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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죄와 사망을 무력화 시키는 십자가 나무에 대한 4부 말씀을 지금 시작 하려고 하는데요
평상시에 제가 이 시간까지 지금 한국 시간으로 7시인데 여기 시간으로 5시입니다.
이렇게 밥을 안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제가 의도적으로 몸이 알아서 먹을 것을
허기를 채우려고 찾아 다닙니다.
그래서 배부름을 좀 누리려고 그런데요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지나가는 말로 지금 이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될 것이니라 하고
제가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지 않은 것은 양식을 먹으면 세상이 주는 떡을 먹으면
세상이 주는 떡으로 인한 그것으로 배부름은 나에게 채워질지 몰라도 그 외에 생명의 양식인 떡이
주지 못하는 그런 것들은 제가 소유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
제가 어저께 의약품 파라돌이라는 것을 거절하고 안 먹고 주님 죽으면 죽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도 기한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나는 살아야 됩니다.
나의 지금 이 상황을 구원해 주십시요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 라는 얘기밖에는 나오지가 않더라구요
그러면서 이런 말씀들이 막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되는구나 그분을 전적으로 믿어야 되는구나
그 호박에 독소가 들어 있어서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가루를 집어넣었죠(내살을 받아 먹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 도착하여 쓴물을 마실 수밖에 없을 때 정말 목말라 죽을 지경에 처해 졌을때
나무 가지 하나를 던지라 아~ 이런 것들이 골고다 십자가의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 나무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그 일을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친히 짊어지시고 그 나무에 달리셔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구나 아! 이것이 사망을 없애는 방법이구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니까 다윗이 구원을 받았고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다니엘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라는 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그 순종의 마음을 드렸을 때 하나님이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구나
그런 것들이 사망을 이기는 방법들 중에 하나구나 라는 말씀을 2부 3부의 말씀을 통해서 전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망과 죽음을 이기는 것 이것의 시작점과 출발은 죄로부터 죄의 삯은 사망이다 라는
그 말씀에서 비롯됐다 라는 거 그러나 죄는 죄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골고다의 언덕에서 그
선악과 나무를 아담이 취함으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지고 그 결과물로 말미암아 연약함과 질병, 죽음이
찾아온 그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끌어안으시기 위하여 나무에 달리시는 일을 우리 대신 해 주셨구나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은 내가 함께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내가 부활 속에 동참하여서 내가 부활한 것이구나 라는
이 연합된 믿음을 신뢰하고 믿고 영접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망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 라고
빌립보서 2장 23절 말씀을 제가 3부 말씀을 통해서 얘기를 해드렸습니다.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이 사망을 이기는거 우리가 사망에서 벗어나고 죽음으로부터 이렇게 완전히 해방을
받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몸이 어떻게 영원히 죽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사람에게 생명의 년수를 주어서 70 80이 되면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확신적인 소망을 주신 것은 우리가 죽을 수도 있고
그리고 죽지만 반드시 영원히 죽으라는 법은 없다 라는 것이 구약성경을 통해서 나온다 라는 것을
엘리야 와 그리고 에녹을 보면 그리고 죽음을 이긴 자들의 삶을 보면 죽는 것은 우리에게 정해져 있지만
반드시 죽어야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이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죽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죽으라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한 말씀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골고다 십자가 상에서 선악과 십자가 나무에
달리시고 달리시기 전에 그 십자가 나무의 무거운 짐을 아담이 범한 모든 죄의 책임을 대신 끌어안고
짊어지고 지치고 곤고한 가운데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골고다 언덕까지 끌고 가셔서 그 선악과 나무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의가 되게 하시고 내 사망이,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여 주신 바꿔치게 하여
주신 이것을 먹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요한복음 6장 54절 말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왜 영원한 생명을 가졌느냐? 죄의 능력이 무력화 되고 죄의 삯인 사망인 그 삯의 죄의 결과물인 사망의
권세가 무효화 됐음을 골고다의 선악과 나무에 달리시는 그 일들을 통해서 죽음을 생명으로 죄를 의로
바꿔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신 것이 거듭나게 하는 삶입니다.
이 예수님의 바꿔치기 한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죄의 권세를 무효화시킨 이 일을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 주 예수님이 이 일을 골고다 에서 나무를
짊어지시고 달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일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자들은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생명 곧 하나님의 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 안에
새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하나님의 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 영을 지니게 된 자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린다 라고
요한복음 6장 54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좀전에 이 살에 대한 말씀을 드렸죠 또 내 피를 마시는 자 십자가를 통해서 이 두
가지 문제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출산되어졌습니다.
아담 몸의 옆구리를 통해서 하와가 출생되어진 것처럼 물론 피가 나왔겠죠.
옆구리에서 그 갈비뼈를 취하였을 때 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가 잠자는 동안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의 죽음이라는 것은 잠자는 것이고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 로마 병정의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거예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있는 가운데 그 일을 아담과 똑같이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구속을 위한 죽음을 당한 것이고)물을 쏟으신것은 (생명을 보전하고 생명을
공급하시기 위한 것이다) 교회를 출생, 출산, 산출시키셨어요.
이것을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필요 합니다.
영원한 생명 영생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 생명을 소유한 자가
죄의 능력이 무력화되고 사망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멀리 아주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제거되었다,
잃어버린바 되었다 라는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찾아온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이 있는 것이고 죽음을 거치지 않을 자들도 있고 왜
예수님이 우리가 살아있을 때 특권이죠 만약에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이와 같은 신앙의
믿음을 가진 죄의 능력과 사망의 권세가 무력화되고 무효화되고 완전히 폐기 처분되었다 라는 이 사단이
가진 모든 것들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완전한 이런
영생을 영이 거듭나는 일을 통하여 거듭나는 순간에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내주하셔서
그 영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을 영원히 거치지 않고 주 예수님을 영접할 자들도 있다 라는
아~ 여러분 이게 특권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바로 이러한 뜻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 한번 읽어볼까요.
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의 예수님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생명의 예수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인식하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단지 부활의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생명의 예수님이기도 하다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부활이요 그리고 생명이니 부활이란 생명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근거로 하지 않고서는
부활이 있을 수 없어요.
그 부활 속에는 생명을 소유했기 때문에 생명이 나타나졌고 표현됐기 때문에 바로 부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의 예수님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를
생명을 소유하게 하고 생명을 주셔서 영생을 주시는 그런 것을 조금 간과하고 소홀 하게 여겨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인즉 우리가 죽으면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압니다.
이거를 믿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현재 내가 지금 속해 있는 이 장소에 한국이면
한국 동남아시아면 동남아시아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장소에 내가 살아 있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이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예수님이라는 이 사실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는 얘기를
제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예수님이 나를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거의 다 알고 있어요
예 그렇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주 예수님이 생명의 예수님이
되어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창조되지 아니한 그 생명이 주 하나님이 거듭나는 순간에 내안에 오셔서
내 안에 내주하는 내 안에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염두에 두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현재 생명의 주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장래에 부활의 주가 되실 예수님을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는 주 예수님은
미래의 장래의 부활의 주 일뿐만 아니라 현재 지금의 생명의 주시라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면 그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얼마나 거기에 염두를 두고 얼마나 거기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주의하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걸 따져보면 내가 정말 소홀히했구나 판단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라고 얘기하신 것입니다
한 가지만 믿고 있으면 안 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의 주가 되셔서 거듭나는 순간에 골고다
그 십자가에 그 선악과 나무를 짊어지시고 가시고 매달리셔서 죽으셔서 부활하신 그분을
믿는 순간에 그 생명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날마다 생명의 사람으로 새 생명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고 조성시켜 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지금 나를 믿는 자는 죽은 자들이 아니에요.
