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80 3 술회述懷 80 무제無題
1
청신가언매清晨駕言邁 이른 새벽에 말 앞세우고 달려갔는데
적원량소지適願良所之 원대로 이리저리 가 보았네.
수인집백구誰人縶白駒 어느 사람이 망아지[白駒]를 매어 놓았나?
영조비아의永朝非我宜 긴 아침이 나의 마땅한바 아닐세.
하이위량소何以慰良宵 어떻게 좋은 밤 위로할거나?
다종래하기多種徠何其 많이 심는 것이 어찌 그 위로가 되리.
다종필다종多種必多種 많이 심자, 많이 심자, 꼭 많이 심자
유패비아지莠稗非我知 가라지[莠]와 돌피[稗]는 내 알 것 아니다.
장삼리사치張三李四齒 장삼張三과 이사李四의 나이쯤이야
칠두계타시七㪷計他時 일곱 말이 되는지 뒷날 따지자.
졸자필전후拙者必殿後 졸렬한 자 반드시 맨 뒤로 떨어지나니
기명비오수其名非吾誰 그 이름 내가 아니고 또 누구이랴?
맑은 새벽에 말 수레에 올라타서
찾아간 곳은 내 맘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네.
누군가 흰 망아지를 매어놓았는데
아침 내내 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네.
이 좋은 밤을 어떻게 위안 삼을까
얼마나 많은 무리가 날 위로하러 올까.
다양함이란 필시 여러 종류임을 뜻하나
쌀이 아닌 가라지와 피는 내 알 바 아니라네.
사람들의 이[齒]처럼 모두 고만고만하니
언제라도 알곡 일곱 말만 쳐주면 된다네.
옹졸한 놈은 항상 맨 뒤에서 서성거리니
내가 누구를 그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가언駕言 수레에 오름. 곧 수레를 타고.
이 구句는 作家不明 古詩十九首 가운데 제11수의 첫 句인
‘회차가언매回車駕言邁’ 에서 앞의 두 글자만 빼고 차용.
駕言은 또 도연명陶淵明의 歸去來辭 한 句節인 ‘부가언혜언구復駕言兮焉求’ 에도 나옴
►적원適願 마음속 바라던 것이 들어맞음.
►소지所之 가고자하는 곳. 하고자하는 것
►‘맬 칩縶’ 매다. (마소를)잡아맴.
►‘망아지 구駒’ 흰 망아지
►‘마땅 의宜’ 마땅함. 어울림. 화목和睦함
►‘밤 소, 닮을 초宵’ 밤. 초저녁
►‘올 래(내)/위로할 래(내)徠’ 래來. 위무慰撫하다
►하기何其 하기호도何其糊涂. 얼마나
►유패莠稗 가라지(볏과 풀)과 피
‘가라지 유, 씀바귀 수莠’ ‘피 패稗’ 작다. 잘다
►‘이 치齒’ 나란히 서다. 동류同類로 삼다
►‘말 두㪷’ 도량형度量衡으로 알곡 1말
►전후殿後 맨 뒤에서 후방을 방비함. 군대의 최후미最後尾
►오수吾誰 내가 누구를 ~할까
2
우봉경락일신지偶逢京洛一新知 우연히 서울의 새 친구 만났는데
인물풍류합차시人物風流合此時 인물이나 멋있는 것 이 시대에 합당하다.
단좌소담다일흥團坐笑談多逸興 둘러앉아 담소談笑할 적엔 흥취도 많더니
견행희학망쇠지肩行戲謔忘衰遲 걸어가며 익살떨 적엔 늙는 것을 잊었네.
추풍여아장퇴로秋風與我將頹老 가을바람과 나만이 장차 늙어 빠져서
고엽인인사소비枯葉因人似訴悲 마른 잎새 사람 통해 슬픔 호소하듯
객관소조정황심客館蕭條情況甚 나그네 집 쓸쓸한 정황情況 심하여서
위군료증일편시爲君聊贈一篇詩 그대 위해 이렁성 한 편의 시를 보내네.
우연히 한양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알게 되니
요즘 세태에 맞은 사람 됨됨이에 풍류까지 갖췄다네.
둘러앉아 담소하며 아주 흥겹게 놀았다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실없는 농담하니 늙은 나이도 잊었다네.
나도 가을바람처럼 늙고 쇠퇴해가니
시든 낙엽 같은 서글픈 인생을 하소연한다네.
객사의 쓸쓸한 분위기가 점점 깊어가니
그대를 위해 애로라지 시 한편을 지어 보내드리리.
►경락京洛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때의 서울인 낙양洛陽.
►일흥逸興 아주 흥겨움
►견행肩行 어깨를 나란히 걷다.
►희학戱謔 실없는 농지거리.
►쇠지衰遲 쇠하고 느릿함. 노년老年
►‘무너질 퇴/턱 퇴頹’ 기울다. 쇠퇴(衰退)하다
►인인因人 인간이기에. 인간사
►소조蕭條 분위기雰圍氣가 매우 쓸쓸함
►‘귀 울 료(요)/애오라지 료(요)聊’ 애오라지(부족하나마 그대로)
3
상풍책책향고침霜風策策響孤砧 서릿바람 휙휙 하고 외로운 다듬이 소리 들리는데
해역평표추이심海域萍飄秋已深 바다에는 부평초 떠서 가을 이미 깊었어라.
로대차신제물아老大此身齊物我 늙어빠진 이 몸 물건이고 나〔我]이고 평등인데
헌앙시기강침잠軒昂是氣強沈潛 높이 오르는 이 기운을 억지로 침잠한 체하누나.
