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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토하기 – 윤영한 목사
이런 설교 시간에 만약에 제가 배가 아프면 정말 급하게 배가 아프면 세상이 노랗지요 예 그 설교도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내가 아프면 세상이 다 아픈 거예요. 그리고 내가 잠들면 나와 똑같이 세상이 다 잠든 거야. 내 속에서 나를 나처럼 나를 보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하나님세요. 내가 코를 풀면 그냥 버리면 되는데 이렇게 펼쳐 또 보잖아요. 이렇게 나처럼 나를 보는 분이 누구라고요. 예 하나님도 그렇게 하신다는 거죠.
그 지난밤처럼 전기를 끄고 불이 소등되면 그리고 내가 잠들면 내 인식 속에서도 하나님이 딱 꺼져요 내가 잠들면 하나님도 같이 잠들게 돼요. 그리고 내가 죽으면 나랑 연동돼 있는 누구도 죽어요. 하나님도 죽으시는 거예요. 그 내가 없으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만든 그 천지만물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렇게 하나님 우리한테 심어놓은 인식은 그렇게 중요해요. 신비하지 않아요. 어려운 한자로 현묘하다라고 이렇게 말도 하는데 신기한 인식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세상을 나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창조를 의미 있게 만드는 건 내가 가진 인식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식일도 필요없구요. 천지창조도 필요없구요. 하나님도 다 소용없어요. 내게 생명이 없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님마저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하나님이 넣어주신 인식이라는 말인 거죠.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이렇게 딱 눈 뜨고 딱 깨어나야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등장하고 내가 딱 눈을 떠야 이 앞에 있는 섬들도 의미있고 내가 딱 눈을 떠야 내 주변의 사람들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녁에 잠들 때는 나랑 같이 누구를 두고 잠드냐면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만물도 나와 똑같이 다시 잠드는 겁니다. 내가 있기에 만물을 잊게 만드신 하나님이시죠.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게 해 주신 신비한 인식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쾌락 중 가장 큰 쾌락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느끼는 거겠지만,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쾌락은 뭐냐 하면 내가 숨 쉬는 거예요. 내 심장이 뛰는 겁니다. 가장 큰 쾌락은 내가 살아있는 생명으로 그 인식을 향유 그 인식을 즐기는 겁니다. 그것처럼 큰 쾌락이 없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야 하나님이 주신 그 만물 세상이 내가 깨어났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고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쫙 있었던 거예요. 수레딩과 고양이 같은 거죠. 나는 내가 눈에 딱 뜨면서 이제부터 존재라 하니까 이 모든 게 다 존재하는 거예요. 그것처럼 하나님과 가까운 경험이 없어요.
이건 신비하고 성스럽고 거룩하고 한편으로는 짜릿한 경험이에요. 어려운 말로 최고의 눈민우리 문제라는 거예요. 아주 신비한 영적인 경험이 무작정 눈 떠서 가만히 있지 말고 예 그걸 느껴야 돼요. 나 때문에 다 존재하는 것 나 땜에 다 존재하는 내일 아침에도 조금 더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서울에만도 목사님 거의 3만 명이 대리운전하는 것 아세요. 교회가 어려워요 그 교인 100명 이상 되는 교회가 많지가 않아요. 그리고 대리운전 끝난 다음에 새벽 기도하기 전에 뭘 하냐면 택배 분류를 해요. OECD 자살률 20년 가까이 1위 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알아요.
노인과 청소년 자살률도 거의 1위죠 하루에 40명이 죽어나가요 이틀에 1명 꼴로 서울 유명한 한강 다리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려요 그리고 학생들 삶의 만족도도 맨 꼴찌 두 번째인가 근처에 있어요. 아이들 해외 입양률도 1위고 실업률도 1위고 교통사고 사망률도 1위고 폐지를 줍는 노인 인구가 200만 명이나 된다. 참으로 힘든 나라에 우리가 살아요.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또 휴가는 가장 짧겠어요. 거기다가 퇴근 후에 그쵸. 술로 스트레스를 풀고 또 그 저녁에 회식하고 접대를 해요. 그리고 그 다음날엔 또 그거 다 줘요 아니잖아요. 칼같이 출근을 정확하게 해야 돼요. 그런데 낮에는 당연히 피곤하죠. 그 피곤 어떻게 또 쫓아요.
