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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이 100일 때 중국 전·현 주석들 권력 장악력은
중앙일보
입력 2011.01.20 03:00
업데이트 2011.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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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내에서 어느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을까.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주석의 중국 권부에서의 위상을 놓고 미 언론들이 연일 깎아 내리기식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역대 중국 지도자 가운데 가장 힘없는 권력자”며 “과거의 중국 지도부와는 달리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 중국 정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중국의 역대 권력자들이 의사결정권을 좌지우지해 온 비율은 ‘9·7·5·3’이라는 분석이 중국 당·정 주변에서 회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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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이 전문가에 따르면 절대권력을 100%로 봤을 때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90%,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70%, 장쩌민(江澤民·강택민)은 50%를 행사했고 후 주석은 30% 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마오는 한때 개인 우상화가 시도됐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대약진운동(1958∼60년)의 실패로 수천만 명이 숨지자 일선에서 물러났다. 문화대혁명(66∼76년)으로 권좌에 복귀했지만 쿠데타 위협을 받기도 했다.
세 번의 좌절을 딛고 세 번 재기한 덩샤오핑은 70%의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오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막강한 지분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천윈(陳云·진운)·리셴녠(李先念·이선념)·예젠잉(葉劍英·섭검영) 등 원로그룹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했다. 천안문(天安門) 시위의 유혈진압을 지시한 뒤로 권위에 타격을 받았다. 장쩌민은 리펑(李鵬·이붕)과 차오스(喬石·교석)의 견제를 받았다. 군부에선 양자장(楊家將·양가장)의 입김에 시달렸다.
후 주석은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합의를 기초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군사위주석 등 3권을 쥐고 있어 다른 8명의 상무위원보다는 지분이 많지만 영향력은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후 주석 의 정권 장악력과 정치력을 논하는 것은 중국의 실정을 정확하게 읽는 방법이 아니란 지적도 있다.
중국 전문가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가 질적으로 변했고 군부·관료·국유기업의 독자적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2012년으로 전망되는 시진핑(習近平·습근평)의 당총서기 취임 뒤에는 이런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란
시를 읽고 울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1〉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입력 2024. 1. 2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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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읽거나 보고 들을 때 울컥할 때가 있다. 뭔가가 마음을 건드리는 탓이다. 류시화 시인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 ‘기억한다’는 그를 울게 만든 시인들의 시구로 이뤄진 특이한 시다.
시인은 열다섯 시인들의 시구를 하나하나 인용하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던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무명 시인을 제외한 시인들의 이름을 각주에 열거한다. 각주도 시의 일부분인 셈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 시는 “인용의 모자이크”다.
시인이 왜 울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위로가 돼서, 때로는 깊은 인간애에 감동해서, 때로는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에 공감해서 그랬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던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말은 따뜻하다. 무너지고 부서진 마음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일 테니까. 그리고 “상처 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했던 에밀리 디킨슨의 말은 어떠한가. 사실 그것은 디킨슨의 말이 아니라 그녀가 사냥꾼에게서 들은 말이다. 총 맞은 사슴을 상상해 보라. 그 순간에 사슴은 생명으로 가장 충만한 실존이 아닐까. 이처럼 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시인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기는 힘들다.
예민한 시인은 그러한 시들을 읽고 운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베개가 젖을 때까지 울고 나면 일어나 웃을 수 있는 법이라며 “마지막 울음 속에/웃음[행복]이 숨어 있[었]다”라고 했던 골웨이 키넬의 지혜, 그리고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했던 벤저민 스바냐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슬며시 싣는다. 삶이 아무리 팍팍해도 울음 끝에 웃음이 있고 절망 끝에 희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이처럼 ‘기억한다’라는 제목의 시는 다른 시인들에게 한껏 기대는 “인용의 모자이크”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던가.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불행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론 [고두현의 문화살롱]
고두현 기자기자 구독
입력2024.01.23 18:02 수정2024.01.24 09:26 지면A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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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관과 낙관 사이
"인생은 원래 고통스러운 거야"
막연한 위로 대신 직설적 조언
"남이 뭐랄까 눈치 보면 노예"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현실 직시하며 미래 대비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 되새길 때
고두현 시인
못생기고 괴팍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200년 전 그가 던진 직설적 조언들이 새삼 각광받고 있다.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오랫동안 아웃사이더였다. 63세 때까지 ‘무명’이었다. 학계에서 따돌림당했고 대중적인 인기도 없었다. 성격이 모난 데다 얼굴이 못생겼으며, 여자를 미워해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32세에 베를린대 강사가 됐지만, 당대 최고 스타 헤겔에게 맞서 강좌를 개설했다가 수강생이 한 명도 없는 참패를 당했다.
