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공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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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샤는 말없이 붉은 검만을 바라보았다.
'카이드라스, 내 말 들리면 답해.'
하지만 카이드라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천상계로 넘어오면서 카이드라스는 인간계에 남아버린 것
같았다. 라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붉은검과 친구가 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뜻일까......'
라이샤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붉은검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 붉은검을 잡았을때는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불의 기운이 그 안에서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이 넘실대는 기운이 그 검안에서 느
껴졌다. 하지만 도저히 친구라는 개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친구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 어떻게
검을 친구처럼 대하란 말인가. 아무리 오래 사용했던 검이라 하지만 이제 그 안에는 클렉시온이 있고 카이드
라스의 보금자리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붉은검 자체와 친구가 되라는 것인지 라이샤는 그 목소리의 뜻을
알 수 없었다.
라이샤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땅꺼진다, 그만 한숨쉬어.】
"어?"
라이샤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예상밖으로 가이샤가 있었다.
가이샤는 라이샤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라이샤는 가이샤의 기운조차 느끼지 못했는데도 그가 자신의 방안에
있자 놀랐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간단하다는 듯이 가이샤는 말했다.
【여기는 내 세상이야. 인간계보다 내 힘이 더 많이 통하는 곳이라구. 그러니 내가 너 눈치못체게 들어오는
것 쯤이야...... 식은죽먹기지.】
가이샤는 능글맞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또 다시 한숨을 내쉬려던 라이샤는 가이샤가 그냥 온것이 아니라 분
명히 자신에게 무언가 충고같은 것을 하러 온것이라고 짐작해보았다.
【내가 너 힘들어하는거 보고 널 도와줄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생각은 집어치워. 난 네가 궁금해하는 모
습이 매우 재밌으니깐.】
라이샤는 나오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도저히 저 자가 이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는 창조주인가 하는 생
각이 들었고 과연 자신의 아버지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다. 가이샤는 라이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라이샤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가이샤에서 붉은검으로 돌렸다. 가이샤는 자신이 무시당한것 같아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지금의 그로써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보았다.
라이샤는 한동안 붉은검을 바라보며 끙끙댔다. 하지만 도저히 붉은 검을 친구로 만든다는 것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라이샤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붉은검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곳엔 가이샤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라
이샤가 고개를 들고 보았을때는 이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라이샤가 오는것을 보지 못했던 것 처럼 나
갈때도 라이샤가 느끼지 못하게 나가버린 것이었다. 장난이나 칠까하던 라이샤는 포기하고 다시 붉은검을 바
라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해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런 바보같은 놈을 봤나!'
목소리가 웅웅 울려퍼지며 라이샤의 몸같지 않은 몸에 전해졌다. 라이샤는 지금 자신의 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저 검을 보고 끙끙대면 답이 나오리라 생각한거냐?'
......하지만 저에게 다른 방법은......
'이런 멍청한 녀석! 난 이미 너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으냐! 붉은검은 친구이자 적이라고! 넌 지금 친구도 적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이에 있다. 그런데 적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냐!'
......그렇게 호통만 치지말고!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줘! 검을 휘두를 줄도 모르는 놈보고 적을 베라고 하면 베
어지나? 방법을 가르쳐달란 말이야!
속에서만 참았던 라이샤의 울분이 터졌다. 라이샤는 있는 힘을 다해 목소리라 생각되는 부분을 이용해 소리
를 질렀다. 그러자 상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도망간거냐! 왜 내 물음에 답이 없는거냐!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제길! 이래나 저래나 쓸모없는 놈뿐이야!
'바보같은 자식...... 어거지를 써서 되는것이라 생각하나?'
그래!
라이샤의 짜증난 말투에 상대의 말투도 약간 변했다. 언성이 약간 올라간 것 같았다.
'너란 자식은...... 바보같은 자식! 네가 성공한다면 내가 만든 불의 검술을 모두 무효로 만들겠다! 이런 바보같
은 자식!'
좋아! 그 조건 마음에 드는군. 네가 만든 불의 검술, 체력이 너무 많이 필요해. 그딴 것 보다 내가 만드는게
더 좋을 것 같군. 내 꼭 붉은검을 친구로 만들고 말리라!
'맘대로 해라, 이 바보같은 자식!'
그리고 다시는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라이샤는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의 책상과 침대가 보이며 익숙한 자신의 방 풍경이 나타났다. 라이샤는 붉은
검을 바라보던 시선을 떼고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그저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밖엔 보이지 않았다.
'꿈인가...... 쳇! 재수없는 자식......'
라이샤는 속에서 피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이샤의 방으로 향했다. 그
리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는 말했다.
"야! 마이샤!"
답변은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불에 익혀져 보글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라이샤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바닥
은 종이로 덮여있었고 책상위는 뭔가 알 수 없는 기구로 가득차 있었다. 라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찾
던 상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이샤의 변해버린 생활습관때문이었다. 마이샤는 평소에 깔끔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깔끔을 떨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이 천상계에 오고나서는 그런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어지럽히고 다녔
다. 라이샤는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막아섰다. 이번에 한숨을 쉰다면 천상계력으로 하루에 50번을 한숨쉬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라이샤는 확인사살도 할겸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야! 마이샤!"
답변은 없었다. 라이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방안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 그를 막는 손길이 있
었다. 라이샤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으나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을 지니며
라이샤는 다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라이샤를 끌어들였다.
라이샤는 누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아 화가 나 고개를 홱하니 돌렸다. 하지만 역시나 상대는 없었다.
