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면 봉하쌀막걸리 전문점
- '대놓고 정치적인' 술집으로
- 노무현·강금원 의리가 안주
- 사람 사는 세상 논박의 공간
부산 서면에 있는 김해 봉하 막걸리 전문집 '바보주막'(왼쪽)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는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부산 서면 영광도서 근처에 '바보주막'이란 곳이 있다. 김해 봉하마을의 쌀 막걸리를 전문으로 파는 술집이다. 칼칼한 맛과 특유의 정취로 지난 4월 개점 이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바보주막의 화두 중 하나는 두 바보의 '천상 의리'다. 두 바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난달 2일 고인이 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일컫는다. 이들이 지상에서 나눈 우정과 의리가 막걸리 잔에 실려 테이블을 건너다니고,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논박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노무현재단이 지난주 강 회장을 명예이사장으로 추대한 것도 호사가들에겐 짠한 안줏감이다. 두 바보 얘기가 나오면, 어떤 이는 그리움에 눈시울이 젖고, 어떤 이는 광포한 시대를 향해 울분을 토해낸다. 하다 보니, 바보주막은 전국에서 가장 '대놓고 정치적인' 술집처럼 돼 버렸다.
강 회장은 이곳에서 의리의 아이콘이다.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신의가 버려져 길바닥에 나뒹굴고, 정의가 쓰레기통 속에 쳐박혀도 묵묵히 이를 지켜온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강금원. 우리는 그를 의리로 기억합니다'. 지난달 2일 강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한 일간지에 실린 광고 문안은 뭔가 울컥하게 하면서 숙연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노무현 묘소의 추모 박석(薄石)에서 새긴 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당신의 뜨거웠던 삶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힘든 고통도 나누려 했습니다. 영원한 친구 강금원'.
노무현과 강금원.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의 두 사나이가 지상에서 나눈 우정은 실로 드라마틱하다. 대통령을 지낸 한 정치인은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후원했던 한 기업인은 검찰의 서슬 아래 지병으로 경기 이천의 한 요양원에서 쓸쓸히 생을 접었다.
강 회장의 고향은 전북 부안. 전주공고를 졸업한 그는 1975년 서울에서 영신염공(창신섬유의 전신)이란 회사를 차렸고, 1980년 부산으로 사업 기반을 옮겨 자수성가했다. 창신섬유는 부산 사하구에 2개의 공장과 중국 선양의 합작공장에서 연간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기업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한국, 아니 부산 상공계에서 비주류였다.
생전 강 회장은 부산을 '제2의 고향'이라 말하면서도 호남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린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 그 후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부르짖는 노무현과 친노 세력에게 100억 가까운 돈을 조건 없이 지원했다. 그 때문에 검찰조사를 받고, 감옥에 가고, 지병을 키운 꼴이 됐지만, 죽을 때까지도 노무현을 후원하며 지켰다.
이 두 사람이 보여준 의리는 전두환-장세동의 정치적 의리, 영화 '친구' 속의 조폭적 의리와 사뭇 차원이 다르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시대정신을 좇아 삶과 죽음을 오롯이 포개어 함께 나아간 의리였기에 두고두고 감동적이다. 하고 보면, 이들이야말로 진짜 '의리의 부산 사나이'가 아니었을까. 이제 누구도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말하거나 부산에서 호남 편견 때문에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알게 모르게 변화한 지역정서다.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였던 두 사람은 이제 지상의 질시와 편견에서 훌훌 벗어나 천상에서 못다 한 의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오늘 밤쯤은 둘이 내밀하게 만나 담배 한 대 나누며 봉하 막걸리를 주고받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