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기마족과 왜(倭) 中에서
- 저자 :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1996)
서론에서
- 이즈모신사
. 바람의 신 스사노오미코토(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오빠) -- P20
- 이세신사
. 해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아마테라스의 거울 -- P20
- 이소노카미신사
. 부여 바위신, 부여 왕족혈통의 왕녀 진구가 전파, 무속적 형태의 칠지도(일본정벌을 입증해 주는 유물) -- P21
. 칠지도는 신공(진구왕후)이라는 이름의 젊고 아름다운 부여 왕녀가 이끌었던 기마족 일단이 369년 한국에서 건너와
일본을 정벌했음을 확증시키는 자료다. -- P22
한국으로부터 철기와 청동기, 도자기의 물레 사용법을 익힌 서기 3세기를 일본사회는 석기시대를 막 벗어난 야요이 시대로 부른다 -- P37
부여족은 전쟁포로를 인간 이하의 노비라는 뜻의 하호라고 불렀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들의 전쟁 포로를 역시 하호라고 불렀다 -- P53
신공왕후는 왕족 여성이고 다케우치는 고령가야 출신의 장군이었다. 그들 사이에 낳은 아들이 바로 일본의 제 15대 왕이자 부여기마족의 일본 통치 초대 임금인 오진이다 -- P69
이 칠지도는 이를 지닌 사람에게 어떤 날카로운 적병이라도 물리칠 힘을 준다. 백제의 왕세자(근초고왕의 아들)가 369년 왜왕을 위해 백제왕의 상의로 이를 만들어 속국 왜왕에게 하사한다 -- P86
일본의 왕권을 상징하는 삼종신기
- 아마테라스의 성스런 거울(동경) -- P87, P301
- 스사노오를 상징하는 신칼 -- P295, P302
- 구부러진 모양의 곡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 -- P123, P302
사서 편찬의 유일한 금기는 밖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부여족의 왜 정벌을 철저히 삭제하고 그 대신 현 집권자들의 계보를 늘려 오래 전 중국 역사서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호한 신들 시대에서 비롯된 듯이 꾸미는 것이였다. -- P185
일본 측의 연구에서 최초의 주목할 사실은 1916년경 기다 사다기지가 일본 왕실의 조상이 부여, 백제계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 P193
일본 고사와 고전 책은 한국 땅이 일본 민족의 발상지이며, 일본인의 조상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건너간 한인이고, 일본의 왕가는 한국에서 건너간 망명자 또는 그 자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 P204
8세기 역사학자들의 첫 번째 임무는 이러한 부여족의 일본 정복을 은폐하고 부여족이 이룩한 중앙집권 국가를 당대 일왕네 조상들이 만든 것처럼 바꿔치기하는 것이었다. -- P290
일본에서는 솔직함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지속적으로 들었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일본인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거기에 맞는 얼굴을 지어보일 수 있다. 그들이 진짜로 느끼는 감정은 속에서 억제되고 대신 작의적인 얼굴로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다. -- P323
나는 그들을 좋아는 하지만, 신뢰 하지는 않는다. -- P335
이상.
첫댓글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치만 신뢰도 않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