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질투를 하신다는 것은 사랑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가 질투를 한다는 것은, 그가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사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의 형상대로 그의 대화자로서 다른 상대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할 신랑에게 있어서 신부처럼 신의에 있어서 구속과 소유 그리고 책임이 동반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를 그의 반려자로써 자격이 있게 하고 동물들이 그의 반려자로써 자격이 있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그와 친구처럼 깊이 있는 내면의 서로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자녀로 창조하였으니, 그가 우리를 그의 깊이 있는 친구의 관계가 가능한 이로, 그런 목적하에 우리를 창조하였으니, 그는 우리를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가 그의 신의에 반하여, 죄를 짓고 싶은 마음에, 더이상 그와 깊은 내적대화 상대자로 있기를 거부하고 그와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그는 우리를 창조한 것을 후회할 것이며, 질투할 것이요, 그가 더이상 사랑으로 인내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서 그를 반대하며, 그가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짓는 우리를 지면에서 싹 다 쓸어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의 뼈와 살로 하와를 창조하였으니, 마치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여 아담을 그의 아들로써 인식하였듯이, 아담의 뼈와 살로 만들어진 하와는 오직 하와만이 아담의 반려자로써 존재할 수 있게 창조 되었으니, 아담의 친구 강아지가 하와를 대신 할 수 없을 것이요, 하와의 놀이 상대자 뱀이 아담을 대신할 수 없으리니, 하와만이 아담의 뼈와 살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젊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서로의 이성적 매력이 상대방에게 질투를 느끼게 하고 소유라는 감정을 당연하게 하니, 이성적 매력이 더이상 유지 되지 않는 곳에, 더이상 질투가 없고 소유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것이, 이성적 매력이 사랑이라 불리우며,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표현되기도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질투하시니, 이는 그가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신의를 지키시니, 우리가 죄를 지어 그의 형상으로써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를 돌이키기를 바라시니, 우리처럼 우리의 반려자가 이성적 매력을 잃어버렸을 때의 우리의 반려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과 달리, 우리의 그를 향한 형상적 매력이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은 신의를 지키며, 십자가가 다하기까지 책임을 지시니, 그가 질투할 만큼, 그의 사랑이 우리를 그의 형상화에 흠뻑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형상을 잃어버리지 아니할 수록 즉, 예를 들어 이성적 매력이 떨어진 배우자에게 우리가 신의와 책임을 진다면, 우리가 이성에게도 어필 할 수 있는 매력들을 그가 챙겨주고 싶어함은 당연하지 아니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