지금 살아있는 자들이에요 살아있는 자들인데 어떻게 삽니까 죽어도 살겠고 생명을 소유하니까
죽음이 물러나갈 수 밖에 의를 소유하니까 죄가 물러날 수밖에 없어요
죄 대신에 의가 사망과 죽음 대신에 생명의 주를 받아들인 그 생명의 주를 믿는 자는 지금 현재
내가 미래에는 죽을지 몰라도 무덤 속에 몸이 들어가 있을지 몰라도 지금 현재 나는 살아있는 자다
살아있는 자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것을 주시고 그때 당시에 나를 믿는 자는 너희가 죽어도 살겠고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는 지금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니라 라는 말은 우리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은 먼훗날 죽은 다음에 부활이 있을 것을 알았겠죠
그런데 우리는 먼 훗날의 부활이 아니라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니라 라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통해서 미래에 장래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펼쳐질 부활의 주를 통해서
부활을 우리가 받아들인 것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
하나님의 영 내 영 안에 계신 그분으로 인하여 지금 내가 영원히 죽지 않사람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니라
영원히는 말하는 그 순간부터 계속 끝까지입니다.
죽은 다음에 부활후의 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것이고 언젠가는 또 부활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알고 있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죽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사람 특별한 특권이 있는 자들에게는 살아서 주님을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접할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혹이나 우리 시대에 우리 세대에 우리가 생명이 유지되고 보존되어 있는
이때에 지금 현재 시대에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수 있다 라는 것을 왜 갈망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고대하지 않는가요?
왜 죽은 다음에 부활의 예수님만을 만나게 하고 살아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나를 데려가심을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시고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폐기 처분하시고 무력화시킨
그 완전한 사망의 권세를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소망과 그 소원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왜 여러분들은 그렇게 기대하고 소망하고 갈망하지 않는가요
그것은 바로 부활의 주님 미래에 다가올 부활의 주님은 믿고 있어도 지금 현재 생명의 주가 되시는
생명의 주 생명의 예수님이 우리들 영에 내주하셔서 그 일을 몸을 통해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그렇게 고대하지 않는 겁니다 바라지 않는겁니다
인내하는 마음으로 내 속에 그것을 채워놓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나사로 처럼 완전히 죽은 후에 시체가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가운데 살아나는 그런 부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일도 있지만 살아서 그분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러한 일도 있다 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는 또는 죽었어도 주님을 영접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가 짊어져야 될 그 선악과 나무 우리를 범죄케 하고 우리를 죽게 하고 모든 사망의 근원과 죽음의
근거가 되는 모든 시작점이 되는 그런 죄의 문제를 몸이라는 것을 통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친히 지치신 몸을 이끌고 우리가 짊어져야 되고 우리가 고통당해야 되고 우리가 괴로워해야 되고 우리가
그렇게 경험해야 될 죽음을 예수님께서 친히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바꿔치기하고 연합되어진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니까요.
원래 우리는 사망의 깊은 죽음이라는 터널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러한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 뭐예요.
최초의 구원에 대한 복음을 아담에게 제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해준 거예요 감사한 일이죠.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얼마나 우리를 염두해 두시고 염려하시고 긍휼히 보시고 불쌍하게 보시고 사랑하시면 한 번 더
이러한 유예의 기회를 주셨느냐 이말이에요 이 유예 기간을 70이나 80이라는 인생의 삶의 수한을 통해서
때가 찰 때까지 우리는 그 일을 도모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되고 투쟁해야 되고 피흘리며 싸우기까지 하면서 쟁취를 해야 됩니다 천국은 빼앗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사닥다리를 보여주신 것처럼 십자가를 통해서 그 높은 하늘로
하나님이 계신 그 말할 수 없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그 하늘의 가장 꼭대기 하나님의 보좌에 친히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닥다리를 성육신을 통해서 만들어 예비해 놓으시고 준비해 주신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과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새 생명을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들림받게 되는 승천하게 되는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까지
인도하실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으셨는데 이 일을 통해서 우리는 사망을 이기는 경험을 해야 되는데
사망을 이기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전에 얘기했던 2부에서 얘기했던 그런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죄를 없이 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을 연약하게 만들고 질병을 갖고 오게 해서
수한이 찰 때까지 더 이르기 전에 그전에 우리의 생명을 사단이 뿌려놓은 죄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의 수한을 채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도모하지 못하고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들로 말미암아 그러한 죽어버리는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때까지 일을 이루실 때까지 특별한 지시함이 없는 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수한 때까지 몸과 혼과 영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혼이 좋은 생각들 좋은 감정들
올바른 것을 주장하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바른 의지를 분별하여 우리가 취하여서 영에게 순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전파하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을 도모해야 됩니다 .
시간만 나면 이런 교제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과 교제를 나누고 모자라는 것은 기도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중보 기도하고 내가 모자라는 것은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는 여러분들의 문제예요
우리 중에서 몸의 지체 가운데 손이 아프면 손이 아픔으로 말미암아 다른 것들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활발히 활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조그만 가시에 손이 찔리면 그 아픔과 고통 때문에 입맛까지도 없어지죠 생각도 혼란스러워져요
조그마한 어떤 일들이 전체 몸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훼손시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때가 되면 늘 기회만 되면 여러분들의 전체 우리가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와 관계된 자들을 위해서 하늘소리 선교회의 봉사자들과
후원자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예요 나의 문제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우리 전체의 문제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고 활성화될 때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이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여서 사랑하는 자여 내 영과 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몸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잘
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이 갈망하신 것은 우리 인간이 하기 나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특별히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 그 예수님이 하늘로 들려가는 일 승천하는 일
주님의 품에 이끌림 당하는 일을 갖지 못하도록 지금 극구 반대하고 대적하고 대항하는 것이
바로 원수 사탄 사망이 하는 일입니다.
사망은 우리를 연약하게 합니다.
몸을 빈약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들고 곤고하게 만들고 그래서 때로는 어떤 일에 빠져서
어떤 도모하는 일이나 어떤 직장의 일이나 하는 일들을 통해서 너무 피곤하면 안돼요
원수에게 속임당하고 있는 거예요 거의 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여도 교회를 위해서 한다고 하여도 거의 뱀과 전갈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역사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귀신들의 장난이요 사단의 역사요 악한 영들의 기가 막힌 계교입니다.
참 영이신 생명의 영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만이 창조되지 아니한 새 생명을 주시는
그분만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혼을 우리의 몸을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서 새롭게
작동시켜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혼을 모든 기능을 올바르게 작동시켜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창조의
신이요 창조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 뿐 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사를 너무 기대하고 병 고치는 능력들 중요하죠 은사들 중요합니다.
그것을 너무 치우치고 너무 도모하다 보면 참 영이 아닌 세상에 악한 영이 그것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마치 자신이 하는 일들을 하나님이 하는 것으로 바꿔치기 하여서 사람들을 자기 것으로 자기가
다스리는 것으로 바꿔치기 해버립니다.
얼마나 무서운 계교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십자가 그 선악과 나무를 대신 짊어지고 가시고
그리고 그 나무에 달리셔서 죽으셨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그 골고다 그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시고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죄의 능력을 폐하시고 죄의 권세인 사망과 죽음을 없이하셨어요.
마귀의 일을 멸하셨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마귀의 일은 뭐예요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를 짓게 하고 죽게하고 사망에 거하게 하는 일인데 그 일을 없이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선악과 나무를 짊어지고 가셔서 달리시고 죽으시는 일을 통하여 할렐루야!
