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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는 바울의 가르침 중에서도 심오한 사상들과 교리들로 채워져 있는 중요한 서신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전한 복음의 가르침을 요약해서 에베소서를 기록했다. 메시지의 핵심은 삼위일체 하나님 각 위격의 구속사적 사역과, “능력들”로 일컫는 마귀의 존재와 사역들과,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 자신들, 교회, 불신자들, “세력들”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행하기를 주문하였다. 리폼드신학교가 5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성경신학적 신약개론』은 성경무오와 개혁신학을 향한 열정으로 저술된 책, 여느 개론서와는 다른 특징을 가진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독성을 위해 각주는 생략하였다.
가이 워터스(Guy Waters),
에베소서의 메시지와 신학
능력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능력들을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그는 능력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묘사한다. 능력들은 “통치자와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6:12)이다. 바울은 동시에 능력들을 “마귀”라고 언급하고(6:11; cf 4:27) "혈과 육"(6:12), 즉 인간(참조. 갈 1:16)과는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러므로 이 능력들은 보이지 않으나 천사와 같은 존재로서 사탄과 결속하고 그 권세 아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참조. 엡 2:2). 그들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다. 바울은 심지어 그들이 인간의 일에서 끊임없이 하는 활동의 증거를 제시할 때에도 그들과 그들의 활동을 "하늘에" 두고 있다(6:12; 참조. 3:10).
바울은 이러한 능력들을 세 가지로 기술한다. 첫째, 그들은 악의가 있어서(악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다. 둘째, 그들은 지역적이 아니라 우주적인 권세와 능력이 있다. "어두움"이라는 말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귀신의 권세를 가리킨다. "어두움"이라는 것은 신자들이 전에 속했던 영역이고(엡 5:8)……신자들이 주님에게 구원받은 영역이다(골 1:13). 그러므로 바울이 "이 세상(세대)"(엡 1:21; 참조. 5:16; 6:13)과, 즉 죄나 부패나 저주나 죽음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 아담의 질서와 연관시키는 것은 바로 권세다.
셋째, 이러한 귀신의 능력들이 다양하고 서열에 따른 명칭(“통치자”와 “권세”)이 다양한 것은 그들 가운데 계급이 있음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앞부분에서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지내던” 그 영(엡 2:2~3)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을 통치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귀적인 능력의 정점에 서 있다(참조. 고전 4:4).
“능력들”은 신자들의 안녕에 참으로 위협적이다(엡 6:11~12). 그렇다 하더라도 이 마귀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속되었음을 에베소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주장한다.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짐으로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1:20~22).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이고 중보적인 주권은 "만물”, 심지어 마귀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포함한다.
더욱이 “하늘에 있는 통치자와 권세”는 패배와 복속(3:10)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된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죄인을 구원하며 구속받은 자들을 주 예수의 은혜로운 통치 하에 하나된 백성으로 모으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말하는데 바로 이 지혜가 그들에게 선포되었다. 하나님이 이 지혜를 능력들에게 알리는 도구는 “교회”다. 달리 말하면 교회의 존재 자체가 능력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패배하여 복속된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바울은 왜 그리스도 사역의 이 측면을 에베소인들에게 강조하려 하는가?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사역에 대한 누가의 기록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 누가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했다고 강조한다. 거기에서 사역에 임하기 전에 바울은 예수를 온전히 알지 못한 열두 사람들과 만났다(행 19:1~7). 바울이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19:6). 바울이 에베소에서 담대하게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19:8~10) 누가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19:11)고 지적한다. 이런 사건으로 인하여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뻔뻔스럽게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19:13)라고 했다. 이러한 영들은 예수님과 바울의 권세를 알았으나 일곱 사람에게는 임하여 "그들에게 뛰어 올라 눌러 이겼다"(19:16)
그 후에 누가는 신앙을 고백하는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마술을 행하던” 일을 회개했다고 지적한다(19:18~19). 그들은 값비싼 마술책을 공개적으로 태웠다(19:18). 달리 말하면, 믿는 자들은 마술로 보이지 않는 능력의 도움을 염두에 두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 사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에서 얻은 결론적이고 가장 긴 설명은 에베소에서 벌어진 폭동에 대한 것이다. 바울이 수고하여 복음을 전하자 "아데미의 신상 모형"(행 19:24; 참조. 19:26)의 엄청난 고수익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 것에 화가 나서 에베소의 은장색 수장인 데메드리오가 자기 동료 업자들을 충동질하여 분노하게 했다. 이런 광란은 퍼지기 쉬워서 결국에는 에베소 전체가 "요란했다"(행 19:29). 폭동을 조정한 외침은 지역신인 에베소의 아데미에 대한 종교적인 헌신의 외침이었다(행 19:34).
