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儒·道 결합 유마힐상…중국문화 전형
‘유마’ 불교 재가자 중 가장 유명
둔황막고굴 등에 그의 도상 조성
성당代 그려진 변상도 벽화 ‘눈길’
학창의·주미 등 유교 문인 모습
‘지역문화와 습합’ 보여주는 사례
그림①. 당(唐) 오도자가 그린 송자천왕도(送子天王圖), 현재 일본 오사카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여기서 표현된 선묘 기법은 중국회화의 기본이 됐다.
유마힐(維摩詰) 거사는 불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가불자이다. 그 이름은 고대 인도어를 음역한 것으로 ‘정결(淨潔)’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즉, 그는 몸과 마음이 연꽃처럼 깨끗한 재가불자로 이는 불교도들이 추구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경전에 의거하면 유마힐 거사는 원래 묘희불국(妙喜佛國) 세계의 보살로 중생구제를 위해 거사이자 부유한 상인의 두 가지 신분으로 인간 세상에 왔다. 거사는 지식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신통이 무변해 마치 마술사처럼 다양한 방편과 환상을 통해 중생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시키고 가르쳤다. 그래서 사회 각계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당대(唐代) 시불(詩佛)로 일컬어지는 왕유(王維)는 그를 흠모하여 자기 이름을 ‘유(維)’라 하고 자호(字號)를 ‘마힐(摩詰)’이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많은 황제들도 스스로를 ‘유마 거사‘라고 자칭하였다. 이런 관계로 오늘날까지도 유마 거사의 조상(造像)이나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둔황 막고굴에 67개 굴과 용문석굴에 129개 굴이 있다.
제220굴 출입구인 동벽 입구 양쪽의 〈유마힐변상도〉에는 조우관을 쓴 한국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의 복식과 탄두가 나타나고 있고, 고구려의 7세기 당시 국력과 세력으로 보아 신라승들이 인도까지 구법여행을 했을 것이라는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의 주장이 있었다. 다만, 돈황 막고굴 〈유마힐변상도〉의 67개 사례에서 실제 오지 않은 남방계 여러 민족이 그려진 점 등은 좀 더 논의해 볼 문제이다. 그러나 돈황석굴에 그려진 고대 한국인의 모습은 회화나 인물화가 많지 않은 한국미술사에서 당시 실크로드와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반증해주는 주요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둔황 벽화 중에는 여러 화사들이 그린 〈유마힐변상도〉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에 성당시대 그려진 제103굴 주실 동벽 문 남측에 그려진 〈유마힐변상도〉가 가장 유명하다. 화면에서 유마힐 거사는 장막 안에 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앉아 있는데, 머리에는 흰색 윤건(綸巾)을 쓰고, 몸에는 학창의(鶴硫衣)를 입었으며 오른손에는 주미(闖尾, 총채)를 들고,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의 표정은 견고하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며, 그의 넓은 이마, 깊은 눈, 약간 열린 입술, 흐르는 듯한 수염은 지혜로운 사람의 이미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이 유마힐상은 명확히 중국 전통회화의 선묘(線描) 기법을 따르고 있다. 다만 학창의만 홍갈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나머지 옷은 묵선(墨線) 구륵(鉤勒, 윤곽선)으로 그려졌는데, 선이 유창하면서 유력(有力)하다. 특히 침상에 가볍게 떨어뜨려진 옷은 마치 산들 바람에 일렁이는 듯하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화성(츐聖)으로 추앙받던 오도자(吳道子)의 양식과 아주 흡사함으로 일부 학자들은 이 유마힐상과 오도자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그림①)
따라서 이 유마힐상은 중국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오도자의 양식은 중국 화화 표현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었는데, 바로 이 유마힐상에 그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바로 이러하다. 이전의 작품 예를 들자면 육조시대 고개지의 작품에서는 선묘의 변화가 없이 똑같은 굵기의 가는 선으로 사물의 외곽을 처리하였다. 이를 마치 누에가 실을 토해내는 듯하다고 ‘춘잠토사선(春蠶吐絲線)’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도자에 이르러 선묘의 굵기나 농담(濃淡), 장단(長短), 경중(輕重)의 변화를 통해 사물을 표현하였는데, 이처럼 필묵(筆墨) 기교(技巧)를 통하여 2차원의 평면 공간에서 3차원의 입체효과를 얻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오도자 양식은 이후 동양회화 표현의 근간으로 형성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림②. 둔황 막고굴 제103굴 동벽 남측에 그려진 〈유마힐변상도〉의 모습. 둔황의 유마힐 도상 중 가장 유명하다. 성당 시기에 조성됐다.