요한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미 우리 성도들이 우리 교회들이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나무에 달리신
이 베드로 전서 2장 24절 말씀을 통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을 여러분이 경험하셔야 됩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영이시죠
부활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영으로 우리들 모두에게 이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 일 하지 못하셨어요 제자들만 만났습니다.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이신 주의 영을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임하셔서 지금 죄와 사망을 이기도록 우리를 이끌고 인도하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을 활용을 안하고 생명을 지금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영 안에 계셔서 영과 혼과 몸이 활성화되어서 그 일을 온전히 도모해서 하나님이 급기야 나타나시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이 사실도 알지 못하고 아직도 죄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도 죽음도 이기지 못하고 있으니 이거를 아는 사단은 옳다구나 내 세상이다 하고 주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그 영과 혼과 몸 속에 자신의 전진 기지를 몸속에 틀어박고 혼으로 침투하고 영으로 적셔져서 훼손시키고 파괴시키고 파쇄시키는 일들을 육신의 몸을 공격하는 일을 가장 먼저 감행하는 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는 일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죄의
능력을 이기고 사망의 권세를 사단이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사망을 이기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삶을 사는 자들을 싫어 하기 때문에
그는 지금 무자비하게 무차별적으로 안믿는 자들에게는 세상과 세속을 통해서 믿는 자들은
교회의 잘못된 진리와 거짓 복음을 통해서 올바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이런 이상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내가 있는 그곳이 참생명 과 참 진리가 되지 못한다면 참 양식이 되지못한 그곳에서
여러분 속히 빠져나오셔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죄와 사망을 이겨나가지 못하는 죄의 능력이
무력화 됐다는 것을 생명의 주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체험되지 아니하면 이 말씀을
더 이상 듣지 마시고 참 진리와 빛을 전하는 그 교회를 찾아서 여러분이 떠나셔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변화된다면 이런 말씀을 듣고 도전이 되고 부딪히고 싸움이 되고
왜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지? 이 말씀이 맞는데 이 빛이 비춰진 것이 옳은데 "의"인데
하나님의 뜻인데 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더욱더 인내하시고
이 진리를 겸허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가루가 되셔서 우리에게 양식이 되어 주신 것처럼
산산이 산산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여러분이 떨어지셔서 가루가 되고 파쇄가 되고
짓눌려지고 쪼개지고 깨어지는 일들 육신의 그런 일들이 생겨야 혼이 사라지고
죽었던 그 혼에 지금 영접하지 않은 자들은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혼의 생명은 천연적인 생명이므로 다 그것이 영을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몸의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거짓된 마귀의 인도함을 받는 일들이 되기 때문에
혼의 생명을 제거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혼적인 생명들은 다 육적이고 천연적이고 다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순전히 영에 속한 삶이 돼서 영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님에 의해서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양날의 날 선 검이 되어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골절을
몸을 잘라 쪼개서 분리시켜야 됩니다 제거해야 됩니다.
나쁜 것을 죄를 부정하는 것을 냄새나는 것을 그렇게 해서 영의 통치함을 받을 수 있도록
영에 내주하시는 창조되지 되지 아니하신 거듭날 때 오시게 되는 그 하나님의 생명 신성한 생명을
받아들여서 영의 다스림을 영의 통치함을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 여러분들과 우리가 되기 위해서
우리들은 혼의 문제와 몸의 문제를 깊이 깊이 다루어야 됩니다.
사단은 몸을 최초로 공격을 합니다.
몸을 통해서 아담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몸을 공격하여서 자기 것이 되면 거기서 몸이라는
육신이라는 것을 통해서 전쟁을 할 때 전쟁 기지나 총본부가 있는 것처럼
몸을 본부 기지 삼아서 그것을 통해서 혼을 공격해 버립니다.
혼을 빼앗은 후에는 또 영을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고 몸을
여러분이 막으시고 몸이 원하는 거 육신이 원하는 거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참 지혜 스럽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런 것들 세상이 주고 세속이 주는 그런 죄의 미혹된 것들 유혹된 것들 그런 것들 모두를
거절하는 삶 그래서 광야의 삶이 필요합니다.
광야는 애굽에서 속해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거기서는 하늘의 것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것을 싫어 하네요 원망과 불평을 하네요
하나님이 그 반석에서 나온 물과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 구름 기둥과 불기둥 이것 외에 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준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면 너희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주었던 아흔아홉 가지는 좋아하면서 주님이 가나안 땅을 궁극적으로
가나안 땅 천국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주신 그 네 가지의 삶은 너무나 적다고 너무나 소소하고
보잘 것 없다고 오히려 불평하고 손가락질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대항하고 대적하는 삶을 사니까
40년 동안 유랑하고 방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요
빨리 벗어나야 됩니다 빨리 벗어나서 요단강을 건너야 됩니다.
요단강 건너기 위해서 그 혼의 훈련과 연단과 그 받았던 것을 원망과 불평하는 삶이 전혀 없는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좋아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사는 자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될 땅이 가나안 땅 입니다.
가나안 땅에 가면 모든 것이 저절로 주어지나요?
일곱 족속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한 족속인지 모릅니다.
아멜렉 족속을 통해서 그 일곱 족속 또한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왔을 때는 한 족속만 상대하여 전쟁을 치르면 됐었습니다.
공격하는 자는 한 족속이었어요 아멜렉 족속 광야에서 아멜렉 족속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오니까 아멜렉 족속의 7배가 넘는 일곱 족속이 나오네요
그만큼 주님을 모시는 일이 내 몸에 성전 삼아서 영의 통치를 받게 하려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놀라운 그 비밀 그 놀라운 우리의 몸을 통해서 벌어지는 그 신성한 생명을 소유받는 일이 얼마나 얼마나
놀라운지 얼마나 귀한지를 일곱 족속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일곱 족속이 왜 그렇게 강하게 역사를 할까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땅은 우리의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일곱 족속이 그렇게 싸워서 이기려고
그러니 혼의 문제가 해결돼야 돼요 자아를 완전히 돌아서 버린자 쉽게 말하자면 자아를 죽이면
없어지니까 말을 잘 들어봐요 자아를 죽이면 자아를 죽인다니까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아는 그대로 있는데 그 기능이 활동할때 기능이 활동하는 것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공격과
목표가 설정되어진 화살이 쏘는 그 목적지가 달라진 것으로 변화된 것을 말하는데요
여러분들 혼의 생각이 좋은 생각 좋은 감정 그런 주장하는 것이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좋아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를 수 있는
그러한 혼의 문제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는 자들이 건너가는 것이 홍해 바다가 아니라 요단강입니다.
홍해 바다는 세상을 벗어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는 우리가 이미 벗어버려야 돼요 아직도 그런데 세상의 문제에서 연연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저들을 바라볼 때 에~휴 언제 저들이 가나안 땅 언제 주님의 온전한 땅이 되어서
주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을까 여러분 하루빨리 자아의 문제를 해결받아서 제거해서 내 욕심대로
내 천연적인 내 방법대로 사는 그런 야곱과 같은 그런 끈질긴 생명의 힘줄 끊어버려야 됩니다.
안되면 하나님께서 쳐서라도 불구자 장애자를 되게 하셔서라도 우리를 쩔뚝 발이가 되게
하면서까지 우리의 육신적인 천연적인 고집들 내 이기적인, 탐욕적인, 정욕적인 것들을
다 깨부수고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서라도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마태: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오죽하면 그렇게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우리는 늘 사망의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간신히 생명의 호흡을 하나를 한다면 죽음의 이 세상과
세속이라는 이 쓰디쓴 환경 속에서 사망 죄악 가운데 99가지를 받아들이면서 살아나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습관화돼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꿔치기 해야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거 세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하나라면 세상을 등지고 살 수는 없잖아요
발을 딛고 있잖아요 세상을 떠나서 우리가 어떻게 하늘위에 둥둥 떠서 살아갈 수가 없잖아요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연결되는 것이 하나이고 그리고 99가지가 정말 생명을 주시는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새 생명 신성한 생명 우리 영 속에 내주하시는 그분이 내주하시는 이유가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내주하시는데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근육이 되고 살이되고 피가
되야 되는데 그래서 활기가 차고 내 생명이 살아있어야 되는데 그것을 사망의 분위기 속에서 살다 보니까
죄악된 공기들만을 마시고 호흡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영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의 호흡만 들숨을 통해서 생명의 호흡만을 들이마셔야 되고
날숨을 통해서 정말 이 사망의 분위기 죽음의 분위기 세상과 세상 속의 모든 것들을 다
쏟아내 보내야 됩니다 이것이 그냥 습관이 되어버려야 됩니다.