예 커피를 많이 카페인으로 쫓아내요 그리고 밤에는 무슨 힘으로 살아요. 또 알코올힘으로 이렇게 삽니다. 그래서 누구는 그래요. 카페인 공화국 알코올공화국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그래서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 힘들어 그러니까 모두 다 위로가 필요해요.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와 가지고 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많이 힘드셨죠라고 진심으로 말해주면 정말 금방이라도 눈물 후두둑 흘릴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란 거죠. 근데 피차 이렇게 고달프게 살면서도 또 우리가 가장 못하는 게 뭐냐 하면 이렇게 힘든 우리를 피차 뭘 못해요. 위로를 또 잘 못해요.
서로 그렇게 힘든 걸 또 알아주는 걸 또 얼마나 못하는지 몰라요. 혜민 스님 있어요. 요즘 뭐 시끄럽지만 미국 하버드대 나오고 햄프셔도 교수죠 베스트셀러 저자고 그때만 해도 트윗 팔로워가 20만 지금 더 됐을 겁니다. 아주 영혼의 멘토라는 별명 가진 분인데 이분이 강연하면 법령 스님처럼 비슷하죠. 사람들이 몰려들고 강의하고 질문받고 답해 주잖아요. 뭐 즉답 해가지고 그 여러 해 전에 나와서 절 댕기는 분들이 와서 질문하는 게 또 뭐예요? 누가 들어도 해답도 없는 질문이에요. 근데 너무 아픈 질문들이에요. 그럼 답이 없어요. 그러면 이 스님이 나와서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내려가요 내려가서 질문한 아줌마를 꼭 안아주고 거기서 같이 울어요.
그걸 지켜보는 모인 분들도 다 같이 울어요. 스님은 진심으로 아주머니를 안고 그분을 위해서 울어요. 그게 전부인데 거기 참여한 많은 분들이 아주 깊은 위로를 받아요. 꽤 오래전에 미국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경찰이 달려오죠 운전자가 차에서 튕겨나가서 도로에 나 뒹굴고 한국 같으면 렉카차가 제일 먼저 왔겠지만, 그때 달려온 건 교통경찰이었죠. 경찰은 바닥에 거의 널브러져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그 환자를 보고 이렇게 끌고 그 길 가생이로 오잖아요. 와 가지고 경찰이 니은 자로 앉아요.
이렇게 다리를 그리고 환자를 죽어간 환자를 무릎에 이렇게 얹혀놔요 그리고 그를 꼭 안아줘요 그 경찰은 그 운전자가 인생의 마지막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외롭고 무섭게 혼자 그렇게 떠나지 않도록 그거를 꼭 안아준 거죠. 우리도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면 좋겠지요. 그렇게 따뜻하게 안아주는 뭐 저희 병원도 그러고 여기 병원도 그러면 좋겠어요. 따뜻한 직원들 그리고 따뜻한 환우분들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서로 안아주는 그 정신과 의사인 정해신 씨가 이런 자기가 쓴 책에 이런 말을 했어요.
음식을 못 먹은 아이가 초췌한 건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안 만져주면 음식 못먹은 애랑 똑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애들은 매를 벌어서라도 불행한 스킨십을 그렇게라도 뭐 이렇게 할려고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애나 어른이나 다 사람 같은 거죠. 그 4년 전인가 여기 1번 왔었어요. 그래서 처음 와가지고 둘러보고 그랬는데 제가 감동받은 게 있어요. 감동적인 사진을 못 찍어서 동물사진 올렸는데 제가 몇 번 봤어요. 점심때인가 식당에 갔는데 식사하러 온 한우분들이 그 환우분들 지금 안 계세요.