그 후 에베소에서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했을 뿐만 아니라 귀신적 능력들과 충돌했다.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적 능력들의 보호와 도움을 추구한 삶의 방식에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와서 활동한 문화에 계속 살았다. 그들은 이런 영적인 힘들과 계속 “씨름”해야 했다(엡 6:12).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이 에베소인들과 나누었던 복음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상기시키는 과정에서 바울은 세력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속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귀신적 세력들이 실제로 패배했다고 교회를 확신시키길 원한다. 또한 그는 교회가 보호와 쓸 것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삶에서 그리스도의 영의 강력한 역사를 이해하기를 원한다.
교회
능력들과의 충돌은 에베소서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에베소서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면 능력들과의 충돌이라는 메시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에베소서의 다른 주요 모티브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머리"다(1:22). 그러기에 교회는 장성해질 만큼, 즉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란다(4:13; 참조. 4:15~16). 바울은 또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린다(5:23~24). 이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그리스도는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셨다"(5:27).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한 새 사람"이고(2:15), "하나님의 권속"이다(2:19). 바울은 교회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퉁잇돌이신"(2:20) 집으로 비유한다. 특별히 교회는 "주 안에서 성전" 즉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 간다"(2:21~22).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의 존재와 사역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한다. 첫째 측면은 기독론적이다. 교회에 대한 바울의 다양한 묘사를 통해 나타나는 것처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원과 정체성과 소명을 받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의 몸, 신부, 건물이 된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 즉 그의 죽음, 부활, 승천, 재위, 영광스런 재림과 연관시킨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라고 말한다(5:25). 이것은 그가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기"(2:16) 위함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킨 성령은 믿은 자들의 삶에서 현재 역사할 뿐만 아니라(1:19~20), 신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했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2:5~6).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은혜(4:7)와 선물(4:11)을 공급하시는데 이것들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장성하기까지 세워진다 (4:12~13, 16). 그리스도가 아버지 우편에 앉으셔서 아버지께서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1:22).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모든 주권과 능력은 교회를 위하여 쓰도록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종말에 돌아오실 때 영광스러운 온전함 가운데 "교회를 자기 자신에게 주실” 것이다(5:27).
에베소에서 교회의 둘째 측면은 종말론적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교회가 구속사에서 그 위치와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때가 차서"(1:10; 참조. 갈 4:4)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가 역사에서 완성하신 사역을 인하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이다"(1:10). 이런 뜻은 전 우주가 둘째 아담에게 복종함으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고(1:21~23),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메시아로서 온전히 다스리시고(참조. 고전 15:24), 피조물을 새롭게 하실 때 충만하고도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참조. 롬 8:18~25). 바울은 교회가 현재 그리스도의 화해적인 사역이 가장 분명하고 충만하게 나타나는 장소로서는 피조물에서 유일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피조물 안에서 독특하게 기능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들의 단체인데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통치자와 권세”에게 그리스도의 손에서 패배하고 복속되었음을 선언하는 셈이다(엡 3:9~10). 교회를 화해된 단체로 보니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의 단일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로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하나를 만드셨고" "둘로……한 새 사람을 지었다"(2:14~15). 따라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그로 말미암아……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다"(2:18). 신자들은 친밀하게 한 "건물"이나 "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2:21; 4:15~16). 그러므로 그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의무가 있다(4: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 사람”으로 하나된 것은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 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된 사역까지 이어지는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목적의 완성을 나타낸다. 전에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었다"(2:12).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전에 멀리 있던” 그들이 “가까워졌다"(2:13).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바로 그 모습과 구성도 변화되었다. 믿는 이방인들은 이제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2:10). 하나님의 권속이 이제 ”사도들과 선지자들 즉 사도시대의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는다"(2:20).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새 언약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3:6).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우면서 예스럽다. 교회는 하나님의 옛 백성들과 분명한 연속성이 있다. 교회는 옛 언약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과 같은 실체다(2:12~13).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 백성의 형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결과로써 결정적인 변화를 겪었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세 율법의 의식법과 시민법의 관점에서 규정한 것이 폐해졌다(2:15).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영적으로 동등하다(3:5~6).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의 큰 비전을 보여 준다. 그는 왜 복음의 가르침 가운데 이 측면을 강조하려 하는가? 어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을 에베소 교회의 균열을 가정했다. 하지만 에베소서는 그런 위기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좋은 근거가 있다. 바울의 독자들은 압도적으로 이방인이다(2:11).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들은 회당뿐만 아니라 이방의 도시 사람들에게도 거부를 경험했다. 이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떤 백성들과 다른 백성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울은 원한다. 이 백성은 이 세상에서 다른 실체가 공유하지 못하는 특권, 사명, 숙명이 있다. 이런 것들이 아버지의 목적과 아들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구원 능력에 의해 이 몸으로 가져왔고 보존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바울은 이 편지에서 "정체성 형성” 또는 정체성 확인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와 세상과 무슨 관계인지 이해하길 원한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존재인 "한 새 사람”에 맞춰 살아야 한다면 그들은 이런 이해가 필요하다(2:15; 참조. 4:20~21).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이다(2:20).