이후 교수직을 포기하고 고독과 좌절,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혀 지냈다.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발사에게 면도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엽기 행각으로 비웃음까지 샀다. 그는 이 세상을 비참하고 음침한 곳이라고 여겼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으로 극도의 금욕 생활을 고집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그의 비관주의와 염세주의가 싹텄다.
고슴도치처럼 적절한 간격을30세에 철학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펴냈으나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는 당시의 ‘합리적 이성론’에 반기를 들면서 이 세계가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의지’(욕망)에 의해 움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욕망은 채우고 채워도 충족될 수 없기에 인생이 고통스럽다며 이를 넘어서는 방법은 충동과 욕구를 거스르는 철저한 금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노년기였다. 63세 때 펴낸 얇은 책 <소품과 부록>이 뜻밖의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은 딱딱한 철학서가 아니라 청춘을 위한 에세이였다. 명쾌한 인생 격언을 문학적 재치와 유머로 풀어낸 덕분에 그는 탁월한 글쓰기와 최고급 산문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70세 생일에는 유럽 각국의 축사가 쇄도했다. 훗날 니체와 아인슈타인, 바그너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흐른 지금 ‘쇼펜하우어 신드롬’이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서점가에 불어닥친 열풍이 올해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등이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유튜브 영상 조회 수도 급상승하고 있다.
18세기에 태어난 비관주의 철학자가 21세기 한국에서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연한 위로와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사구시적 철학 덕분이다. “원래 인생은 고통스럽다” “행복을 내가 아니라 남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불행해진다” “인간관계에는 고슴도치처럼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데 너무 친해지려고 하면 파국이 온다” 등 직설적인 가르침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가 온갖 핑계를 대며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할 때, 그는 이를 “자유로운 자가 노예로서 주인을 모시고 싶어 우상을 생각해내는 것과 같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추상적인 행복을 좇지 말고 불행과 재앙을 피하는 일에 진력하라”고 권한다. 그는 또 “어떤 사람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라며 삶의 수용 자세에 따라 행복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른바 ‘불행한 철학자’의 ‘행복론’은 다른 철학자들의 관점보다 흥미롭다. 특히 돈에 관한 철학이 주목된다. 그는 돈을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한 철학자들과 달리 부(富)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기에 사색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는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더 마르다”며 “돈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부를 과시하거나 돈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평소에 “진짜 부자는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는 데 돈을 사용하지만, 가짜 부자는 남에게 보여주거나 방탕한 데 돈을 쓴다”며 과시적인 삶을 경계했다. 그는 또 “필요 이상의 부를 가지면 많은 재산을 유지하느라 쓸데없는 걱정을 하므로 행복감이 줄어드는데, 어떤 사람은 지적 교양을 갖추기보다 부를 얻기 위해 수천 배 더 노력한다”고 꼬집었다.바람에 따라 돛 방향을 바꿔라그의 행복론에 따르면 소유하기를 원할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지는 게 돈이며, 그것을 삶의 행복으로 바꿀 줄 모르는 데에서 어리석음이 시작된다. 부단한 욕망에 쫓겨 만족하지 못하는 생은 고통일 뿐이다. 그가 검소하게 살다가 모든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증하고 떠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검약(thrift)’과 ‘번영하다(thrive)’라는 말의 어원이 같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이른바 염세주의 철학자로만 알려진 그의 내면에 이렇게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낙관주의가 동시에 담겨 있다니 놀랍다. 이는 나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와 닮았다. 베트남전 포로가 된 미군 장성 스톡데일이 7년 반 동안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고난을 극복하고 생존했던 것과 달리 포로 대부분은 막연히 풀려날 것이라는 낙관주의에만 매달렸다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죽지 않았던가.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분석했듯이 기업들이 역경에 처했을 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 대응한 경우는 살아남았고, 조만간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낙관한 경우는 무너지고 말았다.
올해는 전쟁과 재난 가운데 70여 개국이 선거를 치르는 특별한 해다. 그 어느 때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며 합리적인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에 함축된 행복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면서, 미국 작가 윌리엄 아서 워드의 표현을 빌려 우리를 돌아본다. “비관주의자는 바람이 부는 것을 불평한다. 낙관주의자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현실주의자는 바람에 따라 돛의 방향을 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