지금 우리는 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99가지는 사망의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고요
생명의 냄새는 단 하나 간신히 교회 생활을 통해서 말씀을 보면서 간신히 그것이 영이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결코 안됩니다 그러면 사망과 죽음을 이길 수가 없어요.
반대로 하나를 바라보고 하나는 왜 제가 하나를 얘기할까요
삶이 세상에 발을딛고 있기 때문에 하나라는 얘기입니다.
그것을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전체적으로 99가지 모두는 생명입니다.
진리를 생명의 냄새를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이신 그 성령님께서 주시는
매일 매 시간 매 시간 이기게 하시는 그 생명을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사망과
죽음을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이러한 삶을 날마다 날마다 죽음과 사망을 이기기 위해서 날마다 버리는 삶 자르는 삶 제거하는 삶
그리고 날마다 극복하는 삶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을 소유받기 위해서 간절하게
갈급하고 목말라 하는 그런 생명수만을 도모하고 하늘이슬 만을 받아 마시기를 원해서 부지런히 정말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그런 자들에게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기게 하는 힘을 주십니다.
그렇게 이기게 할 때 마귀는 더욱더 역사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요한복음 8장 44절부터 살인자라고 얘기하고 처음부터 그가 살인한 자요
처음부터 그는 거짓말하는 자다 하늘에서부터 그랬고 땅에 내려와서도 그랬고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가인이 자기 동생을 죽이는 일을 통해서도 그는 그렇게 거짓말로 살인한 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8:44)
여러분 사단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 믿는 자들 믿는 자들이 그냥 믿는 자들이 아니라 제가 말하는 그 믿는 자들이란
거듭난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선악과 나무를 대신 짊어지시고 쓰러지시면서 쓰러지시면서
기어가시면서도 끝까지 그 나무를 포기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감당하신 그 예수님이 짊어진 그 나무에
예수님이 달리시고 그리고 그 나무를 통해서 죽으신 그 죽음 이것을 믿고 영접하고 신뢰한 이 자들을
이 말씀을 전하는 저는 거듭난 자들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거듭난 자들에게 즉각적으로 그때 주어지는 것이 뭐냐하면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생명 이기게 하는 생명 죄의 능력을 무효화 하신 것을 알고 믿고 따르고 준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 사망이 주는 그 권세가 무효화됐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사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자들이 거듭난 자들입니다.
사단이 최종적으로 거듭난 자들을 향해서 하는 일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냐 하면요
그들을 빨리 죽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살게 되면 더 큰 일을 도모하게 되니까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니까요,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니까요, 하나님이 원하는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삶을 사니까 그것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빨리 죽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도모 하고자, 일하고자, 내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그 사람에게 가까이 해서
세상 사람들이 아닌 거듭난 자들을 그렇게 일을 도모하는 자들을 빨리 죽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예수님을 향해서 그렇게 했구요 제자들을 향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다니엘서 7장2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마귀가 하는 특별한 공격 수단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세상 일로 분주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25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27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거듭난 자들 믿는 자들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고 사망을 이기고 죄와 사망을 이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교회 안에서 이렇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단이 흑암의 권세로 이렇게 하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분주하게 만들고
괴롭게 하고 염려가 있게 하고 답답하게 하고 불면증을 갖고 오게 합니다.
우울증도 갖고 오게하고요 너무나도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싸우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오해를 갖게 합니다.
제가 전화를 받지만 않아도 사람들은 그 전화 받지 않은 일로 인해서 상당한 오해를 하고
시험거리가 되고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아도 시험거리가 됩니다.
불안함이 솟아올라요 공포심이 밀려옵니다.
이상한 걱정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밥맛도 없어지고 때로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시간을 투자해 버립니다.
지나치게 세상일에 지나치게 도모하는 일 또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그냥 간과하고
소홀히 하여서 내버려 둔 것도 사단의 미혹에 속임 당하는 일입니다.
사단이 집요하게 우리의 삶과 환경들을 통해서 아주 조그맣게 들어오는 아주 사소한 너무나도
아주 조그마한 그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를 오해케 하고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케 하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에서 떠나게 되고 절망과 낙심에 빠지게 합니다.
조그마한 그 손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그 틈새를 통해서 커다란 댐이 무너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 커다란 나무에 여기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이 코코낫 나무가 몇 년 전에 심어놓은 것이 있는데
한 나무에 한 300개 정도의 열매가 열려가지고 이웃 사람들이 하루에 10개씩 따먹고 20개 따 먹고
저도 하루에 한두개는 따먹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그런데 조그마한 벌레가 들어가서 구멍을 내면 그 나무 전체가 그렇게 크더라도 높이가
한 10m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요 이 큰 나무가 그대로 골병이 들어서 죽어 고사목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제가 굵은 소금을 잔뜩 사가지고 나무 꼭대기 까지 사람을
고용을 해서 소금을 뿌리고 밑에도 소금을 잔뜩 뿌려가지고 치료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이 소금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시죠 예 그렇게 치료 하시는 일을 소금을 통해서 하듯이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조그만 벌레 한 마리가 그 생명을 지니고 십수년을 자란 그 수백 개의
열매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았던 나무가 왜 힘없이 쓰러지나 했더니 조그마한 벌레
하나가 구멍을 파서 새끼를 치고 거기서 몇 개월 동안 일정한 시간 까지 살고 있는 동안에 병들어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아주 조그마한 근심거리와 아주 우리의 조그마한 인내하지 못함과 우리의
조급함 우리의 소홀히 하는 것들을 통해서 마귀가 아킬레스 건이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걸고 넘어옵니다 시험거리죠 아무것도 아닌 그 문제를 가지고 시험거리가 되는데
나중에 그것이 모래같이 조그마한 그런 시험거리가 태산처럼 큰 시험거리로 와서 자기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떠나게 되고 헤어지게 되는 그리고 오해하게 되고 싸움이 되고 분열이
되고 원수로 그렇게 갈라지는 사건이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흑암의 권세자인 이 사망과 어둠의 이 죽음의 공격이 얼마나 우리 주위에 많은지 몰라요
우리가 단순히 밥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프고 또 때로는 어떤 조그마한 질병도 걸리고 또 감기가
걸리고 또 배가 아프다 하고 여러 가지 이런 모든 것이 가만히 따져보면 자신에게
어떤 불의하고 불법한 하늘의 법칙을 따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불면증이 오는 것이고 감기에 걸린 것이고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지 그것이 하루아침에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10년 동안 담배를 피웠던 사람이 결국 30년 40년 이게 폐병이 걸렸는데
그 폐병이 담배로 인한 것인지 모르고 왜 나에게 이런 폐병이 왔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자기는 알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오래전부터 그것이 자기 자신이 그렇게 도모하고 세워진
일들을 통해서 어느 한순간에 그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무너진 것이 아니에요
서서히 서서히 때가 되면 그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 절대 절명의 순간적인 타이밍을 잘 잡고 그때 딱 공격을 해서 허물어 뜨리는 것입니다.
