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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사상의 종합과 정리
인간은 철저한 이중인격자이다. 분리되고 구별된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토마스 브로원 경(Sir Thomas Browne)'
제1장에서 우리는 과학과 성경의 정당성에 대하여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때로는 과격하거나 신랄한 면도 있었는데, 특히 창조와 진화를 다룰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너무나 자주 사람들의 무식이 드러난다. 인류 진화의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서 한번 사용되었던 악명 높은 필트다운인 날조 사건을 창조론자들은 계속해서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인류진화의 계보에서 삭제되었다. 진화론자들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말하는 일에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 갈릴레이 이야기는 사실과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갈릴레이는 성격이 다소 공격적이고, 또 그가 당한 여러 가지 형편이 불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가 그를 감옥에 잡아 가두거나 육체적인 고통을 가한 일은 없었다. 2)
실제로 과학과 성경 사이에는 일종의 대립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서로 화해될 수 없는 차이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본장에서는 정말 우리가 과학과 성경을 포함한 모든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진솔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과학과 성경은 서로가 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대등한 입장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제안하는 바이다.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별다른 정의가 없는 한, 본장에서 과학(science)이라는 말은 자연에 대한 보편적 진리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방법론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적 과학(methodological science)은 설계자(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은 물론 매우 다양한 해석들에까지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진리 탐구에 있어서 설계자의 개념을 배제하는 오늘날의 자연주의적 과학(naturalistic science)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자연주의적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방법론적 과학과 성경이 조화되도록 연결시켜 주는 것은 가능하다.
과학과 성경 -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동반자
1859년 출판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은 서구문명의 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의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서 100주년 출판기념행사가 세계 여러 곳에서 거행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행사는 5일 동안에 걸쳐서 시카고 대학교에서 개최된 것이었는데, '불도그'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졌다. 이 행사의 기념사에서 다윈의 절대 옹호자였던 토머스 헉슬리(Thomas H. Huxley)의 손자인 줄리안 헉슬리(Sir Julian Huxley)는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류의 두뇌와 신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포함해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도 진화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그렇게 진화되었다. 진화된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 놓고 신성시하고 있는 아버지 품속에서 더이상 자신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으며, 신적 권위의 우산 밑으로 피하기로 결정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알아볼 수도 없는 전지전능한 섭리자의 뜻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고 해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또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힘든 과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와 같은 성명을 으리으리한 록펠러 채플(Rockefeller Chapel) 안에서 개최된 특별집회에서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묘하게도 세계 27개국 약 1,500명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나온 것이었다.
다윈의 업적을 추모하는 과학자들이 왜 하나님께 기도는 했을까? 이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해서 의문을 일으킨다. 많은 과학자는 정도는 다르지만 종교적이며, 그들 대부분의 종교는 성경에 기초되어 있다. 이것은 과학적 신념과 성경적 믿음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 관계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자연주의적 과학에서는 과학 이론을 설명할 때, 어떤 종교적 설명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과학에서는 종교적 해석을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세기 전 서구사회가 근대과학의 기초를 놓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과학과 성경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이들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접근 방법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관찰 결과를 기초로 해서 그것을 설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반면에 성경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권위있는 자료임을 요구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그 결과로 나타난 사물들의 의미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과학은 새로운 사상들이 나올 때마다 언제나 수정이 가능하도록 개방되어 있음을 주장하는 반면에, 성경은 좀 더 결정론적인 논조를 띤다. 하지만 이 책의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과학자들은 스스로 상당히 권위적이고 결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특별히 과학 그 자체의 권위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과학과 성경이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접근 방법에는 그래도 많은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물론 과학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 모두가 자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만, 과학적 관찰 기록과 성경은 다 같이 자료들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과학적 자료와 성경은 결코 변하지 않지만, 이 둘의 자료해석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자료를 해석할 때 우리는 종종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합리적인 절차를 밟는다. 과학과 성경은 어떤 제한된 항목에서는 서로 결과가 일치되며, 또 서로 보완해 준다. 실존하는 진리와 그 의미를 찾기 위한 연구에서 우리는 어느 것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만일에 창조주가 존재한다면 자연은 자연의 창조자에 대하여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창조주가 없다면 과학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종교의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생명의 복잡성에 대하여 우리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과학의 성경적 배경
지난 반세기 동안에 널리 퍼져 나간 흥미로운 생각은 일반적으로 과학과 성경은 서로 대립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거부감이다. 논문의 주제들을 보면 과학이 주로 서구에서 발달하였는데, 그것은 특별히 서구 사회의 유대-그리스도교적 배경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과 성경이 별개의 세계 속에 존재해 있었다기보다 과학은 그 기원이 성경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상당한 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5)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했던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근대 과학사상이 '무의식 중에 중세 신학으로부터 파생되어' 발전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세계가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은 합리적이고 모순이 없는 성경의 하나님으로부터 추론된 것으로서 과학의 인과법칙의 개념을 신뢰하도록 하는 기초를 제공하였다.
