이 찿아온 것이다 직장, 직업에 대한 환멸 불만 괴로움은 인생에 밤이 오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밤을 두려워 한다 되도록 피하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싫어하는 밤을 주셨다 지구의 낮과 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낮과 밤도 주셨다
사45:7 나는 밤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하였노라
그러므로 바울의 고백처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요 그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도다
그런데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의 밤을 하나님은 왜 주셨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최상의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시고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최상의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 목적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이 사실을 적용시키면 각 사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각 사람에게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상의 수단중에 하나가 밤이다 자연계의 밤은 하나님의 지혜다 꽃은 아침에 피어나기 위해 밤에 준비한다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도 피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의 손에 사용된 사람은 모두 밤을 지나야했다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바울 모두 하나님의 역사 자국을 남기기 위하여 큰 그릇으로 사용된 사람들은 모두 깊은 밤을 통과 했다 골고다를 향하는 잔인하고도 무서운 저 십자가의 길 예수님은 그것이 밤이었다 너무나 견딜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다
하나님은 밤만 주시는 것이 아니다 밤중에 노래하게 하셨다 밤중 노래는 낮의 노래와 다르다 만물은 고요 속에서 침묵하며 아무것도 없는 칡흙같은 어두움 외로움 처절한 실패의 눈물, 이 속에서 침묵을 깨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하나님을 노래한다 꽃이 없는 사막에서 한방울의 물이 갈급할 때에는 노래가 나올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밤을 만난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노래할 수가 없다 눈물의 감격과 감사는 이러한 밤중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마중물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힘으로 찬송을 부를 수 없는 인간에게 한바가지 마중물ㅇ을 부어 주심으로 찬송의 힘이 솟아 오른다
엡1“3-6 영광의 찬송 구원의 긍극적 목적은 하나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이미 노래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 받았고 성령은 노래하는 영이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을 걸으실 때와 골고다 언덕길에서도 찬송을 하셨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처절한 심령의 메아리가 동반된다 가볍지 않아 마음을 파고든다
하나님 주신 능력은 영혼에서 나오는 찬송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밤의 찬송을 좋아하신다
합3:16-19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밤의 찬송 주제는 아침의 기쁨이다 저녁에는 나에게 슬픔이지만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기쁨이 온다는 소망의 노래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너무 마음 쓰지 말라 밤은 반드시 밝아 아침이 된다 하나님께서 고난 역경 다 제거하시고 찬란한 아침 찬란한 햇살 반드시 주신다 이 소망 바라보며 부르는 찬송이 밤의 노래다
밤이 통과하기 전에 매력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쓰일만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밤을 통과해야 한다 노래하면 된다 그 놀라운 찬송 우리 안에 넘치리라
개구리는 더 멀리 뛰기 위하여 다리를 모으고 힘을 모으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의 작은 믿음은 주님을 바라볼. 주님을 깨울, 주님께 부르짖을 정도의 시간만 힘을 비축하는 노래를 한다면 인생의 모든 풍랑을 잠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