마이클 크루거 외 8명 공저, 강대훈 외 13명 옮김, 『성경신학적 신약개론』(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pp. 278~283.
첫댓글 부흥과개혁사에서 나온 좋은 책입니다. 위 아티클의 내용이 참 알차고요. 에베소서를 빨리 개관하도록 잘 안내하고 있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부흥과갸혁사에 성경신학적 신약개론이 2권이 있습니다. 1.성경신학적 신약개론 실현된 복음(마이클 크루거 , 윌리엄 바클레이) 2.성경신학적 신약개론(그레고리 K. 비일 , 벤저민 글래드 ). 이 책들을 혼동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네, 저자와 세밀한 책 이름으로 잘 구분해야겠습니다.
<호크마 주석: 에베소서>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에베소 교인들이 강건해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영적 싸움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전신갑주'는 싸움에 나아가는 군인이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은 그 앞에 '하나님의'라는 속격을 사용함으로써 전신갑주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나타낸다(Lincoln). 한편
에베소 교인들의 영적 싸움의 대상은 '마귀의 궤계'이다. '마귀'의 헬라어 '디아볼루'(* )는 단수로서 적대 세력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며(Wood), '궤계'는 4:14에서 '간사한 유혹'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적대 세력은 인간의 배후에서 유혹하여 그리스도인들 개인은 물론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한다(4:27).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적하라고 권면한다.
'대적하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나이'(* )는 군사 용어로서 적대자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수많은 유혹과 공격에 대해서 담대히 맞서서 대항해야 한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마귀에 대해 이미 승리를 거두셨으나 아직
궁극적인 승리는 성취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궁극적인 승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적자들과 어려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Lindemann, Mitton, Lincoln).
6:12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대적해서 싸워야 하는 적대자들에 대한 정의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 '씨름'으로 번역된 헬라어 '팔레'(* )는 '싸움'이나 '전투'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하는 전투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다. 본절에서 '혈과 육'은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Lincoln, Mitton).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적들은 이런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 악한 영적 세력들이다. 악한 영적 세력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자들에게는 위협이나 해가 될 수 없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계속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Bruce, Lincoln).
정사와 권세 -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섬기던 악한 영의 세력을 의미한다(골 2:15).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영적 세력들을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완전히 정복하시고 무릎을 꿇게 하셨다(빌 2:10).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 '세상 주관자들'은 본래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문제를 결정짓는 유성(流星)과 연결된 것으로 이방신이나 로마 황제 혹은 영적 세력에게 적용되기도 하였다(Lincoln, Kent, Bruce). 이런 '세상 주관자들'의 특징은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 악이 지배하던 삶을 가리키며(2:2;5:8,11) 현세대나 이 세상을 가리키기도 한다(골 1:13).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 '악의 영들'은 '악한 영들'이라는 의미이다. '하늘에 있는'은 불순종의 아들들을 지배하는 영이 거하는 '공중'과 같은 의미로(2:2) '악한 영들'이 초자연적 영역의 존재들임을 시사한다(Mitton).
@장코뱅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에베소서>
신약의 열 번째 책이며 일반적으로 바울의 옥중 서신이라 일컫는다.
Ⅰ. 수신인
보다 오래되고 신뢰할만한 사본에는 1:1의 '에베소에 있는'이란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A.D. 200년경에 기록된 사본에서부터 첨가되었다. 말시온(A.D. 약 140년)은 이 서신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골 4:16)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이 서신이 에베소 교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돌려가며 읽도록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 서신의 최종 도착지가 에베소였기 때문에 결국 에베소서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말했다.
