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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피앗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rigel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5~16)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 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7~18) 신명기 30장 15절에서 '보아라'(레에; reeh)라는 말이 쓰인 것은 이제 최종적인 선택이 각 개인에게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모든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너희 앞에'에 해당하는 '레파네카'(lepaneka;'네 얼굴 앞에'라는 뜻)와 '오늘'에 해당하는 '하욤'(hajom)이 전하는 뉘앙스는 하느님의 축복과 저주의 두 길에 대한 제시가 매우 도전적이며 현재적이란 사실이다. 즉 결코 비밀속에 감추인 신비스러운 그 무엇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 앞에서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제시하는 것이다.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 (15) 여기서 '행복'(복)으로 번역된 '토브'(tob)는 '좋은'(good)이라는 의미이며, 정관사 '하'(ha)와 결합하여 '좋은 것' 또는 '선'(善)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행'(화)으로 번역된 '라'(la)는 '악'(惡; evil)을 의미한다. 여기서 '행복과 불행'은 '선과 악'을 말하는데, '선과 악'은 어떤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각각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 약속하는 '축복'(번영; 신명4,40; 5,29.33;6,3.18.24; 10,13)과 그와 반대되는 '저주'(신명4,26; 8,19)를 말하는 것이다(신명11,26). '축복'을 의미하는 '선'(善)과 '저주'를 의미하는 '악'(惡)은 현세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에 '생명'과 '죽음'은 내세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예레미야 21장 8절에도 '이제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놓아 둔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두 길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여부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어진 부가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생명 자체이기에, 비록 계약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 선택 사항인 것처럼 주어졌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그 말씀을 지키는 것만이 생명을 위한 유일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16) 신명기 30장 15절에 명사로 소개된 생명과 행복을 동사를 사용하여 한층 더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너희가 살고'로 번역된 '하이타'(haitha)는 '살다'는 뜻을 가진 '하야'(haja) 동사의 2인칭형이다. '하야'(haja)동사가 풍기는 뉘앙스는 '생명과 존재를 지켜가다' 혹은 '생명을 소유하다'이다.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존재를 지켜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또한 '번성할 것이다'로 번역된 '라비타'(rabitha)는 '많아지다'란 뜻을 가진 '라바'(rabah)동사의 2인칭형이다. '라바'동사는 특별히 수적인 증가를 나타내는 말로서 여기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후손의 축복이(창세15,5)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볼 때 율법의 순종을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게 되는 궁극적인 축복은 생명과 계약 공동체의 백성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율법이 지향하고 있는 최종 목적지가 단순히 물리적이고 육적인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을 거쳐 새 예루살렘까지 향해 있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 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7~18)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17) '돌아서서'로 번역된 '이프네'(ipne)는 '얼굴을 ~로 향하다','돌아서다'란 뜻을 가진 '파나'(pana)동사의 미완료형으로서, '돌아서서 뒤를 바라보는'이란 뉘앙스를 가진다.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에 해당하는 '이프네 레보브카'(ipne lebobka)를 살펴보면, 마음의 고민을 가지고 생각하다가 결정하는 상황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굳힌 생각이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모든 죄악과 불순종이 사람이 결정한 의지적인 생각에서 비롯됨을 암시해 준다.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7) '유혹에 끌려'로 번역된 '닛다흐타'(nidahtha)는 '추진하다','몰아내다'란 뜻을 가진 '나다흐'(nadah)의 수동형 2인칭으로 '내몰리다', '이끌리다'란 뜻이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 욕심에 이끌리어 행동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경배하고'로 번역된 '히쉣타하위타'(hishethahaita)는 '굽히다', '구푸리다'는 뜻을 가진 '샤하'(shaha)의 재귀형으로서, '스스로 몸을 구푸려서 경의를 표하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경배하는 몸짓을 묘사하는 말일 뿐 아니라 절대적인 순종을 바치는 행위를 말한다. 더욱이 '그들을 섬기면'으로 번역된 '아바드탐'(abadtham)은 '노예'라는 뜻의 '에베드'(ebed)명사와 동일한 어근('아바드'; abad)을 가지는 말이기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즉 출애굽을 통해 자유를 얻게 하신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다시 죄와 죽음의 종노릇 하는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필연적 멸망과 땅의 상실, 즉 축복과 영화와 생명의 단절을 초래하게 된다. 이 말씀이 모세를 통해 B.C.1406년 경에 주어졌는데, 이 말씀이 실제로 아시리아에 의해 북부 이스라엘의 멸망(B.C.722), 바빌로니아에 의해 남부 유다의 멸망(B.C.586), 바빌론에서의 포로 귀환(1차 B.C.537; 2차 B.C.458; 3차 B.C.444), A.D.70년 로마에 의한 멸망 후,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까지 계속되며 그대로 이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