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를 둘러싼 9가지 쟁점
인간에게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자유가 있을까. 아니면 고통뿐일 지라도 끝까지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 ‘죽을 권리’를 둘러싼 논쟁은 치열하게 이어져왔다. 그렇다면 ‘죽을 권리’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 9가지 쟁점을 살펴보자.
◆ 첫 번째 논점 : 고통은 제거돼야 하는 것인가?
[찬성]
고통을 실제로 겪는 환자에게는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운 나날이다. 회생할 수 없는 환자에게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죽음을 연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죽을 권리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
[반대]
사람들이 고통을 견뎌낼 방법을 더는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캘리포니아주의 변호사로 국제 안락사·조력 자살 전담반의 컨설턴트인 웨슬리 J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고통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고통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다”며, “그래서 고통을 아예 없애는 것이 사회의 역할로 간주된다. 고통을 완화해준다는 것과 아주 다른 개념이다.” 고통을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두 번째 논점 : 죽음은 나의 선택이다
[찬성]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영화감독이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사강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친 한 사람이 있다. 영국인 남성 폴 램 씨다. 램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이 마비됐다. 이후 고통 속에서 살아오던 램 씨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하고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의료진이 자신의 안락사를 돕더라도 살인 혐의를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는 영국 법원은 램 씨의 요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램 씨는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반대]
죽을 권리를 허용하면 자발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된 죽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죽음에 대한 결정이 온전히 자율적일지 의문이 든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은 죽을 권리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의무’가 될 수 있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귀찮고 쓸모없는 인간’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 세 번째 논점 : 가족은 죽기를 원하는 구성원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찬성]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가족 역시 환자의 죽을 권리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도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있다. 현재 영국 형법상에서는 타인의 자살을 돕는 행위를 한 자는 최대 14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구성원의 뜻을 존중하는 가족에게까지 부담을 가중시킨다.
[반대]
“그건 아주 이기적인 행동이었어.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있어주고 돌봐줄 기회를 없애버렸어.”
윈스턴 로스 뉴스위크 기자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그의 어머니가 29세 때, 외할아버지는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파열된 식도 정맥을 치료하려면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의 자살이 가족이 돌봐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고 말했다.
◆ 네 번째 논점 : 죽을 권리는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게 한다
[찬성]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진과 병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활성화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에 30일간 입원해 골밀도 등 각종 검사와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받은 말기 암환자의 평균 진료비는 1,400만원으로, 같은 기간 완화의료를 받은 환자의 진료비 530여만원보다 870여만원이나 더 많았다.
[반대]
이 논쟁은 돈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한다. 죽을 권리가 늘어나고 있는 고령자들의 위험한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가 고령자를 더 빨리 죽음으로 조금씩 밀어내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장애인 권익옹호 단체 ‘아직 죽지 않았다(Not Dead Yet)’의 다이앤 콜먼 대표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조력 자살은 의료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대책이다. 그런 점이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저소득층 부부 바버라 와그너와 랜디 스트룹은 각각 폐암과 전립선암에 걸려 치료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주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비싼 치료를 거부하고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대안 목록에는 조력 자살 비용을 대주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들 부부가 그 내용을 공개하자 결국 주 정부가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변호사 스미스는 사회가 안락사를 더 널리 수용할수록 정부는 가장 허약한 주민의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더 안간힘을 쓴다고 주장했다.
◆ 다섯 번째 논점 : 의사는 환자의 뜻을 존중해줘야 하는가? 끝까지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가?
[의사는 환자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선택권(혹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지켜줘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사상보다 ‘자율에 대한 존중’이 ‘환자 혁명’ 가운데에 있는 현재의 의학 윤리에서 더 주요한 원칙이다.
[의사는 끝까지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
안락사는 의료의 윤리적 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반하는 끔찍한 행위다. 환자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밀어 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와 맺는 관계가 기존의 ‘치료자’(healer)에서 ‘살인자’(killer)로 변하게 된다.
