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부조리
백남경 인제대 미래교육원 글쓰기교실 강사
문학에서 부조리란 말은 심심찮게 등장한다. 부조리 없는 완벽한 세상은 있기 어려우니, 그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한 일이다. 민법 제1조에 이렇게 적혀 있다.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라고.
그렇다면 조리(條理)란 무엇인가. 사물의 성질·순서·도리·합리성 같은 '본질적 법칙'을 의미하며, 경우에 따라선 경험칙, 사회통념, 신의성실, 사회질서, 정의, 형평, 법의 전체적 조화, 법의 일반원칙 등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요약하면 조리란 세상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민법 규정이 불비(不備)한 경우 세상 이치를 적용해서 판단한다는 게 민법 제1조의 함의다.
조리는 평등의 개념과도 유사한 측면을 가진다.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루소는 불평등을 ① '타고난 불평등'과 ②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눠 제시했다. ①은 부모, 고향, 재산, 자신의 지능, 건강, 신체 조건, 출생 순위 등이 태어날 때부터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①을 놓고 사회적 불평을 문제 삼을 수 없다. ②는 불공평, 사회적 차별, 편애, 기회 박탈, 어긋난 형평성 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률과 관습법과 조리가 적용될 무대이자 세계다. 세상은 가정, 학교, 사회, 사생활로 구성된다고 간주하자.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우리는 가정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부모로부터 배운다. 또한 학교에서도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배운다. 그 결과 정직하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행복해지고 출세하는 등 이롭다고 생각하며 개개인은 그런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윽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을 가지며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직장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로 앞만 보고 묵묵히 일한다. 시간이 지나 인사철이 왔을 때, 별로 성실하지도 별로 정직하지도 않은 자가 먼저 진급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친구로부터 돈을 떼이고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심하면 사기꾼에 속아 전 재산을 날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더 잘 사는 세상인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정직과 성실만을 강조한다면 적절한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덕목이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사기는 정직과 대극에 있는 행위다. 노동하지 않고 상대의 재물을 취하는 파렴치한 행위로 지탄받는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한 것은, 형사상 사기 행위를 특별히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정직한 행위에 대해 별도의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렇다 보니 재판정이 거짓말 경연장으로 전락했다는 한탄이 나오게 되었다. 요약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부조리가 묵은때처럼 잔뜩 낀 세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학에서 상상을 통한 미적 추구 이외 정의와 진리에 목말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부조리와 관련한 문학은 카뮈의 '이방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카프카의 '변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1984년' 등 수없이 꼽을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사회적 불평등, 부조리, 인간 소외와 고독을 고발하고 있다. 사회가 풍요롭고 편리해질수록 인간 소외와 고독, 부조리는 오히려 심화하니, 부조리는 문학의 화두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과, 파렴치한 악덕 업자와, 권력의 부도덕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한다. 또한 거악에 복수로 맞서려다가 뫼비우스 띠처럼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가해와 피해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모순 역시 신랄하게 묘사한다. 가진 자의 도덕적 해이와 갖지 못한 자의 비극적인 상황은, 전형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로 건재하다는 점에서, '난쏘공'은 과거형이 아니다.
수필에서 사회적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어쩌면 장르의 특성상 모양 사나울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 소외와 고독, 부조리는 장르를 초월하는 문제라 할 것이다. 소재의 특성상 경수필보다 중수필로 다루면 오히려 적절해서 반향이 작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