그 큰 나무가 죽는 거 보세요 간단해요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나무를 잘라서 보기 좋게 만든다고
그러는데요 제가 사는 이곳 에서 보기 좋게 한다며 자른 나무 다섯 그루가 다 죽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 하는 나무 들이었는데 예쁘게 한다고 다 잘라 버린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지 않으면 천연적인 자연적인 만물에도 법이 있고
하늘에도 법칙이 있고 우주에도 마찬가지로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을 활용해서 기가 막히게 그 아킬레스건 가장 내가 주의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잘 보지 않는
여러분 팔꿈치 잘 들여다보는 사람 있나요 목욕할 때 외에는 잘 들여다 보지 않게 됩니다.
자기가 유지하지 않고 관심 갖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고 간과하고 있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그런 사소한 어떤 문제를 통해서 나를 공격해 오는 것이 사단의 권세, 사망, 죽음의 그런 공격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살아 생전에 오실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죽음과 사망이라는 것과 정말
목숨을 다해서 싸워야 됩니다 이렇게 싸운 자들이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가 있는 것이지
이런 싸움을 하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에 편승해서 동참 할 수 가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십자가는 내가 이것을 보여 주어서
이를 제시했으니까 너희는 이제 죄와 사망 곧 세상과 죄와 사단과 너의 자신 혼에 대해서
철저하게 싸워서 죽음을 모면하라는 것입니다 사망을 벗어나라는 겁니다.
사망을 경험하고 죽음을 당한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사탄의 말에
동조했던 것이며 내 혼에 무관심하고 혼의 생명을 마음대로 방치했기 때문에 거기에 무성한 아카시아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마음껏 자라도록 했기 때문에 그곳에 왕이신 예수님이 임재해 오시는 길에 불편함이
되므로 말미암아 오실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무성한 잡초가 예수님의 오심을 방해하니 그릇되게 하는 막아서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
내가 없는 자 나라는 사람이 비어 있는 자 그게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랆이 나는 온유 하고 겸손하니 나는 겸손하고 온유 하니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가 비어 있으니 나를 내세울 나를 보여줄 나를 주장할 나를 나타내 보여줄
그런 일들이 없으니까 항상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입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말씀처럼 자신을 비워야 됩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자들이 비울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 자들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을 해보세요.
구구 절절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게 삶의 인생의 절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삶의 절정의 마지막 표현 입니다 그게 단 한 번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계속 죄와 사망을 이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죽음을 사망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얼마나 많이 사단의 권세를 통해서 찾아오는 연약함과 질병을 통해서 오는 죽음의 공격을
받고 있는지 몰라요 그리고 어떤 것이 죽음의 공격인지 어떤 것이 흑암의 권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아대는 것인지 어떤 것이 사단이 나에게 공격하는 것인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씀을 통하여 이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영의 분별력을 주십사하고
기도하시고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을 지니신
그분이 신성과 인성을 지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성된 우리 인간을 신성되게 하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분명히 알고 기억하고 심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성을 소유하여서 신성의 삶
하늘로 올라가는 삶 이기는 삶 사망과 죄가 관여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 바로 예수님이 금요일날 돌아가시고 그리고 3일 후에 한국 말로
주일날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는데 우리는 그 주일을 부활의 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일 그 부활의 날 주일날을 여러분 특별히 다른 날은 몰라도 그날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시고 사망을 이기는 삶 죽음을 이기는 삶 사망의 권세가 무효화됐다는 것을
인식을 하고 그날만큼은 이기는 삶 그러다 보면 월요일도 이길 수 있고 화요일도 이길 수 있고 계속
이길 수 있는 삶을 살아 갈수 있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루의 삶을 이겨야 내일의 삶을 이기고요 지금의 시간을 이겨야 오늘의 삶을 이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오늘 하루가 우리의 나의 생애에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죠.
엘지전자 어릴 때 광고인데 오늘의 선택이 지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라는
TV광고가 있었는데 전자제품 잘 선택을 하여 사라는 것처럼 지금 이 시간이 오늘 하루를 좌우합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의 한 달 우리의 일년 우리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지금 내가 이기지 못하면 내일 이기지 못해요
어떻게 지금 내가 이기지 못하는데 내일을 이길 수 있다고요 내일 되면 또 이기겠지
내일은 또 내일 가면 이기겠지 영원히 그 삶은 오늘이나 지금이나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영원히 패배한 자의 삶 아주 모자란 자의 삶이 바로 내일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미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을 직시하지 않고 원수 사단 마귀 공중의 권세자는 오늘을 모면하게 합니다
오늘을 잊어버리게 해요 오늘을 벗어나게 합니다.
지금은 니가 바쁘니까 조금 있다 조금 있다 내일 모레 영원히 못합니다.
지금 지금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나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사는 지금 이 시간만이 나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사는 자가 결코
그들은 죽을 수가 없잖아요 그들이 영원히 살잖아요
오늘을 사는 자들 자들에게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 그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거듭나는 순간에 부어주셨다니까요 내주하게 하셨다니까요
충만하시는 분 넘치시는 분 공급해 주시는 분 엘샤다이 하나님의 가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시는
그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하셔서 내 영에 오셔서 내 혼과 몸을 극대화시키고 활성화 시키고 새 생명으로
변화시켜 주셔서 우리를 사망을 벗어나게 하는 그런 죄는 물론 죄의 능력에서 이겨 나가게 하고 그리고
죽음의 권세에서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제 생명의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에서 선악과 나무를 짊어지시고 가시고 그 나무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사망이 아닌 생명을 주셨다니까요
그 생명을 주신 것은 거듭나는 순간에 나에게 신성한 생명을 창조되지 아니하신 생명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그때 당시에 거듭나는 순간에 죄를 이기는 경험을
여러분들이 했지 않습니까 사망을 이기는 경험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어야 되는데 바쁘다 뭐다 해서 지금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때는 은혜가 되어서 그때는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용서하십시요 죄송합니다 제가 기도를 많이하는데 여러분 그러면 안 됩니다
매일매일의 삶을 통해서 존속시키고 유지시켜 주셔야 되고 보존되어져야 됩니다
왜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인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아들하나님 이시며
그리고 영 하나님 이 세분이 함께 몸을 성전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 영을 통해서요
사단은 우리가 이기는 삶 죽음과 사망을 죄를 없이 하는 삶을 마귀를 멸하기 위한 삶을
갖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듭난 자들에게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입니다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그런 공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세월아 네월아 잘 먹고 잘 살고 오늘은 뭐하고 내일은 뭐하고
여러분 그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그들은 땅의 사람이고 우리는 하늘의 사람이에요 우리가 들림 받기 전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이 순간에 이 시간에 사망과 죽음과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리로 사망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되지 아니한 그 생명의 영이신 그 성령님의 신선한 생명력을 주신
그분의 생명을 소유받는 일을 소홀히 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문을 주님께서는 열어 놓으셨는데
부활을 통해서요 우리는 그것을 소유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곡기를 장시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오장 육부가 다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런데 배가 고프거나 이런 느낌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체험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의 어둠의 그림자가 있는 것 사망의 냄새와 향기가 있는 그런 속성들과 본성들과
성질들이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눈을 감아야 되고 귀를 막아야 되고 마음의 문을 걸어 빗장을 걸어 잠귀야해요
그리고 창조되지 아니하는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주시는 하늘 이슬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죄의
능력을 일일이 패하게 하고 이기게 한다는 얘기죠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무력화시키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
평온과 안식하게 해주는 그런 성령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문을 활짝 열어 그분을 영접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안에서 염려를 하고 혼 안에서 근심을 하고 몸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인하여 연약해지면
그것의 결과가 사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처음부터 사망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죄로 인하며 절망이 오고 낙심이 오고 수치스러움과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수치를 가렸던 아담과 하와처럼 죄로 인하여 발생된
그 부끄러움과 수치와 괴로움, 좌절감, 무기력감, 염려, 근심 자포자기 이런 모두를 통해서 영 안에서
염려하게 되면 이 전체적인 것들이 내 안에 파도처럼 바람처럼 빛처럼 다가와서 내 안에 가득 차기 때문에
영이 염려가 되면 혼이 근심을 하게 되고 혼이 근심을 하게 되면 몸이 이미 연약해지고 질병을 갖고 오게
해서 사망의 길로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결국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 죄의 능력과 이 사망의 권세에서 끌어 들어 올리기 위해서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끌어 올리셔서 반석 위에 두시고 그리고 저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포도주를 주시고 기름을 주시고
또 나머지 돈까지 한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맡겨서 부탁하면서 이 병자를 잘 돌봐주십시오
내가 다시 돌아오면 그 동안에 들었던 비용을 내가 다 청산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여관의 주인과 여관이 하는 일을 하는 곳이 우리 하늘소리 선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그러한 영의 염려와 혼의 근심과 몸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인하여 주님의 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우리가 하게 되면 시간과 시설과 물질과 봉사와 헌신이 필요하죠
그것을 갚아 주신다는 말씀이죠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나오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고
나머지 돈을 더 청산해 주겠다 라는 것은 네가 그런 일에 동참했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대신 반드시 갚아주겠다 라는 얘기를 그 말씀을 통해서 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살려달라고 외쳐야 됩니다.
