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멘트벽 곁방 얻듯 뿌리 내린 복숭아나무가 흡사 소시민을 닮았다. 보잘것없는 나무둥치에 붙은 연약하고 볼품없는 가지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봄 나무는 기름진 곳이나 척박한 곳이나, 땅을 가리지 않는다. 보자기 하나 펼친 듯 자투리땅에 굳이 뿌리를 내린 모습이 대견하다고 할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한 송이 귀한 꽃을 품어 올린다. 수피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거칠지만, 그 손길로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낸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산꼭대기 화전마을에 있었다. 오막살이 초가집은 아니었다. 삐그덕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서늘했다. 벽에는 가마솥 두 개가 나란히 걸렸고 바닥보다 한 단 윗단에는 땔감이 쟁여져 있었다. 안채는 ㄱ자로 꺾여 방이 세 칸, ㄱ자 사이에 대청마루가 번듯했다. 사랑방이랄 수도 있는 작은 방과 대청마루를 쪽마루가 일자로 연결했다.
쪽마루에 앉으면 마당 건너 보리밭이 보였다. 보리밭 둘레에 선 복숭아나무가 봄을 먼저 알렸다. 꿈결 같은 분홍천지에서 나는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사분사분 내리는 꽃비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솜씨 좋은 아버지가 손수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그네를 만들어 주셨다. 뒤란에 매달린 그네가 내 마음을 알고 봄바람에 흔들흔들 그네를 탔다. 시소도 봄바람에 저 혼자 곧잘 깔깔대며 삐거덕거렸다. 고욤나무 꽃잎처럼 조그만 계집애 가슴은 봄날처럼 충만하고 봄꽃처럼 황홀했다.
우리 동네는 사람이 귀한 오지였다. 여름날 장사치들이 마른 건어물을 들고 집에 찾아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밥을 해 먹이며 거쳐온 동네 사람들의 안부와 바깥소식을 물었다. 자고 가기를 권하기도 했다. 여름날 복숭아가 익어갈 때면 마음껏 먹으라며 소쿠리 가득 복숭아를 따와서 보퉁이가 묵직해지도록 싸 주셨다. 맛있게 먹고 씨는 다음에 들릴 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복숭아씨를 한약재로 팔려고 한 어머니도 이름처럼 순하고 여린 분홍빛 꽃이었다.
봄날은 짧다. 어머니의 봄은 더욱 짧았다. 왔는가 싶으면 어느새 슬며시 꽁무니를 빼고 마는 야속한 임처럼 기다림도 무색하리만치 지나가 버렸다. 활짝 핀 꽃잎에게 세찬 비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머니에게 폭풍우는 그치질 않았다. 폭풍우에 넘어진 벼 이삭처럼 고추 모종처럼 버팀목이 없는 세상살이는 오죽했을까.
도시로 이사 온 후, 경제력을 상실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을 벌였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점점 강팍해지는 남편과 학교폭력으로 마음의 병을 않는 아들이 복숭아 벌레처럼 살을 파고들었다. 봄 여름 가을 땡볕에 복숭아 꽃물 들었던 두 뺨은 그을고 심신은 고갈 병에 걸린 듯 오그라들었다. 땀 마를 새 없이 노동한 어머니 몸에 어느 날부터 어루러기가 피었다. 울음 우는 밤이 길어질수록 몸에도 마음에도 눈물 머금은 곰팡이꽃이 피었다. 방 한 귀퉁이에서 스멀거리며 자라는 곰팡이 꽃처럼 육신에 얼룩무늬를 새기고 만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내민 어머니 등짝에 철없는 딸은 못 만질 것을 만지는 것처럼 께름칙한 손길로 연고를 발랐다.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어루러기는 어느 날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고단한 시간도 결국엔 지나간다. 저 혼자 자란 것 같은 저 나무도 흙과 해와 바람이 키웠다. 봄비는 갈증을 풀어준다. 사 남매 중 삼 남매는 모든게 부족 했지만, 봄비 같은 어머니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사회로 나가고 가정을 일구었다. 맏아들을 요양원에 넣었던 아버지는 출가하여 절로 숨어들었다. 고등학생 맏아들을 요양원에 두고 온 날 통곡하던 어머니는 서른 해도 더 보내고서야 한 번씩 데리고 나와 외박했다가 돌려보내는 것으로 스스로 다독일 줄 안다. 자식들 만류에도 일흔 살이 꽉 차도록 일을 하신 어머니는 고단한 몸을 쉰 지 몇해 되지 않는데 제 몸을 탈피하듯 다시 몸 병이 들었다. 상처로 진액을 줄줄 흘리던 복숭아나무처럼 신음 없이 앓고 계신다.
어머니의 앓음은 오래되었다. 아무리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라 해도 한 번쯤은 단물이 입술을 적시고 입안 가득 번지는 복숭아 같은 날이 있어야 하건만 그러질 못했다. 열아홉에 시집와 일흔이 다 되어 쉬게 된 몸인데 생체시계마저 고장 났나 보다. 대상포진에 몇 번이나 걸려 치료를 받았다. 때를놓친 농약 치기처럼 예방접종이 아무 소용없다. 면역력을 상실해버린 어머니의 몸에는 또 다른 탈색의 흔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손등에서 처음 시작한 작은 흰 점 하나는 짓무른 눈가에도 등골에도 삶의 무게로 삐거덕대는 무르팍으로도 어김없이 번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백반증이라 했다. 지나온 모든 고통을 하얗게 지우고 싶어 하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봄날 앞에 어머니도 나도 함께 섰다. 맏이라는 짓누름에서 곧장 도망치고 싶던 딸은 거울 앞에서 가끔 그 옛날의 어머니처럼 처진 눈을 위로 슬쩍 당겨보고 처진 볼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자식의 소소한 일상에 웃고 울며 남편의 말 한마디에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는 요즈음, 어머니는 봄날 저 복숭아꽃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참 힘들다’는 말조차 쓸쓸하여 목맨다.
어렵게 뿌리내린 복숭아나무 아래 섰다. 어머니처럼 상처 많아 눈길 가는 나무다. 복숭아나무 아래 서면 복사 꽃비 내리던 예전처럼 순하고 여렸던 순화(淳花) 씨가 한 송이 꽃이 된다. 그 옛날 시소랑 그네처럼 곳곳이 삭고 탈색되어 무너져 내렸을 순화 씨의 가슴을 뒤늦게 생각하는 못난 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복사꽃 날리던 환한 그 날로 순화 씨를 돌려보내고 싶다.
이제는 벌레 먹은 복숭아가 약이 된다며 골라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입안이 벅차도록 씨알 굵은 복숭아만 골라 먹으며 단내 나는 노후를 보내시는 광경은 꿈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세월을 세다 하얀 꽃물이 번진, 칠십 년을 한참 더 묵은 복숭아 고목에 손을 내민다.
첫댓글 아름다운 문장 들,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아련한 옛 시절로 저를 통행료도 받지 않고 보내주네요.
잘 읽었습니다. 잠깐은 코 끝이 찡 하였답니다.
남 선생님의 나날이 청청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