다른 이교 문화권의 신(神)들은 변덕스러웠기 때문에 과학의 일괄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형이상학 철학교수 콜링우드(R. G. Collingwood)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신앙이 자연에 대한 관점을 부정확한 것으로부터 아주 정밀한 영역으로까지, 즉 과학적 정확성에 더 적합하도록 변화시켜 놓았다고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사상을 지지하였다. 위트레흐트 대학 과학사 교수인 후이카스(R. Hooykaas) 역시 성경적 세계관이 근대과학의 발전에 공헌했다고 강조한다. 특별히 중요한 것 하나는 과학을 신학자들의 권위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성경에 의해서 촉진된 상대적인 반권위주의(反權威主義)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에는 뉴저지 주 시턴홀 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에서 신학과 물리학을 가르친 자키(Stanley L. Jaki) 교수이다. 자키의 주장에 따르면 인도, 중국, 마야,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인들의 문화를 보면 이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그들 나름대로 과학을 시도했으나 모두 사장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실패한 것은 우주의 합리성에 대한 신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은 과학의 확립을 위해 필수적인 합리성을 제공해 주었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좀 더 논쟁적인 머턴(Merton)의 논문에서 볼 수 있는데, 그는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17세기 영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이 전통적인 교리를 거부하는 반권위주의적 자세를 통하여 과학을 해방시켜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과 과학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논제에 대해서 우리가 명확하게 확증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논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과학과 성경은 별개의 것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존재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전념한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
17세기와 18세기에 근대 과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 중에 종교에 헌신적인 사람이 많았던 사실은 과학과 성경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는 예가 될 수 있다. 다음의 네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자.
종종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은 확실히 물리화학의 아버지였다. 그가 과학계에 끼친 주요 공로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불, 공기, 흙, 물이라고 하는 고전 사상을 뒤엎은 데 있다. 이 혁신적인 영국의 과학자는 매우 헌신적인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은 직접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아일랜드와 뉴잉글랜드에서의 종교적 목적에 사용해 달라고 기부하였다. 1)
프랑스의 천재적인 수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확률의 원리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사업에서의 전체적인 방향이 신앙을 확립하고 신앙의 위대함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가 회의론자들11)
에게 제안한 유명한 말, 즉 "하나님이 없다면 회의론자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손해볼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어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라고 장담한 말은 그의 빈틈없는 사고뿐 아니라 그의 종교적인 헌신을 보여 주는 것이다.
스웨덴의 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는 웁살라 대학교의 초창기 교수 요원이었다. 그는 특별히 생물 분류체계에서 속(屬)과 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정의하고 생물들의 이름을 붙일 때 필요한 일정한 체계를 처음으로 확립하였으며, 그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생물을 분류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의 학자들은 그의 명성에 호감을 가졌다. 하나님의 창조와 모순되는 어떤 의견이 나올 때마다 이를 반대하면서, "자연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 창조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에 따라서 일어난다."라고 믿었다. 린네가 그의 말년에는 생물들에게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와 변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종의 불변'이라는 종래의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현대 창조론자들에 의해서도 인정되고 있는 내용이다.
