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정사의 건립 (43)
사왓티로 돌아온 수닷따는 곧바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사왓티성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고, 가고 오는 데 불편이 없어야 하며, 더욱이 조용한 곳이어야 했다. 사리뿟따와 함께 여기저기 물색하던 수닷따가 드디어 적당한 곳을 찾았다.
그곳은 꼬살라국의 태자인 제따(Jeta) 소유의 동산이었다. 수닷따는 제따태자를 찾아가, 부탁하였다.
“태자님의 동산을 저에게 파십시오.”
“팔 생각이 없습니다.”
돈이 아쉽지 않은 태자는 큰 나무들이 즐비하고, 맑은 샘과 연못이 시원한 자신의 동산을 팔 이유가 없었다.
태자가 고개를 돌리자 수닷따는 다급해졌다.
“태자님, 부디 그 동산을 저에게 파십시오.”
“팔 생각이 없대도 그러십니다.”
“값은 원하는 대로 쳐 드리겠습니다. 제발 저에게 파십시오.”
제따태자는 웃음을 흘렸다. 꼬살라국의 거상이 겨우 동산 하나를 갖지 못해 안달인 모습이 우스웠다.
태자는 장난삼아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일어섰다.
“돈이 많은가 봅니다. 동산을 황금으로 덮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럼 거래가 성사된 겁니다.”
걸음을 멈춘 태자가 돌아보았다.
“거래가 성사되다니요?”
“동산을 황금으로 덮으면 팔겠다고 방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자는 노기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난 당신에게 동산을 팔 생각이 없으니 썩 물러가시오.”
그러나 사왓티 최고의 장사꾼 수닷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곧 재판을 신청했고, 확대된 분쟁은 꼬살라국 최고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꼬살라국의 원로와 현인들이 모여 오랜 상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말에는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농담이었다고는 하나 만인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태자님이 자신의 말을 번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수닷따는 환호하며 황금을 가져다 동산에 깔기 시작했고, 제따태자는 못마땅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왔다.
마차들이 종일 엄청난 양의 황금을 날랐지만 동산은 반에 반도 덮이지 않았다.
기우는 석양빛에 쭈그려 앉아 땅바닥을 긁적거리는 수닷따에게 태자가 비웃으며 다가갔다.
“장자여,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말하시오.”
자리에서 일어선 수닷따의 얼굴에는 한 점 그늘도 없었다.
“저는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창고의 금을 꺼내올까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재물을 낭비하면서까지 동산을 사려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오.?”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해 정사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태자님, 저는 이익을 쫒는 장사꾼입니다. 저는 부처님을 만나 어느 거래에서보다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지금 제가 들이는 밑천은 앞으로 얻을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사가 건립되면 매일같이 부처님을 뵙고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닷따의 눈동자는 확신과 기쁨으로 빛났다. 자신의 전부를 던질 만큼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제따태자는 감격했다. 횃불을 밝히고 창고에서 더 많은 황금을 가져오도록 지시하는 수닷따에게 제따태자가 말하였다.
“그만 하면 충분합니다. 이 동산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태자님”
“이토록 당신이 정성을 다하는 분이라면 훌륭한 성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동산의 입구만은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성자들이 머물 이 동산에 화려한 문을 세우고 제따와나라마(Jetavanarama. 祇園精舍)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권력과 큰 재산을 손에 쥔 태자가 부처님께 호의를 가진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수닷따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태자님.”
큰 공사가 시작되었다. 수닷따는 정사 한가운에 부처님이 머물 향실(香室, Gandhakuti)을 짓고,그 둘레에 장로들이 기거할 방을 만들었다. 이어 대중 비구들의 처소와 거대한 강당을 짓고 휴식을 취할 장소와 경행할 길을 차례차례 정비하였다. 비구들이 목욕할 연못에는 여러 빛깔의 아름다운 연꽃을 심었으며, 정사 주위에는 달콤한 열매와 그늘을 제공할 망고나무도 심었다. 또한 큰길 가까운 곳에는 시원한 물이 솟는 샘을 여러개 파서 비구들은 물론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따태자는 수닷따에게 목재를 지원하는 한편 땅값으로 받은 돈으로 동산 입구에 아름다운 정문을 세웠다.
오랜 노력 끝에 정사가 완성되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낙성식에 참석하셨다.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수닷따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제자가 이 정사를 부처님께 바칩니다.”
부처님은 손바닥을 펴 수닷따의 말을 가로막으셨다.
“장자여, 이 정사를 이미 교단에 들어온, 현재 들어오는, 미래에 들어올 사방의 모든 비구들에게 보시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
수닷따는 황금 주전자로 물을 부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제따태자께서 보시한 숲에 수닷따가 세운 이 정사를 과거, 현재, 미래의 사방승가에 보시합니다.”
운집한 사왓티 백성들이 자리에 앉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사는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쇠파리, 모기, 전갈 등 벌레의 위험에서 보호해주며, 뱀과 사나운 짐승들의 위협도 막아줍니다. 또한 정사는 거센 폭풍우와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도 막아줍니다. 이렇게 좋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사를 보시한 것은 크나큰 공덕이라고 나 여래가 말합니다.
이롭고 좋은 결과를 원한다면 지혜로운 이들이 머물 정사를 짓고, 알고 본 법을 거짓없이 설해주는 비구들에게 깨끗한 마음으로 옷, 음식, 약, 침구를 보시해야 합니다. 정사에서 지내는 비구들은 부끄러움 없는 수행자의 모습을 가꿔나가야 하며, 자기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설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시주와 비구 모두 참다운 진리를 구현해 현재 이곳에서 고요한 열반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왓티 사람들은 수닷따를 고독한 이들에게 물자를 공급해주는 사람 즉, 아나타삔디까 (Anathapindika, 給孤獨)장자라 부르고, 제따태자의 숲에 세운 정사를 기수급고독원 (祇樹給孤獨園, Anathapindikarama)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