여기에는 꼭 안아주시는 거예요. 마전 제가 볼 땐 친정 가족들같이 보였어요. 친언니 동생들이 서로의 아픔을 다하는 느낌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보는데 아주 마음이 아주 찐해지는 거예요. 등을 도닥이는 데 한참 도닥여 얼마나 따뜻함이 느껴지는지 제가 이걸 퍼져 앉았다. 가만히 보다가 그 2분 보면서 제가 마치 제 심장을 막 누가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렇게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서로 안기면 저렇게 마음도 내려놓고 덥썩 안기면 얼마나 깊은 위안을 받을까? 저렇게 꼭 안았을 때 몸속의 나쁜 것들을 얼마나 위축되고 그 좋지 않은 것들은 다 저 사랑에 녹아나지 않을까?
그 2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저나 여러분은 막 달려가서 폭삭 안길 만한 그런 분들 있으세요. 내가 찾아가서 품에 안겨서 엉엉 울만한 분들이 있나요? 오늘 그 주제를 잠깐 얘기하려 합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시편이 있으시죠. 성경 독자들이 즐겨 읽는 성경 10편의 절반은요, 아주 차가워요 그리고 아주 자주 섬뜩할 때가 많아요. 반절 이상의 시편이 슬픈 내용이고 감사와 찬양은 소수예요. 그만큼 인간의 삶은 힘든 거죠.
10편 8편을 보면요 이런 말씀이 나와요. 다윗은 저녁에 평안한 가운데 밤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찬양하는 그런 평온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노출해요. 근데 그 10편 12편 그다음 편들을 보면 충격적이에요. 악인의 팔을 꺾어달라고 그러고 저런 입술 혀를 끊어버려 달라고 기존에 10편이나 20편이나 다 한 사람이 쓴 거래요. 이렇게 다윗의 변덕은 계속되어 내 중심이 젖된 애 같다고 얼마나 해맑은 마음을 표현했어요. 그러다가 저 어린 것들 반석에 맺히라는 말을 해 변화무쌍합니다. 또 있어요.
10편 22편엔 죽을 것처럼 막 그러다가 10편 23편에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나와요. 22편에 이러다가 23편이란 말 절망에 빠져서 아주 뒤죽박죽 괴로움 속에서 하나는 이렇게 막 소리를 지르다가 한순간에 장면이 싹 바뀌어요. 아름다운 동양화 1편을 보는 것처럼 편안해져요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죽 끓듯 요동을 칩니다. 심지어 이런 시들도 있어요. 보기에 상스러운 구절도 많고 잔인하고 포악한 기도들로 가득해요. 가만히 보면 이 10편 기자가 자기 감정을 안 참아요.
마음이 있는 그대로 아주 생생하게 요란하게 포장하지 않고 자기 속 모든 감정과 저주를 다 쏟아내 산 채로 매장해 달라고 대가 끊어지게 하고 정수리를 뽀개 주고 눈이 멀게 하고 혀를 잘라주고 머리를 깨서 기름에 이렇게 하듯 태워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상식적으로 이게 성경일까요? 이렇게 하면 성경이 아니잖아요. 성경의 기도는 이렇지 않아요. 정상적인 기도라면 이래야 돼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그쵸. 난 악인이 죽는 걸 원치 않고 이래야 점잖고 상식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렇다면 왜 10평 기자는 하나님께 이런 끔찍한 기도를 쏟아붓는 것일까? 왜 그럴 거 같애요.