유마힐 거사가 쓰고 있는 윤건은 청색 띠로 만든 두건이며 학창의는 선학(仙鶴)처럼 길게 보이는 일종의 물새의 깃털로 만든 방한용 긴 외투다. 일반적으로 은사(隱士), 선인(仙人), 도사(道士) 등이 다른 사람들에게 탈속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입는 옷이다. 주미는 부채 혹은 불자(拂子)인데, 일종의 도구로 장식적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먼지를 털어 내는데 사용하는 것이었으나 사람들은 여기에 정신적 층면의 의미를 부여하여 고귀한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주(闖)’는 큰 사슴의 한 종류로 항상 무리 앞에서 걸으며 꼬리를 움직여 무리의 향방을 지휘한다고 한다. ‘주미’의 상징적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아마도 지도자의 다중 통솔의 의미를 여기서 찾고 있다고 보여진다. 위진(魏晉) 육조(六朝)시기에는 ‘청담사상(淸淡思想)’이 크게 유행했는데, 소위 ‘청담’은 당시 사족(士族) 명사들이 세속을 멀리하고 노장, 주역 등에 대해 논하였다. 이것이 사회에서 고아(高雅)한 시대적 흐름으로 인식되면서 청담을 즐기는 명사들에게 그 자격처럼 ‘주미’를 들게 하였다.
오늘날 고승 대덕 스님들이 법상에서 드는 불자(拂子)가 바로 여기에서부터 연유된 것이라 보여진다. 유마힐 거사는 고대의 문인사대부와 같은 지식인들이 숭배하는 지적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지혜를 대신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집에서 병든 척하고 지혜 제일의 문수사리보살을 초청하여 성대한 토론을 벌였는데, 그때 제왕과 외국의 왕은 물론 대신들도 모두 참여하였으나 결국 유마 거사가 대승을 거두었다. 유마 거사와 관련된 불교 경전의 주요 내용은 바로 이 성대한 토론에 관한 것이며, 이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을 〈유마힐변상도〉라고 한다.(그림②)
대천세계(大千世界)는 불교의 우주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일반적으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광대하고 무한한 세계를 말한다. 돈황 벽화에서 일반적으로 〈유마힐변상도〉는 좌측 또는 우측 손으로 ‘수접대천(手接大千)’ 즉, 대천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유마힐경(郭摩詰經)〉 ‘견아측불품(見각?佛品)’의 내용이다. 석가모니불이 사리불에게 유마힐은 원래 무동여래(無動如來) 치하의 묘희국 보살이라고 말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대중이 토론을 듣고 묘희국 세계를 보고 싶어 하므로 유마힐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마치 마술사처럼 오른손을 들어 “묘희세계를 끌어내어 여기 있노라”라고 대중에게 보여줬다.
예를 들어 막고굴에 있는 당말 제9굴의 묘희세계 묘사를 보면 유마힐은 왼손에 주미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손바닥에서 거대한 상운(祥雲)을 일으킨다. 구름 속에는 육비(六臂, 여섯 팔뚝) 아수라(阿修羅)가 그려져 있다. 맨 위쪽 왼손은 태양을 받치고 있는데, 태양 안에는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져 있으며 오른손은 달을 들고 있는데, 달에는 월계수를 그렸다. 중간의 두 손 중 왼손은 규구(規矩, 콤파스)를 잡고, 오른손은 묵두(墨斗, 먹통)를 들고 있다. 아래쪽 두 손 중 왼손은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오른손에는 법륜을 들었다. 아수라 머리 위는 수미산으로 산허리를 두 용녀가 감싸고 있는데, 호법 수호신이다. 산상에는 호화로운 보전(寶殿)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안에는 1불 2보살 및 여러 신장이 앉아 있는데, 이는 묘희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하늘과 땅이 소통하기 위한 인간계와 하늘을 연결하는 거대한 사다리가 그려져 있으며, 사다리에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여섯 명의 인간계 사람들이 있는데, 천계 입구에서는 천신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인간계에서 묘희세계로 오는 이를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경전 중의 “염부제인(閻浮提人), 역등기계(亦登其階), 상승인리(上넉萌利, 견피제천(見被諸天); 염부의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데, 위에서 다다르면 여러 하늘을 보게된다”라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유마힐 거사는 불교문화에서 초인적 지혜의 전형적인 대표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손에 ‘주미’를 들고 있음은 전형적인 유교 문인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지역 문화 요소를 흡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살펴보자면 ‘학창의’는 일반적으로 은자, 선인, 도사 등이 세속을 초월하여 고상하고 초일(超逸)함을 내세우기 위해 입는 옷이다. 따라서 ‘유마힐상’은 유(儒), 불(佛), 도(道)의 정수를 결합한 중국 전통문화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마힐상’은 대부분 ‘아픈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돈황 막고굴 제103굴의 유마힐의 형상은 정신이 명량하고 지혜가 충만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대당 문화의 자신감과 활력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