제가 어저께 저녁 7시 거의 하루가 다 지났네요.
지금 우리가 4편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 시켰다는 1편 부터 4편에 걸쳐서
하고 있는데 제가 어저께 하늘이 뒤집어지고 땅이 뒤집어지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누워 있어도 누워있는 것이 아닌 야! 세상에 그런 깜깜함이 몰려오고 죽음이 엄습해 오는데 두렵더라고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그때 내 입에서 제발 살려주세요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지 않습니까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이런 다급한 외침이 필요합니다.
이 외침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생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내 영혼이 내 혼이 내 몸이 내 영만이 아닙니다.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하나님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달라고 외쳐야 그분이 듣고
응답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단의 그 흑암의 권세 무서운 권세 정말 무서운 능력을 가진 그 권세를 우리가
어떻게 대적합니까 우리 힘으로는 안 돼요 다윗이 힘으로 어떻게 골리앗을 이겨요.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그가 대적자인 사단을
상징하고 있는 골리앗을 싸워서 이긴 것 아닙니까
기도하면서 하나님 우리를 살려주세요 제발 기도하면서 우리가 대적을 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대적하면 우리가 온전히 사단의 권세를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만은 효과가 없어요 우리는 사단이 세상을 통해서 세속을 통해서 다가올 때 공격을 해올때
냉철하게 단호하게 주위의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손가락질 하고 업신여긴다할지라도 수치와 부끄러움과
모든 것을 다 당한다 할지라도 단호하게 거절해야 됩니다.
그때 사단이 자신의 뜻을 거두고 뒤로 물러갑니다.
그때 하나님의 울타리가 내 주위에 천사를 통해서 쳐지는 것이죠.
마태: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우리는 늘 기도해야 됩니다.
죽음을 사망의 권세를 주 예수님께서 잃어버리게 했으니까 빼앗아 놓았으니까 제거해 놓으셨으니까
폐기 처분하셨으니까 우리가 이 사망이 나와 관계할 것이 주장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두렵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요 난 아직도 살고 싶은데 나 자신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면 나를 지금 죽이시지만
주님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살려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언약의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도록 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가지고 따져야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을 주시기 전에 나에게 죽음이 암이 찾아왔다고요 이런 피치 못할 이런 이상한
질병이 왔다고요 하나님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부요하신 그 생명이 내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 생명으로 이 상황을 이 질병을 이 연약함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렇게 할 때 흑암의 권세로 나타나는 사망과 죽음 질병을 통해서 연약하게 하고 우리를 죽게 하고 사망을 당하게 경험하게 하는 사단이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거기서 머무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내 속에 흔적으로 들어온 그런 것들을 말씀을 통해서 계속 치유해서 내 속에 이미
침투되어 지고 적셔진 것들을 말씀을 통해서 제거하고 물을 통해서 씻어내야 되고 목욕을 하는 것처럼
속에 있는 죄의 독소들을 제거하는 일을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내 피를 받아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으라 자꾸 치료를 해서 그동안에 사단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온전치 못하게 되고 기능이 훼손되어진
것들을 일정한 시간을 통해서 기능을 회복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말 붙잡아야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있는데 이 죄도 죄 나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은 죄가 여러분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똑같이 여러분이 지은 죄를 내가 지었을 때 저는 죽지 않을 수 있어요.
반대로 내가 지은 죄로 나는 죽을 수 있지만 여러분들이 지으면 여러분들은 안 죽을 수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의문이 드실수 있으실텐데요 죄는 다 똑같은 죄가 아닌가요 예 그렇습니다.
이해가 잘 안되실 겁니다.
아니 죄는 똑같은 죄고 그 죄는 똑같은 범위와 똑같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서 죽으면 똑같이 죽고
똑같이 처벌받아야 되는데 누구는 과하게 대하고 누구는 경감받게 된다면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과연 그런가요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알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7절 우리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여기서 나오는 사망은 몸의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최종적인 마지막 표현되는
몸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함으로 몸이 죽는다 라는 이런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여러 종류의 죄가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가 어떤 사람 에게 똑같은 그 죄를 범했을 때 어떤 죄를 하나님께서 지칭하시고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요 그 죄를 범했을 때 어떤 사람은 죽게 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라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 참 신기하죠 죄는 똑같이 다루어야 되고 똑같은 일인데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요.
어떤 사람 에게는 죽음을 당하게 돼요.
어떤 사람은 살게 되고 또 어떤 경우는 다 같이 죽게 돼요 어떤 경우는 다 같이 살게 돼요
여러분 열두 정탐꾼 얘기를 하면 뭐가 생각나죠 예 가데스가 생각나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 라고 약속을 하셨는데
전적인 신뢰를 갖지 못하고 백성들이 정탐꾼을 한번 우리가 보내보자고 미리 탐색을 좀 해보자고
그렇게 동조를 해서 열두 정탐꾼을 뽑아가지고 보내는 일이 생겨 하나님은 섭섭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귀로 듣고 체험한
그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다는 그 젖과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을 소유하겠다 라는
그 마음을 가진 그 마음이 불편했죠 하나님은 몹이 언짢아 하셨어요.
그들이 하나님만을 관심하지 않고 자신들의 현재적인 삶을 통해서 마주하는
그런 일들을 보면서 관심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섭섭해 하셨습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하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다 읽으면 내용이
너무 길고 시간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민수기 14장 9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0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이 땅은 너희 땅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약속을 해 주십니다.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지 않고 함께하시는 여호와 대신에
자신들이 눈으로 보고 친히 체험한 일들을 통해서 그 땅을 소유하기를 원해서 정탐꾼들을 보냈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때 그들이 그렇게 시험을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요 모양 저 모양으로 시험을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모세가 그들이 그렇게 시험하였던 것을 너무나 많이 시험을 하였기 때문에 그냥
열번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2절에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번이나 주님을 시험하였다라는 내용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22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애굽 에서 열가지 재앙들을 통해서 장자를 죽이는 일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피를 바르게
하고 그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일을 통해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매일매일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 안식일 날에는 그 전날 두 배를 저축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또 그날을 또 견디게 하셔서 생명을 보존하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없이 많은 열번이나 주를 시험하였다고 하는 이 말들은
그냥 열번이 아니라 끝없이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아니하였다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그들이 시험하고 자신을 불신하고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였지만
그들은 그런 행동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거절한 것이라고 하나님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주 하나님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젖과꿀이 흐른다는 그 가나안 땅을 소유하기를
가지기를 원치 아니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나안 땅을 거절한 그들의 죄를 열번이나 주님을 시험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따라서 해보세요
죄는 용서하셨을지라도 그들의 몸은 광야에서 죽게 하셨다.
