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49제에 하사하신 어서말씀을 근간으로 5좌3좌 근행을 만든 것 같은데..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5.28 조회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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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49제에 하사하신 어서말씀을 근간으로 5좌3좌 근행을 만든 것 같은데..
보리(菩提)를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일부(一部)·자아게(自我偈)를 수차(數次)·제목(題目)을 백천번(百千番) 봉창(奉唱)하였나이다.
보리(菩提)를 위하여 즉 성불과 후생선처를 위해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께서 실천하신 이 내용을 근간으로 5좌3좌 근행을 구상한 것 같은데..
제자의 49제에 즈음하여 특별히 행하신 부분을 5좌3좌의 조석근행으로 일반화하여 독경을 구상한 것은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어의에 비춰볼 때 너무 나갔고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저 인신(人身)을 받기는 희귀(稀貴)한 일이니라, 이미 희귀(稀貴)한 인신(人身)을 받았으며 또한 만나기 어려움은 불법(佛法)·이것 또한 만났노라, 같은 불법(佛法) 중에서도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삼가 만나서 결국(結局) 제목(題目)의 행자(行者)가 되었으니, 참으로 참으로 과거십만억(過去十萬億)의 제불(諸佛)을 공양(供養)한 자(者)이니라."
자쿠니치보어서(寂日房御書) 902쪽
같은 불법(佛法) 중에서도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삼가 만나서 결국(結局) 제목(題目)의 행자(行者)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제목(題目)의 행자(行者)!!!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제목(題目) 근본으로 24시간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환희 중의 대환희하는 위대한 도전이 우리들이 지향하는 최극의 삶입니다.
이 길이 지구촌의 평화낙토와 전인류를 근본적으로 구원해가는 위대한 구원자들의 위대한 삶입니다.
그 선두에 서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경지명합 = 하나되어 24시간 대환희 속에 즐겁고 풍요롭고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일생성불초 384쪽
"결국(結局) 시시염념(時時念念)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십팔원만초1367쪽
"참으로 생사(生死)를 두려워하고 열반(涅槃)을 원하며 신심(信心)을 면려하고 갈앙(渴仰)을 한다면 천멸무상(遷滅無常)은 어제의 꿈이고·보리(菩提)의 각오(覺悟)는 금일(今日)의 현실이로다.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 497쪽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이 홍통(弘通)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체(體)이고 심(心)이니라,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용(用)이고 이십팔품(二十八品)은 조행(助行)이며 제목(題目)은 정행(正行)이니라. 정행(正行)에다 조행(助行)을 포함(包含)시켜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 794
등등의 어서말씀을 통해서 볼 때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근본적으로 행해야 할 제목의 행자로서 수행을 근본적으로 하고 대석사나 포교소 방문 때는 가끔 독경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여 저는 2023년 5월 24일부로 5좌3좌의 조석근행대신 일야조모로 언제 어디서나 시간대나 장소나 형식에 구애받지않고 행주좌와에 걸쳐서 오직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제대로 정확하게 최대한 많이 부르면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24시간 환희 중의 대환희의 생명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각자는 적이하게 판단하셔서 실천해가시면 될 것입니다.
참고할 본문부분 발췌한 어서말씀입니다.
난조고시치로고로전(南條故七郞五郞殿)의 사십구일(四十九日)·보리(菩提)를 위하여 보내 주신 물품(物品)의 목록(目錄)에 관한 일, 엽전(葉錢) 이련(二連)·백미(白米) 일타(一駄)·토란 일타(一駄)·순두부(純豆腐)·곤약(菎蒻)·감 一바구니·유자(柚子) 오십개(五十個) 등(等) 운운(云云), 보리(菩提)를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일부(一部)·자아게(自我偈)를 수차(數次)·제목(題目)을 백천번(百千番) 봉창(奉唱)하였나이다.
대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일대성교(一代聖敎)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經)으로서·더구나 유불여불(唯佛與佛)이라고 설(說)하시어 부처와 부처만이 아시므로, 등각(等覺) 이하(已下) 내지(乃至) 범부(凡夫)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외다.
그러므로 용수보살(龍樹菩薩)이 대론(大論)에는 부처 이하(已下)는 오직 믿음으로써, 부처가 된다고 쓰여 있나이다. <중략>
대저 이 법화경(法華經)을 펴서 배견(拜見)하노라면 「여래(如來)는 즉 그를 위해 의복(衣服)으로써 이를 덮어 주시고 또한 타방(他方)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이 호념(護念)하는 바가 되리라」 등(等) 운운(云云). 경문(經文)의 뜻은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땅에는 도마(稻麻)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이렇듯 고마운 경(經)을 고고로전(故五郞殿)은 믿으시어 부처가 되시고, 오늘은 四十九일이 되었으니, 일체(一切)의 제불(諸佛)이 영산정토(靈山淨土)에 모이셔서 혹은 손에 얹으시고·혹은 머리를 어루만지시고·혹은 안으시고·혹은 기뻐하시니·달이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과 같이·꽃이 처음으로 피었듯이·얼마나 사랑하시겠느뇨. 대저 어찌하여 삼세(三世)·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강력(强力)히 이 법화경(法華經)을 수호(守護)하실까 하고 생각하건대·도리(道理)인 것이외다.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함은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諸佛)의 부모(父母)이니라·유모(乳母)로 되고·주(主)이신 것이니라. 개구리라는 동물(動物)은 어미의 음성(音聲)을 먹이로 하는데·어미의 음성(音聲)을 듣지 않으면 생장(生長)하지 못하느니라. 가라구라(迦羅求羅)라고 하는 벌레는 바람을 먹이로 하니·바람이 불지 않으면 생장(生長)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물을 의지하고·새는 나무를 보금자리로 한다·부처도 또한 이와 같이 법화경(法華經)을 목숨으로 하고·식물(食物)로 하고·주처(住處)로 하시느니라. 물고기는 물에 살고·부처는 이 경(經)에 사신다·새는 나무에 살고·부처는 이 경(經)에 사시며·달은 물에 깃들고·부처는 이 경(經)에 깃드시니, 이 경(經)이 없는 나라에는 부처가 계시는 일이 없다고 심득(心得)하십시요.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68 ~ 1571쪽