지금도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과학자로 인정받는 뉴턴(Sir Isaac Newton, 1642~1727) 역시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었다. 미적분 원리를 확립하고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뉴턴은 성경에 나타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예언에 대한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위해서도 꾸준히 성경을 연구하였다. 뉴턴은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가 되시며 자연은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해준다는 사실을 진실되게 믿었다. '3)
이 외에도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수십 명의 과학자의 예를 보면 분명히 근대과학의 기초가 성경적 분위기에서 태동했고, 또 성경과 과학 사이에는 근본적인 적대관계가 전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초기 과학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으며, 과학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연 가운데 이미 확립해 놓은 원칙들을 발견하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창조 사상은 기원에 대한 전제로서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종교적 분위기는 근대 과학의 탄생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현대 과학자들과 종교
현대 과학이 독자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과학이 종교적 위협을 무릅쓰고 오늘날과 같이 발전되어 온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철학의 쇠퇴와 더불어 과거 반세기 전에 비하여 그러한 주장을 펴는 과학자가 훨씬 줄어들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플랑크, 1858~1947; 아인슈타인, 1879~1955; 보어, 1885~1962; 하이젠베르크, 1901~1976)이 발전하게 됨으로써 과학에서도 근본적인 불확정성 요소들이 개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이론에 따르면 속도와 위치를 연속적으로 측정할 때는 운동하는 물체의 위치와 속도가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고 약간의 불확정적인 값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측정한 속도와 위치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 과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인과법칙의 원리가 맞지 않는 것으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여러 요인과 함께 과학자들로 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과 외경심을 갖도록 자극하였다.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종교와 성경을 거절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 혹은 창조자와 같은 신의 개념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현대 사상의 구성 요소들을 인지(知)하게 된다. 특별히 물리학분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보기로서 세 인물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그들 모두는 이러한 주제로 광범위한 저술을 남겼다.
데이비스(Paul Davies)는 영국 뉴캐슬 대학교의 이론물리학 교수이다. 그의 유명한 저서, <하나님과 새로운 물리학(God and the New Physics)>에서 그는 "과학은 종교보다는 하나님에게 이르는 확실한 길을 제공한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그는 후에 다른 책에서 "사물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말해 주는 강력한 증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본장의 첫 부분에서 제시한바, 과학자들은 얼마든지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지지하고 있다. “하나님과 새로운 물리학> 출판 후에 나는 가까운 동료 과학자들 상당수가 일반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6)
피콕(Arthur Peacocke)은 옥스퍼드 대학교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강의했던 생화학자이면서 신학자였는데,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법칙들과 우연을 통하여 창조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였으며, 또한 궁극적 실재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표명하였다. 180
펄킹혼(John Polkinghorne)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소립자 이론을 가르치는 입자 물리학자로서 25년 이상 연구에 종사하다가 성공회의 성직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신학과 과학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자신을 바쳤고, 후에는 캠브리지 대학교의 단과대학 학장이 되었다. 그의 논문 중에는 하나님은 우주를 붙드시고 우주 안에서 활동하시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선택의 자유를 촉구하시는 분으로 표현한 내용이 있다. 19)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은 과학이 종교와 통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학자들 중 몇몇의 경우일 뿐이다. 그들은 상당히 광범위한 식견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201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진화론적 자연과학자들이나 성경을 믿는 창조론자들 중 어느 쪽의 개념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학적 개념과 성경적 개념은 서로 반대되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광범위한 접근방식의 중요성
과학자들 사이에서 종교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사이언스(Science)나 네이처(Nature) 등과 같은 전문 학술지에서도 독자란이 운영되고 있다. 글을 투고한 사람들 중에는 이따금씩 과학과 종교는 서로가 각자의 영역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립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배타적인 자세로 자연주의적 태도를 나타내는데, 심지어는 과학자들이 교회의 문턱을 들어설 때는 그들의 모자나 외투는 물론, 그들의 두뇌까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대개가 종교와 관련된 신앙은 과학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퍼듀 주립 대학교의 화학교수인 뮐러(Norbert Muller)는 "과학은 종교 없이 그저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과학자들은 "과학적 지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설들을 믿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2) 다른 학자들은 종교는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고, 사실상 목적 의식과 진리를 제공하는 큰 책임을 갖고 있으며, 각종 중요한 사상에 종교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3) 우리는 어떤 사상(思想)의 노선을 따라야 하겠는가?