그들의 몸은 광야에서 다른 정탐꾼들과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절대 신뢰하고 믿은
참 하나님의 사람인 그 여호수아 와 갈렙을 제외 하고서는 그들을 모두 죽게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용서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똑같은 상황 속에서 조금씩 변화된 얘기들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시편 106편 33절 한번 읽어볼까요.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자 여러분 잘 보세요 그들이 그분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분의 뜻이 뭐예요? 그분의 뜻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거스른다는 것을 여기에서 그분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한 거예요.
뜻이 영이에요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거스렸습니다.
모세가 자기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했기 때문에 반석을 두 번 치는 일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반석에서 물을 내는 사건을 통하여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이미 한 번 첫 번째 사건을 통해서 반석을 쳐서 물을 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선악과 나무를 짊어지시고 가시고 그 나무에 달리셔서 죽음을 당하신 그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고 완전히 종결 지어지게 된 것이에요.
이제는 그 종결 지어진 그 선악과 나무를 아담 대신 곧 인류 모두를 대신해서 짊어지시고 지친 가운데
골고다 언덕까지 그것을 품에 끌어안으시고 달리셔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건은 한 번의 사건을 통해서 끝나야 돼요 그리고 그 나머지 일은 이제 명령만 하면 됩니다.
아! 부요하신 주님께서 그 죽음을 통해서 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시켰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축복과 생명만을 주시옵소서
그분의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님을 통하여 무한정 공급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의 이상을 모르고 그가 모세가 반석을 두 번이나 때렸던 겁니다.
한 번 죽으신 사건으로 이제는 부요하신 그분께서 모든 인류에게 거듭난 자들에게
원하면 원하는 만큼 분량 만큼 많으면 많은 만큼 적으면 적은 만큼 다 부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말만하면 돼요 그것이 흘러내려서 우리 속에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주의 영이신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신 그 생명을 가지고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므리바 반석에서 망령되이 하나님의 이름 내가 반석에서 물을 내랴?!
1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2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3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뻔 하였도다 4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8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9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10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하고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 하였습니다 그게 시편 106편 33절 말씀입니다.
33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그래서 어떻게 됐죠 제가 지금 사망에 대한 얘기 죽음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는겁니다.
그가 죽었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모세의 소원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모세의 평생 마음의 갈망이었고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목숨은 그의 몸은 가나안 땅 바깥에서 죽고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게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얘기예요 이게 모세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어! 이상하다 아니 모세 조차도 아니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친구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선택받고 선별해주고 나실인으로서
그렇게 삶을 살았던 자가 아론도 마찬가지로 거룩한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죠.
그게 민수기 20장에 나오는데 모세와 아론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에요.
24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25너는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에 올라
26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여러분 보세요 이 얘기를 이해하려면 다른 말씀을 이해해야 됩니다.
어떤 말씀을 이해해야 되는냐면요 하나님에 대한 사소한 죄의 문제는 나에게 사소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보죠
어떤 사람들이 마주하는 그 사소한 것들이 나의 몸을 사망에 처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라는 얘기예요.
제가 예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얘기를 했던적이 있죠.
사망에 이르는 죄 그들의 몸이 죽어버렸어요 성령님에 의해서 죽어버렸어요.
아니 땅값 얼마를 숨긴 거 그나마 10분의 1을 바쳤던 10분의 5를 받쳤던
바친 것인데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을 텐데 왜 성령님을 속였구나 하면서
사도행전 5장 처음 부분에 왜 베드로가 그렇게 얘기해서 죽음을 당하게 했을까요?
1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초대교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순결해야 되고 성결해야 되고 부정한 것이 들어오면 안 되고 더럽고 냄새나는
그런 사망의 것들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런 사소한 죄들이 살아 있는 성령님을 속이고 마치 그분이 없는 것처럼 죽은 자처럼 대하는
그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미라를 제외한 모든 자들에게 모델로 보여주신 것이
성령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본보기로 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치신 거예요.
열왕기상13장21~22절 두 구절만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지 아주 잘 나타나고 있는 이 말씀이 모세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21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기에 나귀 얘기가 나오고 사자 얘기가 나오고 먹는 음식의 물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자 여러분 보세요 아니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이것이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했으면 그 사람은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죽었어요 모세가 범한 죄를 다른 사람이 했으면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범해서 죽었다니까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가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봉사자님들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다르고 나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다릅니다.
똑같이 취급하지 않으셔요 많이 받은 자들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적게 받은 자들에게는
적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명령을 물도 마시지 말고 떡도 먹지 말라고 한 그 말씀을 어긴 것이
누구냐 이 말이에요 평범 하고도 보통 사람 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유다 하나님의 사람임을 대표하고 지키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래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그가 물을 마시고 그가 떡을 먹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람도 물을 마시고 우상에게 절한 그 음식을 먹은 것을 보니까
우리도 먹어도 괜찮아 저 사람도 먹은 거 봐라 우리들 보다 훨씬 월등하고 우월하고 특별한 존재인
하나님과 가까운 저들도 먹고 마셨는데 우리도 먹으면 어때 우리는 더 먹고 마셔도 괜찮아 이렇게
모든 사람을 죄 속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그들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까지도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 사망과 죽음에 거하게 하고 이르게 한 일 때문에 그가 사자에 의해서
찢어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들어가기를 거절하는 그들의 죄는 용서하였는데 물론 그들의 몸은
광야에서 다 죽게 하셨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거절하고 시험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하셨는데 모세가 므리바 우물에서 내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반석을 두 번 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망의 땅이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땅이요, 생명이 넘치는 땅인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땅 바깥에서 죽었다는 것은 그가 사망에 이르는 죄
하나님의 사람이 떡도 먹고 물을 마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명령을 대표자인 그가 어김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을 그 속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그런 의미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이 모세 얘기를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금의 말로 아주 쉽게 풀어서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단순하게 이 반석에서 물을 내가 내랴 모세는 너무나 분했던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삶을 40년 동안 정말 물과 양식이 없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생명을 유지시켜주시고 보존시키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데서 나온 하나님의 분노를
어쩌면 대신 표출한 것이 내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반석을 때린 사건 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이 사건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게 되는
엄청난 사망의 죄가 되었고 사망을 결국은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이 모세와 하나님의 사람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경종입니다.
사망을 이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인하여 죽음을 당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입술로 망령된 말을 했을 뿐인데 왜 그가 죽게 됐느냐?
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됐느냐? 왜 가나안 땅 바깥에서 죽게 했느냐?
이것은 죽음을 얘기하고 있고 사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이기는 삶이 마지막까지 그가 종결되어지고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마음으로
유지했어야 되는데 보존했어야 되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의 그는 대표자가 된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 민수기 12장 3절이 답입니다.
그를 죽게하신 이유가 이 말씀 때문에 죽게하신 거에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몰라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하지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알지 못해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 말씀 때문에 죽은 거예요
어떠한 죄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어떤 죄도 가볍게 다루어질 수 결코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들은 용서하시고 어떤 자들은 사하시고 어떤 자들은 다 함께
죽이시고 어떤 자들은 다 함께 살리시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예를 들자면 열왕기상13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이 물을 마시지 말고 떡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어긴 것은
바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그가 끌어안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가 물을 마시고 그가 떡을 자유롭게 먹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너희들도 이렇게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너희들 하나님 앞에 괜찮아 그를 그냥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사자로 인하여 찢어 죽이게 함으로 본보기를 보여주는 사건을 통하여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사소하게 결코 헛되이 보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 대표자 그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모세를 왜 죽게 만들었나요
왜 그 이유가 뭔가요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보다 승했기 때문이에요.