수세기에 걸쳐 의료인들의 행위 지침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을 할 것이고, 해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여섯 번째 논점 : 어느 쪽이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일까?
[찬성]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나 수술이 오히려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일 수 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유한한 것이다. 생명을 억지로 무한하게 지키려는 노력을 행할 때, 오히려 존엄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존엄한 죽음도 하나의 권리다.
[반대]
안락사를 하게 되면 생명의 보편적 존엄성이 훼손된다. 생존권에 따라 생명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생명이 쉽게 없어질 수 있는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이 안전하게 보장될 수 없으며, 이는 곧 생명경시 풍조를 낳게 된다.
◆ 일곱 번째 논점 : 안락사의 책임 소재를 밝힐 수 있을까?
[그렇다]
안락사의 허용기준을 명시하고 감시한다면, 부작용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 미국 등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품위 있게 죽겠다는 의사를 평소 글이나 유서 등으로 표현해 둘 경우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 또한 이미 관행적으로 의사 2명 이상이 ‘회복 불가능’이라고 판단한 환자에겐 본인 의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하고 있다.
또한 죽음의 과정을 책임질 전문가가 있다. 네덜란드에선 의사가 안락사의 사인을 검시관에게 반드시 통보해야 한다. 그 다음 의사, 변호사, 윤리학자로 구성된 지역 안락사 심의 위원회가 해당 건을 검토한다.
또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에서도 조력자살을 하려면 자신이 죽고 싶은 이유를 적은 서신과 3-4개월 내의 의학 보고서 등이 필요하다. 협력이 공인된 스위스 의사가 이 문서들을 검토한 뒤 치사약을 처방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아니다]
죽음의 책임소재 규명이 큰 문제다. 네덜란드 역시도 심의가 이루어질 때 환자 사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의사의 범죄 혐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에 국한된다. 2002년 이래 심의 위원회가 불법으로 간주한 안락사는 연간 약 5건이었다. 그러나 기소된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 여덟 번째 논점 : 죽음 허용 조건은 완화돼야 하는가?
[찬성]
유럽에서 조력자살 합법화 논의가 초기에는 불치병 환자들에 한정되었지만 갈수록 장애인, 치매 환자, 어린이 그리고 심지어 ‘실존적 고뇌’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방향은 긍정적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유도 누군가에게는 죽고 싶을 정도의 큰 상실감을 줄 수 있다.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의 윤리학 교수 테오 보어 교수가 검토한 안락사 500건에서 10%는 ‘외로움’에 관한 언급이 포함돼 있다고 보어 교수는 말했다. 외로움 역시 죽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락사, 조력 자살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스위스 취리히대가 201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경손상으로 인한 장애’(370명)였으며 암(227) 류마티스질환(140) 심혈관질환(93) 정신질환(10) 순이었다.
[반대]
안락사 대상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은 문제다. 네덜란드의 경우 안락사 허용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갈수록 쉬워지고 있다. 처음에는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 대다수가 말기질병 환자였다. 지금은 사람들이 우울증, 자폐증, 시력 상실, 또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처지까지도 견뎌내고 싶지 않다면 의사가 그들의 죽음을 도와줄 수 있다. 그만큼 쉽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소리다.
◆ 아홉 번째 논점 : 죽을 권리 인정은 죽음을 조장하는가?
[죽을 권리 인정은 죽음을 조장하지 않는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미넬리 디그니타스 원장은 우선 누군가에게 자살과 관련해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주게 되면 그가 실제로 자살에 나설 확률이 오히려 크게 낮아진다고 말한다. 미넬리 원장의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이 최종 승인을 결정한 이들 중 80%는 결국 안락사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을 권리 인정은 죽음을 조장한다]
안락사가 허용되고 나면, 안락사를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네덜란드가 2002년 안락사 법을 제정한 후 첫 몇 년 동안은 안락사 건수가 줄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연간 15%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안락사 허용 이후 시간이 지나자, 많은 이들이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적극적 안락사, 조력자살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죽음’을 입에 올리기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온전한 자기결정권을 가지기 위해선,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좀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