모든 지적 탐구를 위해서는 먼저 광범위하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무지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 중 하나는 그 희생자들마저도 자신들의 비참한 형편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또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진리는 많은 수고를 해서라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또 모든 영역에서 이해할 수 있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광범위하여 포괄적이고 모든 실제(reality)와 현실(actuality)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진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어떤 제한된 영역에 대한 깊은 연구에 근거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는 자연주의적 과학에서처럼 단지 기계적인 세계만을
<그림 3.1> 새로운 물리학과 하나님 : 그림은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포괄적인 접근방법의 가치를 잘 나타내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원은 각각 독자적으로 우리에게 값있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두 원이 합쳐지는 부분처럼, 두 견해가 서로 통합될 때 보다 의미 있는 해석을 제공해 준다.
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철학자들처럼 주로 관념적인 세계만을 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계적인 세계뿐 아니라 인간의 영적인 차원을 포함한 모든 관념적인 세계를 항상 고려해야 한다. <그림 3.1>은 광범위한 접근 방식의 이점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의 원은 성경을 나타내고, 또 다른 하나는 과학을 대표할 수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겹치지 않는 영역에서는 오직 과학이나 성경만이 우리에게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만을 기초로 해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편협적인 것처럼 보인다.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할 때 우리는 더 폭넓게 정보를 축적할 뿐 아니라 더 풍부하고 의미 있는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기원(起)에 대한 중요한 문제에서 우리는 한쪽의 편협된 자료만을 보는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
광범위하게 연구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데 여러 가지 견해를 통합하고 중용을 취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진리는 영원하며, 오류와 대립될 때는 진리가 갖고 있는 진의가 더욱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24)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너무 편협된 방법으로 접근하면 불만족스러운 결과만 초래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번은 필자가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지질학과에서 창조론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통해서 나는 4가지 요점을 제시하였다. 25) (1) 복잡한 생명체가 자연발생으로 생겨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 화석기록상의 '잃어버린 고리' 들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3) 과학 사상은 계속해서 변천되어왔다. (4) 과학과 성경은 다 같이 공통적이고 광범위한 합리적 기초를 갖고 있다. 나는 특별히 마지막 4번째 항을 포함시켰는데, 그 이유는 학생들이 전공과목에서 진화론만을 가르치는 것을 불평하면서 다른 쪽의 설명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너무나 편파적인 접근 방법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과학과 성경 중에서 어느 것이 진리인가?"와 같이 되풀이되는 질문은 설령 많은 사람이 제기하는 문제일지라도 좋은 질문은 못된다. "과학과 성경 모두를 연구한 후에 나는 어떤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죽은 사람들과의 영교를 시도하였던 19세기 말의 강신술(降神) 운동은 순수한 자연주의적 성향을 보여 주었던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 분야의 새로운 발견들을 통해서 야기된 지적 불안감에 대한 '적지 않은' 반응의 결과였다고 문화인류학자 헤스(David Hess)는 강조하였다. 그는 강신술을 최근에 나타난 뉴에이지 운동과 간접적으로 연관시켰는데, 뉴에이지 운동은 종종 비서구적 지혜를 근대과학과 연관시키려 하였다. 26) 단순히 모더니즘(modernism)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예술과 신학의 경향들을 보면 역시 광범위한 접근 방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종종 구체적인 전말을 자세히 알기 원하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편협된 사고방식에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과학은 본래 유물론적이며 비관념적인 경향이 있다. 또 폐쇄된 종교적 활동은 잘못된 사교 신앙이 되기 쉽다. 과학과 종교는 어떤 면에서는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다음과 같은 진술로 이 사실을 반영하였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 과학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소경이나 마찬가지이다."27)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기원에 대한 더욱 깊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접근 방식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말해 주고 있다.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 데우스 엑스 마키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물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설명하려고 하였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분, 단백질, 요소 등과 같은 유기화합물은 하나님만이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복잡한 분자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나 생명의 신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과학자들이 수천 가지의 유기화합물을 합성하게 되자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합성 과정에서 필수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우주적인 차원에서 뉴턴(Isaac Newton)은 우주가 적절히 운행되기 위해서는 때때로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수 세기 전만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너무 오래 자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이 빈대를 만들었으며, 사람들에게 음식을 저장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쥐를 창조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누구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과학이 진보되면서 이제는 어떤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지금은 혹시 하나님이 있다 해도 그렇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들을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을 종종 빈틈을 메워 주는 하나님(God of the gaps)' 혹은 데우스 엑스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한다. 본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는 말은 기계에 의한 신(神) 또는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神)'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공연에서 신의 역할을 맡은 한 배우가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연극 중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고 좋은 결말로 이끌어 가는 수법이었다. 이러한 연출을 위해서 무대 옆에 설치한 기계장치를 움직여서, 여기에 타고 있는 신(神)이 나타나도록 하여 극의 효과를 절정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과학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개념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수법을 하찮고 어이없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절대자에게 호소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만약에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과학이 언젠가는 그 비밀을 풀어 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팔아서는 안 된다.