하나님은 우리 엄마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니까 이러는 거야. 하나님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얘기를 참고 들어주는 우리 친정엄마 친정 아버지 같은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부모는 내 감정과 기분을 다 알아주고 그걸 다루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 같아요. 또 묻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는 세상에서 나를 참고 나를 견디고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제 작은 누나가 있는데, 암으로 일찍 떠났어요. 부산에 시집갔는데 이것도 뭐 제가 대학생 되니까. 신혼 초에 부산에서 제 고향인 강원도 속초의 거진인데요. 8시간 반을 버스 타고 와요. 근데 보통 며느리들은 시어머니 건강 생각해주잖아요. 어머니 일찍 주무셔야 돼요. 그러잖아요. 근데 딸들이 일찍 주무세요. 그래요. 친정엄마 안 재워요 밤새 이불 속에서 엄마랑 얘기해요. 제가 20대 초반이라 옆에서 이렇게 자면서 들으면 둘이 막 소근소근 하는데 막 둘이 울어요. 또 뭐하는 거냐 하면 저는 철이 없어서 그냥 듣고나 말았는데 그 나쁜 놈 김 서방 바쪽에서 막 욕하다가 울다가 또 서로 웃다가 다음날 그 사위가 또 쫓아와요.
그럼 또 저희 엄마는 또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맨발로 문 앞을 뛰쳐나가서 싸이 올 김 서방 왔나 하면서 막 보통 그러면 씨암탉 잡아라 막 이렇게 하잖아요. 그렇게 밤새 친정엄마와 딸이 얘기하면 그다음날 루나 표정은 차분해져요 마음이 정화되고 냉정을 되찾은 것 같고, 뭔가 여력이 생기고 뭔가 기운을 얻어 가지고 또 시집으로 간 시댁으로 가요 10현 저자도 많은 저주를 퍼붓는데 그 미운 그 인간에게 그 원수에게 퍼붓지 않고 오로지 친정엄마인 하나님께 찾아와서 그걸 다 하나님께만 쏟아붓는 거예요.
어떤 때는 속이 화를 막 화가 나고 소리도 지르고 어떤 때는 감격에 복받쳐서 막 울고 그리고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았던 것 같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산 거 같애요. 하나님이 자기랑 그렇게 친하지 않으면 언감생심 그렇게 어떻게 막역하게 어떻게 이문 없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이렇게 속을 다 토술하고 터놓고 이렇게 못 하거든요.
엄마한테 다 고자질하는 애처럼 또 자기가 비겁하면 비겁한 대로 소심하면 소심한대로 겁이 많으면 많은 대로 화내는 걸 보면 우리랑 똑같애 그렇게 다 아이씨 일기장처럼 쓴 시편을 우리가 보면서 다윗이는 우리랑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하고 아주 긴밀하고 친밀하고 다정하고 하느님하고 비밀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윗이 고상하게 노래를 했건 좀 거칠게 이렇게 막 열번을 토했건 간에 다윗은 자신의 삶에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다 친정 하나님에게 다 일러바치고 대화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기뻐하고 찬양하든 내 뜻대로 안 돼서 힘이 들던 간에 다윗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을 친정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그게 다 꼬질리는 딸처럼 시시콜콜하게 세세하게 기분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힘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기분이 업되면 혼자 들썩이고 우울함은 축 처진 대로 삶 전체를 하나님과 다 나누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감정을 숨겨요 내 다이슨 다 아래요. 유쾌하든 불쾌하든 모든 경험을 아래요. 하나는 겁나요? 하나는 어제는 안 아파서 너무 좋아요. 저 사람이 신경 쓰여 가다가 넘어졌으면 좋겠어요.
남이 들으면 험담이 될 만한 것 하나님께 아뢰면 그게 다 강구가 되고 기도가 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분노나 설움과 이런 게 생길 때 한이 맺히는 것들마저도 다 분출해요. 내 감정을 싸매지 않고 근데 더러운 걸 다 제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가장 정직하게 하나님께 다 내려놓아요. 그렇게 쏟아놓고 퍼붓고 토하고 아뢰면서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는 거죠. 저희 병원은 8시부터 시작하고 저희는 한 6시 반쯤에 출근하고 조금 일찍 출근하면 출근 한 20~30분 전에 조금 나이가 드신 고참 간호사 선생님들 출근하세요.
