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들이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원룸이란 것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의 처사는 못마땅하다. 사방 2미터를 간신히 넘는 전형적인 1인용 원룸인데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40만원 관리비가 5만원 인터넷은 개인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작년 학교 때 원룸은 넓었고 옷장, 침대, 책상까지 있었는데 이곳은 그런 것이 없다. 수도세도 따로 안냈었다. 같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지역마다 다르긴 할 거다. 그리고 40만원은 물가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석관동과 망원동이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 몰랐다.
석관동에서는 인터넷이 공짜였고 정수기도 공동으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서비스가 없다. 게다가 이사하는 날인데도 주인 얼굴을 보지 못했다. 들어가기 전에 잔금을 인터넷뱅킹으로 보냈더니 그후로 볼 일이 없어진 거였다.
처음 방에 들어가 전등을 켜니 깜빡거렸다. 방바닥은 당연히 썰렁했다. 점심 먹고 와 다시 켤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주인이 난방을 미리 해놔서 바닥이 따뜻했었다. 이사한 날부터 불편한 것을 물어보고 수시로 만났었다. 나중에 침대도 바꿔주고 냉장고도 바꿔줬었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형광등 깜빡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집에 가면서 집주인에게 전화로 전등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주인의 대답이 어땠을까? 자신이 아침에 켰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말이 더 꽤씸했다. 그때문에 말이 길어졌다. 그렇더라도 처음 입주하면서 그런 상태니 고쳐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뭐라고 답했을까? 얼마 안되는 것(돈)이니 그냥 고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한다. 이런 반응은 누구나 일반적인 것일까? 내가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것일까?
주인 얼굴 볼 수 없는 걸 보면 이집은 사람은 보지 않고 돈만 보는 거였다. 이해는 된다. 등기부 등본에 그것이 나와 있다. 매매가가 석관동보다 볼품 없는 건물인데도 훨씬 더 비쌌다. 이곳은 11억원, 그곳은 7억원. 서울과 지방의 차이다. 이런 말이 있다. '서울은 집값 빼고 다 싸다. ' 그러니까 임대료는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이사한 날 중국집에서 간짜장 가격이 4천5백원이었다. 수원은 6,7천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공산품 가격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집값에 반비례해 사람값도 싼 거였다.
어제 오늘 할일없는 내가 미진한 물건을 더 날랐다. 아들이 출근한 방에 들렀다. 처음보다는 덜 어색하다. 이틀 난방으로 냉기가 가셨다. 그래도 여전히 답답하다.
시장통을 지나오며 젊은이들이 앙증맞게 꾸며진 가게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런 게 인터넷 맛집인가 보다. 꽤 먼 곳 사람들까지 찾는 동네였다. 나중에 망리단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한강을 건널 때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강물에 물새들이 한가롭다. 아니 물새들이 살만한 집은 보이지 않는다. 새들이 돈을 내지 않아서 그럴까? 물새가 집을 지을 곳이 없다.
당산 철교를 건널 때 노무현이 생각났다. 그때 사람들은 경국대전이 어떻고 관습헌법이 어떻고 하며 요설을 떨었었다.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뜻을 굽히게 하려고 기득권들이 찍어누른 말이 요설 아니면 무엇인가? 그말에 속고 힘에 눌려서 지방분산의 기세가 꺾였다.
그들에게 당한 것을 반성하며 생각했다. 건축설계를 꼭 서울서 해야 하나? 아들은 건축가 지망생이다. 말처럼 열정페이로 산다. 청주서 열정페이 하면 안되나? 시설이나 기계가 특별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술만 있고 의뢰자만 연결되면 되지 않겠나? 그러나 이유가 있다. 만약 수원에 사무실이 있으면 어떨까? 똑같은 사람들이 하더라도 수원에서 하면 B급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이다 . 모든 것이 다 그럴거다.
노무현이 내 형도 아니고 내 할애비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것은 내가 기득권과 싸움에서 진 거였다. 그 기득권이란 것도 대단한 것은 아니다. 서울 땅값일 뿐이다. 헌법재판관도 스스로 요설인 걸 알았을 거다. 그걸 모르면 바보니까.
그런 요설이 서울경기 사람 2천만명 빼고 지방 사람 3000만명을 우롱한 거였다. 나를 포함하여 뻔뻔하고 멍청한 사람들이 서울 집값을 비싸게 떠받치고 있다. 그러니까 지방분산, 이런 말하면 대통령 되지 못한다. 아직도 박정희가 뿌린 독초씨가 싹을 틔어서 서울 땅을 덮고 있다. 누가 감히 거기다 제초제를 뿌릴 수 있겠는가?
아들이 사는 집은, 1층은 주차장, 2, 3, 4층에 방이 네 개씩 있다. 서울 원룸의 꼭대기 층과 지하층은 불법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심지어 불법 증개축을 자진 신고한다고 한다. 벌금 내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합법으로 인정해주기도 했었다.
아들 방은 북향으로 2층에 있다. 나오며 옆방들이 궁금했다. 남향인 두 앞방 문에는 일요일날 봤던 광고스티커가 아직 붙어 있다. 더 궁금해져 밖에서 건물구조를 살폈다. 아직 사람이 없는 남향 방 앞을 앞 건물의 벽이 50여센티 앞에서 가로 막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돈 벌려고 원룸 사업을 시작했는데 건물을 잘못 골랐다. 로얄층 두개가 봄인데도 자기들끼리 논다. 친절하지 못한 집 주인이 갑자기 나와 동종 인간으로 느껴졌다. 사람은 동에서 뺨맞고 서에 가서 분풀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현실로 공감하는 말이면 명언이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 의존관계는 서로가 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제도 아내와 용인 리바트공장에 가서 의자 한개를 샀다. 아들이 그런 태도를 달가와하지 않겠지만 일요일에 갔다주어야겠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2017년 3월 30일
그후 인터넷과 TV를 보니 아들이 받는 월급은 열정페이가 아니라고 한다. 훨씬 더 열악한 것을 열정페이라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들은 오늘 저녁 회사에서 제주도로 놀러 간고 한다. 지난번에는 강원도에 놀러갔었다. 하기는 수시로 바깥 바람을 쐬게 하고, 금요일 근무하지 않고 놀러가는 열정페이가 어디 있겠나? 2017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