많은 과학자가 자신의 뜻대로 자연을 주관하는 하나님, 과학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자연의 일관성마저도 마음대로 변경시킬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과학 사이에는 어떤 대립이 정말로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이 여겨 왔던 것처럼, 만일 하나님이 과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일반 원리들을 제정하였고, 자연은 이러한 일관성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 대립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생각에 하나님은 과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원칙들을 제정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가 세우신 법칙들을 뒤집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예는 거의 없다. 바로 이것 때문에 과학이 가능한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혹은 '빈틈을 메워 주는 하나님' 의 개념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구실로 하여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마음대로 배제하는 것은 사안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빈틈을 메워 주는 하나님(God of the gaps)'과 '필연적인 빈틈(간격)을 메우는 하나님(God of necessary gaps)'을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28) 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기화합물의 합성은 빈틈을 메워 주는 하나님' 이라는 개념에 부합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반면에 최근의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통해서 생명의 자연발생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필연적인 빈틈을 메워 주는 하나님' 이라는 개념을 더욱 지지해 주는 것같이 느껴진다.
더욱더 복잡하게 프로그램화된 생화학적 유연관계를 통해서 보면,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존재는 보다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것이 후자의 경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29)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보면 여기서도 기본적인 물리법칙들이 성립하며 그 상수들이 매우 정확한 값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0) 일단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된 어떤 현상들을 인간이 과학으로 복제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자연현상이 정교하다는 것을 발견할 때는 더욱 그렇다.
창조론은 과학인가? 진화론은 종교인가?
1981년에 미국의 아칸소 주 의회는 공립학교의 과학시간에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균형 있게 가르치도록 요구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서는 그 법을 반대하였으며,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로 인해서 야기된 아칸소 재판을 종종 제2차 스코프스 재판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명칭이 붙여진 이유는 1925년 테네시 주에서 진화론의 법률적 방어 차원에서 진행된 제1차 스코프스 재판'의 전례를 따랐기 때문이다. 뒤이어 재판은 계속되었고, 32) 아칸소 재판에서 창조론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내린 선고는 창조론이나 진화론의 본질적인 장점들을 고려해서 내려진 판결이 아니었다. 재판을 주재한 오버턴(William Overton) 판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요구하는 미연방헌법을 근거로 하여 비헌법적인 새로운 법을 제정하였다.
창조론이 종교라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오버턴 판사는 캐나다 겔프 대학교의 과학철학 교수인 루즈(Michael Ruse)의 증언에 거의 의존하였다. 루즈는 과학을 매우 좁은 의미로 정의하였다. 33) 그 재판이 끝난 후, 또 다른 과학철학자인 피츠버그 대학교의 라우던(Larry Laudan) 교수는 그 재판에서 채택한 과학에 대한 편협한 개념에 아연실색하였다. 라우던은 진화론에 우호적인 사람이었지만, 오버톤 판사의 결정에 대하여 과학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연구되는지에 대한 수많은 허위 진술에만 의존한 판결', '아칸소 재판에서의 엉터리 궤변', 과학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토착화시킨 행위' 라는 등의 비난을 퍼부었으며, 과학을 편파적인 개념으로 정의한 것을 '모두 엉터리이고…시대착오적이며... 언어도단'이라고 논평하였다. 과학을 그렇게 정의한 것에는 분명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판사가 서명한 견해에 많은 비판을 가하였다. 35)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오버턴 판사는 주장하였는데, 그렇다면 창조론은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36)34)
아칸소 재판에서 나타난 과학의 정의에 대한 논쟁"은 우리가 과학을 분명하게 정의하기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잘 강조해 주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그런 말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주장함으로써 창조론을 과학 교실 밖으로 몰아내기를 계속하였다. 그들은 종종 주장하기를 창조와 같은 기적은 과학적으로 실험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창조론과 맞선 과학자들(Scientists Confront Creationism)>과 같은 책들을 출판하면서, 창조론을 논박하기 위하여 과학을 활용하였다. 이렇게 진화론자들은 과학을 이중으로 써먹어도 되는 것일까?