그 선생님들 태그를 찍고 쭉 들어오면서 저렇게 기도실이 병원에 있는데, 거기 꼭 들리는 고참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세요. 그 뒷모습만 보면 얼마나 은혜인지 몰라요. 아침에 제일 먼저 기도실에 들어가요 집이 힘들어서인지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부서에 뭐가 있는지 몰라요. 일단은 하나님을 방문하고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다 어떻게 하고 병동으로 돌아가 내가 할 일은 그렇게 한 날과 그렇게 하지 않고 환우를 대하는 날이 똑같을까요?
예 정말 하루를 견딜 힘을 얻고 떠날 때는 보람과 만족 가지고 떠나는 분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가장 먼저 찬 업무를 대하기 전에 힘겨운 일상을 맡기 전에 우리 친정 부모를 먼저 만나서 아침 먹고 왔냐 얘기 듣고 토닥토닥 해주는 거 보고 하고 부를 대상이 있는 분은 참 행복한 분들이라 생각 그 한국의 대표적인 가장 인기 있는 여류 소설가 수필가 박완서 선생님이죠. 이분이 돌아간 지 꽤 됐고 이분이 쓴 자전수필집이 이거예요.
한 말씀만 하소서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남편이 병으로 돌아가요 잘 아시죠. 그리고 3개월 후에 서울대 졸업 후 레지던트하던 25살 의사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어요. 이게 다 꾸미기를 기도하고, 또 엄마는 기도해요. 애는 죽었는데 살아있는 엄마는 엄마 자신이 너무 미운 거예요. 그래서 이 책에 거의 반미친년처럼 살았대. 생떼같은 자식이 죽었는데도 이 나라는 사상 초유의 호황과 88 올림픽으로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어요. 엄마는 이해할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었다 그래요. 그래서 자기가 독재자였으면 이 올림픽을 그냥 다 뒤집어 놓았을 거라구 그 세월호 엄마들이 글잖아요.
세상이 망해도 겁날 게 하나도 없대 이제는 내 새끼가 없으니까 내 새끼가 없는데 세상이 다 망해도 아무것도 겁 안 납니다. 이분이 기도하면서 주님 천주교 신자인데 왜 하찮은 저 같은 연예계 왜 이런 질한 사랑을 줘가지고 나를 왜 힘들게 하냐고 이 죽은 자식이 그려서 엄마는 짐승처럼 울면서 막 소리 지르고 욕하고 먹으면 토하고 토하고 또 지치면 쓰러져 잠들고 잠들면 꿈에 또 얘가 나타나요? 만나서 엄마가 꿈에서 살았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딱 깨어나면 또 애가 없는 거야. 그니까 엄마가 거기서 또 진저리를 치는 거야. 세상이 또 울면서 악다구리를 하늘에 발작처럼 쏟아부었다 그럽니다. 숨 쉬는 것도 괴롭고 죽지도 못하고 미치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분이 하는 기도가 이거죠.
아까 책 제목처럼 왜 하필이면 내 아들이냐고 하나님 왜 하필이면 내 아들인지 한 말씀만 해달라구 그렇게 비명 명과 통곡으로 써 내려간 제기 한 말씀은 하옵소서요 그렇게 울부짖은 천주교 신자였던 그녀가 어떤 대답을 들었을까요? 그 끔찍하고 긴 터널 끝에 이 엄마가 눈물을 닦고 이런 말을 해요.
왜 내 눈에 35도 안 돼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렇게 죽어서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은 예수 하나는 그 예수가 왜 이제 제 눈에 보입니까라는 얘기를 집현 기자들은 그렇게 하나님께 퍼부은 하나님께 속을 다 태워놓고 토살한 후에 이분처럼 눈물을 닦고 일으세요.
그렇게 감정이 차분해지고, 내면이 정화되고 냉정을 찾고 마음이 후련하고 시원해졌는진 모르지만 남을 용서하고 축복할 마음의 여력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편업한 마음이 교정되고 마음에 잔잔한 은혜의 샘물이 흘러서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시평 기사들 이렇게 다 토술한 다음에 눈물을 닦고 그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때 행복해서 기분이 좋으면 바로 하나님 앞에 언제라도 춤을 추고 일어나기도 하고 그런 거죠.