사안불합동산와謝安不合東山臥 사안謝安은 동쪽 산에 누웠는 것 합당치 않고
장수자지남곽심莊叟自知南郭心 장수莊叟는 남곽南郭 사람의 마음 자연히 알았다.
경일여군상대어竟日與君相對語 온종일 그대와 상대해서 말했더니
세정종차소침심世情從此少侵尋 세상 물정 이제부터 차츰 밟아 들어가는 일 적으리.
다듬잇돌 소리 고고한데 서리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바다에서 일렁이는 바람에 가을은 이미 깊었네.
늙어버린 이 몸은 생사조차 초월하니
당당하고 강한 의기도 잠잠히 가라앉혔다네.
풍류를 즐긴 사안도 산에서 누워 지내지는 않았는데
장자는 남곽처사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으리.
하루 종일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세상물정도 이처럼 자그마하나마 점점 나아졌으면 좋겠네.
►책책策策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다듬잇돌 침砧’ 다듬잇돌. 모탕(나무패거나 자를 때 받치는 나무토막)
►평표萍飄 일렁대는 바람
►노대老大 경험經驗 풍부豐富한 노인. 한창 때를 지나서 늙음
►제물아齊物我 불교용어로 生死·有無·物我·是非등 상호 대립된 槪念을 합한 뜻
►헌앙軒昻 헌거軒擧. 풍채風采 좋고 의기 당당堂堂함
►부합不合 물건物件이나 마음에 맞지 않음. 불협不愜
►사안謝安(320-385) 남북조시대 동진東晉 말기의 사람, 자字는 안석安石.
동산東山에 살면서 국가의 부름에 응하지 아니하여 그때의 사람들이
"안석安石이 나오지 아니하면 천하의 蒼生이 어찌하랴!”고 탄식하였다 한다.
그래서 나와 벼슬하여 대정치가가 되었다.
►장수莊叟 장주莊周(BC360-BC280)
남곽자공南郭子恭 은궤이좌隱几而坐 앙천이허仰天而墟
남곽자기南郭子茶가 안석에 기대앉았는데 세상을 근심하여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莊子 齊物論>
►남곽南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남곽처사南郭處士.
참된 재주 없이 과분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말함.
<한비자韓非子 내저설상内儲說上>에
진정적재간이혼재행가리면충수적인真正的才干而混在行家里面充数的人
“진정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숫자만 채우는 것”이라 기록
►경일竟日 온종일
►침심侵尋 점점 앞으로 나아감
4
해상풍연로차신海上風煙老此身 바닷가의 풍연風煙 속에 이 몸 늙었는데
대군담화창정신對君談話愴精神 그대 만나 담화하니 정신이 처량하여라.
풍류일감치관창風流日減嗤官倡 풍류風流 날로 감하는 것 관가의 광대 비웃지만
의기년증오세인意氣年增傲世人 의기意氣는 해마다 더하여서 세인에게 거만 뺀다.
려사무료여아희旅思無聊與兒戲 길손의 생각 할 일 없어 아이들과 희롱하니
여생유루사비진餘生有累事非真 남은 생명 누累됨이 있다면 일은 참말 아닐세.
빈빈욕대정상치頻頻辱對情相治 자주자주 대해 주어서 정情 서로 흡족하여
종석단란소어신終夕團欒笑語新 밤새도록 단란하게 웃는 말 새로왔네.
먼 바다의 흐릿한 기운에 이 몸은 쇠잔해지고
그대와 말을 나누다보니 내 마음이 아파오네.
풍류를 즐기는 것도 나날이 줄어드니 관기들의 노래가 우습기만 하고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기가 세어져 오만한 이들이 늘어난다네.
애오라지 아무 생각 없이 나다니며 아이들하고만 놀 것이니
남은 인생에 힘들고 거짓된 일도 있으리.
욕된 일도 자주 겪을 테고 서로 간에 정을 나눌 때도 있으리니
하룻밤 단란하게 웃고 이야기하며 새아침을 맞으세.
►풍연風煙 먼 하늘에 서린 흐릿한 기운氣運
►‘슬플 창愴’ 슬픔. 마음 아파함
►‘비웃을 치嗤’ 비웃다. 미련하다.
►관창官倡 관기官妓들의 노래
►의기意氣 득의得意. 장한 마음. 기상氣像
►‘귀 울 료(요)/애오라지 료(요)聊’ 애오라지(부족하나마 그대로). 어조사語助辭
►루사累事 성가신 일. 힘든 일.
►비진非眞 거짓. 가짜의. 가정하다
►번빈煩頻 빈번頻煩. 빈번頻繁. 일이 매우 잦음.
►욕대辱對 모욕侮辱 당함.
►상흡相洽 서로 흡족함
►종석終夕 종야終夜. 하룻밤 사이.
►단란團欒 원만圓滿함. 친밀親密하게 즐김
5
거종증랑군擧鍾贈郎君 잔 들어 낭군郎君에 주거니
막도오정박莫道吾情薄 내 정이 박하다고 말하지 마소.
산심수중복山深水重複 산 깊고 물 겹겹이 둘러 있는데
수여랑상학誰與郎相謔 그 누가 낭군과 서로 농담할 거나?
술잔 들어 낭군님께 드리오니
내 사랑이 야박하다 마소서.
첩첩산중에 깊은 물까지 겹쳤는데
누가 낭군님을 희롱하려들까요.
►‘쇠북 종/술병 종鍾’ 쇠북. 술잔(盞). 술병(甁)
►‘희롱할 학謔’ 희롱함. 농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