일반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과학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론이 과학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실질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만일 과학이 진리를 찾기 위한, 진정으로 개방된 연구라면, 과학은 과학적 창조론'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장의 앞에서 설명한 몇몇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은 분명하게 과학적 창조론자들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와는 달리 만일에 창조주 하나님의 개념을 완전히 배제시킨 과학의 정의에 입각해서, 그저 순수한 자연주의적 철학으로서 정의를 내리게 되면 과학적 창조론은 존재할 수 없다. 예상한 바와 같이 진화론자들은 후자의 해석을 선호한다. 하지만 종종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이러한 해석은 역시 과학이 진리를 찾기 위한 개방된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또한 과학과 진화론, 혹은 과학 내지는 진화론이 종교의 한 형태가 되는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공청회에서 과학자들이 보여 준충성과 열심 그리고 열정은 문제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 주기 위한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미즐리(Mary Midgley)가 저술한 <종교로서의 진화론(Evolution as a Religion)>이라는 책은 여러 면에서 과학이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다른 저자들도 진화론과 다윈주의 안에 종교적 요소들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진화론은 종교이기 때문에 그것을 교실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법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창조론은 종교이며 진화론은 일종의 과학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과학과 종교 사이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으며, 어느 면에서는 서로 중복되기도 하고 또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더욱 중요한 질문
캘리포니아 교육위원회의 공청회에서 필자는 과학계가 창조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창조론이 진화론과 더불어 자유롭게 토론되고 경쟁이 되도록 허락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여러 견해 중에서 자유롭게 하나를 선택하도록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학문의 자유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창조론을 어떻게 해서든지 교실 밖으로 내몰기 위해서 그들은 과학은 무엇이라고 하는 어떤 정해진 정의를 서슴없이 반복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렇지만 프랑스사람의 표현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당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승리는 아니다!" 이보다 진지한 질문은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어느 것이 진리인가? 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질문은 종종 의미론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법률적인 절차상의 문제로 묻혀버리고 만다.
공청회에서 필자는 한 성직자가 자기의 교구 주민들이 자녀에게 성경의 도덕적 원칙과 성경의 가치를 심어 주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탄원하는 장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교구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성경과 성경의 원칙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신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는데, 결국은 과학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신념과 목적을 짓밟아 놓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들에게는 과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나 논쟁은 관심 밖의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만 학부모로서 그들은 자녀들에게 성경에 기초한 도덕성과 분별력을 가르치고자 노력하였지만, 학교는 그것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과학과 성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성에 초점을 두게 만든다.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는 대립적이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 둘은 기본적 합리성에 있어서는 역시 너무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광범위하게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있으며 서로가 독자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둘 다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론
과학과 성경 사이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사실상 성경의 합리성은 근대 과학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어 왔다.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이 성경을 신뢰한 것은 분명 그 둘 사이에 근원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공존 가능성(양립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1장에서 지적하였듯이 과학과 종교는 나름대로의 방법과 역할을 갖고 있다. 특별히 자연주의적 과학과 성경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그 차이나 대립의 원인은 기본적인 어떤 원리 원칙들보다는 자연을 보는 시각과 해석 방법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진리를 탐구할 때, 과학과 성경은 서로를 보완해 주고 서로를 해석해 주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과 성경,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진리인가?"라는 되풀이되는 질문은 별로 유익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과학과 성경 모두를 고찰할 때, 어떤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가?"라는 물음이 좀 더 타당하고 좋은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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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우주와 생명의 기원.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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