"야! 이 더러븐 자식아! 장난만 치지말고 내 앞에 나타나!"
"어...... 나 형 앞에 있는데."
순간 라이샤는 굳어버렸다. 분명히 자신의 앞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라이샤는 허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마
이샤의 이름을 불렀다.
"마이샤?"
"응. 왜?"
"......"
라이샤는 말없이 손을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허공을 만져봤다. 그러자 코같은 것이 만져지며 그것이 몸을
살짝 틀어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남의 코를 만지고 그래."
"......"
라이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허공을 만져보았다. 축축한 느낌이 들며 무엇인가가 만져졌는데 그
것은 움직이며 그 안에서 소리가 나왔다.
"왜 또 남의 입을 만져?"
"......"
라이샤는 손을 내리고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앞에다 대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우아아~~!!"
구름 위를 돌아다니며 한가로이 놀던 천사들은 갑자기 들려온 괴성이 깜짝 놀랬고 가이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왠만한 일이 아니면 잘 울지도 않던 라이샤였다. 그런데 소리까지 지르는 것으로 봐서 엄청난 일이 벌
어졌음을 알았다. 가이샤는 몸을 움직이려 하였지만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건방진(?)천사 세라핌을
어찌하지 못했다. 가이샤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아까하던 일을 하였다. 라이샤가 알아서 하길 바라며......
라이샤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한참 그가 유리판 같은 곳을 달렸을때 그는 멈추
고 숨을 골랐다. 체력도 대단한 라이샤였지만 방금 엄청난 일을 당하고 왔기에 숨은 더욱 고르지 않았다. 라이
샤는 한동안 숨을 골랐다. 그런데......
"갑자기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또 다시 라이샤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우아아아~~~~~~!!!!"
위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던 천사들은 왜 인간남자가 소리를 지르는지 알고 그에게 마법을 걸어주었다. 투명
감지마법을......
순간 라이샤는 자신의 몸에 이질감같은 기운이 느껴지고 눈앞에 마이샤가 보이기 시작했다. 라이샤는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지만 마이샤의 모습은 여전히 보였다. 하지만 몸이 반투명한것이 왠지 귀신같은 느낌을
주었다. 라이샤는 아까보다 한참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이샤?"
"응. 나 마이샤야.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투명된 사람 처음본거야?"
투명이라는 말에 라이샤는 굳었다. 옛날의 일이 기억났다. 그때 라이샤는 투명마법에 대해 쓰여져 있는 마이
샤를 놀렸다. 그러자 마이샤가 화를 내며 자신은 분명히 투명마법을 익혀 라이샤를 놀려줄것이라고 하였다. 라
이샤는 혀까지 내두르며 마음대로 하라고는 했지만 그 결과가 지금처럼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라이샤
가 울상을 짓는 한편 마이샤의 얼굴에선 웃음이 피어올랐다.
"혹시...... 내 투명화된 모습에...... 푸하하하하하핫~!"
"......"
라이샤는 귀밑까지 빨개져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하지만 마이샤는 천상계가 떠나가라 웃었다.
"내 모습에...... 푸하하하하하핫푸하하하핫~!!!!!!!!"
"그만해."
달아오른 주전자같은 얼굴로 모기만한 목소리로 라이샤가 말했지만 마이샤는 자신의 웃음소리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푸하하하하하!"
"그만하라니까."
약간 붉은끼가 사라졌지만 아직 얼굴이 붉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까보다는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마이샤는 자신의 웃음소리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푸하하하하하!"
"그만 하라니까!"
라이샤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빽 지르자 드디여 마이샤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라이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투명모습보고 놀랐지?"
라이샤는 시선을 회피하며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이샤의 얼굴은 무언가를 요구하며 라이샤의 시선을 따라
갔다.
"내 투명모습보고 놀란거, 맞지?"
라이샤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맞지?"
하지만 어느샌가 왼쪽으로 온 마이샤는 자신의 얼굴을 디밀었다. 라이샤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오른쪽으로
돌렸다.
"맞지? 맞지?"
오른쪽에도 마이샤의 얼굴이 있었다. 라이샤는 지금 인간의 얼굴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
을 가지며 강하게 내려치고 싶은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이질감같은 느낌이 사라지며 다시 마이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지? 맞지? 맞지?"
마이샤의 시선을 느낄 수 없어 좋긴하지만 마이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어 라이샤는 괜히 불안했다. 라이샤
가 마이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골려주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인간계에서는 그런 행동을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천상계에 오고 더욱 괴팍해진 마이샤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라이샤는 불
안한 마음을 추스리며 조용히 말했다.
"맞지? 맞지? 맞지? 맞지?"
"조용히 하고...... 얼른 그 마법 풀어."
"왜?"
"짜증나니깐."
"그럼 싫어."
"맞고 풀래?"
"지금 내 모습 보여?"
"아니."
"엘렁. 나 때려봐."
라이샤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지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것이었다. 라이샤는 끝내 터
져나오는 한숨을 막지못하고 하루에 50번 한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말했다.
"시끄러. 빨리 풀기나 해. 나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거야. 이런 장난이나 치러온것이 아냐."
라이샤의 말에 한동안 말이 없던 마이샤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모습을 나타내었다. 원래는 마법을 걸기
는 쉬워서 풀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투명마법의 마스터경지에 오른 마이샤에게 그 정도는 쉬웠다. 마이
샤는 모습을 나타내고 아까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아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찾은 이유가 뭐야?"
라이샤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다른 이의 기운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