처음 태어날 때부터 40세까지 애굽에서 바로의 공주의 그때 당시에 실세인 양 엄마의
보호하심과 도우심과 후견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가 연단 받았어요
출산하는 문제부터 성장하는 문제부터 애굽 에서의 혹독한 훈련이 있었어요.
그리고 동족의 일들로 말미암아 쫓겨난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또 특별한
연단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애굽 에서 나옴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동족들과의 함께하는
광야에서의 삶이 또 40년이 있었어요.
도합 120년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우월했다,더 나았다, 후했다.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는 얘기에요
그러면 왜 죽였느냐 이것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들어요.
성령님의 빛의 조명을 따라 이것을 이해해야 이해할 수 있어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먼 훗날 이해하게 되실 수도 있어요
하나님께서 모세가 천하의 지면에서 세상에 그 어떤 사람 보다도 가장 온유한 자로 만든
분이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 여호와 하나님의 120년 동안의 수고와 공로가
헛되어졌기 때문에 그를 키우고 그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성장시키고 만들어 나가시고
조성하시고 다루시고 함께하시고 동행하신 것이 그렇게 해서 그를 온유함을 하나님의
특별한 속성인 온유함 온유함이 뭐예요.
온유함은 겸손과 온유함이 같이 곁들어져 있는 것이 온유함이에요.
온유함 속에 겸손이 있어요 자신을 잃어버린 자 자신을 내어 놓은 자 자신을 버린 자
자신을 잃어버렸으니 그 안에 하나님 밖에 더 있어요
자신을 잃어버리고 내버리고 비어 있으니까 자기가 주장할 수가 없죠.
그런 자는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만을 받들어서 살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겸손한 자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온유함이 승했기
때문에 모세처럼 승했기 때문에 이것이 당연히 그렇게 나타나져야 됐었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서 만들어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온유함을 잃어버리고 입술로 망령된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사망에 이른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성장시키고 그를 조성하시고 온유하게 만든 자가 다름 아니라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살았어야 당연하다는 얘기예요.
왜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주셨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을 거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절하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죽어버렸잖아요 당연하죠 거절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자신과 동행하고 자신을 조성하시고 자신을
온유한자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부딪힘과 얼마나 많은 마라의 쓴물의 다툼이 있었겠느냐고요
그런 다툼과 어루만짐과 희노애락 속에서 그를 그렇게 조성하시고 건축하셨는데 급기야 그 온유함을
하나님의 특별한 속성인 하나님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망령되이 사단이 나타나는 정신인 그러한
망령된 말을 했을 때 자신을 드러내는 말을 했을 때 무심코 한 말이겠지만 화가 나서 한 말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거나 그렇게 하시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너를 그렇게 했는데
키웠는데 만들었는데 조성했는데 니가 왜 온유함을 잃어 버린 것인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서
주신 건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요
사망과 죽음을 우리가 이기게 하셨는데 이것을 사망의 권세를 폐하게 하셨는데 폐기 처분하셨는데
제거하셨는데 이것을 우리 것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우리가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그것을 최대한으로 극대화로 나타나 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대표자이기 때문에 물도 마시지 말고 떡도 먹지 마라 했을때
그렇게 했어야 돼요 왜 그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유대나라 와 이스라엘 이 모두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13: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찌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 11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저에게 고하고 또 그가 왕에게 고한 말씀도 저희가 그 아비에게 고한지라
12그 아비가 저희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저가 그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저가 타고 14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 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 15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 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라 18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25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와서 말한지라 26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붙이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이에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안장을 지우매 28저가 가서 본즉 그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섰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그 사람이 먹으면 먹어도 되는구나 하나님의 뜻인데요 라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먹지 않으면 이거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먹지 않은 걸 보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하고 죄를 범하는 일이구나 하고 안 먹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무시하고 완전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했습니다.
온유함을 위해서 하나님이 키우셨는데 그걸 거절하고 무시하고 자기 승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망령되이 이름을 그래서 시편 106편 33절에 단지 입술로 망령되이 말한 것뿐이 없습니다.
33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면 안됐었어요 왜냐하면 120년 동안 그렇게 키웠잖아요 조성했잖아요
그렇게 하신 분이 만들어주신 분이 누구에요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걸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신 거예요.
모세라 할지라도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그랬다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끝까지 그것을 다 이기신 분이세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못이겼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모세가 아닌 예수님을 따라 이겨야 되죠 사망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그분을 무시하지 않고 그분을 거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듭난 우리에게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 그 거듭나는 순간에 그 하나님의 영 자신이
들어오셨다니까요 생명을 공급해 주시기 위하여 그것을 우리 혼에 침투시키고 몸에 적셔 주셔서
우리를 온전한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한 기능을 통해서 영의 통치 영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창조되지 아니한 생명이신 성령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순종하고 그 복종하는 삶을
살게 하도록 하나님이 생명의 힘을 십자가를 통해서 주셨다면 죄의 능력을 폐하신 그분을
따라서 죄를 짓지 말고 사망의 권세를 폐하셨으니까 이제 사망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능력을 무력화 시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거절하고 죄를 범하고
또 죄의 권세인 사망의 권세를 패했는데도 사망을 아직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그것을 회피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를 통하여 골고다 언덕을 통해서 선악과 나무를 짊어지시고 그 나무에
달려 죽으신 그 공로가 무참히 짓밟혀지는 행동이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죄를 우리가 그것을 범하게 되는
엄청난 일을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람처럼 범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그래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 죄의 능력을 의로 바꾸셨어요 십자가에서 사망 권세를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바꾸어 놨으니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을 거절하지 말고 그것을 따라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망령되이 행한다면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람처럼 떡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떡을 먹고 물을 마신다면 온유하게 했는데
온유하지 못한 삶을 보였다면 그것이 바로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바깥에서 죽게 한 거예요.
물론 몸이 죽게 되었기 때문에 영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몸까지도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사건이라니까요 영과 혼, 몸 이것이 온전히 구원이 이루어 져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영 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말입니다.
그래도 혼은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요 몸은 관심을 두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나 자신을 심판하는 자세 날마다 자신을 때리고 채찍질 하고
회초리를 들고 나를 정죄하는 심판하는 삶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이와 같이 사망에 이르는 죄 아나니아와 삽비라 처럼 되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처럼 됩니다.
그가 그 말씀을 준행하였더라면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아니했다면 그 이름은 성경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참히 몸이 갈기갈기 찢어 죽임을 당한 겁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시고 모든 것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나님의
본 대로만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준행하면서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여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이 말씀이 얼마나 깊은 말씀 인지 몰라요
누가: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아버지여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 처절한 기도는 십자가에 내가 달려서 인류를 구원하는 문제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나를 인류를 구원하지 말고 너 내려와서 너 살아라 하면 그 말씀을 듣겠나이다
순종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 이것 때문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리라 하면 달리겠고 내려오라고 하시면 내려가겠습니다.
그때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심을 알고
내 뜻이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때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라면 그분은 십자가에 달릴 수도 있고 내려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가 사망을 이기는 자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좀 길어지긴 했지만 몇 번이고 돼새기시고 묵상하셔서 죽음에 이르는 죄를 우리가
범하지 않도록 죄의 능력을 무력화 시키시고 사망의 권세를 무효화 시키시고 완전히 멸하시고 폐하신
이 사건을 잘 기억하시고 마음에 새기셔서 사망을 두려워하는 그 십자가의 공로가 헛되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수님을 따라 우리는 꼭 이기고 승리하는 자들이 될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 하면서
오늘의 교제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