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문맹자(최종정리) / 박현숙

[푸른돌고래]

 현대판 문맹자

박 현 숙

  본가에 다녀온 손자에게 할머니 건강하게 잘 계시더냐? 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o’ 이라는 답이 왔다. 순간 잘못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어 갸우뚱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o ㅋ’ 또는 ‘ㄴㄴ’, ‘안녕하삼?’, '어쩔티비'(어쩔래, 티비나 보셔)로 표현되는 초등학생 손자의 문자는 귀엽기도 하지만 약간의 소통력 저하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수용언어와 표현언어의 차이로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흥미롭기까지 하다.

  '완소'(완전 소중한) 또는 '쩝'(어이가 없다)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으로까지 여겨질 때가 많다. 말 줄임이 시간을 얼마나 절약한다고? 여러 줄임말에 문해력 논란까지 일으키며 우리 언어가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다. 어느 초등학교의 ‘중식 제공’이라는 공지에 한식으로 바꿔주면 안 되겠느냐는 학부모들의 건의가 있었다는 말이 웃어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문해력은 문자와 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읽고 쓰는 힘을 말한다. 내가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려는 마음. 상대가 모르면 ‘그 단어는 이런 뜻’이라고 알려주려는 마음, 그런 노력이 있었다면 논란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문해력 저하가 아니라 소통력 저하가 더 큰 문제가 아닌지….

  최근 우리사회에서 ‘심심하다’(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의미를 놓고 문해력 저하 논란이 일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음’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공지 글을 올린 업체에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항의를 한 것이다. 댓글 하나에서 시작된 이 문제 제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동조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번졌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문해력 수업이 한창이다. 어떤 텍스트도 단숨에 이해할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소리 읽기, 의미 읽기, 해석 읽기에 이르는 단계로 누구든 제대로 ‘읽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한다. 문해력을 갖춘 아이는 어떤 공부든 막힘없이 해낼 수 있고, 학습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와 유럽연합은 문해능력을 사회경제적 발전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초 능력으로 여기고 있다. 문해력이 높으면 정치에도 관심이 높다는 판단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떨어지면 올바른 사고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해력 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외식을 하러 가도 키오스크 사용법을 모르면 밥을 사 먹지 못한다. 한마디로 눈뜬장님 신세이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인원 등록과 식사 종류를 선택해야 하고 휴대전화에 남겨진 순번을 확인해야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 오셔서 무작정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현대판 문맹자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 탈 문맹자가 되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려고 구청 학습관에 등록했다. 수업시간에는 이해가 되는데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린다. 나이 탓이라 핑계를 대보지만 이것도 일종의 문해력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집에 오는 즉시 복습을 해봐도 마음과 달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메모해둔 중요한 내용을 삼인학습으로 친구에게 전달을 하고 있다. 덕분에 나의 깨우침도 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듯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글자도 모르고 숫자도 모른 채로 한평생을 사셨다. 서울, 부산, 울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식들 집을 잘도 찾아다니는 것 같았지만 아마 헛걸음도 많았을 것이고, 끝없이 묻고 또 물으며 다니셨으리라. 옛 어른들은 배움의 기회가 없어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더 큰 불편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배우는 계층과 안 배우는 계층 간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MZ 세대하면 신조어가 떠오른다. 신조어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말이나 기존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말을 의미한다. 개복숭아. 개살구 등은 좋지 않은 것을 가리켰는데 요즘 아이들은 개꿀, 개귀엽다, 등 좋은 것에 개를 붙인다. ‘킹봤쥬’(화났어?)처럼 안 좋은 말에 킹을 붙이는 것을 보면 자기감정을 드러내기 싫고 상처받기 싫은 면이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특권의식으로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낯선 단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과 소통하려면 이러한 현상을 나무라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러면 세대간 문화적, 정서적 갈등도 줄어들지 않을까. 오늘도 손주 상대로 이런저런 신조어 외우기에 바쁘다.

[푸른돌고래]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마리]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