나도 가식 없이 하나님께 다 펴놓고 보여주면 어떨까 나도 10편의 사람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뒹굴고 몸부림치고 발을 구르고 입에 거품 물고 바등바등하면 우리 하늘 친정엄마 친정아버지신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아실 거야. 제가 만난 분이 유일해서 또 말씀드리는데 예전에 뉴스타트 세미나가 많았어요.
교회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시골의 한적한 좋은 환경 있는 그럼 쉼터 같은 데 요양원 같은 데 데리고 가요 어디 모처에 잘하는 데가 있어서 사람들이 갔는데 거기 가서 우리가 좋지 못한 거 다 끊고 좋은 거 하면 사람들이 막 변화돼요. 이만큼 약복다리도 가져갔다가 이거 먹고 폐암 말기 환자가 쫄록쫄록하다 일어나기도 하고 제가 본 아주 인상적인 한 아줌마가 계신데, 그 아줌마는 서울에서 왔어요. 구로구 쪽에 사시는 분인데 병원에 다 당연히 다 포기했어요. 가족도 버렸어 거기 왔어요. 와서 이분이 그냥 등 떠밀려서 좋다고 해서 왔어요. 신앙도 없는 분이 와 가지고 집회에 참석했어요. 이렇게 근데 그분이 가만히 있다가 한 젊은 총각이에요.
그 분이 간증하는 걸 들었어요. 그러면 손이 이렇게 꺼진 분인데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손이 할 거라고 막 간증하며 좋은 얘기를 했어요. 이 아주머니가 뒤에서 가만히 있다. 생각한 총각이 나면 나도 낳을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다 각자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이 기도할 줄 모르는 분은 자기 정해진 방에 들어가 옛날 방은 솜이불 있잖아요. 무거운 거 거기서 이분이 이렇게 인제 들어갈려고 잘려고 그랬는데 갑자기 뭐가 임했어요. 3일째인가 목요일 날 그 이불 위에 폭삭 엎드렸어요.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해 그렇게 미웠던 시어머니가 생각나기 시작 내가 이렇게 죽어 가는데 왜 내가 그 시어머니를 용서 못하고 여기까지 왔나 이런 생각을 그리고 갑자기 누구 생각도 드냐면 남편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내가 왜 남편을 그렇게 생각했나 불쌍한 아들의 생각은 내가 이 죽을 마당에 왜 그 사람들을 그렇게 대했지 난 왜 그들을 용서도 못 하고 여기까지 온 거냐 12시 넘어서 막 1시하고 12시 사이까지 온 것 같애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하나님 계시다면 제가 그 사람들한테 용서를 빌고 좀 죽게 해달라구 범벅해서 울다가 지쳐서 자다가 깨다가 새벽 한참 되던 새벽에 눈이 떴더니, 귀가 마려웠대요 그날 그래서 화장실 갔잖아요. 화장실에 가서 앉았는데 요런 거봉포도 알아요. 껍데기 깐 거 같은 것들이 그냥 이 아랫배에서 확 쏟아집니다. 그리고 몸이 그렇게 가볍대 난리 났죠. 집회 다 끝마치고 병원에 갔는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어디서 어떻게 치료를 받았냐 의사가 이게 모든 분에게 다 일어나지는 않아요.
자기소개까지 다 도와 하느님이 계시다면 제발 제가 죽기 전에 우리 시어머니 남편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구 그 얘기하고 죽을래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렇게 제발해 달라고 하고 맘써도 울다가 그래라 많은 시평 기자들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오늘 좋아요. 여러분도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그렇게 우리 속의 것들을 다 토솔하여 낼 수 있는 우리 친정아버지 친정엄마보다 더 친한 분이 우리 하늘 아버지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