Ⅱ. 저작권
수세기 동안 에베소서에 대한 바울의 저작권은 견고하게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야기되기 시작하였다. 주로 영국의 학자들은 바울의 저작권을 계속 인정하였으나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반론을 제기하였다. 구미의 학자들은 먼저 에베소서의 어휘와 문체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약 90개의 단어들이 다른 바울 서신에서 사용되지 않은 단어들이며,
이러한 단어들은 A.D. 1세기 후반에야 사용된 것들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또한 문체도 길게 연결된 구나 절이 다른 서신들보다 많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에베소서와 다른 바울 서신 사이의 문체나 단어의 유사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특히 에베소서는 그 문체와 내용에 있어서 골로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골로새서의 바울저작권까지 의심하고 있다).
물론 두 서신이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화목자 그리스도(2:16과 골 1:22)∙그리스도인의 표식(4장과 골 3:12)∙옛 사람(2:2-13; 4:18-21과 골 3:5-12) 아내와 남편 사이의 관계(5:22, 23과 골 3:18, 19)∙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6:1-4과 골 3:20, 21)∙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6: 5-9과 골 3:22-4:1) 그리고 기독론(1:4; 4:10-13과 골 1:15) 등에 관해서는 두 서신의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 또한 편지를 받는 교회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어휘와 문체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초대 교부들이 바울의 저작권을 인정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가 본서의 저자를 밝히고 있다(1:1).
덧붙여 말하자면 바울의 저작권을 반박할만한 결정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아직까지는 없다.
Ⅲ. 기록 연대
이 서신은 아마도 바울이 로마 감옥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 기록했음이 틀림없다(3:1; 4:1; 6:20-22).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옥중 서신서들)를 기록했던 것 같다. 이 서신은 두기고에 의해 아시아 지방으로 전해졌을 것이다(6:21, 22).
바울은 A.D. 62년에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A.D. 64년에 잠시 석방되었다. 그러나 다시 그 해에 재투옥되어 A.D. 65년에 감옥 속에서 순교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서신은 A.D. 62-63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학자들은 A.D. 70년에서 17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Ⅳ. 내용
이 서신은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사 그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송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에베소서는 내용상 3:21을 기준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 첫 부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의 영적 특권과(1:3; 2:22), 이 특권을 성취시키기 위한 바울의 사명에(3:1-13) 관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그 사이사이에 바울의 기도가 삽입되었다(1:15-23; 3:14-20).
그 두 번째 부분에서는 첫 부분에 언급된 교리를 실천 했을 때의 결과를 기록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부름에 합당한'생활(4:1-16), 곧 이전의 죄악된 생활을 버리고 4:17; 5:2)그리스도인의 미덕 특히 사랑을 실천하라고(5:3; 6:9) 권면하였다. 또한 바울은 그들에게 죄악과 싸우고 영적인 능력을 갖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격려하였다(6:10-20).
Ⅴ. 신학적 의의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초대 교회를 괴롭히던 문제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려 버렸다. 골로새서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골 3:28), 그는 구약의 선민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모두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엡 2:11-21).
진실로 죄인들은(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연합되었다(2:5,8).
특별히 거룩하고 흠이 없이 완성시키려고 창세 전부터 선택해주신 그 은혜로 양자(유대인과 이방인)가
하나로 연합되었다(1:4,5).
바울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12:1-23; 5: 23,24) 모통이 돌이신 그리스도 위에 안전하게 건설되는 교회에 대해 언급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계충을 초월한 사람을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5: 21-69).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연합하여 영적 무기로 무장하고, 공동의 대적인 '마귀의 궤계'에 맞서 싸워야 한다 (6:10-18).
바로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5:18).
그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 잠입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변질시키던 영지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온 우주에 그 능력을 떨치시는 그분의 높아지신 지위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서 윤리 의식이 결핍되어 있던 방탕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그 당시 만연 되어있던 부도덕에 대해서도 바울은 엄하게 경고하였다.
*참고 문헌 T.K. Abbott. The Epistles to Ep-hesians and the Colossians, ICC(1897); C.H. Dodd,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MNTC(London:1932);M.Barth,Ephesian. AB, 2vols.(1974); C.L. Mitton, Ephesians, NCB(1981).
출처: <Godpia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장코뱅 아가페출판사의 설명을 거저 볼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에배소서에 대한 좋은 개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포스팅을 올려주서서 참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에베소서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